리의 별 - 제4회 황산벌청년문학상 수상작
강태식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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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한번은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기대했던 일들이 모두 벽에 부딪히고, 사람들 사이에서 이리저리 부딪히며 시달리고, 다들 내 마음 같지 않아서 오해가 쌓이고, 관계가 엉망이 되고, 풀어야 할 것들은 많은데 당장 처리해야 할 것들이 산재해 있어서 숨이 막혀 버릴 것 같았던 그 때, 세상에 사람이 한 명도 없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정말 그 날은 사람이라는 존재가 지긋지긋해질 때까지 참고 참았던 무언가가 가슴에서 툭 끊어지는 느낌이었는데, 세상에 아무도 없다면 그럼 얼마나 사는 게 편할까 싶었던 거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이렇게 사람들 틈에 있어도 외로운데, 모두가 사라진다면 그 얼마나 고독할까. 싶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마치 양날의 검처럼 한 가지를 포기해야만 다른 한 가지를 겨우 얻을 수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대체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바래야 하는 것일까. 그저 고독을 견디든, 혹은 관계에서 오는 모욕과 분노와 슬픔을 견뎌야만 하는 것인가. 어쩌면 이 책은 아주 오래 전에 가졌던 내 의문에 대한 대답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멀리 있는 건 그게 아무리 대단해 보여도 진짜 인생은 아니니까. 안 그렇수? 모름지기 진짜 인생이라는 건 말이야, 이렇게 두 손으로 단단히 잡은 다음 한입 가득 베어 물고 쩝쩝 소리를 내면서 씹을 수 있어야 해. 이 맥도널드 자이언트 버거처럼 말이우. 아니면 좁고 지저분하고, 어제도 변기가 막혀서 똥물이 넘쳐흘렀지만, 아무튼 쌍욕이 나올 만큼 사람 냄새가 풍기거나. 내가 사는 뉴욕 할렘 가 125번 거리의 낡은 아파트처럼.

51세기 초, 인류는 생명유지장치 없이 돌아다닐 수 있는 최초의 행성, 플랜A를 발견한다. 지구로부터 우주선을 타고 세 시간 오십 분이 소요되는 거리, 지구 질량의 삼분의 이에 해당하는 이 무인 행성은 곧 거대한 유원지로 만들어 진다. 조잡한 호텔 한 채와 싸구려 놀이기구 몇 개를 들여 놓기 시작하면서 유원지 행성으로 새 단장을 한 플랜A는 초창기 관광객들에게 엄청난 붐을 일으켰다. 특히나 행성 고리와 정십자 형태로 맞물려 돌아가는 이만여 대의 행성대관람차는 엄청난 규모를 자랑했고, 덕분에 서비스 로봇이 소화할 수 있는 인원보다 관광객 수는 다섯 배 이상이 많아 구조적 불균형이 계속 증가되고 있었다. 그러다 갑작스럽게 치사율이 백 퍼센트에 이르는 바이러스로 인해 플랜A는 통제가 불가능한 아노미 상태에 빠져 버렸고, 공식적인 무인 행성이 되고 만다.

그리고 아무도 살지 않는 그곳 플랜A에 홀로 남게 된 리, 그는 세상에서 가장 비싼 놀이기구를 수십 년째 타고 있는 늙은 남자이자 그곳의 유일한 인간이다. 그는 무인행성의 궤도를 십오 년, 이십 삼 년, 삼십 여 년째 돌면서 홀로 그 그곳에서 살아 왔다. 놀이기구로 가득 찬 행성에서 혼자 산다는 건 대체 어떤 기분일까. 엄청나게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예전에는 누구나 타고 싶어서 환장했던 행성대관람차였지만, 그처럼 죽을 때까지 타고 싶어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그것도 혼자서 말이다.

 

아무도 없는 나라의 왕이 된 기분은 어떨까. 이용객이 한 명도 없는 거대한 유원지의 유일한 이용객이 된 기분은 또 어떨까. 이 작품은 정말 지독하게 외로운 남자 리가 지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삶의 쓸쓸함을 견디는 이들과 전화 통화를 하며 나누는 이야기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전개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무려 우주에서 홀로 하나의 행성을 지키며 살아야 하는 그 말도 안 되는 그 철저한 고독만큼이나, 평범하게 지구에서 보통의 일상을 살고 있는 이들 역시 그에 못지 않은 외로움과 쓸쓸함 속에서 삶을 견뎌내고 있었다는 거였다.

