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겨울날, 집에 오자, 어머니는 내가 추워하는 것을 보시고서 평소에 내가 마시지 않던 차를 마시라고 하셨다. 처음에는 싫다고 했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이 바뀌었다. 어머니는 사람을 시켜 가리비 껍데기에 홈을 낸 틀에 넣어 만든 것 같은 '프티트 마들렌'이라는 짧고 통통한 과자를 사 오게 하셨다. 침울했던 하루와 슬픈 내일에 대한 전망으로 마음이 울적해져 있던 나는 마들렌 조각을 넣어 적셔 둔 홍차 한 숟가락을 기계적으로 입술로 가져갔다. 그런데 과자 조각이 섞인 홍차 한 모금이 내 입천장에 닿는 순간, 나는 깜짝 놀라 내 몸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특별한 일에 주목하게 되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어떤 감미로운 기쁨이 나를 사로잡으며 고립시켜 버린 것이다. 마치 사랑이 그러하듯 이 기쁨이 귀중한 본질로 나를 채우자, 삶의 우여곡절이 사소하게 느껴졌고, 삶의 재난은 위험하지 않고, 그 짧음은 착각으로 여겨졌다. 아니, 그 본질은 내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었다.

 

《문학의 맛, 소설 속 요리들》(한스미디어) 22쪽

 

이처럼 콩브레에서 내 잠자리의 비극과 무대 외에 다른 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지도 오랜 어느 겨울 날, 집에 돌아온 내가 추워하는 걸 본 어머니께서는 평소 내 습관과는 달리 홍차를 마시지 않겠느냐고 제안하셨다. 처음에는 싫다고 했지만 왠지 마음이 바뀌었다. 어머니는 사람을 시켜 생자크라는 조가비 모양의, 가느다란 홈이 팬 틀에 넣어 만든 '프티트 마들렌'이라는 짧고 통통한 과자를 사 오게 하셨다. 침울했던 하루와 서글픈 내일에 대한 전망으로 마음이 울적해진 나는 마들렌 조각이 녹아든 홍차 한 숟가락을 기계적으로 입술로 그런데 과자 조각이 섞인 홍차 한 모금이 내 입천장에 닿는 순간, 나는 깜짝 놀라 내 몸속에서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어떤 감미로운 기쁨이 나를 사로잡으며 고립시켰다. 이 기쁨은 마치 사랑이 그러하듯 귀중한 본질로 나를 채우면서 삶의 변전에 무관심하게 만들었고, 삶의 재난을 무해한 것으로, 그 짧음을 착각으로 여기게 했다. 아니, 그 본질은 내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스완네집 쪽으로》 (민음사) 85-86쪽

 

 

 

 

 

 

 

 

 

늘 그랬듯이 태양이 집 주위를 돌면서 오후도 무르익어 저녁으로 접어들었다. 술 한 잔을 마셨다. 한 잔 더. 또 한 잔 더. 진과 파인애플 주스를 섞어 마시면 늘 기운이 샘솟는지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칵테일이다. 제멋대로 자란 잔디밭을 돌보며 시간을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작은 관심'이다. 민들레가 잔뜩 자라있고 지긋지긋한 개 한마리가-나는 개를 싫어한다-해시계를 올려놓았던 평평한 돌을 더럽혀 놓았다. 대부분의 민들레는 이미 해님에서 달님으로 변해있다. 진과 롤리타가 내 안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접의자 몇 개를 치우려다가 하마터면 고꾸라질 뻔했다. 핏빛 얼룩말들!

《문학의 맛, 소설 속 요리들》(한스미디어) 32쪽

 

늘 그랬듯이 태양이 우리 집 주위를 돌면서 오후도 무르익어 어느덧 저녁으로 접어들었다. 술 한 잔을 마셨다. 한 잔 더. 또 한 잔 더. 나는 진과 파인애플 주스를 섞어 마시기를 좋아하는데, 이렇게 마실 때마다 기운이 샘솟는다. 제멋대로 자란 잔디밭을 돌보며 시간을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작은 배려다. 민들레가 잔뜩 돋아나고 지긋지긋한 개 한 마리가-나는 개를 싫어한다-해시계를 올려놓았던 평평한 돌 받침대에 오줌을 쌌다. 민들레는 대부분 꽃이 져서 이미 해님에서 달님으로 변했다. 술과 롤리타가 내 안에서 출렁출렁 춤을 추었다. 접의자 몇 개를 옮기려다가 하마터면 고꾸라질 뻔했다. 핏빛 얼룩말 같은 것들!

