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쪼가리 자작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41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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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로 칼비노의 작품은 언제나 부채로 느껴졌다. 칼비노의 명성을 익히 들어온지라 그가 남긴 작품들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난해한 표지, 「선조 3부작」 같은 시리즈명은 '생각'만 하게 만들 뿐이었다. 위시리스트에 오르길 한참이었다. 민음사에서 예쁜 표지로 다시 나올 때 2권 이상 사면 테이블 매트를 끼워 줬는데 그 때도 꿋꿋이 버텼다. 러브크래프트 리뷰를 쓰면서도 느꼈지만, 인생에는 '고전'이 찾아오는 법이다. 읽는 인간에서 오에 겐자부로 선생이 한 말씀이기도 하다. 지금 내겐 이탈로 칼비노가 찾아온 것이다.


나는 환상문학에 매력을 느낀다. 매니아까지는 아니지만 이 장르에 호감을 가지고 있다. 만약 칼비노의 작품 중 『우주만화』가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면 「선조 3부작」을 읽을 일은 요원했으리라. 아무튼 열린책들에서 나온 『우주 만화』를 샀고, 칼비노를 좋아하는 분이 「선조 3부작」을 먼저 읽는 게 나으리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시간이 흐른 후에야 『반쪼가리 자작』을 읽게 된 것이다. 지난 계절에 민음 세계문학을 여러 권 구비하면서 칼비노의 책도 슬쩍 끼워 넣었다. 예전과는 달리 표지의 반쪽 얼굴들이 귀엽게 느껴지기도 했고...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17세기, 막 성인이 되어 터키와의 전쟁에 참전한 메다르노 자작은 순진하게 대포 앞에 뛰어들어 몸이 반으로 분리된다. 의사들은 그의 반쪽을 살려내고, 고향으로 돌아온 자작은 보이는 모든 것을 반쪽 낸다. 열매, 버섯, 개구리 등 반쪽이 된 것을 따라 그를 추적할 정도이다. 사람들을 쉽게 죽이는 그의 모습에 마을 사람들은 '악한 반쪽'이 돌아왔음을 깨닫고 두려워한다. '악한 반쪽'은 파멜라에게 구애하지만 그의 악행에 질린 여인은 숲으로 숨어 버린다. 자작이 음산함을 더해가는 때, 메다르노의 '선한 반쪽'이 귀환하면서 마을은 혼란에 빠진다.


「선조 3부작」은 『반쪼가리 자작』, 『나무위의 남작』, 『존재하지 않는 기사』로 이루어져 있다, 『반쪼가리 자작』은 120쪽 정도의 아주 얇은 책으로, 동화를 떠올리게 한다. 물론 성인용. 등장인물들은 메다르노 자작, 관찰자 소년인 나(자작의 조카), 의사 트렐로니, 파멜라, 문둥병 환자들, 위그노 교도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다. '악한 반쪽'이 등장하기 전, 문둥병 환자들은 격리되어 살고 있고, 술을 마시고 노래하며 방탕한 생활을 한다. 프랑스에서 건너온 위그노 교도들은 황무지를 개간하며 종교 규율에 따른 생활을 한다. 이 인물들은 메다르노의 '악한 반쪽'이 나타났을 때 그리고 '선한 반쪽'이 나타난 뒤 달라진 모습을 보인다.


메다르노의 '악한 반쪽'은 공공의 적으로, 두렵지만 무시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들을 다스리는 영주이기 때문이다. '악한 반쪽'이 주문하는 고문대와 사형대를 만들며 목수는 죄책감을 느끼고, 자작이 유모를 쫓아낼 때도 침묵한다. 위그노 교도들은 '악한 반쪽'을 두려워하면서도 예언 때문에 그를 대접한다. '선한 반쪽'이 돌아왔을 때 사람들은 기뻐하지만 곧 그가 늘어놓는 설교에 진저리친다. '선한 반쪽'은 주민들을 위한 기계를 만들 것을 주문하지만, 목수는 복잡한 도안에 좌절한다. 반면 '악한 반쪽'이 의뢰한 고문대와 사형대에는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여 예술적으로 완성하는 것이다. '선한 반쪽'의 설교 앞에 꿈을 지속하지 못하는 문둥병 환자들은 현실에 고통받으며, '선한 반쪽'의 곡물 값에 대한 설교로 인해 위그노 교도들은 농사를 망친다.


'선한 반쪽'이 나타남으로써 '악한 반쪽'에 대한 재평가도 이루어진다. 특히 목수의 사례를 보면 인간은 '악'에 끌릴 수 밖에 없는 것일까? 그는 고문대를 만들며 묘한 쾌감과 죄책감을 동시에 느낀다. 범죄 행위에 동조하는 모습은 전쟁에서 재능을 발휘했던 과학자와 예술가들이 떠오르게 한다. 자신의 기조에 따라 '선'을 행하는 '선한 반쪽'으로 인해 죽임당하는 이들을 통해서는 '선의'가 마냥 '행복'으로 끝나지 않는 것을 보여준다. 이렇듯이 극단적인 악과 선은 어느 것이 옳다고 할 수 없는 불완전한 것이다. 의료 행위엔 관심이 없는 의사, 쾌락만 추구하는 문둥병 환자들, 믿음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종교에 따르기만 하는 위그노 교도들은 모두 반쪼가리 인간이다. 하나가 된 자작 역시 여전히 불완전하며 세상은 복잡하기만 하다. 의무와 도깨비불만 남은 세상이라니, 짧은 글이지만 아주 만족한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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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BBP 2015-11-11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이바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해요. 저는 이번달 꽝 ㅎㅎ 아 선조 3부작 마저 다 읽어야 하는데

에이바 2015-11-11 18:16   좋아요 0 | URL
감사해요. 기네스님 근데 리뷰/페이퍼 이달의 당선작으로 뽑히셨던데요? 축하합니다ㅎㅎ

CREBBP 2015-11-12 20:58   좋아요 0 | URL
덜렁대다가 못봤었네요 당첨 사실을 메일로 보내주는데 문자로 왔었다고 착각했던거죠. 감솨감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