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하녀의 일기
옥타브 미르보 지음, 이재형 옮김 / 책세상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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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 에포크는 아름다운 시절이라는 뜻으로, 보불전쟁 이후부터 1차 대전 발발 전까지의 프랑스를 가리킨다. 낙천적인 낭만의 시기, 경제적 번영과 과학 기술의 발달 속에 파리 만국박람회까지 열렸으니 당시 프랑스인들의 자부심이 어떠했겠는가? 우디 앨런의 『미드나잇 인 파리』의 마리옹 꼬티아르가 선망했던 시절이기도 하다. 그러나 옥타브 미르보는 이러한 낭만적 분위기에 찬물을 뿌린다. 『어느 하녀의 일기』를 통해 벨 에포크의 환상을 깨뜨리는 것이다. 이 작품은 마치 부르주아 가정에 하녀로 취업하여 그 실태를 고발한 잠입 르포 같다. 하위계층 여성의 시선으로 진행되는 소설의 도발성은 '하녀'라는 단어가 주는 뭔가 불순한 느낌을 통해 강조되고 있다.


일기는 셀레스틴이 메닐-루아에 도착한 9월 14일부터 그곳을 떠나는 11월 28일까지 이어진다. 셀레스틴은 브르타뉴 출신으로, 어부였던 아버지가 사망한 후 알코올 중독에 빠진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자유분방하게 자라났다. 하지만 타고난 영리함으로, 여러 가정을 거치며 노련한 하녀가 된다. 현관을 들어서면 그 집의 재정, 주인의 성품, 하인들의 노동량과 질, 그 자신의 위치까지 금세 알아차릴 정도다. 그녀의 특이성은 날씬하고 예쁜 외모에 깃든 당당함에 있다. 파리에서 문화를 경험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천성적으로 콧대가 높다. 한마디로 기품이 있는 하녀다. 반면 남자들의 시선을 즐기며 함께 즐길 용의도 충분하다. 매력적인 셀레스틴 앞에서 평가를 피해갈 수 있는 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바람둥이지만 부인에게는 꼼짝 못하는 랑레르 씨와 꼼꼼하기 이를 데 없는 랑레르 부인을 모시게 된 셀레스틴은 이 시골마을이 감옥처럼 느껴진다. 그리하여 지난 세월동안 일했던 가정과 주인들을 회상하게 되는데 그 면모들이 얼마나 대단하신지! 이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가증스럽다. 졸부에 변태, 비열한 부르주아들은 하나같이 인색하다. 그들에게 하인이란 인간이 아닌, 제3의 부속물 같은 존재다. 하인들은 잠재적인 도둑이며, 그들의 노동력은 월급 이상으로 뽑아내야 한다. 하녀가 임신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비가 주인 나리건 뜨내기이건 임신한 하녀는 쫓겨난다. 가정을 위해 일하는 고용인 부부도 임신이 허락되지 않는다. 기른 작물들이 썩어갈 지라도 하인들에게는 나눠줄 수 없다. 게다가 밖으로 나도는 아들을 붙들기 위한 정부로 하녀라면 싸게 먹히지, 암 그렇고 말고.


그렇다고 하인들이 당하고만 있을쏘냐. 주인의 눈을 피해 제 잇속을 차리고 재산을 불린다. 앞에선 굽실거리지만 뒤에선 조롱한다. 어떤 주인들은 어수룩해 하인들에게 이용당한다. 글을 읽으며 독자는 특히, 하녀라는 직업의 취약성을 알아차리게 된다. 하녀로 일하기 위해서는 직업소개소를 찾아가야 한다. 일을 구하는게 급해 모든 조건을 수락하면 노예처럼 부려지다 쫓겨난다. 추천장도 받을 수 없다. 따라서 소개소 주인과 고용주들의 태도를 잘 보고 판단해야 한다. 이 난관을 거쳐 소개소를 나서는 순간 그녀들을 유혹하는 포주들이 따라 붙는다. 포주들의 감언이설을 떨쳐내고 드디어 취직하면 주인 나리와 마부, 배달부 같은 남자들의 유혹이 기다린다. 변덕스러운 주인의 손짓에 해고될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정말 오갈 데 없는 하녀들이 머무는 수녀원은 더하다. 열악한 환경에서, 하녀들의 노동은 착취당하며 빚은 더해간다. 노련한 하녀일수록 놔주지 않는다. 일할 만한 가정을 소개해주더라도 주인과 이미 얘기가 끝나, 수수료를 뗀다. 이 착취의 덫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너무나도 힘들다.


이렇듯 해외 식민지에서의 제국주의는 본토에서 하인들에 대한 착취로 나타났다. 셀레스틴을 내세워 부르주아와 정치, 종교 그리고 하인들의 위선을 신랄하게 고발한 미르보는 허위로 가득한 세계 자체를 규탄하고 있다. 이런 시대가 어떻게 벨 에포크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문화적으로 풍성하고 엄청난 발전을 이룩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어두운 면들, 일상 속의 희생들은 들여다 볼 필요가 없다는 것인가? 이러한 융성과 자부심 아래 깔린 교묘한 민족주의는 드레퓌스 사건으로 만천하에 드러났다. 우리의 도발적인 하녀도 하류 인생을 벗어나지 못한다. 절제와 무절제, 그 사이의 긴장과 허영을 즐기던 그녀는 카페의 여주인이 된다. 주인나리의 유혹도, 이웃집 대령의 유혹도 잘 견뎌냈건만 자신에게 눈길을 주지 않던 그 남자 때문에 성을 상품화한다! 그에게 이용당하면서도 행복한 셀레스틴은 그토록 조롱하던, 하인을 부리는 위치에 오른 것이다.


