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조이스 시집 : 체임버 뮤직 - 수동 타자기 조판 아티초크 빈티지 시선 6
제임스 조이스 지음, 공진호 옮김 / 아티초크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키츠의 별은 빛나는 별, 조이스의 별은 수줍은 별. 위대한 작가의 시작은 시작(詩作)이었다네요. 시인이 의도한 음악성을 느낄 수 있는 원문과 함께, 사랑의 순간들을 포착한 시어들을 맞이할 준비가 되셨나요. 사랑은 기분 좋은 감금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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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5-05-22 11: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로 담아갑니다. 25세의 제임스 조이스가 쓴 시들이라니‥ 사랑은 기분좋은 감금? 그런가요 그런것같기도하구요~^^

에이바 2015-05-23 09:45   좋아요 0 | URL
조이스가 상상하던 꿈의 연인에 대한 시래요. 청년 제임스를 생각하며 읽으니 색달라요. ^^ 기분 좋은 감금이라 하니 프루스트의 사랑론도 떠오르고요. 프레이야님도 즐거이 읽으시면 좋겠어요.
 
제임스 조이스 시집 : 체임버 뮤직 - 수동 타자기 조판 아티초크 빈티지 시선 6
제임스 조이스 지음, 공진호 옮김 / 아티초크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XXIV

 

  Silently she's combing,
  Combing her long hair
  Silently and graciously,
  With many a pretty air.


  The sun is in the willow leaves
  And on the dapplled grass,
  And still she's combing her long hair
  Before the looking-glass.

  I pray you, cease to comb out,
  Comb out your long hair,
  For I have heard of witchery
  Under a pretty air,

  That makes as one thing to the lover
  Staying and going hence,
  All fair, with many a pretty air
  And many a negligence.
 

                                    《Chamber Music》 James Joyce 

 
 

24

 

 

  말없이 머리 빗는 그녀,

  긴 머리를 빗네,

  말없이 우아하게,

  어여삐 뽐내는 자태.


  버드나무 잎 사이사이 채운 햇빛

  얼룩덜룩 풀밭에 어른거리는데,

  거울 앞 그녀는 아직도

  긴 머리를 빗네.


  바라건대, 머리 좀 그만 빗어요,

  그 긴 머리 좀 그만 빗어요,

  어여삐 뽐내는 자태 아래

  마법이 깃든다고 들었으니,


  그것은 애인에게 한 모습으로 분하여,

  머물렀다 이내 사라지지요,

  수많은 어여쁜 자태, 수없이 무관심해도

  곱기만 한 모든 모습.

 

                   《체임버 뮤직》 아티초크 출판, 공진호 옮김

 

 


아마도 시인은 침대에 누워 연인의 머리 빗는 모습을 보지 않았을까.

창 밖의 버들잎 사이로 들어온 햇볕이 연인의 머리에 수를 놓는다.

산들산들 바람에 풀이 누웠다 일어섰다, 반짝임이 파도치는 평화로운 순간,

머리칼이 반짝거리는 여인의 뒷모습은 너무도 어여뻐 질투를 살지도 몰라.

누군가의 사악한 마법이 깃들지도 몰라. 아니 그이가 마법을 부린걸까?

제발 머리 좀 그만 빗고 이리로 와요. 내게로 와요.


조이스에 따르면, 상상의 여인에 대한 글이라는데 진위는 알 수 없으니 믿어줍시다.

노라에게 옛 사랑을 들킬까 봐 그랬을지도 몰라요.


마지막 행의 "All fair,"는 '금발 혹은 햇빛에 반사되어 금발로 보이는 머리칼'로도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안 되나? 누가 가르침 좀 주세요...

 

-


읽으면서 너무도 귀여운 시가 있어 소개한다.

 

제임스 조이스가 25세가 되던 해 출간된 《체임버 뮤직》은 '실내악'이라는 그 뜻처럼, 여러 시들이 모여 음악처럼 구성되었다. 작가가 원한대로 곡을 붙여 노래로 만들어지기도 했다고 한다. 소설과는 다르게, 조이스는 간결하면서도 단순한 시어들로 사랑의 감정을 노래한다. 그래서 나도 실내악 24번에 어울리는 노래를 생각해 보았다.


이 시에서의 'witchery'는 사랑의 양면성을 모두 가진 단어다. 사랑이란 원래 마법처럼, 누군가를 사로잡는 것. 행복과 불행을 함께 느끼게 하는 감정이 아니던가! 이 시에 어울리는 노래로〈Bewitched, Bothered, and Bewildered〉는 어떨까?