《롤리타》(문학동네) 1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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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5-07-08 16: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같은 원서지만 번역이 다른 책이 있다는 것도 좋은 일 같아요. 역자에 따라 조금씩 다른 느낌으로 읽을 수 있을테니까요. 저 <문학의 맛, 소설속 요리들>에 나오는 음식사진은 볼 때마다 괜찮네요.
에이바님, 좋은 하루 되세요.

에이바 2015-07-09 19:38   좋아요 1 | URL
문학에 나오는 요리들을 상상에 그치지 않고 만들어낸 것을 보니 참 새롭고 또 부러웠습니다.. 서니데이님도 좋은 하루 되셨길 바라요.^^
 
윤동주 시선 : 사랑스런 추억 아티초크 빈티지 시선 7
윤동주 지음 / 아티초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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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이 홰를 치면서 맵짠 울음을 뽑아 밤을 쫓고 동쪽으로 훤-히 새벽이란 손님을 불러온다 하자.

    [별똥 떨어진 데]

 

 

 

왜 아름다운 사람들은 먼저 가는 걸까. 윤동주의 마지막을 생각하면 늘 눈물짓게 된다.

 

나는 그를 통해 한국 시의 아름다움을 배웠지만 현대 시와는 그리 가깝지 않았다. 대학 교양수업에서 최승자 시인을 알게 되었지만 그게 다였다. 교수는 수강생들에게 시를 세 편 써서 제출하라고 했었다. 구매 목록을 뒤져보니 당시 나희덕 시인의 시집을 구매했더군. 책장에 모셔둔 한국시인의 시집은 많지 않다. 찾아보면 더 나올지도 모르겠지만...

 

윤동주 하면 여러 이야기가 떠오르는데, 그 중 하나는 세시봉 윤형주 씨가 시인의 육촌 동생이라는 것... 세시봉 특집 방송에 나온 조영남 씨가 〈서시〉에 가락을 붙여 노래를 한 곡 뽑았더니 날카로운 지적이 이어졌다. ―윤형주: 아버님께 시인의 글로 노래를 만들어도 되겠느냐 여쭈었더니, 시가 이미 노래이거늘 왜 네가 망치려드느냐 하셨다는 것.

 

시인이 릴케를 좋아하는 줄은 〈별 헤는 밤〉을 통해 알고 있었지만, 폴 발레리와 앙드레 지드 작품을 탐독했다는 것은 이번 기회에 알게 되었다. 아티초크 출판은 첫 한국 시인으로 윤동주를 선정하여, 서정적이고 따스한 시집을 보내주었다. 참 오랜만에 옛 생각이 났다. 시를 접했을 때의 그 기분에 빠져들었다고 할까. 마치 홍차에 끝을 조금 적셔 입으로 가져 간 그 마들렌이 주었던 기억처럼.

 

내가 알던 중 가장 좋아하던 시는 〈참회록〉이었는데 찬찬히 읽어보니 더 좋았다. 이전엔 몰랐던 시를 함께 소개한다.

 

 

 

  

 

 

 

  흐르는 거리

 

  으스름히 안개가 흐른다. 거리가 흘러간다. 저 전차, 자동차, 모든 바퀴가 어디로 흘리워가는 것일까? 정박할 아무 항구도 없이, 가련한 많은 사람들을 싣고서, 안개 속에 잠긴 거리는,

 

  거리 모퉁이 붉은 포스트상자를 붙잡고, 섰을라면 모든 것이 흐르는 속에 어렴풋이 빛나는 가로등, 꺼지지 않는 것은 무슨 상징일까? 사랑하는 동무 박(朴)이여! 그리고 김(金)이여! 자네들은 지금 어디 있는가? 끝없이 안개가 흐르는데,

 

  “새로운 날 아침 우리 다시 정답게 손목을 잡아보세” 몇 자 적어 포스트 속에 떨어트리고, 밤을 새워 기다리면 금휘장에 금단추를 삐였고 거인처럼 찬란히 나타나는 배달부, 아침과 함께 즐거운 내림(來臨),

 

  이 밤을 하염없이 안개가 흐른다.

