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에 읽은 책들을 다시 상대평가합니다.



오만과 편견 ★★★★★

설득 ★★★★★

마션 ★★★★★

반쪼가리 자작 ★★★★☆

어느 하녀의 일기 ★★★★☆

1인분 프렌치 요리 ★★★★☆

고야산 스님·초롱불 노래 ★★★☆☆


제인 오스틴의 두 작품은 예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고, 리뷰를 정리하였습니다. 역시 고전은 읽으면 읽을수록 새로운 매력을 발휘하는 듯합니다. 그렇다면 왜 다시 오스틴인가. 브리짓 존스 3편이 영화 촬영 중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오만과 편견』의 패스티시인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 트레일러가 나왔습니다. (혐오 및 잔인함 주의)



영화로도 제작되었던 『마션』은 읽는 재미가 상당하지요. 지나고 여러번 다시 읽어도 주인공 마크 와트니의 유머가 상당합니다. 그리고 과학 설명 때문에 왠지 모를 지적 고양감이 있어요.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말이지요.(이해할 필요도 없어요) 『반쪼가리 자작』은 이탈로 칼비노의 선조 3부작 중 첫 번째 작품인데, 짧은 동화이지만 사회·역사적 울림이 있기에 클래식이라 할 만합니다. 『어느 하녀의 일기』도 올해 동명의 영화가 개봉했었죠. 무비 타이 겸 나왔지만 옥타브 미르보의 첫 소개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습니다. 벨에포크 때도 막장이 만연했다는 점을 알 수 있어요. 『1인분 프렌치 요리』는 거창한 재료 준비 없이도 간단히 프랑스 음식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추천해요. 『고야산 스님·초롱불 노래』도 볼 만한데, 「고야산 스님」은 만화 『백귀야행』이 떠올랐고 「초롱불 노래」같은 경우는 일문학에서 볼 수 있는 어떤 예술을 향한 탐미주의라고 하나 그런게 생각납니다.


다음은 읽고 있거나, 읽었지만 리뷰를 쓰지 못해 재독할 예정인 책입니다. 



설국

포스트맨은 두 번 벨을 울린다

불안의 책

레이 브래드버리

장미의 이름

로마 제국

셰익스피어 깊이 읽기

셰익스피어의 책


『설국』은 읽었으되 리뷰를 어떻게 써야할지 엄두가 나지 않아서 쓰지 못했습니다. 색채가 선연하고, 이야기들이 툭툭 끊기는 감이 있는데 단편들을 이었기 때문이라는군요. 『포스트맨은 두 번 벨을 울린다』는 스티븐 킹과 장강명 소설에 삽입된 문구가 이 책의 첫 문장이기 때문에 읽었습니다. 카뮈의 『이방인』 느낌이 나 의아했는데 알고보니 카뮈가 케인의 소설을 읽고 집필을 시작했다는군요. 한낱 통속소설이라기엔 의미가 있는 작품이라 하겠고요. 제가 사랑하는 페소아의 『불안의 책』은 여전히 아껴 읽는 중입니다. 보석! 『레이 브래드버리』에 실린 네 작품 정도 읽었습니다. 브래드버리는 SF장르에 문학성, 예술성을 쏟아부었습니다. 정말 아름답지요. 『장미의 이름』도 반 정도 읽었습니다. 주석까지 꼼꼼히 챙겨 읽는데 그것 때문인지 진도가 안 나가네요. 주석을 안 읽으면 재미가 덜할 것 같고, 주석을 스킵하고 쭉 다 읽은 뒤에 재독하는 걸로 바꿔볼까 합니다. 『로마 제국』과 『폼페이』는 곧 「마스터스 오브 로마」시리즈 2부인 『풀잎관』이 출간되기에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 읽고 있습니다. 로마 수로와 로마 도로에 대한 글도 작성중인데 진도가 잘 안 나가네요. 『셰익스피어 깊이 읽기』와 『셰익스피어의 책』은 제 목표 중 하나인 셰익스피어 작품 완독을 위해 구입한 가이드북입니다. 특히 『셰익스피어 깊이 읽기』 정말 좋고요, 『셰익스피어의 책』 같은 경우는 찾아보니 리뷰가 없어 모험을 하고 구입했는데 만족합니다. 반쯤 읽었는데 나중에 리뷰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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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미 2015-10-31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이바님! 뜬금없지만... 너무 멋지세요^^