백년이 지난 지금 봐도 부르주아의 호색은 외설적이며 노골적으로 묘사된다. 하층민, 노동자의 삶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던 에밀 졸라의 『목로주점』과 함께 읽기를 권하고 싶다. 미르보와 졸라, 두 지식인은 모두 프랑스의 국론을 양분했던 드레퓌스 사건에서, 親드레퓌스 진영에 섰던 인물이다. 평론가이자 예술 애호가로서, 미르보가 알리고 찬미하고 옹호한 문인, 화가, 조각가들은 아주 많다. 대표적으로 모네, 세잔, 고갱, 고흐가 있으며 조각가 로댕, 클로델, 마이욜이 있다. 아카데미 공쿠르의 회원으로서 발견한 메테를링크의 이름은 소설 속에서도 등장한다. 그 외에도 레옹 블루아, 쥘 르나르가 있고, 크누트 함순과 입센이 프랑스 내에서 인정받는데도 한 몫 했다. 미르보는 세상은 천재를 참아내지 못한다며 파리 살롱의 등단 형식을 비난하기도 했다. 그의 신랄한 혀가 그려낸 『어느 하녀의 일기』는 영화로 세 번 제작되었으며, 잔느 모로가 열연한 루이스 부뉴엘의 작품이 유명하다. 그리고 올해 개봉한 레아 세이두 주연의 작품이 있다.


(미르보에 관한 부분은 위키피디아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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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말 2015-10-06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으로 매력적이고 당당한 하녀로군요ㅎ 읽어보고 싶어요!! 목로주점도 함께 ㅎ

에이바 2015-10-06 17:16   좋아요 0 | URL
목로주점은 서사성이 강하면서 대를 이어 이야기가 진행되는 시리즈물 중 하나라 스케일도 큽니다. 미르보 작품은 분류하자면 르포물이지요.

다락방 2015-10-06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엇, 에이바님의 리뷰닷! 하고 달려왔어요. 역시나 읽기가 즐거운 리뷰입니다. 저 이책 있는데(뭔들 없겠습니까..), 역시 읽지 않은 책으로 존재... 읽고 싶은 생각을 부채줄해주는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에이바님!

에이바 2015-10-06 17:1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다락방님. 책이 생각보다 쉬이 읽히는데 중후반쯤 이르면 온갖 군상들의 끝없는 위선에 좀 질린다고 할까 그래요.
 
파묻힌 거인]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파묻힌 거인 - 가즈오 이시구로 장편소설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하윤숙 옮김 / 시공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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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오 이시구로가 10년 만에 낸 신작으로, 그의 일곱 번째 소설이다. 『파묻힌 거인』의 배경은 서기 500년에서 600년 사이로, 로마인들은 철수한지 오래이며 아서 왕은 이미 아발론으로 떠났다. 브리튼 족은 서쪽으로 쫓겨 가고 색슨족이 섬의 동쪽을 차지했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섬을 덮은 자욱한 안개다. 안개가 언제,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안개가 생겨난 이후 '무언가를' 잊어버렸다는 것이다. 어제 일도, 오늘 일도 그리고 방금 있었던 일마저도 잊게 되는, 잊었다는 사실조차도 잊는 상황. 잃어버린 기억은 사소한 일일 수도, 중요한 일일 수도 있다.


가장 먼저 언급되는 생명체는 바로 도깨비[*1]이다. 토박이 괴물이라 언급되는 도깨비는 사람들이 받아들여야 하는 존재다. 도깨비, 엘프, 용과 같은 초자연적인 존재로 인해 기독교도들은 토착 신앙의 주술적 요소도 믿고 있다. 망각 속에서 등장하는 인물은 액슬과 비어트리스라는 브리튼 족 노부부다. 어느 날, 액슬은 아내와 '여행' 이야기를 한 사실을 기억해낸다. 두 사람 사이에 아들이 있었고, 그가 멀지 않은 마을에 살고 있음도 기억해 냈다. 부부는 짐을 꾸려 마을을 떠나고, 그들의 여정은 기독교 마을, 색슨족 마을, 수도원, 숲, 강, 다시 숲, 거인의 무덤 순으로 이어진다. 줄거리라 하면 이것이 다다. 그리고 소설을 휘감은 거대한 알레고리는 은근한 방식으로 제시된다.


당시 사람들은 삿된 것을 상징하는 어둠을 꺼리고 이를 떨치기 위한 주술을 믿었다. 공동체는 폐쇄적인데 이는 정치와 종교 문제이기도, 도깨비와 용이라는 두려운 존재 때문이기도 하다. 소수의 인물들은 안개 문제의 원인에 대한 생각을 나눈다. 이보르는 안개의 원인은 하느님이 잊어버린 것이라며, 그분이 잊은 일을 인간이 어찌 기억하겠냐는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이에 비어트리스는 혹시, 우리가 한 어떤 일에 하느님이 화가 났거나, 부끄러운 것이 아니냐는 말을 한다. 색슨족 전사 위스턴[*2]과 현명한 조너스 신부는, 용 케리그 때문에 안개가 발생한 것이라 얘기한다. 아서 왕의 기사 가웨인은 이것이 멀린의 주술이었음을 확인해준다.