 

내가 좋아하는 버전은 영화 History Boys에서 사무엘 바넷이 부른 〈Bewitched〉이다. History Boys 얘길 잠깐 하자면, 동명의 연극이 성공하자 영화로도 옮겨진 작품. 몇몇 배우를 제외하고 극과 영화의 배우가 동일했던 걸로 기억한다. 주역들은 여전히 활발한 활동중인데 이름이 알려진 사람은 아마도 제임스 코든, 도미닉 쿠퍼랑 러셀 토비 정도? 다른 배우들은 뮤지컬/연극계라...

 

아무튼 이 영화 사운드트랙은 진짜 전부 다 좋다! 영화가 시작되면서 깔리는 노래가 The Smiths의 〈This Charming Man〉이라고요! 내 마음대로 조이스에 헌정할 〈Bewitched〉는 다음과 같다.


〈Bewitched〉, 사무엘 바넷

〈Bewitched〉,  루퍼스 웨인라이트

〈Bewitched, Bothered, and Bewildered〉, 엘라 피츠제럴드

〈Bewitched, Bothered, and Bewildered〉, 에디 히긴스 트리오

 

 

 

가사보기 ▼

 

He's a fool and don't I know it
But a fool can have his charms
I'm in love and don't I show it
Like a babe in arms
 
Love's the same old sad sensation
Lately I've not slept a wink
Since this half-pint imitation's
Put me on the blink
 
I'm wild again
Beguiled again
A simpering, whimpering child again
Bewitched, bothered, and bewildered am I
 
Couldn't sleep
And wouldn't sleep
When love came and told me I shouldn't sleep
Bewitched, bothered, and bewildered am I
 
Lost my heart, but what of it?
He is cold I agree
He could laugh, but I love it
Although the laugh's on me.
 
I'll sing to him
Each spring to him
And long for the day when I’ll cling to him
Bewitched, bothered and bewildered am I
 
Bewitched, bothered and bewildered am I
 
I’ve seen a lot
I mean a lot
But I'm like sweet seventeen a lot
Bewitched, bothered, and bewildered am I
 
Lost my heart, but what of it?
My mistake, I agree
He can laugh but I love it
Because the laugh's on me
 
I’ll sing to him
Each spring to him
And worship the trousers that cling to him
Bewitched, bothered, and bewildered am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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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초크 《체임버 뮤직》에는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에 실린 〈Eveline〉의 원문과 번역을 함께 소개한다. 문학동네에서는 〈이블린〉으로 나온 작품인데 아일랜드에서의 발음대로 〈에벌라인〉이라 표기했다고. '마비'된 더블린 사람들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단편을 새로운 번역으로 읽을 수 있어 좋았다.

 

청년 제임스의 감성을 느끼고 싶은 분께 추천한다. 

 

 

 

 

 

 

 

 


"Love is unhappy. When love is away!" 

"사랑은 사랑이 멀리 있어 슬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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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5-21 21: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짜 이 책 안 나왔으면 조이스 전집을 강제 구매할 뻔 했어요. ㅎㅎㅎ 범우사에서 나온 조이스 전집 중에 <실내악>을 수록한 책이 아직도 판매되고 있어요. 김종건 교수 번역과 비교하면서 읽어봐야겠습니다. ^^

에이바 2015-05-22 09:30   좋아요 0 | URL
오! 범우사 판을 아직 구입할 수 있나봐요? 조이스 매니아 cyrus님께 딱인 시집입니다.^^ 말랑하고 멜랑콜리하고 젊은 제임스의 꿈을 엿보는 것 같아 좋아요.
 

 

 

내가 아티초크를 알게 된 것은 번역가 공진호 씨 덕분이었다.

문학동네에서 나온 《소리와 분노》를 읽고, 번역가의 노력- 수고로움을 느꼈기 때문에 다른 작품들도 찾아본 것이다. 알라딘에서 포크너의 작품을 검색해 보면 그가 남긴 블로그가 있다. 그걸 타고 가보니, 아티초크 출판이 나오더라.