에이바 2015-10-31 23:31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오로라님..^^

yamoo 2015-10-31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로 고전을 읽으시는군요! 좋습니다~^^
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유일하게 겹치는 책이네요..반갑게도^^

열독하시는 거 보니, 이런 추세라면 올해 100권 가뿐이 넘기시겠어요~^^

에이바 2015-11-01 09:56   좋아요 0 | URL
네 고전이 주는 매력 덕인지도 모르겠어요. 아직 읽을 책들이 많군요..ㅎㅎ

한수철 2015-11-01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읽은 건.... `오만과 편견`, 반쪼가리 자작`, `불안의 책`뿐이네요.

사실 에이바 님 리뷰 보면서

리뷰 쓰는 거 공부하고 있는데 정작 책을 안 읽으니 원....

에이바 2015-11-01 10:02   좋아요 0 | URL
제 글로요? 좀 부끄럽군요.. 요즘은 책이 좀 멀어진 듯한 기분이었는데

서니데이 2015-11-01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만과 편견에 좀비를 더해서 호러 액션영화가 되는 거네요^^; 트레일러 구경하고 왔어요, 이런 방식을 패스티시라고 하는 거군요,^^
에이바님, 편안한 주말 되세요^^

에이바 2015-11-01 22:34   좋아요 1 | URL
반가운 얼굴들이 등장하는 영화라 볼지 말지 고민중입니다. 원작인 책은 이미 읽었지만요. 서니데이님도 편안한 주말 되셨길 바랍니다...
 


(처음 올릴 때 책이 DB에 없어 페이퍼로 올렸습니다. 이 글을 다듬어 리뷰에 다시 올렸어요.)


바람이 쌀쌀해지는 때, 「풀잎관」을 먼저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지난 여름 ‘로마’에 빠지게 한 『마스터스 오브 로마』의 2부이다. 방대한 분량으로 인하여 1부를 미처 읽지 못하신 분들, 시간이 지나 인명과 지명을 잊으신 분들도 안심하시라. 콜린 매컬로는 등장인물들과 함께 지난 사건들의 추이를 되짚으며 독서 보폭을 맞춰주고 있다.


‘로마 제3국의 건국자’라 불리던 가이우스 마리우스는 더 이상 정치인이 아니다. 마리우스의 측근으로 정계에 입문한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는 법무관 선거에서 승리하지 못한다. 스카우루스의 젊은 아내 달마티카가 술라를 흠모하기 때문이다. 로마의 평화는, 유구르타와 게르만족에 맞섰던 두 영웅에게 환호하지 않는다. 게다가 마리우스의 정적인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누미디쿠스(똥돼지)의 귀환으로 두 사람의 입지는 더욱 좁아진다. 마리우스는 가족과 함께 동방으로 여행을 떠나는데, 실은 로마의 아시아 속주와 이웃한 폰토스 등의 정세를 살펴볼 목적이다. 술라는 선거 실패, 그리고 아우렐리아와의 접촉과 거부로 인해 지독한 좌절감에 빠진다. 전장에서 떠난 지 3년이 되었고, 그는 익숙한 욕구에 시달린다. 1부에서와 마찬가지로, 다시 선조의 이마고를 보관해 둔 작은 서랍 앞에 선 술라. 그는 작은 병을 손에 쥐고 욕구를 해소할 곳으로 향한다. 여신이 사랑하는 자답게, 어떤 혐의도 없이 깨끗하게 일을 마무리한다.


제1장의 대부분은 마리우스의 동방 여정기인데, 이는 앞으로 다가올 ‘아시아 속주 전쟁’을 위한 초석이다. 폰토스의 혼란을 정리한 미트리다테스 6세는 로마에 사절을 보내 우호동맹국의 칭호를 요구했지만 앙숙 비티니아의 니코메데스 왕의 항의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미트리다테스는 갈라티아를 손에 넣고, 상인으로 변장해 비티니아를 오가면서 정세를 살핀다. 1년여 잠행 끝에 궁에 돌아온 그는 반란을 일으키려 했던 이를 잔인하게 숙청하여 왕권을 강화한다. 여행중인 마리우스는 비티니아가 상당히 부유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페르가몬에 총독으로 부임한 스카이볼라와 보좌관 루푸스와 조우한다. 부재중 투표로 마리우스 자신이 조점관(신관)에 선출되었다는 소식을 알리고 스카이볼라는 급히 로마로 향한다. 이유는 바로 아시아 속주를 수탈하는 로마의 징세청부업자들 때문이었다. 세금 수치를 날조하고, 대행인을 통해 고리대금업을 일삼던 이들 때문에 속주민들은 로마인에 대한 증오를 키운다. 스카이볼라는 이를 바로잡았고, 징세청부업자들의 로마 내 로비를 저지하려 귀국한 것이다.