  

  [105]

 

 

 

 

 

함께 들으면 좋을 곡.

Alcest의 〈Souvenir d'un autre mo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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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7-06 14: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흐르는 거리`가 마치 기형도 시인의 시를 보는 것 같아요. 윤동주 특유의 우울함이 저는 좋아요. 고등학생 때 윤동주의 `자화상`을 좋아했었습니다.

에이바 2015-07-06 16:04   좋아요 0 | URL
기형도 시인요? 그런 것도 같아요. 시를 모아놓고 보니 윤동주 시인이 참 따뜻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느껴지더군요. 그리고 자기반성..
 

미드 《롬Rome》 (2005~2007)

  

 

 

HBO의 역작, 역사적 고증과 영상미를 따라올 대하 드라마가 전무하다고 말할 수 있다. 영국 BBC도 제작에 참여했으며, 여느 미드와 같이 탄탄한 연기력의 영국 출신 배우들이 열연한다. 그러나 방대한 제작비로 인해 시즌2에서 캔슬.

 

주인공은 카이사르의 저서 《갈리아 전기》에 등장하는 백인대장 루키우스 보레누스와 티투스 풀로이다. 기원전 49년의 내전 이후 카이사르의 부상과 암살, 최초의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유년 시절, 안토니우스와의 권력 싸움 등 굵직한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드라마다 보니, 재미를 위한 각색이 있으나 풍속 등의 고증을 인정받았다. 폭력적이고 선정적임. 19금.

 

기원전 52년~27년을 다루고 있으며, 《마스터스 오브 로마》의 5부~7부에 해당한다.  

 

 

 

    

 

 

 

 

 

 

 

 

 

 

 

 

 

 

 

 

 

미드 《스파르타쿠스Spartacus》(2010~2013)

 

 

  

STARZ가 만든 19금 드라마. 기원전 73년~71년, 자유를 얻기 위해 반란을 일으킨 검투사 스파르타쿠스가 주인공이다. 별칭은 X파르타쿠스. 시즌3까지 이어졌다. 열연을 펼쳤던 스파르타쿠스 역의 앤디 윗필드가 림프종 투병 중 사망하여, 시즌2부터 배우가 교체된다.

 

《마스터스 오브 로마》 3부에 해당한다.

    

 

 

 

 

 

 

 

 

 

 

 

 

    

 

 

 

 

영드 《평민들Plebs》 (2013~)

  

 

 

ITV2에서 방영하는 드라마. 기원전 27년~26년을 배경으로 한 세 평민 청년의 분투기를 다룬 코미디. 게으른 노예가 제일 골 때린다. 《인비트위너스Inbetweeners》를 로마로 옮긴 것으로 보면 된다고 한다. 다음은 제작자의 말.

 

〈Rome allows us to bring in gladiators and beheadings and orgies.〉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마스터스 오브 로마》 7부에 해당한다.

     

 

  

 

 

 

미니시리즈 《율리우스 카이사르 Julius Caesar》 (2002)

 

 

 

기원전 82년~44년,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18세부터 죽음까지를 다룬다. 대부분이 역사와 일치한다. 제레미 시스토가 카이사르, 리차드 해리스가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를 맡았다. 몰타, 불가리아 로케이션 촬영했으며, 에미상 2개 부문 후보로 올랐다.

 

《마스터스 오브 로마》 2부~6부에 해당한다.

 

 

 

 

 

 

   

영화 《드루이즈Druids》

 

 

골 족 추장, 전설적인 갈리아 영웅 베르킨게토릭스의 생애를 다룬 영화. 프랑스-캐나다-벨기에 합작으로 만들어졌다. 율리우스의 카이사르에 대항하는 갈리아의 저항이 주된 내용이며 알레시아 전투(기원전 60년)가 영화의 정점이다. 크리스토퍼 랑베르 주연.

