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스머신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박재현 옮김 / 반니 / 2014년 12월
평점 :
품절


일본은 수수께끼를 참 좋아하는 것 같다. 김전일이나 코난 같은 유명한 네버엔딩 탐정만화도 있고, 드라마와 영화에서도 트릭을 다수 찾아볼 수 있다. 장르소설도 발달했지만 그 중에서도 일위는 단연 추리소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본의 추리소설은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인지 녹스머신을 읽기 전 기대가 컸다.

 

노리즈키 린타로의 소개를 보면 신본격파의 대표 작가라 쓰여 있다. 찾아보니, 신본격파는 새로운 본격 추리소설이라는 뜻으로, 수수께끼와 해결에 초점을 둔 소설을 쓰는 작가들을 가리킨다고 한다. 특히 노리즈키 린타로는 글의 논리적 귀결을 위해서 고뇌하기 때문에 작품의 수가 많지 않다고 한다.

 

책은 네가지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녹스머신>, <들러리 클럽의 음모>, <바벨의 감옥>, <논리증발-녹스머신2>.

 

일단 <녹스머신>의 세계관을 보면, 시대는 2050년. 컴퓨터 문학제작 프로젝트인 <오토포에틱스>의 발달로 사람이 쓰는 이야기는 뒤로 밀려난지 오래이다. 주인공 유안 친루는 스물 일곱의 오버닥터로 20세기 탐정소설을 연구한다. 이미 빛바랜 연구분야가 된 문학수리해석(시나 소설에 사용되는 단어나 관용구 빈도를 분석하는 학문)엔 새로울 것도 없었다. 연구모델을 찾던 유안은 영국 작가인 로널드 녹스가 발표한 <녹스의 십계>라는 탐정소설 규칙을 발견한다. 그의 시선을 끈 것은 제 5항, <탐정소설에 중국인을 등장시켜서는 안된다.>였다. 유안 친루는 지적 탐정소설의 자연스러운 진화과정을 법칙화하기 위한 실험에 착수한다. 바로 십계의 각 항목을 수식화하여 10차원의 매트릭스를 구성한 <녹스장>을 만드는 것. 시행착오 끝에 완성한 모델은 지적탐정소설이 60년을 주기로 유행함을 증명한다. 이 발견은 북경의 높으신 분들의 관심을 끌게 되고 유안 친루는 그 곳으로 불려가 시간여행을 제의받는다. 이 작품은 마지막으로 수록된 <논리증발>과도 이어진다.

 

이야기 생성 방정식을 발표, <오토포에틱스>의 부흥을 가져와 노벨문학상을 받은 후마얀의 딸 프라티바가 <논리증발>의 주인공이다. 그녀는 골플렉스사 전자책 사업부의 원전 관리 책임자다. 긴급사태라는 호출을 받고 회사를 가니, 양자화된 텍스트의 일부가 불탄다는 소식이다. 레이 브래드버리의 『화씨 451』과 같이 분서가 일어난 상황. 불길이 인 이유는, 양자화된 데이터의 정보에너지량이 증가하여 해당영역 일부에서 방출된 열량 때문이란다. 프라티바는 엘러리 퀸의 <숙명 시리즈>중 『샴 쌍둥이 미스터리』에서 불길이 시작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재등장한 <녹스장>때문에 그녀는 이 사실을 해결해줄 유안을 찾아나선다.

 

두번째 이야기 <들러리클럽의 음모>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의문의 실종사건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탐정의 조력자들이 그들이 등장하지 않는 작품, 『열개의 인디언 인형』에 위협을 느껴 크리스티 여사를 납치하고 실종사건으로 꾸몄다는 내용이다.

 

세번째 이야기인 <바벨의 감옥의 주인공은 지구와 적대관계에 있는 사이클로프스인에게 붙잡힌 지구인 요원이다. 그의 임무는 사이클로프스인의 지배를 받는 행성 갈라테이아에 독립운동을 지원하는 것이었다. 적의 마인드 리딩 공격에 대비하여 그의 인격은 둘로 나뉘었다. 그는 비상코드 323을 외는 그의 경상(거울에 비친 상)인격과 함께 이 곳을 탈출해야 한다.

 

읽기 편한 소설은 아니었다. 신본격파라는 소개글대로, 작가가 고뇌하여 글을 쓴 것처럼 독자도 고뇌하면서 읽어야 한다. 비유해보자면, 긴장이 풀어진 상태인 내게 수학문제 풀이 과제가 생긴 상황. 풀어보려고 문제를 읽는데 파악이 안 되는 거다. 다시 한번 문제를 잘 읽어보니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힌트를 준다. 어떻게 풀 수는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겨난다. 배운 적도 없는 유형과 내용인데 불구한데 말이다! 녹스장을 설명하는 10단계 매트릭스, 양자화된 텍스트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머릿속에 얼른 들어오지 않는 생소한 용어에도 불구하고 책장이 넘어간다.

 

작가는 양자역학 같은 모르는 분야를 독자가 따라오게끔 하기 위해 얼마나 공부했을까. <녹스머신>이 가정하는 것처럼 컴퓨터문학이 주류를 이루는 시대(소설에서는 2040년이 전성기)가 그렇게 금방 도래할까? 상상해보니 눈 앞이 캄캄해진다. 컴퓨터가 인간에게서 문학성마저 앗아가버린다면 컴퓨터와 인간의 차이는 무기체와 유기체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파이크 존즈의 영화 『그녀her』를 보면 운영체제와 사랑에 빠지는 남성이 등장하는데, 진짜 이런 시기가 오는 거 아닌가 싶다. 운영체제 사만다는 시로 노래가사도 짓고 심지어 주인공과 섹스도 한다. 영화의 배경은 2020년. 5년밖에 안 남았다. <녹스머신>의 시대는 25년이 남았다. 작품이 시사하는 바와 풀어가는 논리가 상당한 소설이었다.

 

<바벨의 감옥>은 이런 것이 트릭이라고 한 수 가르침을 준다. 텍스트의 구조를 가지고 독자와의 밀당을 하는 것이 생소하면서도 감탄하게 했다. 일본어 세로쓰기에 맞춘 트릭을 가로쓰기인 한국어로 옮기면서 일부 내용을 수정할 수 밖에 없었다는데... 정말 비범한 작가다. 원어로 읽는 기분은 과연 어떨까 궁금했다.

 

책을 읽고난 소감? 아마존 재팬에 남겼다는 독자의 말을 빌릴까 한다.

《굉장한 소설이다. 이 한마디밖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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