멀린은 왜 안개를 불러냈을까. 아서 왕 시절, 브리튼 족과 색슨 족은 전투에서 여자와 아이, 노인을 죽이지 않겠다는 협정을 맺는다. 브리튼 족은 약속을 깨뜨리고 마을 사람들을 학살하고, 색슨 족의 증오를 일으킨다. 승리로 찾은 평화를 유지하고자 아서는 멀린을 통해 사람들의 기억을 지운다. 증오를 희석시키기 위해 용 케리그를 이용한 거대한 주술을 펼친 것이다. 하지만 망각 위에 이루어진 것을 정당하다고, 진정한 평화라고 할 수 있을까? 기억하지 못하면 그것은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 되는가? 가웨인은 아서의 결정을 옹호하며, 오래된 상처들은 망각 속에 치유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위스턴은 구더기가 아직 남았는데 어떻게 오래된 상처들이 낫겠냐고 반문한다.


한편 액슬과 비어트리스 부부는 기억을 되찾으려 하면서도, 그 기억이 자신들에게 끼칠 영향을 두려워한다. 판도라가 열었던 상자를 다시 닫을 수 없듯이, 망각 속에 이룩한 평화가 깨어질까 두려운 것이다. 여정이 지속되면서 조금씩 그들은 기억을 떠올린다. 처음 길을 떠난 목적은 아들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여정이 진행될수록, 비어트리스가 느끼는 통증으로 인해 액슬의 두려움이 가시화된다. 부부는 색슨 족 마을에서도, 수도원에서도 치료법을 찾지 못한다. 잠든 비어트리스는 평온해 보이며, 그를 바라보는 액슬은 행복을, 이후엔 행복과 슬픔을 동시에 느낀다. 그의 마음을 반영하는 듯이, 픽시 도깨비들이 말한다. 그녀를 넘겨요, 그녀를 구할 치료법이 없다는 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잖아요.


비어트리스가 마을에서 만났던 색슨족 여자, 폐가에서 만난 노파, 가웨인이 만난 과부들은 모두 뱃사공에 대해 이야기한다. 남편과 함께 섬으로 가려고 했는데, 뱃사공이 남편을 태워다주고 나는 내버려뒀다고. 어쩌면 뱃사공은 아케론을 건너는 카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잠은 죽음을 상징한다. 잠든 아내를 바라보다 떠나기로 결심한 액슬, 아들의 무덤이 저 섬에 있고 그 곳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비어트리스의 말. 결국 이 여행은 이별을 준비하는 과정으로 용서와 화해를 위해, 함께 한 시절의 기억들을 헤아리는 것이다. 그렇기에 뱃사공의 시험은 오히려 떠날 사람과 남겨질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선의처럼 느껴졌다. 산 사람은 배에 태울 수 없기 때문이다.


기억은 아름다운 유산을 전승한다. (『화씨 451』) 모든 기록을 삭제, 검열하여 그 사람이 존재하였다는 사실 자체를 없앨지라도, 기억으로 그 사람을 되살려낼 수 있다. (『구제불능 낙천주의자 클럽』). 암묵적으로 동의한 망각의 커튼을 젖혀 역사적 사실을 복구하는 작업도 기억이다. (『살라미나의 병사들』) 사관의 목을 치고 기록한 역사에도 틈새가 있고, 입이 막혀도 양심선언을 하는 언론인들이 있으며, 물증을 없애 이룩한 완전 범죄에도 허점이 있다. 기억은 의심에서 시작되며 그 문은 단단히 걸어 잠글 수 없다. 문득 떠오르는 기억은 곧 홍수가 되어 쏟아진다. 기억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의지에 달려있으며, 그로 인한 결과도 선택에 따라 달라진다.


색슨 족이 증오를 기억해 내어, 정복 전쟁을 일으키고 비극이 되풀이되는 것과 부모가 자식을 잊는 비극 중 어느 것이 더 무거울까. 액슬과 비어트리스의 기억이 용서와 화해를 이끌어내었듯이, 소년 에드윈이 한 약속, 브리튼 족에 대한 증오심을 간직하라는 그 약속에는 브리튼 족 부부가 보여주었던 우정에 대한 기억이 함께 할 것이다. 진실이 밝혀질 미래에 내릴 결정은 소년의 몫이다. 위스턴이 브레누스 경과 액슬에 대해 품은 감정이 다르고, 그가 인정을 베풀듯이 말이다. 이시구로는 색슨 족 여성의 입을 빌려 얘기한다. 조금도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고.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우리가 함께 나눈 일을 기억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야 한다고. 우리에겐 기억해야 할 의무가 있다.


