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20대 흔녀입니다.

제 마음을 다잡을 수 있도록 현명한 조언을 부탁드려요...

 

저는 부모님이 안 계셔서 어릴 때 외삼촌 댁에서 컸고요, 10살쯤 기숙학교로 보내졌어요. 졸업 후에 학교에서 근무하다가 지금은 입주가정교사로 일하고 있어요. 친척들이랑은 그 이후로 연락 안하고요. 그냥 저 혼자예요..

 

처음 이 집에 왔을 땐 아이랑 고용인들 밖에 없었고요, 집주인은 출장 중이라 몇 달 만에 봤어요. 알고 보니 학부모가 아니라 후견인이더라고요. 어느 날 집 앞에서 어떤 남자가 자동차 사고가 좀 크게 났는데요. 도와주겠다 하니까 여자한테 도움 받을 수 없다고 우겨요. 그래도 경찰이랑 119에 신고하고 병원으로 가는 거 확인했어요. 며칠 후에 외출했다가 집에 왔더니 그 아저씨가 있어서 좀 놀랐는데요 집주인이자 제 고용주래요.

 

솔직히 첫인상은 별로였어요. 자주 식사하며 얘기 나누다 보니 유머감각도 있고... 깬 사람이더라고요. 자기 딸도 아닌데 입주가정교사까지 불러다 공부까지 시키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거잖아요. 그래도 무례할 때가 많고 좀 괴팍해요. 월급 주는 사람인데 참아야지 어쩌겠어요. 여기서 오래 일하신 분들 말이, 상처가 많아서 그렇대요. 여행도 많이 하고, 이런저런 경험이 많아서 대화는 재밌어요. 호감도 생기고... 저나 그 사람이나 대화상대가 마땅치 않다보니, 많이 가까워졌어요.

 

하루는 고용주 친구분들이 놀러 왔는데요. 다들 외제차에, 옷 입은 거 하며 부내가 장난 아닌 거예요. 알고 보니 인근에 영지도 있는 유명 귀족 후손들이래요. 그 중에 제 또래인 아가씨가 있었는데 정말 예뻤어요. 결핍이란 걸 모르고 자랐을 것 같은, 완전한 느낌 있죠. 전 고용인이지만 별채가 아니라 본채에 묵고 있었는데요. 최대한 같이 있는 걸 피해보려고 했는데 자꾸 내려오라고 하고… 다들 저에 대해 궁금해 하는 거예요. 학교부터 시작해서 집안이다 뭐다, 아무래도 젊은 여자다 보니 그랬는지… 근데 그런 거 아시죠, 친절하지만 친절하지 않은 거… 목소리 낮춰서 얘기해도 제가 들을 수 있는 크기로 흉보더라고요. 좋은 가정에서 자랐다면 이런 곳에서 여자 혼자 있지 않을 거라고… 고용주를 흘깃 봤더니 못 들은 체, 못 본 체 해요. 비참하더라고요. 그 아가씨랑 비교되는 것 같고... 알고 보니 두 사람이 곧 약혼할 사이라는 거예요.

 

그리고 나서 고용주가 며칠 부재중이었는데요. 지나가던 무당이 집에 우환이 있다면서 점을 봐주겠다는 거예요. 다른 사람들이 심심하다고 집에 들이더라고요. 전 그런 거 안 믿어서 거실 한 켠에서 책 읽고 있는데 점 보고 나오는 족족 사람들 얼굴이 새파래요. 구린 게 많은가 보다 싶었죠. 끝났나 싶었는데 한 사람 안 왔다고, 저를 지목하는 거예요. 들어갔더니 자꾸 제 맘을 캐내려 하는데 떨떠름하면서도 털어놔야 하나 싶고…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사람이 고용주라는 걸 알았어요. 황당했죠... 그 사람은 장난이라고 했지만...

 

그러다 외숙모 병환이 깊어져서 저를 보고 싶어 한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떠날 채비를 하는데 고용주가 찾아와서 언제 올거냐며, 꼭 돌아오라고 붙잡더라고요. 눈빛이며 말투가 절절해요. 마치… 저를 사랑하는 것처럼요. 저도 제 맘을 몰랐는데 그 동안 맘 아프고 한게 그 사람을 좋아해서였던 것 같아요. 어쨌든 많이 떨리고 또 기뻤어요. 외숙모 댁에 갔는데 제가 커서 그런지 예전만큼 무섭지도 않고, 노인에 대한 측은함도 생기고요. 사촌들도 오랜만에 보고 제 시간을 가지면서 마음을 들여다봤어요. 그립더라고요. 내 집이라 할 수 있는 곳, 그 사람... 돌아와 청혼 받았어요. 드레스 고르고, 신행 계획 세우고 진짜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고… 전 키도 작고 못생기고 가진 거라곤 제 몸뚱아리 하난데... 나이 차이는 나지만, 날 있는 그대로 봐주는 사람을 만나기 쉽지 않잖아요. 꿈 같은 나날이었죠. 둘이서, 제가 못 가본 나라들에 함께 가기로 약속하고 결혼식날이 됐어요…

 

그날따라 예비신랑이 엄청 서두르더라고요. 결혼서약만 하고 바로 떠날 수 있게 해놓고요. 엄청 정신없는 날이었어요. 서약을 하고, 반대하는 사람 있냐고 묻는데 어떤 남자가 무효라고 소리지르면서 식장에 들어왔어요… 제 신랑이 유부남이라는 거예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신랑이 제 손을 꽉 쥐는게 느껴져서 일단 정신을 차리고 옷을 갈아 입었어요. 털어놓더라고요. 전 부인은 정신병을 앓은 지 십 년도 훨씬 넘었다고… 자기야말로 사기 결혼의 피해자라고요. 말은 바로 해야죠. 전 부인이 아니라 그 사람 진짜 와이프잖아요...

 

집에 도착하자마자 방에 뛰어들어 문을 잠갔어요. 그 사람 따라와서 간청하더라고요. 다 설명할 수 있다고… 나중엔 저한테 그래요. 평생 남매처럼 살면 안 되겠냐고. 제발 자기를 떠나지 말라고, 죽을 것 같다고… 미칠 것 같아요… 그 말에 솔깃하다가도 그 사람이 너무 밉고 원망스러워요. 가슴을 쥐어뜯어도 결론이 나지 않아요… 내 사랑이 잘못된 걸 아는데, 멈추질 못하겠어요…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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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5-05-17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구덩이를 잡으면 타들어갑니다.놔야죠.

프레이야 2015-05-17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이 이끄는대로^^

단발머리 2015-05-17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그 남자를 떠나시구여~ 곧 다시 만나게 될테니 그 때 잘해보세용*^^

에곤 실례 2015-05-17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제인에어 아닌가요?

에이바 2015-05-18 23:08   좋아요 0 | URL
네 제인 에어 맞습니다^^

cyrus 2015-05-17 1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 문장만 보고 낚일 뻔 했어요... ㅋㅋㅋㅋ

아기오소리 2015-05-17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제인에어의 현대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