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생을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잘 살고 싶은
마음에서 열심히 살지 않기로 결심했다.
욕심도 버리지
않았다. 지금보다 더 많은
돈을 벌고 싶고, 내 집도
있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것들을 얻기 위해 무조건 열심히 살고 싶지는 않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라니. 열심히
살지 못해 죄송합니다.도
아니고 말이다. 살면서 평생
노력해야 하고, 최선을 다해야
하고,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말만 들어왔던 우리들이기에, 더욱 와 닿을 수밖에 없는 이야기이다.
이렇게 제목부터 시선을 확 사로잡는 이 책은 일명 '야매 득도 에세이'이다. 저자는 말한다. 불혹이라 불리는 마흔 살을 두 달 앞둔
시점에, 내가 어디로 이렇게
열심히 가고 있는 건지 마음이 싱숭생숭했을 때,
소중히 품어왔던 사표를 툭 떨어뜨리고 말았다고 말이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사표를 낸
후였고, 아차 싶었지만 없던
일로 하기엔 자존심이 상했고, 게다가 흔쾌히 퇴사를 반기는 회사까지.
모두가 열심히 사는 세상에서 열심히 살지 않겠다고 황당한 소리를 하는 그의 이 선택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나도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어른들은 말한다.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고.
그러나 이제 어른이 되어 버린 우리들은 알고 있다. 노력이란 것이 항상 정당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고. 애초에 인생이란
공평하지 않은 것이니 말이다. 6년차 일러스트레이터인 저자는 자신이 무명배우와 비슷하다고 말한다.
대입
4수를 거쳐서 오랫동안 투잡을 해왔다. 열심히 회사를 다니고, 열심히 그림을 그렸지만 그렇게 열심히 해도 전혀 사는 게 나아지지
않았고, 열심히 살았는데 겨우
이 정도라면 너무도 억울했다고. 차라리 열심히 살지 않았더라면 덜 억울했을 텐데,
계속 누군가에게 지는 느낌이었다고 말이다. 그래서 이제 더 이상 '열심히 살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어떻게든 되겠지.
어떻게든.
케세라세라.
"어떤 사람이 있는데 말이야. 그 사람이 원하는 대로 다 이루어지는 게
정상일까, 그대로 다 안 되는
게 정상일까?"
"원하는 대로 안 되는 거."
"빙고!
그러니까 네가 이 모양인 것도 지극히 정상이라는 얘기야."
"위...
위로 맞지?"
이 작품이 매력적인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위트 있는 일러스트들이다. 만화의 한 장면이라도 되는 것처럼 우스꽝스러운 장면에서 심각한 대사를
하거나, 노골적인 그림으로
당황스럽게 만들어 놓고서 촌철살인의 대사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고 있다.
글은 매우 진지한데,
중간 중간 삽입되어 있는 일러스트들이 피식 웃게 만들고, 가끔은 깔깔거리게 만들면서 무거웠던 고민들이
가벼워지는 느낌이랄까. 그러면서도 너무도 리얼하고, 가감 없는 일러스트에서 전달되는 그것은 현실을 꿰뚫는 날카로움과 답답한 사회에 한 방 훅 날리는 시원함이다. 갑작스레 아무런 대책 없이 사표를 내던진
비현실적인 상황에 있으면서도, 말하고 있는 이야기는 굉장히 현실적이라 누구도 공감할 수밖에 없는 그것들이기도 하다.
나도 가끔
생각한다. 하루 스물네 시간이
부족한 듯 바쁘게 움직이며 살고 있지만, 내가 가는 길이 제대로 된 방향인지 말이다.
어떤 날은 종일 엉덩이 붙이고 앉아 쉬지도 못했구나 싶은 날도 있었고, 수험생도 아니면서 자는 시간이 아까워 억지로 졸린
눈을 비벼 가며 뭔가를 했던 날도 많았다. 나는 대체 왜 이렇게 치열하게 사는 걸까.
가끔은 아무 목적 없이 산책도 하고, 느긋하게 앉아 음악도 좀 늦고, 또 가끔은 정말 별 생각 없이 멍 때리는 시간도
필요한 게 아닐까.
열정과 노력을 너무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사회에서 자랐기
때문에, 반대의 경우에는 뭔가
도태되는 것 같다는 느낌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것에 대한 부담이 어느 정도 덜어지는 기분도 들었다. 나도 굳이 열심히 아둥바둥 살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들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어떤 기준 없이,
특별히 바라는 것 없이,
그러니까 기대 없이 인생을 사는 연습을 해봐야겠다. 이제는 견디는 삶이 아니라, 순간을 즐기는 삶도 한번 시작해보고 싶어
졌다.
휴,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하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