 

《마스터스 오브 로마》 4부에 해당한다.

 

  

 

  

 

    

《임페리움Imperium》시리즈 (2003~2010)

 

로마 제국을 다룬 영국-이탈리아 합작 영화 시리즈.

  

 

 

 

- Imperium: Augustus (2003)

피터 오툴이 아우구스투스 역을 맡았다. 아우구스투스가 딸에게 과거를 들려주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역사적 사실성에 있어 비난을 받았고 막장 드라마 요소가 있다고 한다.

 

- Imperium: Nero (2004)

네로 황제를 다루고 있다. 역시 각색 부분에서 비평이 있다. 네로의 마지막 죽음만 얘기하자면, 여인의 품에 안겨 손목을 그은게 아니라 스스로 목을 찔러 자살했다고 한다. 네로를 다룬 영화로 《쿠오 바디스Quo Vadis》가 있다.

 

- Imperium: Saint Peter (2005)

베드로 성인 역은 오마 샤리프가 맡았다.

 

- Imperium: Pompeii (2007)

 

- Imperium: Augustine: the Decline of the Roman Empire (2010)

신학자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을 다뤘다. 

 

 

 

 

 

 

 

《글래디에이터Gladiator》 (2000)

 

 

 

리들리 스콧의 영화, 아카데미 최우수작품상, 남우주연상 등을 수상. 서기 180년. 오현제 시기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마지막과 콤모두스 시기를 다룬다. 역사적 허구에 기대고 있으나, 영화 초반 게르만 족과의 전투씬은 최고.

 

 

 

 

 

 

 

 

 

 

 

 

 

 

 

 

 

 

 

미드 《엠파이어Empire》 (2005)

 

ABC 방송국에서 방영한 역사 드라마. 기원전 44년, 어린 옥타비우스가 왕좌에 오르기까지를 다룬다. 로마와 이탈리아 남부에서 촬영했다. 평은 별로 좋지 않았고,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아류작이라는 말까지 들었다고...

 

《마스터스 오브 로마》 6부에 해당한다

 

 

 

영화 《폼페이Pompeii》 (2014)

 

서기 79년, 베수비오 산의 폭발로 인해 죽음의 도시가 된 폼페이를 다룬 영화. 이를 다룬 매체가 꽤 되는데 가장 최근작이다. 미드 《왕좌의 게임》에서 존 스노우로 분한 키트 해링턴이 주인공.

 

《마스터스 오브 로마》 1부~3부에 등장하는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는 기원전 89년, 도시국가 폼페이를 정복한다. 《마스터스 오브 로마》 2부에 해당한다 .

 

영드 《닥터후》 시즌4에서도 폼페이가 등장하는데 볼 만 하다. 이 에피소드에 등장한 인물들이 시즌5-6 컴패니언과 시즌7의 뉴 닥터가 된다.  

 

 

  

 

 

 

 

 

 

 

 

 

 

  

 

 

  

《클레오파트라Cleopatra》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출연한 1963년 영화, 1999년 드라마가 있다. 드라마는 마가렛 조지의 소설에 바탕.

    

 

 

 

 

 

 

 

 

 

 

 

 

 

 

 

 

 

《벤허Ben-hur》

 

서기 26년을 배경,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실감나는 전차 경기.

    

 

 

 

 

 

 

 

 

 

 

 

 

   

 

 

콜린 매컬로의 《마스터스 오브 로마》 1부, 《로마의 일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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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병통치약 2015-07-05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마이야기는 19금으로 해야 제대로 만들수 있나 보군요^^

에이바 2015-07-05 20:35   좋아요 0 | URL
19금이니 더 맘놓고 만드나봐요ㅎㅎ 폭력이나 선정성 같은 거 신경 안쓰고요
 

 

 

 

 

