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올릴 때 책이 DB에 없어 페이퍼로 올렸습니다. 이 글을 다듬어 리뷰에 다시 올렸어요.)


바람이 쌀쌀해지는 때, 「풀잎관」을 먼저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지난 여름 ‘로마’에 빠지게 한 『마스터스 오브 로마』의 2부이다. 방대한 분량으로 인하여 1부를 미처 읽지 못하신 분들, 시간이 지나 인명과 지명을 잊으신 분들도 안심하시라. 콜린 매컬로는 등장인물들과 함께 지난 사건들의 추이를 되짚으며 독서 보폭을 맞춰주고 있다.


‘로마 제3국의 건국자’라 불리던 가이우스 마리우스는 더 이상 정치인이 아니다. 마리우스의 측근으로 정계에 입문한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는 법무관 선거에서 승리하지 못한다. 스카우루스의 젊은 아내 달마티카가 술라를 흠모하기 때문이다. 로마의 평화는, 유구르타와 게르만족에 맞섰던 두 영웅에게 환호하지 않는다. 게다가 마리우스의 정적인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누미디쿠스(똥돼지)의 귀환으로 두 사람의 입지는 더욱 좁아진다. 마리우스는 가족과 함께 동방으로 여행을 떠나는데, 실은 로마의 아시아 속주와 이웃한 폰토스 등의 정세를 살펴볼 목적이다. 술라는 선거 실패, 그리고 아우렐리아와의 접촉과 거부로 인해 지독한 좌절감에 빠진다. 전장에서 떠난 지 3년이 되었고, 그는 익숙한 욕구에 시달린다. 1부에서와 마찬가지로, 다시 선조의 이마고를 보관해 둔 작은 서랍 앞에 선 술라. 그는 작은 병을 손에 쥐고 욕구를 해소할 곳으로 향한다. 여신이 사랑하는 자답게, 어떤 혐의도 없이 깨끗하게 일을 마무리한다.


제1장의 대부분은 마리우스의 동방 여정기인데, 이는 앞으로 다가올 ‘아시아 속주 전쟁’을 위한 초석이다. 폰토스의 혼란을 정리한 미트리다테스 6세는 로마에 사절을 보내 우호동맹국의 칭호를 요구했지만 앙숙 비티니아의 니코메데스 왕의 항의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미트리다테스는 갈라티아를 손에 넣고, 상인으로 변장해 비티니아를 오가면서 정세를 살핀다. 1년여 잠행 끝에 궁에 돌아온 그는 반란을 일으키려 했던 이를 잔인하게 숙청하여 왕권을 강화한다. 여행중인 마리우스는 비티니아가 상당히 부유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페르가몬에 총독으로 부임한 스카이볼라와 보좌관 루푸스와 조우한다. 부재중 투표로 마리우스 자신이 조점관(신관)에 선출되었다는 소식을 알리고 스카이볼라는 급히 로마로 향한다. 이유는 바로 아시아 속주를 수탈하는 로마의 징세청부업자들 때문이었다. 세금 수치를 날조하고, 대행인을 통해 고리대금업을 일삼던 이들 때문에 속주민들은 로마인에 대한 증오를 키운다. 스카이볼라는 이를 바로잡았고, 징세청부업자들의 로마 내 로비를 저지하려 귀국한 것이다.


한편 길잡이와 노예만을 대동한 마리우스는 토가 프라이텍스타로 차려입고, 수백명이 호위하는 미트리다테스 앞에 선다. ‘로마의 위엄’ 그 자체다. 이 만남으로 마리우스는 카파도키아 왕의 정체와 동방에 드리운 폰토스 왕 미트리다테스의 영향력과 야망을 꿰뚫어본다. 마리우스에게 위협을 느낀 미트리다테스는 아르메니아의 티그라네스와 결혼 동맹을 맺는다. 로마에는 새로운 집정관, 법무관, 감찰관들이 뽑힌다. 주목할 부분은 새로운 감찰관들이 아시아 속주의 징세계약을 마무리한 뒤 로마 인구의 전수조사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는 앞으로 벌어질 이탈리아인들의 로마 시민이 되고자 하는 열망으로 거짓 명부를 작성하게 되고, 결국 ‘동맹시 전쟁’이 벌어지는 시작점이다. 7년 전, 아라우시오 전투에서 살아남은 드루수스는 마르시족 실로와 친우가 된다. 그 전투는 드루수스의 가치관을 바꿔버렸고, 이탈리아인의 위치에 대한 생각도 바뀌어 공공연히 진보적인 발언을 하게끔 한다. 로마군인으로 복무한 실로가 명부 사건을 물밑에서 작업한 인물이라는 것은 앞으로 원로원의 착오로 인해 벌어질 전쟁에 휘말릴 로마와 드루수스의 운명을 예감하게 한다.