[*1] 도깨비: 어째서 서양 판타지 배경인 작품에서 도깨비라는 단어를 썼을까. 번역가도 고심한 부분이겠지만, 초자연적인 존재를 통칭하여 도깨비라 부를 순 있다. 그러나 소년을 공격한 것은 오우거(오거Ogre)이다. 『반지의 제왕』의 오크, 롤플레잉 게임에 등장하는 괴물로 사람들은 오우거에 익숙하다. 본문에서도 이를 가리켜 괴물이라 하며, 식인귀로도 번역할 수 있다. 차라리 주석을 다는 편이 좋지 않았나 싶었던 것이, 엘프는 그대로 쓰였기 때문이다, (26쪽의 ‘변장한 엘프’) 요정에 가까운 픽시(Pixie)는 픽시 요정이 아닌, 픽시 도깨비(255쪽, 342쪽)로 번역되었다. 나에게 도깨비란 김서방 호구에 가까운 이미지라 더욱 그러했다. 엄밀히 말하면 드래곤도 용이 아니라지만 이는 이미 혼용되고 있기에...


[*2] 색슨족 전사 위스턴: 도깨비의 팔을 뽑았다는 점, 용에 맞선다는 사실 때문에 베오울프를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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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5-09-24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즈오 이시구로.를 한 번 타이핑해 봅니다. 처음 보는 이름이지만, 책은 아주 흥미롭네요.
도깨비 번역에 대한 님의 의견에 찬성합니다. ㅎㅎ
제 생각에도 `오거`라는 번역이 더 가까울 것 같고요. `오거`를 떠올리면 `슈렉`이 떠올라 적합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도깨비라면, 또 떠오르는 그림이 정해져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요.

오랜만에 만나니, 용에 맞선다는 `베오울프`도 반갑네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에이바 2015-09-24 17:18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가즈오 이시구로 작품은 사실 처음인데(영화는 봤어요) 일본계 영국인임에도, 일본문화가 녹아든 소설을 쓰지 않는다는게 특이하게 느껴졌고요. 아무래도 이민자 출신 작가들은 모국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잖아요, 단발머리님이 좋아하시는 줌파 라히리도 그렇고... 이시구로는 그런 범주를 거부하는 것 같아요. 일본어가 아닌 영어로 글을 쓰고요.

저는 판타지라는 말에 혹해서 읽었는데 완전 속았어요! 아서 왕 이야기도 나온대서 더 기대했는데 겉만 판타지이지 작가가 얘기하는 건 다른 내용이었어요.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로도 꼽히니 한 번 읽어보셔요. `남아 있는 나날`, `나를 보내지 마`도 좋다고 합니다. 이 작품 속 도깨비는 읽는데 의아하게 느껴져 찾아봤더니 오우거더라고요. 그래서 사족을 달았습니다...

다락방 2015-09-24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으면서 응? 서양 작품에 도깨비?? 라는 생각을 했어요. 도깨비는 제게도 도깨비 방망이들고 춤을 추는 뿔난 존재로 인식되어지거든요. 노래주머니 라는 혹을 뺏어간....

가즈오 이시구로를 두 권 읽고 다른 그의 작품들도 모셔놨는데, 하하하하, 읽지도 않은 상태에서 이렇게 자꾸 나오면 제가 좋아합니까, 싫어합니까? 사실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좀 어려울 것 같아요. 저는 [남아 있는 나날]을 읽어야겠어요.

에이바 2015-09-24 17:24   좋아요 0 | URL
그렇죠? 오우거가 생소할 독자를 위해서라면 주석을 다는 방법이 더 좋지 않았을까 해요. 신화 속 존재를 번역함에 있어 그 명명이 쉽지 않네요. 가즈오 이시구로 스타일이 원래 좀 몽환적인가요? 두 번 읽고 쓴 리뷰거든요. 보통 한 번 읽고 처음 감성 유지하면서(?) 쓰거든요...

2015-09-24 17: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9-24 17: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5-09-24 1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의 이력을 보니까 부커상을 받은 적이 있더라고요. 다음 달이면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발표 되요. 벌써 도박사들이 노벨상 수상 후보자들을 점치고 있는데, 역시 하루키가 많이 언급되었어요. 저는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을 한 번도 읽어보지 않았지만, 이 작가도 노벨상 수상자 후보에 근접하다고 생각해요. 노벨상 위원회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작가에게 상을 줬으니까요. ^^

에이바 2015-09-30 23:48   좋아요 0 | URL
가즈오 이시구로는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이라 하는데 저도 너무 늦게 읽은 감이 있어요. 벌써 노벨상 시즌이군요. ^^

2015-09-26 1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9-30 23: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별도 없는 한밤에 밀리언셀러 클럽 142
스티븐 킹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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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단편 네 작품이 실린 『별도 없는 한밤에』는 스티븐 킹의 마지막 중편집일지도 모른다고 한다. 사실 스티븐 킹의 작품을 읽은 것은 이번이 두 번째이다. 처음 읽은 건 그의 주력 분야가 아닌 추리소설 『미스터 메르세데스』였다. 추리소설 매니아가 아니라서인지, 부족한 부분이 크게 눈에 띄지 않았고 그저 재미있게 읽었다. 스티븐 킹의 많은 작품을 읽지 않았음에도 그의 명성과 실력을 알고 있는 것은 『그린 마일』, 『쇼생크 탈출』, 『미스트』, 『캐리』, 『미저리』와 같은 영화와 드라마 『언더 더 돔』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장르'에 한정시킬 수 없는 세계를 영상으로 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기대가 컸다. 