안나 드 노아이유의 《사랑 사랑 뱅뱅》이 출간되던 시기였는데, 영화 《Les amours imaginaires》가 떠오르는 제목이었다. 칸에서 대놓고 밀어주는 돌란... 개봉했을 때 친구가 이거 대박이라고, 꼭 보래서 봤던 기억이 난다. 왜 이 영화가 생각났냐면 아주 인상깊은 장면에 깔린 노래가 〈Bang Bang〉이기 때문이다. 나중에 아티초크 출판사 홈페이지를 보니 여기에 대한 글(아티초크 저널)이 있더구만...


 

 

아티초크 저널, 〈뱅뱅〉 http://artichokehouse.com/sub3_2.html?cate=6&pid=228

 

언제나 그랬듯이 내 지갑 사정은 관대하지 않아 돌아온 선택의 시간. 내 첫 아티초크 시선은 아틸라 요제프의 《일곱번째 사람》이 되었다. 아틸라, 라는 이름과 달리 비극적인 삶을 살아야 했던 천재 시인... 고흐의 그림과 심보선 시인의 서문은 행복한 덤이다.

 

아티초크의 책은 크기와 표지, 각각 세가지 중에 선택할 수 있다. 나는 레귤러 판으로만 모았지만 포켓이랑 라지 크기도 있다. 책은 손에 착 감기고 가볍다. 그리고 냄새도 좋다. 좀 변태스러울지도 모르겠는데... 가끔 책장을 휘리릭 넘기면서 냄새도 맡는다. 그리고 상상한다. 포와 요제프, 보들레르와 같은 작가가 글을 쓴다. 그들이 쓴 작품은 세월을 넘어 고유의 향기를 간직한다. 이 잉크와 종이, 활자는 그 향기를 품고 있고 지금 들숨을 통해 내 가슴에 고이노라고...


지난 5월 12일에는 제임스 조이스의 《체임버 뮤직》이 출간되어, 읽는 중이다. 소설과는 달리 시는 읽는데 오래 걸린다. 몇 편 읽고나면 기력이 소진된다고 해야 하나, 항상 숨이 찬다. 시에는 시인의 영혼을 조각조각 뿌려 넣었기 때문일지도. 조이스 시집에는 원문이 함께 실려 혀 끝에 노는 운율감을 느낄 수 있다.

 

브레히트 시집 나왔을 때 고민하다가 다른 걸 샀는데 기억이 안 난다. 여튼 노아이유와 브레히트 시집은 다음 충전일을 노리고 있다. 올해 말 출간 예정인 휘트먼 시집도 기대 중. 제목이 《오 캡틴! 마이 캡틴!》이라니요. 내가 무슨 힘이 있나... 열린책들에서 나온 《풀잎》과도 다른 맛을 느낄 수 있을 듯 하다.

 

보들레르의 《악의 꽃》은 대산문학총서 버전이 더 좋다고 느꼈다. 더 난해하지만- 이건 번역 취향 문제니... 공진호 씨의 번역은 보다 쉽게 읽힌다. 휴대성과 멋진 표지에서 오는 만족감도 제할 순 없다. 관심이 있는 분들은 아티초크 버전도 눈여겨 보시길 권한다.

 

포의 시집 같은 경우도 《가지 않은 길》(창비)에 실린 세 편- 갈까마귀/바닷속 도시/애너벨 리와 비교해 읽어보니 더 좋았다. 다른 번역이 주는 색다른 느낌. 홈페이지에서 확인한 바로는- 딜런 토머스와 폴 발레리, 그리고 우리 한국 시인들의 시선이 예정되어 있다.

 

아티초크의 책은 출판사 스토어에서만 구입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4대 인터넷 서점에도 진출했다. 접근성이 좋아진만큼 많은 분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아, 빈티지 시선을 비롯한 작품들이 계속해서 출간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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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5-20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티초크 아트웍이 최고라고 느껴집니다>_<)! 표지는 보기만 해도 군침이...

