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에 갇힌 여자 스토리콜렉터 63
로버트 브린자 지음, 서지희 옮김 / 북로드 / 2018년 5월
평점 :
절판


"제가 미친년 취급받는 것쯤은 감수할 수 있어요. 제가 못 참겠는 건 말입니다, 이 여자애들한테 일어난 일이에요. 아무런 노력도 안 해보고, 오늘 밤에 발 뻗고 주무실 수 있겠어요? 우리가 처음 경찰이 됐을 때를 떠올려 보세요...젠장, 수색에 드는 비용은 저한테 청구하세요. 인사 위원회에 회부해서 저를 해고하셔도 돼요, 지금 그딴 건 아무 상관 없어요."

주말 내내 내린 눈이 눈보라가 되어 흩날리는 한겨울, 런던의 차가운 호수 아래 얼음 속에서 젊은 여자의 시체가 발견된다. 그녀는 사회적으로 절대적인 힘을 지닌 상류 노동 귀족의 딸로 사교계의 명사로 소개되던 아름다운 앤드리아였다. 마쉬 총경은 이 중대한 사건을 위해 경시청 소속 에리카 경감을 소환해 수사를 맡긴다. 스물 셋의 앤드리아는 오는 여름 약혼자와 성대한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었다. 억만장자의 딸로 남부러울 것 없이 살아 왔던 그녀가 외딴 호수에서 참혹한 시체로 발견된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에리카 경감은 기존 수사팀의 책임자였던 스팍스 경감의 적의와 사사건건 간섭하려 드는 앤드리아의 아버지 사이먼 경의 압박 사이에서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사실 에리카 경감은 과거 여섯 명의 소녀를 살해한 공으로 서른아홉밖에 안 된 나이에 경감으로 승진했던 스타 경찰로 주목받았다. 경찰이던 남편을 작전 수행 중에 잃고 나서 죄책감과 슬픔으로 한 동안 일을 쉬었고, 아직도 그 감정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상태이다. 하지만 그녀는 뛰어난 직감과 올곧은 원칙으로 사건을 파헤치고, 주위의 어떤 방해나 제약에도 굴하지 않고 집요하게 범인을 쫓는다. 아직도 먼저 떠난 남편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고, 범죄 피해자들의 애달픈 삶에 마음이 흔들리는 감상적인 면도 가지고 있지만, 사건 해결을 위해서는 윗선과의 충돌도 마다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강한 면모도 보여 주고 있다.

 

모스는 거의 매일 목숨을 걸고 칼과 총, 복수심과 원한으로 무장한 미치광이들을 상대했다. 반면 제이콥이 아는 세상은 두 엄마와 장난감, 머리 위에서 느릿느릿 돌아가는 모빌과 점점 사그라드는 편안한 노랫소리가 다일 터였다. 에리카는 처음으로 자기가 하는 일이 가치가 있는 일인가 하는 회의가 들었다. 나쁜 놈 하나를 잡는 동안 열 놈이 더 생기는 현실에 살고 있었으니까.

에리카는 사건을 조사하다 미결로 묻혔던 매춘부 세 명의 죽음과 앤드리아의 죽음이 닮아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그녀가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를 목격한 증인이라고 생각했던 여인마저 시체로 발견되고, 조사를 위해 방문한 술집에선 주인이 공식 항의서를 제출하고, 윗선에선 그녀의 과거 이력을 들먹이며 정신감정을 의뢰하겠다고, 면직 조치를 내리고 만다. 그리고 그날 밤, 범인으로부터 메시지를 받게 되는데, 과연 에리카 경감은 범인의 경고와 경찰관 정직이라는 최후의 통첩으로부터 어떻게 사건을 해결할 것인가.

시리즈로 이어지는 스릴러 작품에서 아마도 가장 중요한 요소를 꼽으라고 한다면 캐릭터일 것이다. 매력적인 캐릭터가 등장해 페이지 바깥으로 뚜벅뚜벅 걸어나올 것 같은 현실성을 부여해야만, 독자는 이야기에 빠져 들 수 있다. 왜냐하면 피가 난무하고, 잔인한 사건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펼쳐지는 현장이야말로 대부분의 독자들에게는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비현실성'의 표본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완벽하진 않더라도 어딘가 사람냄새 물씬 나는, 그래서 정말 살아 숨쉬는 인물처럼 느껴지는 캐릭터가 등장해야 우리는 이야기에 비로소 감정이입을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로버트 브린자의 범죄 소설 데뷔작인 이 작품은 그야말로 시리즈로 갈 수밖에 없는, 성공적인 캐릭터를 탄생시킨 것 같다. 스릴러에서 흔치 않은 여성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그 덕분에 피해자에게 공감하고, 사회 기득권층에 분노하고 맞서는 그녀의 모습에서 깊은 공감과 짜릿한 통쾌함마저 느끼게 해주고 있으니 말이다. 에리카 경감 시리즈는 <밤의 스토커>, <어두운 바다>, <마지막 호흡>, 그리고 최근 출간된 <콜드 블러드>로 이어지고 있다. 어서 빨리 그녀의 다음 이야기를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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