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투안은 자기 위로 함정의 입구가 철커덩 닫히는 게 느껴진다.
다시금 눈물이 솟구친다.
난 끝장이야!
시체를 감춰야
한다. 하지만
어디에? 어떻게? 만일
오두막을 부수지 않았다면, 레미를 그 위로 올려놓으면 아무도 거기까지 올라가서 찾을 생각을 하지 않을 텐데...
프랑스의 시골 마을인 보말에 사는 열두 살 소년 앙투안은 어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다. 6년 전 이혼한 아버지는 한 번도 보발로 돌아오지
않았고, 앙투안은 고독한
어머니에 대해 책임간을 느끼고 있었다. 게다가 그는 별로 외향적이지 못한 천성이라 약간 우울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고, 친구들이 새로운 게임기에 정신이 빠져 있어 그의 친구는 옆집 데스메트 가족의
윌리스라는 개가 유일했다. 그런데 어느 날 윌리스가 자동차에 치였고,
앙투안은 데스메트 씨가 죽어가는 개를 병원으로 옮기지 않고 엽총으로 쏴 폐기물 담는 자루에 넣는
걸 보게 된다. 앙투안은
너무나도 괴로웠고, 그 마음을
가눌 수 없어 자신을 따르던 데스메트 씨의 여섯 살 아들에게 순간적으로 화풀이를 하고 만다. 분노에 휩싸여 억울한 감정이 북받쳐 오른 앙투안은 윌리스의 죽음이 가져온 쇼크와
분노로 들고 있던 작대기로 아이를 후려치고 만다.
그렇게 단 몇 초 사이에
앙투안의 삶의 방향이 달라져 버린다. 열두 살짜리 소년이 살인범이 되어 버리고 만 것이다.
겁에 질린 그는 아이의 시체를 숲에 있는 나무 둥치 구멍에 숨기고, 이후 실종수사가 대대적으로 벌어지지만 시체는
발견되지 않는다. 12년
후, 의사가 되어 파리에서
살던 앙투안은 가급적 고향과 멀리 하며 살고 있었지만,
어머니의 요청으로 고향을 방문하게 되는데, 결코 잊을 수 없었던 과거와 마주하게 된다. 이야기는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사건이 벌어지고
죄책감에 시달리던 열두 살 소년 시절의 비중이 가장 많다.
죄를 지었지만 그것이 발각되지 않았을 때, 결코 죄 지은 자는 편하게 발 뻗고 잠을 잘 수 없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자책하고, 발생할 수 있는 미래의 경우 수를 떠올리며
불안감에 떨고, 그냥 붙잡혀서
모든 것을 털어놓고 싶은 마음과 그저 이곳을 피해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 사이에서 고민하게 마련이다. 피에르 르메트르는 이 작품에서 서스펜스가 아니라
인물의 내면을 그리는 데 더 치중하고 있다.
인물을 지배하던 죄책감과 불안감을 결국 현실로 만들어 내는 것이 무심코 저지른 아주 사소한
행동이라는 아이러니가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세월과 함께 변한 것, 그리고 앙투안을 슬프게 하는 것은 이제 여기에 대해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라기보다는, 중요성의 순서가 뒤바뀌었다는
사실, 이제 중요한 것은 더
이상 그가 죽인 어린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의 모든 노력,
그의 모든 정신은 자기 자신에게로, 안전과 무사함에 대한 자신의 열망으로 향해져 있었다.
피에르 르메트르는 추리, 스릴러 작품으로 더 많이 알려진 작가이다. <오르부아르>가 공쿠르상을 수상하면서 문학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인정받았다. 공쿠르상과
추리 소설 관련 상을 동시에 수상한 작가란 거의 전무하기 때문에,
그의 위치가 독특한 것 또한 사실이다. 그는 올해
<오르부아르>의 후속작인 <화재의 색깔>을 발표했고, 이는
'전쟁
3부작'으로 연결된다.
이번 신작
<사흘 그리고 한 인생>은 이 두 작품 사이에 위치한 작품으로 분량 때문인지 일종의 간주곡과도 같은
작품이라 평가 받기도 한다.
무대를 옮겨 다시 추리, 스릴러 작가로서 르메트르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설명에 기대를 했지만, 다 읽고 나니 이 작품을 추리, 스릴러라는 카테고리에 넣기에는 좀 무리가 있는 것
같다. '문학성 넘치는
스릴러' 내지는 '문학적
추리 소설'이라는 평도
있지만, 글쎄 이
작품은 <오르부아르> 이후 완전히 달라진 그의 작품 세계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어 기존 그의 미스터리들을 기대했다면 조금 실망할 지도
모르겠다. 작품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오르부아르> 이전에 보여줬던 그의 작품 스타일이 더 좋았던 것 같다.
플롯과 구성,
캐릭터 모두 엄청나게 정교하고 치밀하게 짜여 있었던 '카미유 베르호벤' 시리즈를 좋아했다. 각 권이 모두 꽤나 방대한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불필요한 부분 전혀 없이 모든 요소들이 딱딱 맞아 떨어지는 과정에서 변화 무쌍한 플롯으로 인한 반전까지 훌륭한 시리즈였으니
말이다. 그의 '전쟁 3부작'이 기대가
되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카미유 베르호벤' 시리즈 같은 작품을 더 만나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