한편 길잡이와 노예만을 대동한 마리우스는 토가 프라이텍스타로 차려입고, 수백명이 호위하는 미트리다테스 앞에 선다. ‘로마의 위엄’ 그 자체다. 이 만남으로 마리우스는 카파도키아 왕의 정체와 동방에 드리운 폰토스 왕 미트리다테스의 영향력과 야망을 꿰뚫어본다. 마리우스에게 위협을 느낀 미트리다테스는 아르메니아의 티그라네스와 결혼 동맹을 맺는다. 로마에는 새로운 집정관, 법무관, 감찰관들이 뽑힌다. 주목할 부분은 새로운 감찰관들이 아시아 속주의 징세계약을 마무리한 뒤 로마 인구의 전수조사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는 앞으로 벌어질 이탈리아인들의 로마 시민이 되고자 하는 열망으로 거짓 명부를 작성하게 되고, 결국 ‘동맹시 전쟁’이 벌어지는 시작점이다. 7년 전, 아라우시오 전투에서 살아남은 드루수스는 마르시족 실로와 친우가 된다. 그 전투는 드루수스의 가치관을 바꿔버렸고, 이탈리아인의 위치에 대한 생각도 바뀌어 공공연히 진보적인 발언을 하게끔 한다. 로마군인으로 복무한 실로가 명부 사건을 물밑에서 작업한 인물이라는 것은 앞으로 원로원의 착오로 인해 벌어질 전쟁에 휘말릴 로마와 드루수스의 운명을 예감하게 한다.


마리우스의 친우이자 루푸스의 두 조카딸 아우렐리아와 리비아(드루수스의 여동생)의 이야기도 진행된다. 아우렐리아는 어린 아들 가이우스 카이사르의 영민함으로 인해 고민에 빠져 있지만 역사를 알기에 그의 성장에 더 기대하게 된다. 한편 리비아는 여전히 행복하지 않은 결혼생활 중이다. ‘톨로사의 황금’ 사건으로 오빠네에 얹혀 살면서, 리비아는 부부와 여성의 삶에 대한 생각을 발전시킨다. 그래서 남편 카이피오 2세가 스미르나에 숨긴 재산을 정리하기 위해 여행길에 올랐을 때,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오빠 부부에게 신혼 생활도 제공하고, 자신의 자유를 위해 진정한 자기만의 공간을 찾으려는 것이다. 로마에서 멀지 않은 투스쿨룸, 오래된 빌라에 정착한 리비아는 그 곳에서 소녀 시절 열망했었던, 빨간 머리 오디세우스를 만난다. 1부에서 이어지는 리비아의 이야기는 굉장히 흥미롭다. 지배층 파트리키 여성의 제한된 삶과 결혼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실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드루수스 남매의 성장과 이어질 삶을 지켜보는 과정은 고통스러우면서도 즐겁다.


관직의 사다리에 오르기 위한 ‘돈’을 위해 가까운 히스파니아로 떠난 술라. 그는 율릴라가 예언한 ‘풀잎관’을 열망하지만 받을 기회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다. 루푸스의 권고로 법무관이 되기 위해 귀국한 술라는 어느덧 소년이 된 아들에게서 충만함을 느낀다. 여섯 살이 된 카이사르 2세도 만난다. 두 사람의 미래를 알고 있는 독자로서는 짜릿한 부분이었다. 술라 2세의 친구로 아르피눔 출신의 키케로도 등장한다. 법무관으로 로마에 갇혀, 속주의 총독 자리를 열망하며 고통과 좌절을 견딘 그에게 운명의 여신은 손을 내민다. 미트리다테스의 야망으로 위협을 느낀 비티니아로부터의 편지였다. 분쟁을 무마하기 위해 킬리키아로 파견된 술라는 폰토스 국왕과 대면한다. 로마를 얕잡아보던 미트리다테스는 그에게서 진정한 로마인의 향기를 느낀다. 미트리다테스는 후퇴했으나 술라는 황금 한 자루가 절실하다. 그는 파르티아 사절단과의 회담을 주선하고 뛰어난 연기를 해내어 동방의 문제를 봉합한다. 이제 술라는 집정관 직에 출마할 자금이 충분하다. 인구 조사 법정으로 인한 라티움 지역의 증오와 혼란, 로마 소식과 함께 오랜 벗 루푸스의 추방을 알리는 편지로 1권이 마무리된다.