에이바 2015-05-20 21:01   좋아요 0 | URL
양질의 컨텐츠와 껍데기의 조화! 표지도 예쁘지만 삽화와 같이 실린 사진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해요. 선정하는 작가들도 특이한 느낌이 들고, 브레히트나 조이스는 시인이란 느낌은 덜하잖아요. 종이 질을 자꾸 얘기하는 것 같긴한데요. 무게도 가볍고 무슨 코팅처리 돼서 눈도 안 시리고 그런 고급제지라네요. 출판사 철학이 맘에 들어서 계속 구매하는 중이에요. ㅎㅎ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 펭귄클래식 38
진 리스 지음, 윤정길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제인과 에드워드의 방해물이자, 해피엔딩을 위해 모든 장애를 처리하고 떠난 광녀. <제인 에어>의 버사 메이슨이 바로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그녀의 이름은 앙투아네트 코즈웨이. 자메이카에서 태어난 영국인, 크리올이다. 1833년 노예해방령이 선포되면서, 식민지에서 노동집약적 대농장을 경영하던 영국인들은 죽임을 당하거나, 몰락하게 된다. 소설의 러트렐 씨처럼, 영국 정부의 보상금을 기다리다 떠난 농장주들도 많았다. 식민지에 남은 크리올들은, 대농장 구입을 위해 본토에서 온 부유한 영국인들과 비교되며 본토인들과 원주민들의 눈총을 한 몸에 받는다. 노예로 부려지다 자유를 얻은 원주민은 오갈 데 없는 분노를 머금고 있다. 본토에서 온 영국인들은 이들의 분노를 간과하며, 흑인은 게으르고 멍청하다는 제국주의적 발상을 지속한다. 아울러 그들에게 비친 크리올의 모습은 노예제를 통해 재산을 불린, 도덕적으로 결함이 있는 계층으로 식민지 문화에 동화된, 순전한 영국문화를 가진 이라 할 수 없다. 또한 백인 농장주들이 노동력, 재산을 늘리기 위해 원주민 여성들을 취해 자식을 낳게 했던 사실은 크리올들이 완전한 백인이 아닐 거라는 의심을 낳는다.

 

앙투아네트 코즈웨이의 생부도 대농장을 경영하였고, 노예해방령 전후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녀의 어머니는 후처로, 프랑스령 마르티니크 출신의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이들이 몰락하자 원주민들은 조롱할지언정 위협은 하지 않았다. 힘의 역학상 그들의 아래에 머무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원주민의 딸 티아는 앙투아네트와 어울려 놀며 ‘흰 검둥이’라고 놀리고 옷을 빼앗는다. 티아의 말에서 드러난 이들의 궁핍은 갈아입을 옷이 없다는 유모의 말에서 재확인된다. 아네트는 가난을 탈출하기 위해 그녀의 미모를 십분 이용, 본토에서 온 부유한 메이슨과 결혼에 성공한다. 이제 그들은 상위 계층에 머무르게 되고, 원주민을 비롯한 쿨리브리 사회의 질시를 받는다. 자메이카 사회에 만연한 분노를 알아채지 못한 메이슨 씨는, 노동자들이 게으르다며 쿨리를 데려오겠다는 말을 하게 된다. 이 말을 들은 하인 마이라는 사람들을 모아 메이슨의 집에 불을 지르고 일가를 위협한다. 아네트는 이 분노에 대해 남편에게 여러 번 경고하였고, 그를 무시한 피해는 그녀의 백치 아들 피에르의 죽음이었다. 그녀의 고통은 남편을 죽이겠다는 위협으로 발전되며, 메이슨은 그녀를 시골 별장에 두고 흑인 감호인을 붙인다. 그리고 해외를 떠돌며 아내를 잊는다. 남편의 무심함은 아름다운 아내의 손발을 묶고, 그녀를 증오하는 흑인의 손에 넘김으로써- 그녀가 과거 노예였던 이들에게 지속적인 겁탈과 희롱을 당하여 자긍심이 조각나게 하고 끝내 실성에 이르게 한다.

 

수녀원에 맡겨진 앙투아네트는 아름다운 숙녀로 성장한다. 메이슨은 그녀에게 삼만 파운드라는 거액의 상속금을 남기고 사망한다. 따라서 그녀의 후견인이 된 리처드 메이슨은 그녀의 결혼 상대자를 정해야 한다. 타인이나 마찬가지인 의붓 여동생을 치워버리고 싶었던 리처드는, 본토에서 건너온 에드워드 로체스터의 구혼을 허락한다. 앙투아네트의 높은 지참금은 어떠한 보호조치도 없이, 결혼을 통해 에드워드의 손에 떨어진다. 앙투아네트의 목숨까지도.