"아직은 끝나지 않았어. 상고가 남아 있으니 잘 될 거야. 아니, 칼, 이게 다 뭡니까?"
[아티쿠스]는 아침 식사가 담긴 접시를 쳐다보며 물었다.
"톰 로빈슨의 아버지가 오늘 아침 이 닭을 보내오셔서 차려왔습니다." 칼퍼니아가 대답했다.
"그분에게 정말 고맙다고 전해줘요. 백악관에서도 아침식사로 닭고기를 먹지는 않을 거야. 이것들은 뭐죠?"
"둥근 빵인데 저 아래 호텔에서 에스텔이 보내왔습니다." 아티쿠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칼 아줌마를 올려다보자 아줌마가 계속했다. "핀치 변호사님, 그보다 가서 부엌에 뭐가 있는지 좀 보세요."
우리도 따라나갔다. 식탁 위엔 우리 가족이 일주일은 먹을 수 있을 만큼의 음식이 가득 쌓여 있었다. 소금에 절인 돼지고기 덩어리, 토마토, 콩에 머루까지 있었다. 돼지무릎 비계절임이 담긴 병을 보고는 아티쿠스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네 고모가 이것들을 식당에서 먹게나 할까?"

 

문학의 맛, 소설 속 요리들》(한스미디어) 64

 

 

아직 끝나지 않았어. 아직 상고가 남아 있으니까. 거기에 기대를 걸면 돼. 맙소사, 캘퍼니아, 이게 다 무슨 음식이지? 아빠는 접시를 쳐다보고 계셨습니다.
오늘 아침 톰 로빈슨의 아버지가 이 닭고기를 보내 주셨어요. 그래서 그걸로 요리했습니다.
고맙게 잘 먹겠다고 전해 줘요, 백악관에서도 닭고기로 아침 식사를 하진 않을 텐데. 아니, 이건 또 뭐야?
고기말이 요리예요. 저 아래 호텔에서 에스텔이 보내온 겁니다. 아줌마가 대답했습니다.
아빠는 눈이 휘둥그레진 채 아줌마를 올려다보셨습니다. 그러자 아줌마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변호사님, 잠깐 오셔서 부엌에 있는 걸 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우리는 아빠를 따라 나갔습니다. 부엌 테이블에는 가족 모두를 파묻고도 남을 만한 음식이 수북이 쌓여 소금에 절인 돼지고기며, 토마토며, 콩이며, 심지어는 머루까지 있었습니다. 아빠는 소금에 절인 족발 한 그릇을 보시고는 빙그레 웃으셨습니다. 너희들 고모가 이걸 먹는 걸 허락할까?

《앵무새 죽이기》(열린책들) 394쪽

 

 

톰 로빈슨이 유죄를 선고받은 다음날, 메이콤 읍에 사는 흑인들은 감사의 표시로 〈요리〉를 보낸다. 대공황의 여파가 지나지 않았던 당시를 고려할 때, 그리고 〈요리〉가 주는 상징성을 생각할 때 이 얼마나 아름다운 장면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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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5-07-03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도 아름답네요, 에이바님. 언제나 그렇듯이요.

에이바 2015-07-03 13:12   좋아요 0 | URL
아름다운 다락방님! 고맙습니다. 오랜만이에요ㅠㅠ

CREBBP 2015-07-04 13: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로마의 일인자 영향이 크네요. 저는 어제 잠시 틈을 내어 로마시대 식생활 풍습사에 대한 다큐를 조금 봤는데 요리사 노예?는 전문직이었다고.. 돈도 많이 받았다는 갓 같았어요. 부엌에서 들쥐를 키워 잡아먹었대요. 그러니까 케이지에서 먹다 남은 부스러기들을 먹여서요. 달팽이 요리도 생고기며 맛좋은 음식을 잔뜩 먹여 몸이 집에 안들어갈칸큼 통통해지면 삶아먹었다더군요.

에이바 2015-07-04 20:48   좋아요 0 | URL
마리우스 부인 요리사도 돈 많이 주니 참는다더니 고증 최고네요. 들쥐 잡아먹은 건 놀라워요.. 푸아그라의 다른 형태요...? 요즘으로 치면 씨암탉? 신기하네요.
 