 

'별도 없는 한밤에' 일어나는 인간의 심리와 행동을 파헤친 네 작품들은 각기 성격이 달라, 마치 다른 작가가 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다른 시대, 다른 장소, 다른 인물들이 행하는 복수는 어떤 점에서 맞닿아 있다. 종국에는 누가 피해자이고, 누가 가해자인지 구분할 수 없는 사건의 복잡함만큼은 현실적이다. 「1922」는, 1922년 미국 네브라스카 주에서 한 농부가 아내를 살해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아내가 상속받은 땅을 탐내어 아들을 공범으로 만든 후 일을 벌이는데, 자기 합리화와 살인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구역질이 일 정도다. 독서량이 많은 그는 자신이 '똑똑하다'고 믿으며 '옳다'고 생각하는 행동을 한다. 아내를 죽이는 것! 살인 후 변화를 겪는 아들에게 미안함을 느껴 후회한다는 그가 조지 엘리엇의 『사일러스 마너』를 읽는 모습에서는 부성애에 감동이라도 해야 하는 건가 싶었다. 애초에 땅을 물려줄 생각에 일을 벌였다 하니... 범죄에 대한 죄책감보다는, 사실이 밝혀질 일을 두려워하는 그를 단죄하러 온 지옥의 사자들은 러브크래프트의 『벽속의 쥐들』을 연상시켰고 그의 최후 역시 마음에 들었다. 잔인하긴 했지만, 사건 진행 과정을 설명하는 태도와 정신상태가 역겨웠으므로.

 

「빅 드라이버」는 30대 후반의 코지 미스터리 소설가, 테스의 이야기이다. 테스는 잘 나가는 소설가는 아니지만, 꽤 히트한 작품들을 썼다. 일상의 변화를 즐기지 않기에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서 열리는 낭독 행사 등에 참석한다. 의외로 이러한 행사들이 작가의 수입이 되는 모양이다. 아무튼, 어느 날 유명 작가 대타로 행사에 갔다가 북클럽 회장이 알려준 지름길에 들어서면서 비극이 벌어진다. 평소답지 않았던 그녀의 선택이 이끈 길은 성폭행과 살해 위협이다. 성폭행이 말 그대로 강제적인 성관계만 의미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데, 실제로는 피해자가 반항을 하건, 하지 않건 엄청난 신체적 폭력을 가한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돌이킬 수 없는』에서의 폭력 씬은 아주 사실적이며, 「빅 드라이버」에서도 테스가 느끼는 공포를 현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녀의 소설 장르에 등장하지 않는 폭력적인 상황에서, 아이러니하게도, 테스는 장르적 법칙에 따라 위협에서 벗어나는데 이 과정  묘사가 뛰어나다. 집으로 돌아와 안심 아닌 안심을 하던 것도 잠시, 일상생활에서의 아웃팅(알려진 소설가 강간과 살해 위협의 피해자! 연쇄살인사건이 의심돼, 한적한 마을이 범죄의 온상지?)과 다가올 생존의 위협 앞에 두려워하던 테스. 그녀가 사건을 종결하기 위한 준비와 행동에 착수하는 장면이 놀라웠다. 아주 세심하게 그려졌고, 기대하지 못한 바였다. 복수를 마무리하는 장면과 겹쳐지는 폭력의 상흔은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는 사실까지, 남성 작가가 그 공포를 풀어낸데 점수를 주고 싶다. 킹의 단편이 남기는 울림과 생각해 볼 문제와 다르지만, 여성을 범죄 대상으로 삼는 남성을 단죄하는 쿠엔틴 타란티노의 『데스 프루프』가 생각나기도 했다.

 

분량은 가장 짧지만 책을 덮고도 종종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던 「공정한 거래」. 중년,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내 삶을 연장할 수 있다면? 그 대가가 죽마고우의 불행이라면 어떠할까? 딜레마가 있을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나보다 앞서기만 했으며 '내 것'을 앗아갔던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가 불행해질 때 마다 나는 상쾌함을 느끼고, 나의 행복과 즐거움은 더욱 돋보인다. 친우에게 닥치는 불행의 다양성과 그 한계를 읽으면서 감탄하였고,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소원이라는 말에는 소름이 끼쳤으니... 역시 대가는 짧은 글에도 영혼을 담는구나 싶었다.

 