 

에드워드 페어팩스 로체스터는 차남으로, 물려받을 작위도 재산도 없어 결혼을 통해 생활을 꾸려야 한다. 그는 상속녀와 결혼하기 위해 바다를 건너와 앙투아네트에게 청혼하며 일주일 내에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 처음부터 자메이카의 자연은 그를 압도한다. 이 분위기에서 자유로이 호흡하고 생명력을 뿜어내는 앙투아네트는 에드워드의 자존심에 상처를 준다. 그는 긍지 높은 신사지만 혈통의 순수함이 의심되는 크리올과 결혼한 것이다. 삼만 파운드에 영혼을 팔았다는 표현은 여러 번 등장한다. 돈 많은 상속녀인 아내는 생명력이 넘치는 여성으로 그의 품 안에 갇혀 “가정의 천사”가 될 수 없는 여인이다. 관계와 환경의 주도권을 잡지 못한 그는 때를 기다린다. 오베아(부두)라고 불리는 주술을 행한다는 유모 크리스토핀이 주는 모멸을 감내하면서…

 

어린 신부 앙투아네트는 남편을 숭배하고 사랑한다. 그가 가르친 사랑의 몸짓은 남편이 그녀를 헤픈 여자라 부르게 하지만, 그녀에겐 자연스러운 열정의 발산이었다. 에드워드의 계획은 착실히 실현되고 있다. 그는 크리올인 아내가, 원주민 문화인 오베아와 원주민어 파투아에 익숙한 것을 경멸한다. 그래서 그는 먼저 그녀의 이름을 빼앗는다. 노예주가 노예에게 이름을 주는 것처럼, 부두술사가 좀비에게 이름을 주는 것처럼. 그녀의 이름 앙투아네트는 마리오네트, 버사로 둔갑하며 에드워드는 그 이름 안에서 그녀의 영혼을 빼앗고, 아내를 자신의 ’인형’으로 명명한다. 이름을 빼앗긴 앙투아네트는 인형처럼 입을 다문다. 에드워드는 참을 수 없다. 그녀에게 상처를 주고, 반응을 이끌어내기 위해, 아내를 증오하는 원주민 하녀 아멜리와 관계를 맺는다. 관계 회복을 위해 남편에게 간절히 빌었던 앙투아네트의 몸과 마음을 취한 다음날이었다. 그렇게 에드워드는 아내의 영혼을 조롱한다. 그녀가 신성히 여기는 신혼집, 영혼의 안식처를 더럽힌 것이다. 앙투아네트는 두 사람이 시시덕거리는 소리, 신음소리 모든 것을 듣고 집을 떠나 유모에게로 간다.

 

다음은 그녀의 수족과도 같은, 아내를 비호하는 유모 크리스토핀의 차례다. 에드워드는 한때 부두술사로 감옥에 갇힌 그녀를 고발하는 편지를 쓴다. 거세게 내려붓는 비처럼, 크리스토핀의 호통은 에드워드의 영혼을 두드린다. 앙투아네트와 함께 떠나겠다는 크리스토핀의 말에, 에드워드는 강한 분노를 터뜨린다. 자신이 아닌, 다른 남자에게 앙투아네트를 넘기다니! 아내를 사랑하지 않지만, 소유해야 했던 에드워드는 자존심에 단단한 갑옷을 두르고, 아내를 광녀로 낙인 찍는다. ‘돈’을 바라고 그에게 투서한 대니얼 코즈웨이는, 에드워드의 증오에 불을 붙이는 역할만 했을 뿐이다. 이제 에드워드는 장모와 처남의 죽음에 이르는 ‘과정’보다 그 ‘결과’를 중시한다. 앙투아네트의 가계에 광기가 흐르며, 천박한 장모처럼 앙투아네트도 육욕의 화신이라는 것. 그가 가르친 사랑의 몸짓은 그녀를 색녀로, 그가 준 술은 주정뱅이로, 그가 주었다 뺏은 사랑은 그녀를 광녀로 몰아간다.

 

에드워드의 계획에서 하나 비틀린 것이 있다면, 크리올과 백인을 증오하는 하녀 아멜리의 반응이다. 항상 에드워드를 “가엾다”고 했던 이 하녀는, 그와 관계를 맺고 서둘러 집을 떠나는데 반응을 캐묻는 에드워드에게 답한다. 이제는 “아씨도 가엾다”고. 본토에서 온, 제국주의와 가부장을 상징하는 괴물 에드워드는, 자기 연민에 빠져- 광녀 아내를 데리고 살아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다. 아내의 영혼과 육체를 학대한 것으로도 모자라, 그녀의 영혼이 머물던 곳을 떠나 차갑고 어두운 잉글랜드로 데려온다. 손필드 저택의 다락방에 갇힌 앙투아네트, 그레이스의 말에 따르면 돈도 많으면서 제대로 된 음식도 주지 않는다. 아네트가 시골에 갇혀 서서히 미쳐갈 동안 메이슨은 여행으로 부재했듯이, 그도 앙투아네트를 들여다보지 않는다. 감시인 그레이스는 앙투아네트의 눈 속에 타오르는 그녀의 생명력, 혼을 보면서 감탄한다. 크리스토핀이 얘기했듯이, 앙투아네트는 태양을 품고 있는 여인이다. 태양은 여전히, 그녀의 눈 속에서 타오르고 있다. 에드워드는 그녀를 완전히 지배하지 못한 것이다.