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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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영화연구소(AFI)는 《앵무새 죽이기》의 애티커스 핀치를 역대 최고의 영웅으로 선정했다. 미국 자본으로 제작된 영화가 후보작이 되었고, 여기서의 영웅은 <극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용기와 도덕성을 보여주며, 인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인물>을 가리킨다.

 

애티커스 핀치는 눈도 침침하고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어린 남매를 키우는 홀아비 변호사다. 소도시 메이콤에 살고 있는 그가, 어떻게 초능력을 가진 영웅들을 제치고 역대 최고의 영웅이 되었을까? 아마도 애티커스가 싸운 악당은 실체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이어져 내려온 관습에서 생긴, 자연스러운 인종적 편견들. 그에 맞서는 무기는 법전 뿐이다. 한밤중 건장한 남성들에 둘러싸여 위협을 당할 때도, 모욕을 당할 때도 애티커스는 맨몸이다. 오직 법이 수호하는 가치에 기대어 약자를 보호한다.

 

스카웃과 젬 남매는 〈된 사람〉인 아버지로부터 이웃을 보살피는 마음을 배운다. 어린이가 바라보는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가득하다. 그들의 순수함은 옳고 그름을 쉽게 구별하지만, 어른들은 그렇지 않아 보인다. 재판에서 〈흑인〉이라는 이유로 톰을 가혹하게 대하는 검사에 딜은 구역질을 느낀다.

 

「그런 식으로 대하는 건 옳지 않아. 옳지 않다고. 어느 누구도 그런 식으로 말할 권리는 없어. 그게 나를 구역질 나게 만드는 거야.」 368쪽

 

그런 딜을 불러 콜라를 나눠주는 레이먼드 아저씨는 흑인 여성과 결혼했고, 모두들 그를 주정뱅이라 생각한다. 레이먼드는 오해를 부추기며, 미움과 편견에 맞선다.

 

「난 그들에게 구실을 주려는 거야. 사람들은 구실이 생기면 기분이 좋아지지. 내가 아주 어쩌다 읍내에 나올 때, 조금 비틀거리며 이 봉지에 든 뭔가를 마시면, 사람들은 돌퍼스 레이먼드가 술의 노예가 되었다고 말하는 거야. 저러니 버릇을 고치지 못한다면서 말이야. 저자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이라고, 그래서 그런 식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371-372쪽

 

그는 스스로 결점을 만들어 〈백인을 배신한〉 미움을 희석시킨다. 영리하지만, 궁극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혼혈아〉로 태어난 2세들은 흑인 편에도, 백인 편에도 설 수 없기 때문이다. 1930년대 미국 남부의 분위기는 그러했다. 핀치 남매와 딜은 〈흑인 피가 단 한 방울만 섞여도 흑인 취급을 받는〉 남부의 〈한방울 규칙One-drop Rule〉을 비합리적이라 생각한다. 이렇듯 〈어른들의 사정〉으로 뭉뚱그려진 일들, 어른들은 설명하길 회피하지만 아이들은 생각보다 정확히 알고 있다. 〈갈보〉가 무슨 뜻이냐는 스카웃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 잭에게, 애티커스는 이렇게 말한다.

 

「잭! 어린애가 뭘 묻거든 반드시 그대로 대답해 줘, 지어내지 말고. 애들은 역시 애들이라지만 대답을 회피하는지는 어른들보다도 빨리 알아차리거든. 그리고 대답을 회피하면 애들은 혼란에 빠지게 되지.」 168쪽 

 

어린애지만, 인격체로 존중하는 애티커스의 교육법은 핀치 남매가 올바른 사고방식을 가지게 한다. 아이들에게 부끄러울 일은 절대 하지 않는 그의 도덕성은, 남매가 당장은 수긍하지 못하더라도 아버지의 말씀에 따르도록 한다. 그래서 모두가 〈백인 여성을 강간했다는 혐의를 받는 흑인 톰을 변호한다〉고 애티커스를 비난해도, 남매는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을 잃지 않는다. 아빠를 〈깜둥이 애인〉이라 부르며 등을 돌린 지역 사회에서, 스카웃과 젬은 성장하고 있다.

