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 주식회사
사이먼 리치 지음, 이윤진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2월
평점 :
절판


[하느님은 크세논 개스 채취를 원하시어 지구를 개발하셨도다. 여가 시간에는 심즈게임을 즐겨하시니, 심이란 인간을 이르는데 그분의 형상을 닮았더라. 인간들에 푹 빠지신 하느님은, 천국 주식 회사를 설립하시어 그들 가운데 천사를 뽑으시더라. 천사들은 인간을 돌보고 하느님의 사랑을 널리널리 퍼뜨렸도다.] 

 

하느님은 천국 주식 회사의 CEO로 본업은 따로 있고, 인간을 돌보심은 취미 생활 정도다. 매일 지지율을 보고받는 하느님. 미식 축구 리그와 골프에 푹 빠지시고, 좋아하던 밴드의 재결합을 위한 TF팀 결성을 지시하시는 하느님. 이 소설에 나오는 하느님은 기존의 인식과는 다른, 엉뚱한 분이다. 

 

이 분이 얼마나 자비롭냐면, 피를 보는 번제를 받지 않는게 천년이 넘었는데도 요구하지 않으시며 리처드 도킨스가 신은 없다고 무신론을 외쳐도 봐주는 너그러움을 가진 분이다. 자신을 찬양하는 기독 채널에 푹 빠져 계시며, 수상소감으로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선수들을 예뻐하신다. 일은 언제 하냐고? 글쎄…  

 

한편, 기도 수취부의 계약직으로 일하던 일라이자는 17층 기적부 산하 종합 웰빙과 소속을 발령받는다. 정규직의 꿈을 이룬 것이다! 천사 배지를 가슴에 단 일라이자, 사수 크레이그의 멋진 기적들에 감탄을 하며 일에 매진하지만 모니터에 뜬 것은 대형 쓰나미 경고. 패닉이 되어 CEO 사무실 문을 벌컥 열었더니, 하느님이 하신 말씀. 거기 케첩 좀 주게나. 

 

크게 실망한 일라이자는 이렇게 하실거면 사업 접는게 낫지 않냐고 패기있게 외치고, 하느님은 콜! 하셨다. 그리하여 인류 멸망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고 일라이자와 그녀의 사수는 이를 막기 위해 CEO와 딜을 한다. 

 

작가가 SNL 출신이라 그런지 스케치들을 보는 느낌이었다. 특히 인류 멸망을 막기 위한 임무를 띤 찌질이들을 이어주는 장면들은그런 느낌이 물씬 풍긴다. 왜, 배우가 대사 한 번 하고 잠시 멈추면 웃음소리 나오는 어색한 상황들 있지 않은가. 영상화를 염두에 두고 쓴 글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재미있다.

 

천국 주식 회사는 구글을 뛰어넘는 사내 환경과 복지를 자랑한다. 또 직장인들의 꿈, 월급 루팡을 실현할 수 있는 좋은(?) 곳이다. 신체적 안전과에서 일하는 브라이언은 열흘 넘게 휴가 가고, 업무 시간에 사적인 일을 보는데 아무도 모른다. 심지어 모든 일이 마무리 된 뒤, 엄청난 승진을 한다. 하지만 월급 루팡들만 있으면 이야기가 진행될 리가 없으니... 이쯤에서 나올만한 질문. 심즈하는 한국인들의 특징이 무엇일까? 정답은 치트키를 써서 엄청난 부자가 되더라도, 직장에 꼬박꼬박 나가고 스킬창을 만렙으로 채운다는 것이다. 그러한 워커홀릭들이 바로 천국 주식 회사에도 존재한다. 아마겟돈을 불러 온 주범인 일라이자와 그의 사수 크레이그다. 

 

반면, 야망이 드글드글한 캐릭터 빈스도 있다. 허드슨 강의 기적은 이 분의 작품이다. 기적은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하느님의 법칙을 깬 빈스는, 엄청난 공(하느님 지지율 대폭 상승)을 인정받아 대천사가 된다. 

 

이렇듯 캐릭터들은 생동감 있지만 다소 뻔한 구석도 있다. 빈스와 크레이그의 오해가 풀린 후, 빈스의 향방이라거나 사교성(?)이 좋은 브라이언의 승진이라거나. 인도계 캐릭터인 라지의 말투도 실제 발음을 생각하면서 읽으면 더 재미있다. ~하지, ~하지로 끝나는 말투는 번역가가 고심했으리라. 

 

실제로 있었던 일들과, 있음직한 캐릭터들의 활약은 읽는 내내 미소를 짓게 한다. 우울했던 기분을 단번에 날려주는 뛰어난 스토리텔링은 이 소설을 돋보이게 하는 장점이다. 깊이가 없으면, 교훈이 없으면 어떠한가? 독자에게 주는 재미야말로 소설의 목적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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