 

<제인 에어>에서 광녀로 그려진 버사 메이슨은,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에서 생명력 넘치는 상속녀, 앙투아네트 메이슨이 되어 그녀의 목소리로 소리친다. 그녀의 문화를 말살하려는 남편에 완전히 굴복하지 않았음을. 그들이 자신을 손필드의 유령이라 부른다 할지라도 그녀의 인생, 그녀의 존재와 영혼이 살아있음을. 어둠에 가리워 살아야 했던 그녀가 당당히 살아있음을 스스로의 태양- 불을 밝혀 증거하는 것이다.

 

“물 흐름이 느리고, 바람이 거의 불지 않는 사르가소 바다”처럼 책장을 넘기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곧, 어린 앙투아네트의 목소리는 공허한 내 가슴에 메아리를 울렸다. 시간이 지나고서야 알았다. 진 리스는 일부러 그렇게 썼다는 걸.  이 글을 읽은 이후로도 아주 오랫동안 앙투아네트의 반짝이는 눈빛은 내 가슴을 움직였다. 지금 이 순간도. 내가 제인의 이야기보다도, 그녀의 이야기를 먼저 털어놓는 이유이기도 하다… 재밌는 것은 소설에서 에드워드의 이름은 한 번도 등장하지 않으며, 에드워드의 서술은 앙투아네트에 침범당한다는 것이다. 헤게모니가 누구에게 머무르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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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5-05-19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멋진 리뷰입니다, 에이바님. 감탄하며 읽었어요. 심지어 제가 이 책을 제대로 읽긴 한건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에요. 에이바님의 리뷰를 읽으며 이 책을 다시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진 리스가 좋았어요. 이 소설 때문에요. 모든 일에는 `다른 면이 있다`고 얘기하잖아요. `항상` 그렇다고요. 그걸 짚어낸 준 작가인 것 같아요. 그걸 알았기 때문에 이 소설이 나온 것일 테고요. 잘 읽었습니다, 에이바님.

에이바 2015-05-19 14:03   좋아요 0 | URL
저도 제인을 사랑하기 때문에 사르가소를 읽고 무척 놀랐습니다. 제게 버사는 검은 살결에 체구도 큰, 위협적인 man eater의 이미지가 강했거든요. 앙투아네트는 그냥 평범한 여인이었어요. 제국주의적 관점을 제대로 비틀어 보여준 진 리스에게 감사할 뿐입니다.

저는 그 구절도 좋았어요. 나중에 추가해야겠네요. ˝어떤 일이 일단 발생하면 그 사건이 언제, 왜 발생했는지는 잊어버린다 해도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은 영원히 존재해요.˝ 댓글 감사해요 다락방님..

AgalmA 2015-05-19 1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은 참 이상하죠. 우리몸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우리를 낳아준 모성이기도 하고, 쓰나미처럼 우리를 덮치는 광기이자 우울이기도 하죠. 진 리스가 사르가소 바다에 그 모든 걸 담은 건지도 모르겠다 먼발치서 생각해 봅니다.
소설들을 읽을 때마다 제국주의, 가부장제, 계급의식, 인종차별 지금도 변함없다 싶으니, 삶이 참 아득해요. 물이 물의 성질을 늘 품고 있듯이.

에이바 2015-05-19 20:55   좋아요 1 | URL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겠군요. 제가 아는 것만 살짝 말씀드리자면... 사르가소는 해류 움직임과 해풍이 거의 없어 항해하기 어려운 바다라 해요. 사르가숨이라는 해초가 둥둥 떠다니기도 하고 선원들이 꺼리는 곳이라네요. 접근도 항해도 쉽지 않은 이 바다는 앙투아네트와 에드워드의 문화가 합쳐지기 힘든 것을 상징합니다. 오베아, 파투아, 무더운 날씨는 에드워드에게 낯선 것이며 동시에 그를 이방인으로 만들죠. 두 사람의 관계가 드러내는 여러 문제점-아갈마님께서 언급하신-들은 이 바다가 가진 성질만큼, 소설 속에서도 암시적으로 드러납니다.