제목인 「풀잎관」은 1부에서부터 예견된 술라의 운명이다. 따라서 기원전 97년~86년을 배경으로 할 2부는 미트리다테스에 맞설 술라의 동방 원정과 마리우스의 마지막 집정관 시기와 몰락이 맞물릴 것이다. 또 로마시민권을 요구하는 이탈리아인들 편에 설 호민관 드루수스의 운명도 그려질 것이다. 로마 공화정의 빛나는 시기이자 몰락을 가져온 위대한 군벌들의 시대는 현재진행형이다.


로마가 우리의 신이자 우리의 왕, 우리의 생명 그 자체요. 로마인 개개인은 자신의 명성을 쌓고 동료 로마인들이 자신을 우러러보게 하기 위해 애쓰지만 길게 보면 그것은 모두 로마를, 그리고 로마의 위대함을 드높이기 위한 것이오. 우리는 터전을 숭배하오, 오로바조스 경. 사람도 이상도 숭배하지 않소. 사람은 왔다가 가기 마련이고 이 세상에서 순식간에 사라지오. 이상은 온갖 철학의 바람이 불 때마다 바뀌고 흔들리오. 하지만 터전은 그 땅에 사는 자들이 가꾸고 위대함을 더하는 한 영원할 수 있소. 나,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는 위대한 로마인이오. 그러나 내 삶의 끝에 가서 보면 내가 한 모든 일은 나의 터전, 즉 로마의 힘과 위엄을 확대하는데 쓰였을 것이오. 내가 오늘 이곳에 있는 것은 나를 위해서도, 다른 어떤 사람을 위서도 아니오. 내가 오늘 이곳에 있는 것은 나의 터전 로마를 위해서요! (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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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5-10-31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부에서는 술라가 많이 등장하는 모양이네요,
에이바님의 설명을 들으니, 아무래도 익숙하지 않은 인명과 지명이 나오는 책이라는 점을 작가도 고려했을 수 있겠어요,
잘 읽었습니다,
에이바님, 좋은하루되세요^^

에이바 2015-10-31 22:35   좋아요 1 | URL
네 2부에서는 1부의 주인공이었던 마리우스의 몰락이 예정되어 있고, 부상하는 술라가 주인공이라 여겨지더라고요. 1부에서도 루푸스의 편지 등을 통해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정세 설명을 유쾌하게 풀어내는데 2부에서도 입담은 여전해요. 기대한 바를 실망시키지 않는 작가의 필력과 번역자분들의 노고가 느껴집니다. ^^
 
반쪼가리 자작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41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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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로 칼비노의 작품은 언제나 부채로 느껴졌다. 칼비노의 명성을 익히 들어온지라 그가 남긴 작품들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난해한 표지, 「선조 3부작」 같은 시리즈명은 '생각'만 하게 만들 뿐이었다. 위시리스트에 오르길 한참이었다. 민음사에서 예쁜 표지로 다시 나올 때 2권 이상 사면 테이블 매트를 끼워 줬는데 그 때도 꿋꿋이 버텼다. 러브크래프트 리뷰를 쓰면서도 느꼈지만, 인생에는 '고전'이 찾아오는 법이다. 읽는 인간에서 오에 겐자부로 선생이 한 말씀이기도 하다. 지금 내겐 이탈로 칼비노가 찾아온 것이다.