마리우스의 친우이자 루푸스의 두 조카딸 아우렐리아와 리비아(드루수스의 여동생)의 이야기도 진행된다. 아우렐리아는 어린 아들 가이우스 카이사르의 영민함으로 인해 고민에 빠져 있지만 역사를 알기에 그의 성장에 더 기대하게 된다. 한편 리비아는 여전히 행복하지 않은 결혼생활 중이다. ‘톨로사의 황금’ 사건으로 오빠네에 얹혀 살면서, 리비아는 부부와 여성의 삶에 대한 생각을 발전시킨다. 그래서 남편 카이피오 2세가 스미르나에 숨긴 재산을 정리하기 위해 여행길에 올랐을 때,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오빠 부부에게 신혼 생활도 제공하고, 자신의 자유를 위해 진정한 자기만의 공간을 찾으려는 것이다. 로마에서 멀지 않은 투스쿨룸, 오래된 빌라에 정착한 리비아는 그 곳에서 소녀 시절 열망했었던, 빨간 머리 오디세우스를 만난다. 1부에서 이어지는 리비아의 이야기는 굉장히 흥미롭다. 지배층 파트리키 여성의 제한된 삶과 결혼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실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드루수스 남매의 성장과 이어질 삶을 지켜보는 과정은 고통스러우면서도 즐겁다.


관직의 사다리에 오르기 위한 ‘돈’을 위해 가까운 히스파니아로 떠난 술라. 그는 율릴라가 예언한 ‘풀잎관’을 열망하지만 받을 기회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다. 루푸스의 권고로 법무관이 되기 위해 귀국한 술라는 어느덧 소년이 된 아들에게서 충만함을 느낀다. 여섯 살이 된 카이사르 2세도 만난다. 두 사람의 미래를 알고 있는 독자로서는 짜릿한 부분이었다. 술라 2세의 친구로 아르피눔 출신의 키케로도 등장한다. 법무관으로 로마에 갇혀, 속주의 총독 자리를 열망하며 고통과 좌절을 견딘 그에게 운명의 여신은 손을 내민다. 미트리다테스의 야망으로 위협을 느낀 비티니아로부터의 편지였다. 분쟁을 무마하기 위해 킬리키아로 파견된 술라는 폰토스 국왕과 대면한다. 로마를 얕잡아보던 미트리다테스는 그에게서 진정한 로마인의 향기를 느낀다. 미트리다테스는 후퇴했으나 술라는 황금 한 자루가 절실하다. 그는 파르티아 사절단과의 회담을 주선하고 뛰어난 연기를 해내어 동방의 문제를 봉합한다. 이제 술라는 집정관 직에 출마할 자금이 충분하다. 인구 조사 법정으로 인한 라티움 지역의 증오와 혼란, 로마 소식과 함께 오랜 벗 루푸스의 추방을 알리는 편지로 1권이 마무리된다.


제목인 「풀잎관」은 1부에서부터 예견된 술라의 운명이다. 따라서 기원전 97년~86년을 배경으로 할 2부는 미트리다테스에 맞설 술라의 동방 원정과 마리우스의 마지막 집정관 시기와 몰락이 맞물릴 것이다. 또 로마시민권을 요구하는 이탈리아인들 편에 설 호민관 드루수스의 운명도 그려질 것이다. 로마 공화정의 빛나는 시기이자 몰락을 가져온 위대한 군벌들의 시대는 현재진행형이다.


로마가 우리의 신이자 우리의 왕, 우리의 생명 그 자체요. 로마인 개개인은 자신의 명성을 쌓고 동료 로마인들이 자신을 우러러보게 하기 위해 애쓰지만 길게 보면 그것은 모두 로마를, 그리고 로마의 위대함을 드높이기 위한 것이오. 우리는 터전을 숭배하오, 오로바조스 경. 사람도 이상도 숭배하지 않소. 사람은 왔다가 가기 마련이고 이 세상에서 순식간에 사라지오. 이상은 온갖 철학의 바람이 불 때마다 바뀌고 흔들리오. 하지만 터전은 그 땅에 사는 자들이 가꾸고 위대함을 더하는 한 영원할 수 있소. 나,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는 위대한 로마인이오. 그러나 내 삶의 끝에 가서 보면 내가 한 모든 일은 나의 터전, 즉 로마의 힘과 위엄을 확대하는데 쓰였을 것이오. 내가 오늘 이곳에 있는 것은 나를 위해서도, 다른 어떤 사람을 위서도 아니오. 내가 오늘 이곳에 있는 것은 나의 터전 로마를 위해서요! (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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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5-10-31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부에서는 술라가 많이 등장하는 모양이네요,
에이바님의 설명을 들으니, 아무래도 익숙하지 않은 인명과 지명이 나오는 책이라는 점을 작가도 고려했을 수 있겠어요,
잘 읽었습니다,
에이바님, 좋은하루되세요^^

에이바 2015-10-31 22:35   좋아요 1 | URL
네 2부에서는 1부의 주인공이었던 마리우스의 몰락이 예정되어 있고, 부상하는 술라가 주인공이라 여겨지더라고요. 1부에서도 루푸스의 편지 등을 통해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정세 설명을 유쾌하게 풀어내는데 2부에서도 입담은 여전해요. 기대한 바를 실망시키지 않는 작가의 필력과 번역자분들의 노고가 느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