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병원입니다. 병원에서 누군가 약물 쇼크를
일으켰어요. 그게 그렇게까지
이상한 일입니까? 여긴
병원인데요? 양
간호사, 말해봐요. 그렇습니까?"
양 간호사가 눈을
피했다. 그녀는 처음으로
쇼크를 일으킨 환자의 담당 간호사였다.
사무장 말대로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사람은 죽기
마련이다. 다른 곳도 아닌
병원에서. 특히 중환자실이나
일부 병동에서는 그런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가끔은 사람들이 죽으러 병원에 오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의사들이 실패할 때도
있었다.
조선소 밀집 지역인 이인시는 호황이던 조선 사업이 위기를 겪게 되자 모든 것들이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업체들이 부도를 내고, 체불 임금이 늘어 이탈 인구수가
급증하고, 노동자들은 백수가
되어 거리를 배회하고, 도심에
빈집들이 늘어 갔다. 갑작스러운 도시의 쇠락은 종합 병원의 존폐 위기로 연결된다.
병원 측에서는 수익원을 찾기 위해 새로운 프로젝트 팀을 꾸리는데, 서울의 대학 병원에서 근무하다 이곳으로 오게 된
무주가 새 팀에 투입된다. 그리고 무주는 낯선 곳에서 업무를 시작할 때 막역한 우정과 배려를 베풀어 주었던 이석의 비리를 발견하게 된다. 이석은 병원에서 가장 평판이 좋은
직원이었고, 3년 전 사고로
병원에 누워 있는 아이의 병수발을 하느라 집도 팔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주는 이석의 비리를 고발하기로
마음먹는다. 그가 어려운
결정을 하게 된 것은 아내의 임신으로 곧 태어날 아이에게 당당한 아버지로 서고 싶다는 정의감과 도덕심 때문이었다.
이석은 아무런 조사 없이
갑작스럽게 해고 되었고, 약물
투여 실수로 인해 환자가 죽을 뻔했던 사건으로 병원에 내분이 일면서 이석은 자연스레 화제에서 멀어진다. 그리고 상황은 점점 이상하게
돌아간다. 비리를 저지른
직원이 아니라, 그것을 밝힌
직원에게 화살이 향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들은 무주가 이석과 친했음에도 그를 고발한 것을 이해하지 못했고, 이석이 저지른 비리 내용이 정확히 알려지지 않은 상태라, 무주가 이석의 작은 실수를 봐주지 않은 거라고
생각했다. 동료들은 무주를
멀리했고, 결국 무주는 전혀
다른 보직으로 밀려나 야간 근무를 하기에 이른다.
무주는 날마다 술을 마셨고,
무주의 아내는 유산을 하고,
결국 서울로 떠나게 된다.
헛된 공명심과 정의감에 사로잡혀 벌인 일로 인해 무주는 동료도 잃고, 아내와 아이 마저 잃어 버리고
만다.
"<마태복음> 8장에 이런 구절이
있어. '죽은 자로 하여금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라/'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서 계속 곱씹었어.
예수는 인자하고 자비롭다면서 죽은 사람한테 왜 이러나, 사람이 죽었는데 이렇게 야박해도
되나.... 이해할 수
없었지. 한참 새기니까 조금
알 것도 같더라고."
"무슨 뜻인데요?"
"영혼이 죽은 자는 내게 필요 없다, 불신자는 불신자에게 가고 믿는 자들은 나를
따르라. 그러니까 나를 따르는
건 믿는 자로 충분하다는 뜻이려나."
병원 내에서 은밀하게 벌어지는 비리를 폭로한 주인공이 오히려 내부 고발자가 되어 조직 안에서 철저히 외면당하고, 정작 비리를 저지른 당사자는 얼마 뒤 병원의
요직으로 복귀하게 되는 아이러니는 현실의 그것과 너무도 닮아 있다.
병원의 비윤리적 경영이나,
병원에서 통상 일어나곤 하는 투약 과실, 의료 사고로 인한 분쟁들은 의료기관이 비양심적이고 무책임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것은 지금도
뉴스에서 숱하게 보도 되고 있는 이대 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이나,
몇몇 유명인들의 의료 사고로 인한 분쟁들을 떠올리게 만들면서 씁쓸한 현실을 자각하게 해주고
있다. 극중 이석의 말처럼
과연 평범한 사람들이 조직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타락”밖에 없는 것일까. 정의를 지켜내고자 했던 무주 역시 이전 병원에서는 상사의
지시대로, 관행이라는 방패
아래 비리가 저질러지는 것을 보고도 묵인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아이에게 부끄럽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용기를 내었지만, 결과는 더 참담했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윤리적 인간에 대한 희망을
보여주는 것인가. 아니면
거대한 사회의 기만에 맞서 싸우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인가.
무주의 삶이 도덕적으로 완벽하지 않기에, 더욱 그가 냈던 용기가 인간적으로 보여진다. 그리고 그것이 이 불안정한 세상에서 우리가 놓지
말아야 할 희망을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살다보면 우리를 시험에 들게 만드는
상황이 매번 발생하게 마련이다. 그때 우리는 과연 아무런 고민없이 윤리의 편에 설 수 있을
것인가.
이 책은 당대 한국 문학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작가들을
선정, 신작 시와 소설을
수록하는 월간 『현대문학』의 특집 지면
<현대문학 핀 시리즈>의 첫 번째 소설선으로 출간되었다. 그리고 편혜영 작가가 2년 만에 발표하는 그녀의 다섯 번째 장편소설이기도
하다. 핀 시리즈가 흥미로운
것은 매월 25일 발간할
예정이라 '월간
핀'이라는
점인데, 한국 출판 사상
최초로 도입되는 일종의 ‘샐러리북’ 개념이라고 한다. 게다가 출간이 예정되어 있는 후속편들 또한 멋진 작가들이 기다리고 있어 기대 중이다. 윤성희, 이기호, 정이현, 김성중, 손보미 등등... 이름만으로도 새로운 작품을 설레이게 만들어
주는 작가들의 라인업이 앞으로 이어질 핀 시리즈에 기대를 갖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