나는 환상문학에 매력을 느낀다. 매니아까지는 아니지만 이 장르에 호감을 가지고 있다. 만약 칼비노의 작품 중 『우주만화』가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면 「선조 3부작」을 읽을 일은 요원했으리라. 아무튼 열린책들에서 나온 『우주 만화』를 샀고, 칼비노를 좋아하는 분이 「선조 3부작」을 먼저 읽는 게 나으리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시간이 흐른 후에야 『반쪼가리 자작』을 읽게 된 것이다. 지난 계절에 민음 세계문학을 여러 권 구비하면서 칼비노의 책도 슬쩍 끼워 넣었다. 예전과는 달리 표지의 반쪽 얼굴들이 귀엽게 느껴지기도 했고...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17세기, 막 성인이 되어 터키와의 전쟁에 참전한 메다르노 자작은 순진하게 대포 앞에 뛰어들어 몸이 반으로 분리된다. 의사들은 그의 반쪽을 살려내고, 고향으로 돌아온 자작은 보이는 모든 것을 반쪽 낸다. 열매, 버섯, 개구리 등 반쪽이 된 것을 따라 그를 추적할 정도이다. 사람들을 쉽게 죽이는 그의 모습에 마을 사람들은 '악한 반쪽'이 돌아왔음을 깨닫고 두려워한다. '악한 반쪽'은 파멜라에게 구애하지만 그의 악행에 질린 여인은 숲으로 숨어 버린다. 자작이 음산함을 더해가는 때, 메다르노의 '선한 반쪽'이 귀환하면서 마을은 혼란에 빠진다.


「선조 3부작」은 『반쪼가리 자작』, 『나무위의 남작』, 『존재하지 않는 기사』로 이루어져 있다, 『반쪼가리 자작』은 120쪽 정도의 아주 얇은 책으로, 동화를 떠올리게 한다. 물론 성인용. 등장인물들은 메다르노 자작, 관찰자 소년인 나(자작의 조카), 의사 트렐로니, 파멜라, 문둥병 환자들, 위그노 교도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다. '악한 반쪽'이 등장하기 전, 문둥병 환자들은 격리되어 살고 있고, 술을 마시고 노래하며 방탕한 생활을 한다. 프랑스에서 건너온 위그노 교도들은 황무지를 개간하며 종교 규율에 따른 생활을 한다. 이 인물들은 메다르노의 '악한 반쪽'이 나타났을 때 그리고 '선한 반쪽'이 나타난 뒤 달라진 모습을 보인다.


메다르노의 '악한 반쪽'은 공공의 적으로, 두렵지만 무시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들을 다스리는 영주이기 때문이다. '악한 반쪽'이 주문하는 고문대와 사형대를 만들며 목수는 죄책감을 느끼고, 자작이 유모를 쫓아낼 때도 침묵한다. 위그노 교도들은 '악한 반쪽'을 두려워하면서도 예언 때문에 그를 대접한다. '선한 반쪽'이 돌아왔을 때 사람들은 기뻐하지만 곧 그가 늘어놓는 설교에 진저리친다. '선한 반쪽'은 주민들을 위한 기계를 만들 것을 주문하지만, 목수는 복잡한 도안에 좌절한다. 반면 '악한 반쪽'이 의뢰한 고문대와 사형대에는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여 예술적으로 완성하는 것이다. '선한 반쪽'의 설교 앞에 꿈을 지속하지 못하는 문둥병 환자들은 현실에 고통받으며, '선한 반쪽'의 곡물 값에 대한 설교로 인해 위그노 교도들은 농사를 망친다.


'선한 반쪽'이 나타남으로써 '악한 반쪽'에 대한 재평가도 이루어진다. 특히 목수의 사례를 보면 인간은 '악'에 끌릴 수 밖에 없는 것일까? 그는 고문대를 만들며 묘한 쾌감과 죄책감을 동시에 느낀다. 범죄 행위에 동조하는 모습은 전쟁에서 재능을 발휘했던 과학자와 예술가들이 떠오르게 한다. 자신의 기조에 따라 '선'을 행하는 '선한 반쪽'으로 인해 죽임당하는 이들을 통해서는 '선의'가 마냥 '행복'으로 끝나지 않는 것을 보여준다. 이렇듯이 극단적인 악과 선은 어느 것이 옳다고 할 수 없는 불완전한 것이다. 의료 행위엔 관심이 없는 의사, 쾌락만 추구하는 문둥병 환자들, 믿음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종교에 따르기만 하는 위그노 교도들은 모두 반쪼가리 인간이다. 하나가 된 자작 역시 여전히 불완전하며 세상은 복잡하기만 하다. 의무와 도깨비불만 남은 세상이라니, 짧은 글이지만 아주 만족한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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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BBP 2015-11-11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이바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해요. 저는 이번달 꽝 ㅎㅎ 아 선조 3부작 마저 다 읽어야 하는데