 

커닝햄 집 아이와 어울려서는 안 된다는 고모의 얘기에 우울해진 스카웃. 젬은 가슴 털을 보여주며 위로하고 스카웃은 오빠를 축하한다. 중학생이 된 젬의 성장은 여러모로 확인된다. 쥐며느리를 가지고 놀다 죽이려는 순수한 잔혹을 말리는 젬, 눈꽃동백 꽃잎을 만지작거리는 젬, 법원에서 주먹을 불끈 쥐는 젬, 그리고 필사적으로 여동생을 보호하는 젬.

 

소설 초반, 여섯 살과 열 살이 된 남매는 이웃에 산다는 부 래들리를 상상하며 논다. 왜 아서 아저씨는 밖으로 나오지 않을까? 아이다운 상상으로 연극을 하며 놀리기도 하고, 담력 테스트를 하기도 하고. 그런 래들리 씨네 집 앞에 있는 나무, 그 옹이구멍에 숨겨진 선물들은 핀치 남매를 어여삐 여긴 사랑과 우정이었다. 아이들을 언제나 지켜봤던 아서의 창백한 손은 놀라울 정도로 따뜻했다.

  

하퍼 리는 《앵무새 죽이기》를 통해 진정한 용기와, 앵무새로 상징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존중을 강조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1930년대에서 그리 멀리 떨어진 것 같지 않다.

 

얼마 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찰스턴 시 한 흑인 교회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났다. 희생자 9명은 성경 공부를 하던 중이었다. 백인 우월주의 사상을 가진 백인 청년이 범인이었다. 또 작년 퍼거슨 사태 이후 미 경찰의 흑인 용의자에 대한 과잉 대응, 총격 사건들로 사회가 들끓고 있다. 대통령도 흑인이요, 대중문화를 주도하는 가수들(비욘세, 제이지 등)도 흑인인데 어찌하여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것일까... 1930년대 메이콤 읍에 대공황의 여파가 남았듯이, 경제위기가 사회적 약자를 희생양으로 삼도록 사람들의 마음을 황폐화시키는 걸까? 이미 공고해진 인종적, 차별적 계급은 극복할 수 없는 걸까? 우리나라는 어떨까?

 

《앵무새 죽이기》가 위대한 이유는, 소설에 나타난 문제가 단순한 인종문제가 아니라 약자에 대한 프레임으로 발전되기 때문이다. 유색인종,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여성과 어린이 그리고 노인들- 이 모든 약자들이 〈앵무새〉다. 지금 앵무새를 죽이고 있는가, 아니면 살리고 있는가? 그들의 어려움을 이성적으로 〈이해한다〉고 믿을 뿐, 제대로 된 자기 인식은 못하고 있는게 아닐까?

 

하퍼 리의 처녀작이자 두번째 소설, 《파수꾼》이 전 세계적인 관심을 갖는 것도 그녀가 사회에 던진 화두 때문일 것이다.(물론 출판계의 불황도 있겠지만...) 일생 단 한 편의 소설로 퓰리처상을 받고, 많은 편견들을 희석시켰다는 공로를 얻은 리 여사. 《앵무새 죽이기》가 스카웃의 유년기 중 3년을 다뤘다면, 《파수꾼》에서는 성인이 된 스카웃이 등장한다고 한다.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지를 배웠던 스카웃. 어떤 방식으로, 성숙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줄 것인지 기대된다.

 

핼러윈 축제, 그레이스 메리웨더 아줌마가 쓴 연극의 제목은 『메이콤 군: 아드 아스트라 퍼 아스페라』였다. 라틴어 〈Ad astra per aspera〉는 〈고난을 헤치고 별을 향하여〉라는 뜻이다. 내 스스로를 돌아보고 존중하는 마음, 불의에 맞설 용기... 리 여사는 어린 화자를 통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한다. 책장을 덮어도 교훈은 남는다. 

