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속의 소녀들
톰 롭 스미스 지음, 박산호 옮김 / 노블마인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얼음 속의 소녀들
톰 롭 스미스 지음, 박산호 옮김
노블마인 2014년 11월 17일 초판 1쇄

 

이 소설의 주된 화자인 틸데는 스웨덴의 정신병원에서 막 퇴원해 영국으로 왔다. 그녀는 아들, 다니엘에게 자신이 미치지 않았음을 주장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이야긴 요약해서 들으면 아무 의미가 없어.>

 

<틸데는 과연 미쳤는가>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녀가 광인 취급을 받는 상황에서, 그녀를 대하는 이들의 태도가 중요하다. 우틀란닝. 이 땅의 바깥쪽에서 온 사람이라는 스웨덴어가 이를 설명해준다. 틸데는 모종의 사건으로 16살에 부모님을 떠나게 된다. 고향마을에서, 그리고 부모님에게 그녀는 우틀란닝이었다. 독일, 스위스를 거쳐 가정을 꾸리고 정착한 영국에서도 그녀는 우틀란닝이었다. 은퇴 후 돌아간 고국에서도, 그리고 남편에게도 그녀는 우틀란닝이 되어버렸다. 그녀에게 남은 건 아들, 다니엘 뿐이었고 영국으로 찾아와 그에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자신을 믿어 달라고. 내가 <왜> 이야기를 하는지,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들어달라고.

 

소설은 다니엘이 깨닫는 것처럼 자신에게 익숙한 것을 안다고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려준다. 스웨덴의 아름다운 자연을 벗하는 삶은 이웃의 도움이 없으면 유배지에 불과하고, 작은 지역사회일지라도 권위가 가지는 위력은 진실을 덮는다. 익숙한 것을 떨쳐내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어디까지 할 수 있는가? 사건이 일단락된 후, 다니엘이 스웨덴으로 떠나기를 결심한 이유는 틸데의 이야기가 더 정교해지고 윤색을 더했기 때문이었다. 이 여정을 통해 다니엘은 한층 더 성숙하게 되고 엄마가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했는지,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이해하게 된다.

 

원제는 『The Farm』인데, 한국어 제목은 『얼음 속의 소녀들』이다. 얼음은 자연을 연상시킨다. 겨울이 와서 얼어붙은 강을 건너 다니엘이 진실에 가까이 갈 수 있었던 것처럼, 자연은 해결책을 제시하기도 하고 동시에 얼어붙은 사람들의 마음, 고립된 삶과 폐쇄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얼어붙은 강 아래로 물은 계속 흐르듯이, 해결된 것처럼 보이던 틸데의 상처는 봉합만 되었을 뿐 여전했다. 미아 문제를 해결한 후, 보다 중요한 틸데의 유년시절을 짚어나가면서 이 소설에서 가장 잔인하고 역겨운 문장이 나온다. <꼬마 틸데는 아프다.> 결국 얼음 속에 갇힌 소녀는 미아, 틸데 그리고 무수히 존재할 잠재적 피해자들을 이른다. 때로는 소년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곤경이 찾아와 내 지지기반인 가족이 흔들릴 때 우리는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까. 가깝다는 이유로, 잘 알고 있다는 이유로 목소리를 지나치고 있지는 않은가. 내 경험에 비추어 보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기다려야 한다. 신뢰와 존중을 바탕으로, 정말로 <함께>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 시기를 잘 버텨내면 한결 나아진다. 진짜다.

 

소설을 읽기 전 가장 궁금했던 것은 톱 롭 스미스가 장르 소설에서 과연 문학적 성취를 이루었느냐 하는 점이었다. 사회고발적인 소재는 전작을 떠올리게 하지만 익숙한 것이 낯설게 다가올 때의 불편함과 공포 역시 잘 그려냈다고 생각한다. 거부당하는 상황의 미묘함들 역시 잘 잡아내었다. 다음은 틸데가 스웨덴에 도착해 농장으로 향하는 날의 날씨를 묘사하는 인상깊은 장면이다.

 

농장까지의 후미진 길을 따라 황량한 갈색 들판이 있는데, 겨울에 내린 눈은 녹아서 사라지고 없지만 표토는 단단한 데다 얼어서 삐죽삐죽하단다. 거기엔 어떤 생명의 징후도, 작물도, 트랙터도, 농부도 없어. 오직 정적뿐이지만 하늘을 흐르는 구름은 어마어마하게 빨라 마치 태양이 지평선에서 싱크대의 마개를 빼는 것처럼 뽑혀나가고 햇빛을 따라 구름도 싱크대 밑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보이지. 난 그렇게 무시무시하게 빨리 움직이는 구름에서 도저히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러다 시간이 좀 지나자 어질어질해지면서 머리가 빙빙 돌기 시작했어. 넘어올 것 같아서 크리스에게 밴을 멈춰달라고 했지. 64-65p

 

아름답고 강한 틸데와 섬세한 다니엘을 영화로도 볼 수 있다니 이 소설의 영상화 소식이 반갑다. 책을 덮었지만 찜찜한 기분이 남는 것은 얼음이 녹더라도 그 속에 갇힌 소녀들은 여전히 소녀일 거라는 것. 여전히 그 곳에 갇혀있을 것이라는 것이 변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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