에이바 2015-11-11 18:16   좋아요 0 | URL
감사해요. 기네스님 근데 리뷰/페이퍼 이달의 당선작으로 뽑히셨던데요? 축하합니다ㅎㅎ

CREBBP 2015-11-12 20:58   좋아요 0 | URL
덜렁대다가 못봤었네요 당첨 사실을 메일로 보내주는데 문자로 왔었다고 착각했던거죠. 감솨감솨~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우승한 쇼팽 콩쿠르 실황앨범이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발매됩니다. 예약 중이고 실황 DVD도 나올 예정이라는데 갈라도 포함되었으면 합니다. (도이치 그라모폰 발매 소식 클릭) 


(출처: 쇼팽 콩쿠르 공식 홈페이지)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1994년생으로, 현재 파리 국립고등음악원의 미셸 베로프에게 사사중입니다. 2008년 모스크바 국제 청소년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 2009년 하마마츠 국제 콩쿠르 우승, 2011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3위 그리고 작년에는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국제 콩쿠르에서 3위로 입상했습니다.  


여기에 한국인 최초 세계 3대 콩쿠르쇼팽 콩쿠르 우승이 추가됩니다. 5년마다 개최되며 1위는 공석으로 두기도 하는 권위있는 대회입니다. 조금 의아한 것은 조성진이 충분히 받을 자격이 있다고 보는데 협주곡상이 공석인 것입니다.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에게 짐머만이 전화해 조성진의 협주곡을 칭찬했다(클릭)고 하지요. 파이널리스트 10명 중 첫번째 순서였음에도 훌륭한 해석과 연주를 보여줍니다. 콩쿠르가 아니라 콘서트라고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이번 대회는 450명 이상이 지원했으며, 20개국에서 온 78명의 피아니스트가 참가했습니다. 참가자를 국적별로 나누면 폴란드 14명, 중국 13명, 일본 12명, 한국 8명, 러시아 6명, 미국 4명, 이탈리아와 캐나다, 영국이 각각 3명, 체코 2명, 벨라루스와 크로아티아, 프랑스, 그리스, 헝가리, 인도네시아, 라트비아, 우크라이나, 우즈베키스탄이 각각 1명입니다. 본선 3차에 진출한 한국인 피아니스트는 조성진, 한지호, 김수연입니다. 파이널에는 8개국에서 온 10명의 피아니스트가 올랐습니다.

 

갈라 콘서트에서 조성진은 파이널 곡이었던 피아노 협주곡 1번과 앵콜로 폴로네즈를 연주합니다. 긴장을 풀고 부담없이, 자신을 마음껏 쏟아내고 태우는 연주, 광기마저 엿보이는... 이런 연주자, 천재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기쁨을 느낍니다. 꼭 보고 들으셨으면 합니다. 조성진과 다른 입상자들은 내년 2월 2일 예술의 전당에서 갈라 콘서트를 갖습니다.

 

〈순위〉

1st prize (30 000 €) and gold medal - Seong-Jin Cho

2nd prize (25 000 €) and silver medal - Charles Richard-Hamelin

3rd prize (20 000 €) and bronze medal - Kate Liu

4th prize (15 000 €) - Eric Lu

5th prize (10 000 €) - Yike (Tony) Yang

6th prize (7 000 €) - Dmitry Shishkin


〈특별상〉

Fryderyk Chopin Society Prize for best performance of a polonaise (3 000 €) - Seong-Jin Cho

Polish Radio Prize for best performance of mazurkas (5 000 €) - Kate Liu

Krystian Zimerman Prize for best performance of a sonata (10 000 €) - Charles Richard-Hamelin




〈갈라 영상 순서〉

 

-대회 심사위원 소개, 결선에 오른 10명의 피아니스트, 폴란드 정부인사 소개

30:50 조성진 등장

53:35 폴로네즈 특별상 수상

1:24:05 조성진 금메달 수여 (폴란드 대통령), 수상 소감

 

-수상자들의 연주
2:20:40 이케 토니 양 (5위)

2:38:40 에릭 루 (4위)

2:57:13 케이트 리우 (3위)