 

 

「누군가를 정말로 이해하려고 한다면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하는거야. (...) 말하자면 그 사람 살갗으로 들어가 그 사람이 되어서 걸어다니는 거지.」 65쪽

 

「아빠, 우리가 이길까요?」

「아니.」

「그렇다면 왜―」

「수백 년 동안 졌다고 해서 시작하기도 전에 이기려는 노력도 하지 말아야 할 까닭은 없으니까.」148-149쪽

 

「난 네가 뒷마당에 나가 깡통이나 쏘았으면 좋겠구나. 하지만 새들도 쏘게 되겠지. 맞힐 수만 있다면 쏘고 싶은 만큼 어치새를 모두 쏘아도 된다. 하지만 앵무새를 죽이는 건 죄가 된다는 점을 기억해라.」 174-175쪽

 

「... 손에 총을 쥐고 있는 사람이 용기 있다는 생각 말고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지 말이다. 시작도 하기 전에 패배한 것을 깨닫고 있으면서도 어쨌든 시작하고, 그것이 무엇이든 끝까지 해내는 것이 바로 용기 있는 모습이란다. 승리하기란 아주 힘든 일이지만 때론 승리할 때도 있는 법이거든. ...」 213쪽

  

밤공기가 더운데도 몸이 덜덜 떨렸습니다. 이런 느낌이 점점 강해지더니 마침내 법정 안의 공기가 마치 2월의 추운 아침과 똑같아졌습니다. 앵무새가 침묵을 지키고, 모디 아줌마네 새집에서 목수들이 망치질을 멈추며, 이웃에 있는 모든 나무문들이 래들리 아저씨네 집의 문처럼 굳게 닫혀 있는 바로 그런 아침 말이지요. 누구를 기다리기라도 하듯 길거리는 인적이 뚝 끊긴 채 텅 비어 있었고, 법정 안은 사람들로 입추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여름밤은 한겨울 아침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389쪽

 

「스카웃, 이제 뭔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왜 부 래들리가 지금까지 내내 집 안에만 틀어박혀 지내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아……. 그건 말이야, 아저씨가 집 안에 있고 싶어 하기 때문이야.」 420쪽

    

「스카웃, 결국 우리가 잘만 보면 대부분의 사람은 모두 멋지단다.」 5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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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BBP 2015-07-01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안읽어서(읽을 예정) 다 읽거덩 답글놀이 하러 다시 올께요. 기대됩니다

에이바 2015-07-01 23:23   좋아요 0 | URL
네! 기네스님 언제나 환영해요!!! 손가락을 꼽아보니 거의 20년만에 읽은 듯 해요.

AgalmA 2015-07-02 06:37   좋아요 0 | URL
이분들 요즘 책 싱크로율 장난 아닌 듯ㅎㅎ💘

AgalmA 2015-07-02 0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국 발레단에서 첫 흑인 수석 발레리나가 나왔다는 뉴스를 보았어요. 아픔과 차별 속에 발레밖에 없었다는 그녀는....이제 시작이라고 말하더군요. 우리는 모두 개인이지만 이렇게 역사를 만드는 계기가 된다는 걸...

에이바 2015-07-02 10:26   좋아요 1 | URL
검색하고 왔어요. 솔리스트에서 멈추지 않고 수석 무용수가 되다니, 정말 멋집니다. 생각해보니 동양인은 종종 봐도 흑인 발레리나/발레리노는 보기 힘들었네요. 발레계도 인종의 벽이 무너질 때가 되었죠.. 한편으론 부담도 크겠어요. 처음이란 그 무게 때문에요.

라로 2015-07-03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웨스트 헐리우드라는 곳에 `애티커스`라는 예쁜 카페가 있어요. 랜드마크라는 유명한 극장 앞에 있죠. 그 카페를 볼 때마다 앵무새 죽이기를 생각하는데 에이바님이 멋진 글을 써주셨네요!!^^

에이바 2015-07-03 14:21   좋아요 0 | URL
오! 검색해보고 왔어요. 맛집이군요!! 혹시나 가게 되면 저도 <앵무새 죽이기> 생각하며 아이스크림과 파이를.. 댓글에 사진등록이 안 되는게 아쉽네요! 비비님이 말씀해주신 카페, 다른 분들을 위해 링크걸게요^^

http://www.yelp.com/biz/atticus-creamery-and-pies-los-angeles
https://instagram.com/awesomeattic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