「행복한 결혼 생활」은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사건, 거대한 비밀을 알게 된 가정주부가 주인공이다. 상반기를 강타했던 『허즈번드 시크릿』과 유사한 소재이지만 킹의 작품은 소재와 필력 모두 차원을 달리한다. 결혼 27주년, 다아시의 남편은 연쇄살인범이기 때문이다! 우연히 이 사실을 알게 된 다아시는 멘붕에 빠져 잠이 드는데, 잠깐의 통화로 눈치 챈 남편 밥이 밤새 차를 몰아 귀가한 장면에서는 소름이 끼친다. 아주 다정하게 볼을 쓸어내리며 아내를 깨우는데 정말... 그가 16년 동안이나 살인 충동을 억제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다아시가 자신의 비밀을 알아채는 순간 찾아올 쾌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연쇄살인의 휴지기 이후 재범시엔 그 주기는 점점 짧아진다고 알려져 있다. 다아시가 행동을 취하거나, 밥이 다아시를 지켜보는 흥미를 잃거나 둘 중 하나였을 것 같다. 두 사람 사이에서 지키고 싶은 것이 많은 것은 다아시였고, 밥의 상황통제 욕구와 충동 사이의 줄은 이미 끊어지기 직전이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의 그 차가운 그 눈동자를 봐도 알 수 있다. 이 작품은 BTK 킬러 사건에서 남편의 범죄행위를 몰랐다는, 그의 부인을 본 후 쓴 글이라 한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지만, 「1922」만큼은 읽다가 몇 번 책장을 덮어야 했는데 독자의 심리를 주무르는 작가의 필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지독한 상황에 빠진 등장인물들의 자기합리화는 합당해 보이기도, 부당해 보이기도 한다. 독자로서 내린 결론까지 포함하는 인간 심리의 복잡함이야말로 스티븐 킹이 그려내는 필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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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 크툴루의 부름 외 12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7
H. P. 러브크래프트 지음, 김지현 옮김 / 현대문학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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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톨킨, 어둠의 러브크래프트’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을 들은 지 꽤 되었지만, 영화 『캐빈 인더 우즈』를 보기 전엔 큰 관심이 없었다. 이 영화는 「어벤저스 시리즈」의 조스 위든이 만든 작품으로, 토르 역의 크리스 햄스워스도 출연한다. 호러계의 온갖 크리처들이 등장하는데 최종 보스는 바로 러브크래프트의 ‘크툴루 신화’ 속 고대 신(그레이트 올드 원)이다. 영화의 후반부에 이르러, 주인공들이 어떤 버튼을 누르자 갇혀 있던 크리처들이 풀려나와 학살을 시작한다. 이 크리처들이 궁금해 검색한 것이 러브크래프트가 어떤 작가인지, 제대로 알게 된 시작이었다. 


황금가지에서 「러브크래프트 전집」을 출간했는데, 오역이 있다는 평이 있어 찾아 본 단편은 「에리히 잔의 선율」이었고 악기 비올을 비올라로 번역해 실망... 그리고 이야기가 썩 끌리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전집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도서정가제를 앞두고 반값세일을 할 때 꽤 고민했다. 결국 『반지의 제왕』 양장 세트를 구입했으니 어둠보다 빛을 택한 셈이다! 번역에 대한 우려보다 더 망설이게 한 것은 내가 공포문학을 즐길 수 있을까 하는 회의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면 (오에 겐자부로 선생의 말씀처럼) 책을 만나는 시기는 정해져있는 모양이다. 왜냐하면 에드거 앨런 포의 시 「울랄룸」이 좋아져서 유투브 등을 통해 시 낭송을 듣다보니 러브크래프트에 대한 관심이 크게 자라났기 때문이다. 장바구니에 있은 지 오래지만, 과연 즐길 수 있을지 여전히 의심하면서, 현대문학에서 나온 단편선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을 구입했다.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다. 이전에는 지루하게만 느껴졌던 작품들의 매력, 러브크래프트가 의도한 ‘미지에의 공포’의 참맛을 알게 된 것이다. 이 한 권으로 ‘공포문학’에 대한 호감을 끌어 올려준 것은 번역가의 공이다. 딴 이야기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번역가는 두 분이 있는데, 박현주 씨와 공진호 씨다. 여기에 김지현 번역가를 추가하려 한다. 찾아보니 왜 이 번역이 제대로 되었는가 분석한 글도 있던데 진짜 최고... 문장이 좋았던 것은 소설가이기 때문인 것도 있나 보다. 하여튼 이와 관련하여 북스피어에서 나온 『공포문학의 매혹』이라는, 러브크래프트가 쓴 이 장르에 대한 소논문/비평이 있는데 참고가 될 것 같아 구입했다. 출판사들은 김지현 번역 작가에게 의뢰를!


이 책에는 총 13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가장 재밌었던 건 『시체를 되살리는 허버트 웨스트』였는데 미친 과학자(Mad scientist)의 원조 캐릭터가 등장하는 『프랑켄슈타인』이 떠올랐다. 최근 메리 셸리의 작품을 읽었기에 더 중첩된 것 같기도... 약물 주입 등을 통해 정신과 육체를 되살리려는 허버트 웨스트가 주인공인데, 6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고조되는 광기가 대단한데 결말도 멋지다. 원제는 『Herbert West-Reanimator』로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현대의 의료 상식을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설정이지만 20세기 초의 문학이니까... 게다가 러브크래프트가 추구하는 ‘우주적 공포(코스믹 호러)’는 '인간이 인식하는 현상은 안락한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 시쳇말로 ‘멘붕’에서 오는 공포라 하겠다. 이 작품은 허버트 웨스트의 ‘광기’가 중요하므로 따져봐야 소용없다고 생각한다. 목적이 달성되었으니!