 

지난 일주일 동안 당신은 매일 누군가와 전화 통화를 했다. 처음에는 십 분쯤, 그러다 삼십 분이 되고, 한 시간이 되고...... 어떨 땐 두 시간 넘게 통화한 적도 있다. 통화 상대는 늙은 남자고,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비싼 놀이기구를 이십삼 년 동안 타고 있는 늙은 남자라고 소개했다. 또 그는 아주 오래 전에 당신도 한 번 가본 적 있는 행성의 유일한 인간이다. 그는 자기가 신이라고 말했다가 다음 순간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인간일 뿐이라고 말을 바꾸기도 한다.

리는 평생에 걸쳐 오직 전화 통화로 다른 행성에 사는 타인들과 접촉한다.  와 전화 체스를 두는 기무라 다로는 자신의 이름을 딴 기업체를 운영했던 사업가였는데, 현재는 은퇴 후 혼자 지내고 있다. 먼저 떠난 아내, 일 년에 한두 번씩 얼굴을 내미는 자식들, 이제는 컸다고 코빼기도 안 비치는 손자들로 인해 항상 외로움을 느꼈고, 고독이라는 게 얼마나 고약한지 매 순간 체감하고 있었다. 통신판매원 도리스 브라운은 열네 살 때 아버지로부터 성폭행을 당했고, 포만감이 들어야 겨우 잠을 자고, 잊고 싶은 걸 잊을 수 있었기에 계속 뭔가를 먹기 시작한다. 예쁘다는 말을 들으면 소름이 끼쳤기에, 과도한 폭식증은 계속 이어졌고, 결국 몸을 가누기 어려울 정도로 체중이 늘어나고 만다. 스물한 살 때 아버지가 죽고, 그 때부터 통신판매 일을 하면서 먹고 살기 위해 뭐든 닥치는 대로 팔아 치웠다. 그러다 어느 날 우연히 리의 전화를 받게 된다. 그 외에도 교도소에서 출소해 아들을 찾는 로드리게스, 플랜A의 존폐여부를 결정짓기 위해 파견된 행성심사대의 베일리 박사, 그리고 늙어 버린 리가 플랜A에 와서 자신의 자리를 대신 지켜주지 않겠느냐고 부탁하는 알코올중독자 양 웬리까지.. 다양한 인물들의 삶이 그려지고 있다.

특이한 것은 작품의 배경은 우주 탐사며 여행이 자유로운 미래의 어느 시기라서 SF처럼 보이고, 전반적인 분위기는 인간의 고독과 쓸쓸함, 외로움이 주요 정서인데 실제로 등장하는 인물들과 이야기는 매우 유머러스하고 경쾌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플랜A가 만들어지고, 성공하고 결국 사람들에게 버려지는 과정을 통해서 인간의 탐욕이 얼마나 참혹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보여주는 과정 또한 독특한 구성을 통해 색다르게 펼쳐지고 있어 매력적이다. 리와 통화를 하게 되는 다섯 인물 각각도 매우 개성이 뚜렷하고, 그들의 삶 또한 너무도 다양한 방식과 모습을 하고 있어 이야기 자체로서의 재미도 뛰어 나다. 나만 외롭지 않다는 공감, 나보다 더 고독한 타인의 그것을 통해 받게 되는 위안, 그들의 고독을 토닥여 주면서 나의 고독을 견디게 되는 아이러니. 그리고 그 모든 고독과 위안의 중심에 분명 어딘가에 존재하지만,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한 남자가 있다.

 

이 세상에 인생이 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물건인지 대충이라도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어떨 땐 어렴풋이 알 것 같은데 찬찬히 생각해보면 뭐가 뭔지 도통 모르겠는 그것, 가끔은 너무도 잘 아는 사람들이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처럼 낯설게 느껴지기도 하고, 이게 마지막이라는 느낌으로 최선을 다했는데도 아무렇지 않게 사람 뒤통수를 치기도 하는 그것, 그 알 수 없는 것이 바로 인생이 아닐까. 그 속에서 너무도 외로운 존재인 인간이란 사실 아무 것도 아니기도 하고, 그 모든 것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인간을 통해, 당신에게 주어진 평범한 일상과 삶의 행운을 기억하라고 이야기한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인간을 통해 당신이 고독을 견딜 수 있도록 위로해준다. 당신만 그런 것이 아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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