`Wide`를 `광막한`으로 번역한게 정말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아득하고 막막할 정도로 넓은 사르가소 바다라... 어떤 문제들은 노력해도 좁혀지지 않을, 너무나 아득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시도해야겠지만요...

AgalmA 2015-05-19 20:57   좋아요 1 | URL
에이바님은 살짝 아니라 늘 많이 알려주시는데요^^ 깊은 작품이해 늘 인상적입니다. 고맙습니다

살리미 2016-01-14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지금 이 책 읽고 있어요. 읽는데 너무 좋아서 혹시나 에이바님 리뷰가 있지 않을까 하고 검색해봤는데 역시나 있네요!! 그것도 아주 멋진 리뷰가요!!!
제인 에어의 팬픽이라고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좋을지 몰랐어요. 로체스터 좋아했었는데.. 이래서 사람 말은 양쪽을 다 들어봐야... ㅎㅎㅎ
어쩌면 이렇게 훌륭하게 버사, 앙투아네트를 변호해주었을까요.. 정말 진 리스 대단합니다!

에이바 2016-01-15 21:41   좋아요 0 | URL
오로라님 이 소설 정말 좋죠. 하지만 팬픽션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을 것 같아요. 진 리스 스스로가 크리올이었고 제인 에어의 시각에 분노, 비판하기 위해 쓴 작품이라서요. 때문에 패스티시로도 분류되기 어렵고요, 영감을 준 건 확실하지만 리스가 에어의 팬은 아니었습니다. ㅠㅠ 저는 두 사람의 팬이지만...
 

안녕하세요. 20대 흔녀입니다.

제 마음을 다잡을 수 있도록 현명한 조언을 부탁드려요...

 

저는 부모님이 안 계셔서 어릴 때 외삼촌 댁에서 컸고요, 10살쯤 기숙학교로 보내졌어요. 졸업 후에 학교에서 근무하다가 지금은 입주가정교사로 일하고 있어요. 친척들이랑은 그 이후로 연락 안하고요. 그냥 저 혼자예요..

 

처음 이 집에 왔을 땐 아이랑 고용인들 밖에 없었고요, 집주인은 출장 중이라 몇 달 만에 봤어요. 알고 보니 학부모가 아니라 후견인이더라고요. 어느 날 집 앞에서 어떤 남자가 자동차 사고가 좀 크게 났는데요. 도와주겠다 하니까 여자한테 도움 받을 수 없다고 우겨요. 그래도 경찰이랑 119에 신고하고 병원으로 가는 거 확인했어요. 며칠 후에 외출했다가 집에 왔더니 그 아저씨가 있어서 좀 놀랐는데요 집주인이자 제 고용주래요.

 

솔직히 첫인상은 별로였어요. 자주 식사하며 얘기 나누다 보니 유머감각도 있고... 깬 사람이더라고요. 자기 딸도 아닌데 입주가정교사까지 불러다 공부까지 시키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거잖아요. 그래도 무례할 때가 많고 좀 괴팍해요. 월급 주는 사람인데 참아야지 어쩌겠어요. 여기서 오래 일하신 분들 말이, 상처가 많아서 그렇대요. 여행도 많이 하고, 이런저런 경험이 많아서 대화는 재밌어요. 호감도 생기고... 저나 그 사람이나 대화상대가 마땅치 않다보니, 많이 가까워졌어요.

 

하루는 고용주 친구분들이 놀러 왔는데요. 다들 외제차에, 옷 입은 거 하며 부내가 장난 아닌 거예요. 알고 보니 인근에 영지도 있는 유명 귀족 후손들이래요. 그 중에 제 또래인 아가씨가 있었는데 정말 예뻤어요. 결핍이란 걸 모르고 자랐을 것 같은, 완전한 느낌 있죠. 전 고용인이지만 별채가 아니라 본채에 묵고 있었는데요. 최대한 같이 있는 걸 피해보려고 했는데 자꾸 내려오라고 하고… 다들 저에 대해 궁금해 하는 거예요. 학교부터 시작해서 집안이다 뭐다, 아무래도 젊은 여자다 보니 그랬는지… 근데 그런 거 아시죠, 친절하지만 친절하지 않은 거… 목소리 낮춰서 얘기해도 제가 들을 수 있는 크기로 흉보더라고요. 좋은 가정에서 자랐다면 이런 곳에서 여자 혼자 있지 않을 거라고… 고용주를 흘깃 봤더니 못 들은 체, 못 본 체 해요. 비참하더라고요. 그 아가씨랑 비교되는 것 같고... 알고 보니 두 사람이 곧 약혼할 사이라는 거예요.