3:12:17 샤를 리샤르-아믈랭 (2위)

3:31:37 비하인드 신, 결과 발표

(3:32:30 아르헤리치와 윤디 잠깐 지나갑니다)

3:36:08 인터뷰

4:02:19 피아노 협주곡 1번

4:46:32 앵콜: 폴로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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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10-22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이 앨범 사라는 문자도 받았는데 적절하게 소개해주셔서 감사 :)

에이바 2015-10-22 22:26   좋아요 0 | URL
갈라 또 보고 왔는데 Seong-jin Cho(pin) 입니다 진짜...

oren 2015-10-23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젯밤 조성진의 연주를 세 번 봤네요. 파이널 라운드때 영상 2번, 2011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3위 입상할 때 영상 1번. 그리고 내친 김에 윤디가 쇼팽 콩쿠르에서 최연소로 1위 입상했던 2000년 동영상도 한 번 봤고요. 다음주 금욜 예술의 전당에서 윤디가 쇼팽의 피아노협주곡 1번을 시드니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할 예정인데, 그 공연이 너무나 기대되고, 오래 전에 큰 맘 먹고 예약해 놓길 정말 잘했다 싶네요.

에이바 2015-10-23 14:54   좋아요 1 | URL
저랑 비슷하게 보고 계세요. 조성진 파이널만 네다섯번 본 것 같고요, 차이콥스키 콩쿠르 때 영상도 보다가 지난 우승자인 라파우랑 윤디 피협도 봤어요. 조성진의 파이널 때 연주도 흠잡을 데 없지만 갈라 때는 정말 예술가의 한 면을 본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레퍼토리를 넓혀서 거장이 되길 바랍니다.. 윤디 공연에 다녀오신다니 부럽습니다. 귀 호강 하시고 즐기고 오시길 바랍니다 ㅎㅎ
 
고야산 스님.초롱불 노래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3
이즈미 교카 지음, 임태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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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본문학을 좀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실행에 옮기기 쉽지 않은 것은 왠지 모를 거부감이 일기 때문이다. 장르문학에는 비교적 관대하나 순문학으로 분류되는 작품들에는 어쩐지 마음 속 그어진 선을 넘기 힘들다. 그래도 『읽는 인간』과 『인간 실격』을 읽고 거부감이 많이 사라졌다. 조금 딴 말이지만 다자이 오사무가 턱 밑에 손을 짚고 찍은 사진 애거서 크리스티 닮지 않았나? 나만 그런가? ... 얼마 전 중견 소설가의 표절이 화두가 되면서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과 『금각사』에 흥미가 생겼다. 그러니까 ‘관심을 가지고 보려는’ 일본문학은 현대 문학에 뿌리가 된 근대 소설들이다. 내가 읽으려던 작품들은 『설국』, 『라쇼몬』 등이었는데 몇 번이나 주문 버튼을 달칵거리다 마음이 시들해져 장바구니를 비우기만 했다. 그러다 우연히 그보다 앞선 시기의 이즈미 교카의 소설이 눈에 들어왔다.


책에 실린 두 편의 소설 중 「고야산 스님」이 괜찮았다. 이야기 속에 두 이야기가 포함된 삼중 액자 소설로, 그 자리에 누워 옛 이야기를 듣는 듯한 생동감이 있다. 액자 바깥 이야기의 화자는 기차에서 만난 노승과 동행하여 여관에 묵게 된다. 잠을 이루지 못해 노승에게 이야깃거리를 부탁하고, 꽤 명망 있는 스님이었던 그가 젊을 적에 겪은 이야기를 해 준다.. 어느 마을의 주막에서 약장수는 승려를 조롱하고, 두 사람은 갈림길에서 마주친다. 약장수는 물이 가득 찬 길과 비탈길 중에 후자를 택한다. 지나가던 마을 사람 말에 따르면, 그 길은 50년도 지난 옛 길로 아주 험하다고 한다. 옳은 길로 가려던 승려는 약장수를 좋아하지 않으나, 그에게 사고가 난다면 마음이 불편해질 것 같아 옛길로 접어든다. 나무가 우거진 길을 떡하니 지나가는 ‘몸통’ 밖에 보이지 않은 거대한 뱀에 식겁하였더니, 다음은 더하다. 진짜 책을 읽다 소리를 지를 뻔한 고어 장면인데 XXX가 가득 찬 숲을 지나는 것이다. 책에서 확인하시길... 그렇게 고생하며 외딴 오두막에 도착한 스님. 그 곳에 사는 묘령의 아리따운 여인에 이끌려 계곡에서 멱을 감는다. 스님이 순진한 건지, 도력이 높은 건지 모르겠으나 여러 유혹을 물리치고 잠자리에 든다. 그는 진짜 여러 번 식겁하는데(겁이 많단다) 밤이 깊어오자 온갖 짐승들이 집을 둘러싸는 것이다. 무서움을 누르기 위해 법경을 외고, 다음날 그를 붙잡는 여인을 뒤로 하고 집을 나선다. 그리고 반전이 있었다.