다음으로 인상 깊었던 작품은 「벽속의 쥐들The Rats in the Walls」이다. 주인공의 성 드라포어Delapoer는 에드거 앨런 포Poe의 이름에서 빌려왔다. 또 포의 작품인 「어셔 가의 몰락」도 슬쩍 등장하는 작품이다. 미국으로 이주해온 귀족의 자손이 그 뿌리를 거슬러 가 고향 성을 되찾아 리모델링 후, 이 곳에 거주하며 겪게 되는 일들인데 마지막 장면이 압권이었다. 막 현대영어에서 고대영어로 거슬러 올라가는... 제임스 조이스 생각도 나고... 또 「크툴루의 부름」도 좋았다. 지진이 일어 바다 밑에 잠긴 석조 도시, 그 곳에 잠든 고대 신을 깨우려는 컬트(Cult)의 광기가 등장한다. 깨어난 외계 신은 파괴와 학살을 일삼는, 정말 밑도 끝도 없는 근원적인 공포다. 이유도 정체도 몰라 더 무섭다. 이 단편선은 작가를 소개할 만한 대표작들이 수록되어 있어, ‘크툴루 신화’를 더 알고 싶다면 「러브크래프트 전집」을 봐야 한다. 지금이면 시간이 꽤 흘러 교정쇄가 나왔을 테니 진지하게 전집 구매를 고려중이다. 


이외에 참고할만한 설은 러브크래프트의 해양 공포증으로 인하여 크리처들의 외양이 해양 생물을 연상한다는 것인데, 몇몇 서양인들의 해산물 공포(?)를 떠올리면 아주 틀린 말 같진 않지만... joysf 에서 본 글을 링크해둔다. 



러브크래프트의 작품 세계와 해양공포증 (출처: joysf)

http://www.joysf.com/world_gac/44256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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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9-17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좋아하는 작가라서 에이바님의 글을 다 읽었어요. 황금가지 번역본에서는 ‘Delapoer’를 ‘델라포어’라고 쓰더군요. 예전에 제 블로그에 썼던 ‘비올라’ 번역 오류를 지적하는 글을 황금가지 페이스북 페이지에도 올렸는데 출판사 측에서는 역자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확인한 뒤에 교정할 때 반영하겠다고 대답했어요. 그 이후로 고쳤는지 잘 모르겠어요.

크틀루 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이름이 생각보다 너무 많아서 저 또한 헷갈릴 때가 있어요. 에이바님도 글을 쓰시다가 혼동한 것 같습니다. ‘그레이트 올드 갓’을 ‘그레이트 올드 원’으로 고쳐야 합니다. 그밖에도 ‘엘더 원’, ‘엘더 갓’, ‘아우터 갓’이 있습니다.

에이바 2015-09-17 16:43   좋아요 0 | URL
이건 제 생각이지만 영어 그대로 읽으면 델라포어지만 이 성의 주인이 귀족이기때문에 ~의 라는 뜻을 가진 de를 드 라고 읽는게 더 나은 것 같습니다. 띄워서 de la poer 이렇게요. 그레이트 올드 원이 맞습니다! 읽으면서도 몰랐군요. cyrus님 감사합니다.
 
정지용 시선 : 카페 프란스 아티초크 빈티지 시선 9
정지용 지음 / 아티초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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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정지용 시인이라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향수'인데, 여기서는 시가 아니라 가곡이다. 학창시절 라디오를 들으며 녹음을 하곤 했다. 어느 오후 가곡 「향수」가 소개되었고, 기계적으로 녹음 버튼을 누르고 그 테이프의 존재를 잊고 있을 무렵이었다. 국어 선생님이 「향수」 노래를 가지고 있는 사람 있느냐 물으셨고 나는 손을 들었다. 그리고 수업 시간, 테이프를 재생하고 다들 기대하고 있는데 전주가 길어도 너~무 길었다. 한 1분 정도... 선생님은 당황하시고 친구들은 웃는다고 난리고, 내 얼굴은 빨개졌던 기억이 난다. 결국 빨리감기를 했지...


그런 추억이 있는 시인 정지용이 바로 아티초크에서 소개하는 세번째 한국 시인이다. 월북시인이라 분류되어 시인의 작품을 볼 수 없었던 시기가 있었고 나도 그렇게 기억하고 있다. 이번에 제대로 알게 된 것이다. 현대사의 비극은 시인의 가족을 피하지 못했다. 집을 나선 후 행방불명이 된 아버지를 찾기 위해 북으로 갔던, 시인의 삼남 정구인 씨가 51년만에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통해 가족을 만난 것이다. 결국 시인의 사망 원인과 장소는 밝혀지지 않았다. 시인의 가족들은 군 수사대에 의뢰하여, 시인이 월북이 아니라 납북되었음을 알았지만...


충북 옥천이 고향인, 시인의 가정은 넉넉한 편이 아니었지만 출신 학교(휘문고)에서 유학 비용을 대주어 일본 도시샤 대학에서 공부를 계속했다고 한다. 시집 『카페 프란스』의 구성을 보면  서정적이고 토속적인 시들, 「카페 프란스」, 「슬픈 인상화」, 「파충류 동물」, 「향수」, 「바다」 연작과 「유리창」, 「종달새」, 「호수」 등으로 이어지는 시인의 작품 경향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이와 더불어 「가톨릭 청년」의 편집을 맡아 종교적 신앙을 드러내는 시도 함께 수록되어 있다. 오에 겐자부로의 『읽는 인간』에서도 등장했던 윌리엄 블레이크를 보니 반가웠는데, 정지용 시인의 졸업 논문이 「윌리엄 블레이크 시에 있어서의 상상력」이고 그의 초기 시에 영향을 끼쳤다 한다. 타고르와 위트먼에도 관심이 있었고, 귀국 후에는 모교에서 영어 교사로 근무하며 '정종'이란 애칭을 얻었다고 한다. 애주가이기도 했다 하니 이보다 더 귀여운 애칭이 있었을까? 요즘이라면 영어교사이니 영어 정지용을 줄여 영정, 영지라 불렸을지도.


