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상에 생겨난 모든 사이를 관계의 우주라고 부른다.
우주는
‘서로’가 있음으로 성립한다. 서로라는 말은 당신과 내가 고유하고 독립적인 하나의 행성이라는
의미다. 동등과 존중의 거리를
품고 있는 존재들이 서로 사이를 가질 때 그것을 우주라고 한다.
사이와 서로는
‘우리’라는 말처럼,
인류가 발명해낸 아름답고 황홀한 천체물리학 개념어다.
수많은 심리학 서적들과 에세이들이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이유는 대부분 위로나 공감을 얻기 위함이다. 그것은 아마도 삭막한 인간
관계, 팍팍한 일상의
고단함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해소할 길이 딱히 없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매일 같이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당신 때문에 내가, 나 때문에 당신이, 우리는 더불어 세상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이니
말이다. 인간이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라는 점은 구성원들과 수많은 상호작용을
통해 조금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는 점에서는 장점이지만, 바로 그것이 누군가는 지옥을 경험하고,
삶의 벼랑 끝으로 몰게 하는 무서운 지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사람 사이에 필요한 최적의 거리란 어떻게
알 수 있는 것일까. 내
생각과 당신의 이해 사이에서, 불필요한 오해 없이 우리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방법이란 무엇일까.
림태주 시인은
말한다. 살아보니 삶의 전부가
관계였다고. 어쩌면
지구는, 관계의 힘으로
돌아가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그는 '관계의
비밀스러운 원리와 은유법을 알고 싶어 별과 사막과 날씨와 천체물리학을 참고해서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나와 당신의 사이를 관계의
우주, 관계의 물리학에 빗대어
풀어내는 은유는 표현 자체도 참신했지만, 무엇보다 저자의 날카로운 통찰력에 공감하고 위로 받게 만들어 주고 있다. 인간관계의 어려움에 대해 토로하는 수많은 책들을 읽어
왔지만, 이 책에서 표현하는
색다른 접근 방식은 굉장히 신선했고, 그 어디서도 만날 수 없었던 새로운 시각도 매우 흥미로웠다.
우리는 자주 잊는다. 나에게 나의 입장이 있듯이 당신에게는 당신의 입장이 있다는 사실을. 삶은 관계의 총합이고, 관계는 입장들의 교집합이다. 상대방이 없는 관계란 성립 불가능하고, 모든 상대방은 각자의 입장으로
존립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행성이라면, 저 별빛
하나하나가 다 입장들이다. 별빛이 반짝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저 어둠 속에 별이 있는 줄 알아보겠는가.
'당신과 나의 만남이 우연처럼 쉽고 사소해
보이지만, 사실은 지난하고
지극한 운동의 결과'라는 말은
굉장히 로맨틱하게 들리기도 한다. '내가 살아온 날들이 당신을 만나기 위해 부단히 애쓴 필연과 두려움을 이겨낸 행운의 결과였다'고 생각한다면, 사실 관계가 조금 삐걱거리거나 위기에 처하게
되더라도 가뿐하게 이겨내고 싶어지지 않을까.
그렇게나 어렵게 이어진 관계였는데, 내가 지금 이 사소한 걸로 흔들리면 안 되겠다고 그런 마음이 들지
않을까. 지구별에는 수많은
관계가 있고, 그 관계의
힘으로 지구는 자전하고, 태양의 둘레를 공전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관계의 우주에서 알게 된다.
세상에 생겨난 모든 관계는 우주가 존재하는 이유를 증명한다고. 어떤 물리적 관계는 우아하게 도약해서 관계의
화학으로 나아간다고.
여타의 심리학서나 에세이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관계'를 다루고
있지만 이 책이 특별한 것은 바로 저자가 시인이라는 점에서 오는 특별한 감성이 아닐까 싶다. 절절한 감정을 자아내려는 문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뭉클해지거나, 담백하게 관계에
대한 철학을 풀어내는 글에서도 설레임이 느껴지곤 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쉽게 술술 읽히지만,
자꾸 페이지를 들춰서 다시 읽고 싶어지는 책이기도 했다. 세상에 생겨난 모든 사이들을 우주에
비유하고, 사람을 얻고 또
잃는 말과 태도의 얄궂음을 이야기하고, 세상과의 관계에서 취해야 할 마음가짐에 대해 사유하고,
스스로에 대한 오해와 마주하며 외로움의 본질에 대해 탐구하는 이 책은 그 동안 만나왔던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다룬 책들 중에서도 단연코 최고가 아니었나 싶다.
사실 이런 류의 책들이야 우리가 모르고 있는 것들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알고 있지만 놓치고 있었던 것들에 대해 말하고
있기에 대부분 한 번 읽으면 그걸로 충분했다.
그런데 이 책은 곁에 두고 자꾸 펼쳐서 읽고 싶은 책이다. 문장도 좋고, 은유도 색다르고, 사유도 깊이가 있어 에세이지만 마치 시처럼 읽히는
책이기도 하다. 맺고 끊고
적당한 거리를 주는, 사이의
균형에 서툰 모든 이들에게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