 

그리고 나서 고용주가 며칠 부재중이었는데요. 지나가던 무당이 집에 우환이 있다면서 점을 봐주겠다는 거예요. 다른 사람들이 심심하다고 집에 들이더라고요. 전 그런 거 안 믿어서 거실 한 켠에서 책 읽고 있는데 점 보고 나오는 족족 사람들 얼굴이 새파래요. 구린 게 많은가 보다 싶었죠. 끝났나 싶었는데 한 사람 안 왔다고, 저를 지목하는 거예요. 들어갔더니 자꾸 제 맘을 캐내려 하는데 떨떠름하면서도 털어놔야 하나 싶고…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사람이 고용주라는 걸 알았어요. 황당했죠... 그 사람은 장난이라고 했지만...

 

그러다 외숙모 병환이 깊어져서 저를 보고 싶어 한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떠날 채비를 하는데 고용주가 찾아와서 언제 올거냐며, 꼭 돌아오라고 붙잡더라고요. 눈빛이며 말투가 절절해요. 마치… 저를 사랑하는 것처럼요. 저도 제 맘을 몰랐는데 그 동안 맘 아프고 한게 그 사람을 좋아해서였던 것 같아요. 어쨌든 많이 떨리고 또 기뻤어요. 외숙모 댁에 갔는데 제가 커서 그런지 예전만큼 무섭지도 않고, 노인에 대한 측은함도 생기고요. 사촌들도 오랜만에 보고 제 시간을 가지면서 마음을 들여다봤어요. 그립더라고요. 내 집이라 할 수 있는 곳, 그 사람... 돌아와 청혼 받았어요. 드레스 고르고, 신행 계획 세우고 진짜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고… 전 키도 작고 못생기고 가진 거라곤 제 몸뚱아리 하난데... 나이 차이는 나지만, 날 있는 그대로 봐주는 사람을 만나기 쉽지 않잖아요. 꿈 같은 나날이었죠. 둘이서, 제가 못 가본 나라들에 함께 가기로 약속하고 결혼식날이 됐어요…

 

그날따라 예비신랑이 엄청 서두르더라고요. 결혼서약만 하고 바로 떠날 수 있게 해놓고요. 엄청 정신없는 날이었어요. 서약을 하고, 반대하는 사람 있냐고 묻는데 어떤 남자가 무효라고 소리지르면서 식장에 들어왔어요… 제 신랑이 유부남이라는 거예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신랑이 제 손을 꽉 쥐는게 느껴져서 일단 정신을 차리고 옷을 갈아 입었어요. 털어놓더라고요. 전 부인은 정신병을 앓은 지 십 년도 훨씬 넘었다고… 자기야말로 사기 결혼의 피해자라고요. 말은 바로 해야죠. 전 부인이 아니라 그 사람 진짜 와이프잖아요...

 

집에 도착하자마자 방에 뛰어들어 문을 잠갔어요. 그 사람 따라와서 간청하더라고요. 다 설명할 수 있다고… 나중엔 저한테 그래요. 평생 남매처럼 살면 안 되겠냐고. 제발 자기를 떠나지 말라고, 죽을 것 같다고… 미칠 것 같아요… 그 말에 솔깃하다가도 그 사람이 너무 밉고 원망스러워요. 가슴을 쥐어뜯어도 결론이 나지 않아요… 내 사랑이 잘못된 걸 아는데, 멈추질 못하겠어요…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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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5-05-17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구덩이를 잡으면 타들어갑니다.놔야죠.

프레이야 2015-05-17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이 이끄는대로^^

단발머리 2015-05-17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그 남자를 떠나시구여~ 곧 다시 만나게 될테니 그 때 잘해보세용*^^

에곤 실례 2015-05-17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제인에어 아닌가요?

에이바 2015-05-18 23:08   좋아요 0 | URL
네 제인 에어 맞습니다^^

cyrus 2015-05-17 1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 문장만 보고 낚일 뻔 했어요... ㅋㅋㅋㅋ

아기오소리 2015-05-17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제인에어의 현대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