김영랑의 「시문학」 동인으로 이후 「구인회」 활동에도 참여했고, 「문장」의 편집위원으로 청록파 시인들을 등단시키기도 했다. 「가톨릭 청년」 시절에는 시인 이상을 알렸고, 카프의 임화와도 친분이 있었다. 이러한 친분으로 좌익 계열 문인단체 소속이기도 했는데 광복 이후엔 작품 활동이 뜸했다. 아마 순수시를 지향하는 그와 맞지 않아서인 듯 하다. 시선집의 제목이기도 한 「카페 프란스」는 당시 젊은이들에게 애송된 작품이다. '자작의 아들도 아닌' 나라도 집도 없는 식민지 청년들의 하소연, 아무도 반기지 않는 처지를 그리고 있다. 잘 알려져 있고, 처음 읽었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 없는 「유리창」. 이 시는 폐렴으로 잃은 자식에 대한 슬픔을 노래하는데, 감정의 노출을 자제하고 절제미를 보여준다. 「옥류동」, 「 비로동」, 「백록담」에선 제목에서와 같이, 자연을 소재로 한 것을 알 수 있다.


소개하고 싶은 시는, 아티초크의 다음 시선으로 예정된 폴 발레리의 「석류」와 비교할 수 있는 시. 그리고 일부만 소개할 「우리나라 여인들은」 시인이 바라보는 여인들에 대한 애정과 생명력을 느낄 수 있다. 마티스의 「춤」이 생각났다. 그리고 요즘 유행인 먹방도. 어울릴 음악은 역시 가곡 「향수」이겠지만 그토록 전주가 길었던 버전은 웹 상에 없나 보다. 아, 선생으로서 학생들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는 세 편의 산문도 아름답다.



석류


장미꽃처럼 곱게 피어가는 화로에 숯불,

입춘 때 밤은 마른 풀 사르는 냄새가 난다.


한겨울 지난 석류 열매를 쪼개어

홍보석 같은 알을 한 알 두 알 맛보노니,


투명한 옛 생각, 새론 시름의 무지개여,

금붕어처럼 어린 여릿여릿한 느낌이여.


이 열매는 지난해 시월 상달, 우리 둘의

조그마한 이야기가 비롯될 때 익은 것이어니.


작은 아씨야, 가녀린 동무야, 남몰래 깃들인

네 가슴이 졸음 조는 옥토끼가 한 쌍.


옛 못 속에 헤엄치는 흰 고기의 손가락, 손가락,

외롭게 가볍게 스스로 떠는 은실, 은실,


아아 석류알을 알알이 비추어보며

신라 천년의 푸른 하늘을 꿈꾸노니. 

Henri Matisse, Danse (1910) 사진 출처


우리나라 여인들은


우리나라 여인들은 오월달이로다. 기쁨이로다.


여인들은 꽃 속에서 나오도다. 짚단 속에서 나오도다.

수풀에서, 물에서, 뛰어나오도다.

여인들은 산과실처럼 붉도다.

바다에서 주은 바둑돌 향기로다.

난류처럼 따뜻하도다.


(중략)


여인들은 생률도, 호두도, 딸기도, 감자도, 잘 먹는도다.


(중략)


여인들은 소프라노로다. 바람이로다.

흙이로다. 눈이로다. 불이로다.

여인들은 까아만 눈으로 인사하는도다.

입으로 대답하는도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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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9-16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페 프란스’ 마지막 구절이 인상 깊었어요. 강아지가 내 발을 빨아달라는 구절. 나라 잃은 슬픔을 강아지의 애교로 달래려는 시인의 모습이 처량해보였어요.

에이바 2015-09-16 13:31   좋아요 0 | URL
cyrus님 이 시를 아시는군요! 이국종 강아지야 내 발을 빨아다오, 내 발을 빨아다오. 파도도 바다도 모두 좋지만 역시 표제작이 남기는 인상이 강한가봐요. 표지들도 다들 이쁘답니다.

북다이제스터 2015-09-16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정말 좋아하는 마티스 그림이네요. 보고 있으면 웬일인지 두둥~~ 북소리가 들리며 기분이 좋아집니다^^

에이바 2015-09-16 19:05   좋아요 0 | URL
생동감이 느껴지고 아주 좋지요. 저도 정말 좋아하는 작품이에요.

수이 2015-09-16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고 있는데 학생 때 알던 정지용보다 더 좋아서 계속 정지용 정지용 거리며 읽고 있어요. :)

에이바 2015-09-16 19:06   좋아요 0 | URL
야나님도 읽고 계셨군요! 야나님의 시 사랑. 학창시절에 읽던 시들이 또다른 울림을 주더라고요. 모아서 보니 더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