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데이 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카트 멘쉬크 그림, 양윤옥 옮김 / 비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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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그녀는 우연한 기회에 각자의 스무 살 생일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것이 어떤 하루였는가, 라는 것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스무 살 생일에 대해 잘 기억하고 있다. 그녀가 스무 살 생일을 맞이한 것은 벌써 십 년도 더 지난 옛날 일이다.

 

당신은 스무 살 생일에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기억하는가. 하루키는 그 날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고 말한다. 아르바이트로 커피점 점원 일을 하고 있었는데, 일을 바꿔줄 사람을 찾지 못해 결국 생일날도 종일 즐거운 일 따위는 하나도 없이 보냈다고. 하루키의 신작 단편에 등장하는 여주인공 역시 고독한 스무 살 생일을 맞이하게 된다.

웨이트리스 일을 하는 그녀는 생일날 밤을 함께 보냈어야 할 남자친구와 며칠 전에 심각한 말다툼을 했고, 아르바이트 친구가 날짜를 바꿔주기로 했지만 감기가 도져 일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 급히 일하러 나오게 된다. 어차피 스무 살 생일이라고 딱히 뭔가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그녀는 크게 실망하지는 않았다. 그녀가 일하는 곳은 롯폰기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이었다. 플로어 매니저는 가게가 있는 빌딩의 육층에 자신의 방을 가지고 있는 사장의 방에 저녁식사를 가져다 주는 일을 했는데, 갑작스런 복통으로 그 일을 그녀가 맡게 된다. 정확히 8시에, 604호실로 식사를 가져가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8시가 되어 사장의 식사가 차려지자 그녀는 왜건을 밀려 육층으로 올라갔고, 방에 있던 노인에게 요리를 전달한다. 그런데 노인은 그녀에게 의외의 제안을 한다.

"아가씨, 오 분쯤만 자네 시간을 내줘도 괜찮겠는가? 자네와 이야기하고 싶네." 라고.

 

 

인생에 단 한 번밖에 없는 스무 살 생일을 이제 막 맞이한 그녀와 노인은 대체 무슨 이야기를 나누게 될까. 사실 식당 직원들 사이에서 사장은 조금 미스터리한 존재였다. 그 동안 플로어 매니저 외에는 누구도 그의 얼굴을 본 적이 없었고, 원하는 요리 또한 항상 치킨으로 정해져 있었다. 조리법과 곁들이는 채소는 그날그날 조금씩 달라졌지만, 그것은 지극히 평범한 치킨 요리였다. 비밀을 품고 있는 듯한 의문의 노인과 하필 생일날 아무런 특별한 일을 갖지 못한 고독한 여주인공. 세차게 내리는 비로 인해 공기 중엔 비 냄새가 섞여 있었다.  과연 그녀의 스무 살 생일날 밤, 무슨 일이 있었을까?

 

 

"생일 축하하네." 노인은 말했다. "아가씨, 자네의 인생이 보람 있는 풍성한 것이 되기를. 어떤 것도 거기에 어두운 그림자를 떨구는 일이 없기를."

두 사람은 잔을 마주쳤다.

 

이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아트' 프로젝트, 그 네 번째 작품이다. <>, <이상한 도서관>, <빵가게를 습격하다>에 이어 독일의 유명 일러스트레이터 카트 멘시크의 그림과 함께하는 이 작품은 일본 중학교 3학년 국어 교과서에도 수록되어 화제를 모았다고 한다. 단편 소설이라고 하더라도 지나치게 짧은 분량의 이야기이지만, 독특한 분위기의 일러스트와 함께 보여지는 스토리는 꽤나 매혹적이다. 카트 멘시크의 일러스트들은 삽화 정도의 느낌이 아니라 하루키의 글을 완성시켜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짧은 단편이지만, 그림책으로도 소장 가치가 있을 것 같은 예쁜 책이기도 하고 말이다. 빨강, 주황, 핑크, 강렬한 세 가지 색과 과감한 클로즈업 컷 등 선명하면서도 함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일러스트들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하루키는 "모든 사람이 일 년 중에 딱 하루, 시간으로 치면 딱 스물네 시간, 자신에게는 특별한 하루를 소유하게 된다."고 생일의 의미에 대해서 말한다. 그리고 "생일이라는 것은 당신에게 일 년에 딱 하나밖에 없는 정말로 특별한 날이니까 이건 좀 더 소중하게 여겨야지요. 그리고 유례를 찾기 힘든 그 공평함을 축복해야지요." 라고.

이 작품 속 그녀처럼, 누군가 나에게 생일이니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제안한다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단 그 소원은 하나여야 하고 나중에 마음이 바뀌어도 도로 물릴 수 없다. 어떤 소원을 선택해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 소원은 어떻게 이루어지게 될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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