만화를 봐도 그렇고(대표적으로 『백귀야행』) 일본에는 온갖 신과 요괴들이 있는데 이를 현대적인 콘텐츠로 잘 활용한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에도 배경과 소재로 등장하고,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신사를 간다거나 마쯔리 같은 축제를 통해 지방색과 함께 슬쩍 드러낸다. 전통 설화, 그 중에서도 민담이 잘 이어지고 있는 것이 흥미로우면서도 조금 화가 나기도 했다. 우리의 세시풍속은 상당부분 왜곡과 수정, 삭제를 거쳐 그 명맥이 전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화 과정에서 미신 취급을 당하기도 하고... 예전에 찾아본 바 우리나라 도깨비는 대체로 인간의 형상으로 씨름, 이야기, 장난, 메밀묵을 좋아하고 약간 어리숙한 성격이다. 김서방이랑 어울리고 싶어 하는데 맨날 이용당하는 호구 같은, 그러나 신령스런 존재다. 오래된 물건이나 싸리빗이 둔갑을 하지만 뿔은 없다. 뿔 하나에 방망이 들고 가죽 빤스 입은 도깨비는 일본의 요괴 오니라 한다. 두억시니엔 뿔이 있다는데 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역사 왜곡 설화로는 고려장을 들 수 있다. 일본의 꼼꼼한 문화 말살 정책 중 하나로, 전통적으로 효를 강조하던 우리나라(고려 포함)에선 말도 안 되는 얘기라 한다. 고려장은 고려와 관련이 없으며, 실제 고려는 불교국가라 화장을 했다.


「초롱불 노래」 같은 경우는 전쟁 얘기가 스치듯 나오는데 큰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기 때문인지 그다지 거슬리지 않았다. 기예, 가부키라는 예술혼이 주제로, 문화재로 지정될만한 예술가들이 등장한다. 두 노인이 풍류소설의 주인공 흉내를 내면서 (마치 돈키호테처럼) 여관을 향한다. 이 이야기와 교차되는 것이 우동 가게로 들어온 떠돌이 악사의 이야기이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란 말처럼 등장인물들의 면면은 서로 이어져 있다. 갈등의 고조되면서 절정에 이를 때 어떤 혼연일치를 보여준다. 그 장면에선 감탄했다. 두 단편으로도 왜 다른 문인들이 이즈미 교카를 흠모하고 존경했다는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고야산 스님」의 환상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의 묘사에서 낭만주의가 느껴졌고, 「초롱불 노래」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어떤 카타르시스도 느껴졌다. 그렇게 길지 않으므로 한번쯤 읽어볼만하다. 그런데 일본인들은 자존심이 강한건지, 약한건지 도통 모르겠다. 조롱당하면 목숨을 끊어버리니... 『아베 일족』에서도 느꼈던 거지만 너무 극단적이야! 그 이야기는 다음에... 번역의 공이 크겠지만 백년이 지난 소설이 이토록 깔끔하다는게 놀라웠는데, 위에서 말했듯이 씁쓸한 여운이 남는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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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10-21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으스스한 설화 느낌 좋아하시면 라쇼몬을 쓴 아쿠타가와 류노스케가 취향에 맞으실 지도...단편들에서 특히. 설화를 쓰는 다자이 오사무라고 할 만 하니까요...좋은 건지 싫은 건지 읽는 내내 헷갈리게 만들던 작가;

에이바 2015-10-21 16:12   좋아요 0 | URL
안 그래도 라쇼몬이랑 설국 읽으려고 사뒀는데 선뜻 손이 가질 않아서 일단 교카 거부터 읽었어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