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조이스 시집 : 체임버 뮤직 - 수동 타자기 조판 아티초크 빈티지 시선 6
제임스 조이스 지음, 공진호 옮김 / 아티초크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XXIV

 

  Silently she's combing,
  Combing her long hair
  Silently and graciously,
  With many a pretty air.


  The sun is in the willow leaves
  And on the dapplled grass,
  And still she's combing her long hair
  Before the looking-glass.

  I pray you, cease to comb out,
  Comb out your long hair,
  For I have heard of witchery
  Under a pretty air,

  That makes as one thing to the lover
  Staying and going hence,
  All fair, with many a pretty air
  And many a negligence.
 

                                    《Chamber Music》 James Joyce 

 
 

24

 

 

  말없이 머리 빗는 그녀,

  긴 머리를 빗네,

  말없이 우아하게,

  어여삐 뽐내는 자태.


  버드나무 잎 사이사이 채운 햇빛

  얼룩덜룩 풀밭에 어른거리는데,

  거울 앞 그녀는 아직도

  긴 머리를 빗네.


  바라건대, 머리 좀 그만 빗어요,

  그 긴 머리 좀 그만 빗어요,

  어여삐 뽐내는 자태 아래

  마법이 깃든다고 들었으니,


  그것은 애인에게 한 모습으로 분하여,

  머물렀다 이내 사라지지요,

  수많은 어여쁜 자태, 수없이 무관심해도

  곱기만 한 모든 모습.

 

                   《체임버 뮤직》 아티초크 출판, 공진호 옮김

 

 


아마도 시인은 침대에 누워 연인의 머리 빗는 모습을 보지 않았을까.

창 밖의 버들잎 사이로 들어온 햇볕이 연인의 머리에 수를 놓는다.

산들산들 바람에 풀이 누웠다 일어섰다, 반짝임이 파도치는 평화로운 순간,

머리칼이 반짝거리는 여인의 뒷모습은 너무도 어여뻐 질투를 살지도 몰라.

누군가의 사악한 마법이 깃들지도 몰라. 아니 그이가 마법을 부린걸까?

제발 머리 좀 그만 빗고 이리로 와요. 내게로 와요.


조이스에 따르면, 상상의 여인에 대한 글이라는데 진위는 알 수 없으니 믿어줍시다.

노라에게 옛 사랑을 들킬까 봐 그랬을지도 몰라요.


마지막 행의 "All fair,"는 '금발 혹은 햇빛에 반사되어 금발로 보이는 머리칼'로도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안 되나? 누가 가르침 좀 주세요...

 

-


읽으면서 너무도 귀여운 시가 있어 소개한다.

 

제임스 조이스가 25세가 되던 해 출간된 《체임버 뮤직》은 '실내악'이라는 그 뜻처럼, 여러 시들이 모여 음악처럼 구성되었다. 작가가 원한대로 곡을 붙여 노래로 만들어지기도 했다고 한다. 소설과는 다르게, 조이스는 간결하면서도 단순한 시어들로 사랑의 감정을 노래한다. 그래서 나도 실내악 24번에 어울리는 노래를 생각해 보았다.


이 시에서의 'witchery'는 사랑의 양면성을 모두 가진 단어다. 사랑이란 원래 마법처럼, 누군가를 사로잡는 것. 행복과 불행을 함께 느끼게 하는 감정이 아니던가! 이 시에 어울리는 노래로〈Bewitched, Bothered, and Bewildered〉는 어떨까?

 

내가 좋아하는 버전은 영화 History Boys에서 사무엘 바넷이 부른 〈Bewitched〉이다. History Boys 얘길 잠깐 하자면, 동명의 연극이 성공하자 영화로도 옮겨진 작품. 몇몇 배우를 제외하고 극과 영화의 배우가 동일했던 걸로 기억한다. 주역들은 여전히 활발한 활동중인데 이름이 알려진 사람은 아마도 제임스 코든, 도미닉 쿠퍼랑 러셀 토비 정도? 다른 배우들은 뮤지컬/연극계라...

 

아무튼 이 영화 사운드트랙은 진짜 전부 다 좋다! 영화가 시작되면서 깔리는 노래가 The Smiths의 〈This Charming Man〉이라고요! 내 마음대로 조이스에 헌정할 〈Bewitched〉는 다음과 같다.


〈Bewitched〉, 사무엘 바넷

〈Bewitched〉,  루퍼스 웨인라이트

〈Bewitched, Bothered, and Bewildered〉, 엘라 피츠제럴드

〈Bewitched, Bothered, and Bewildered〉, 에디 히긴스 트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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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s a fool and don't I know it
But a fool can have his charms
I'm in love and don't I show it
Like a babe in arms
 
Love's the same old sad sensation
Lately I've not slept a wink
Since this half-pint imitation's
Put me on the blink
 
I'm wild again
Beguiled again
A simpering, whimpering child again
Bewitched, bothered, and bewildered am I
 
Couldn't sleep
And wouldn't sleep
When love came and told me I shouldn't sleep
Bewitched, bothered, and bewildered am I
 
Lost my heart, but what of it?
He is cold I agree
He could laugh, but I love it
Although the laugh's on me.
 
I'll sing to him
Each spring to him
And long for the day when I’ll cling to him
Bewitched, bothered and bewildered am I
 
Bewitched, bothered and bewildered am I
 
I’ve seen a lot
I mean a lot
But I'm like sweet seventeen a lot
Bewitched, bothered, and bewildered am I
 
Lost my heart, but what of it?
My mistake, I agree
He can laugh but I love it
Because the laugh's on me
 
I’ll sing to him
Each spring to him
And worship the trousers that cling to him
Bewitched, bothered, and bewildered am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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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초크 《체임버 뮤직》에는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에 실린 〈Eveline〉의 원문과 번역을 함께 소개한다. 문학동네에서는 〈이블린〉으로 나온 작품인데 아일랜드에서의 발음대로 〈에벌라인〉이라 표기했다고. '마비'된 더블린 사람들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단편을 새로운 번역으로 읽을 수 있어 좋았다.

 

청년 제임스의 감성을 느끼고 싶은 분께 추천한다. 

 

 

 

 

 

 

 

 


"Love is unhappy. When love is away!" 

"사랑은 사랑이 멀리 있어 슬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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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5-21 21: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짜 이 책 안 나왔으면 조이스 전집을 강제 구매할 뻔 했어요. ㅎㅎㅎ 범우사에서 나온 조이스 전집 중에 <실내악>을 수록한 책이 아직도 판매되고 있어요. 김종건 교수 번역과 비교하면서 읽어봐야겠습니다. ^^

에이바 2015-05-22 09:30   좋아요 0 | URL
오! 범우사 판을 아직 구입할 수 있나봐요? 조이스 매니아 cyrus님께 딱인 시집입니다.^^ 말랑하고 멜랑콜리하고 젊은 제임스의 꿈을 엿보는 것 같아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