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제국 패망사 - 태평양전쟁 1936~1945 걸작 논픽션 17
존 톨랜드 지음, 박병화.이두영 옮김, 권성욱 감수 / 글항아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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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대한 자유의 실존적 가치를 잃어 버린
국가적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

전체 국민이 국가 이데올로기의 최면상태에 빠지게 됨으로써 발생한다.
결국 국민이 국민 스스로가 큰 불행에 빠진 줄도 모르고 죽어간다.
그게 종교든 이념이든 그 무엇이든간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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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9-10-22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몇 날에 걸쳐 겨우 모두 읽었다.
거의 벽돌 두께로 두꺼웠다.


강옥 2019-10-22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돌프 히틀러‘를 쓴 그 유명한 작가 (존 툴런드? 톨란드?)의 명작을 읽으셨네요.
가감없이 있는 그대로 냉정하게 기술하는 작가로 유명하던데
책이 너무 두꺼워 펼쳐볼 생각도 못했는데..... 대단하십니다~~~
세계대전의 아시아편이라고 보면 되겠네요.

yureka01 2019-10-22 15:07   좋아요 0 | URL
아돌프 히틀러의 저자 맞습니다.
졸면서 읽었어요..분량이 많아서 한번에 못읽고 나눠서 읽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9-10-22 14: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의 표지를 볼 때마다 영화 「태양의 제국」이 생각납니다. 벌써 30년도 지난 영화가 되었네요 ^^:)

yureka01 2019-10-22 15:08   좋아요 2 | URL
상당히 인상적인 영화였어요..벌써 그렇게 된건가 찾아보니..30년이라니..놀랍네요.
 
말할 수 없어 찍은 사진, 보여줄 수 없어 쓴 글 - 힘껏 굴러가며 살아가는 이웃들의 삶
최필조 지음 / 알파미디어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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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재목은 사진을 오랫동안 찍어 왔던 경력이라야 표현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문장이다. 많은 사진을 찍었고, 찍은 사진에 어쭙잖은 글을 덧댔던 게 사진과 글이 각각의 한계를 자인한다. 사진만으로 전부를 다 말할 수 없었던 한계, 사진만으로 전부를 표현하지 못한 자기 부족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사진으로 전부를 보여 줄 수 없어서, 사진에 사족처럼 글로 보완하는 지속적인 미련이 더해졌다. 사진은 사진 프레임 속에서 현장의 제한적인 면적을 벗어날 수가 없다. 이 제한적 면적은 그대로 표현의 제한으로 연결되고, 표현에 대한 의도의 제한으로 이어진다. 그 제한적 표현을 글로 표현의 부족함을 채우려 했다. 사진으로도, 글로도 완성되지 않는, 미완의 여운이 항상 따라다닌다. 전부를 다 보여줄 수도 없고 전부를 모두 서술할 수 없는 한계는 늘 타협을 만든다. 이를 우리 삶의 내면적 제한이라고 하자. 즉 무한의 불가능성이라고도 하자. 어쩌면 사진과 글은 유한한 우리들이 가진 무한의 도전성의 오기스러운 내포는 아닐까. 사진은 빼기라고는 했지만, 글은 더하기가 된 셈이다. 빼기와 더하기의 중화작용이라 그럴싸한 핑계를 댄다.


그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자기표현을 할 수 없으면 살아 있다 말할 수도 없다. 소통은 표현에서부터 출발한다. 완벽한 소통의 차단이 곧 불소통이며 비록 전부를 다 표현할 수 없다 해도, 인간의 역사는 끝없는 유한적인 표현을 했던 타협의 소통 역사이다. 커뮤니케이션이 없는 사회는 죽은 사회나 마찬가지다. 이나마 정도의 표현으로 소통에 이해 오늘날까지 유지될 수 있었던 원인 때문으로 살아왔기도 하다.


그렇다면, 사진은 사진 이 자체가 목적일까, 아니면 수단일까? 사진 자체만으로 표현의 목적으로 삼는다면 사진 이외의 다른 어떤 것도 배척하고자 할 것이고, 사진이 단지 표현적 수단의 일종이라 삼는다면 사진에 다른 어떤 매체를 추가시킨다 해도 표현의 목적에 비추어 수용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나는 사진을 목적으로 보는가?, 수단으로 보는가에 따른 견해는 무엇일까? 결과론적으로 이때까지 사진은 수단이었다. 표현, 소통 나와 나를 둘러싼 세계와의 대화가 목적이었고 이 목적을 위한 표현으로써 살아 있음의 소통이였던 것. 죽은 자는 말이 없다 했다. 살아 있는 자도 말이 없다면? 살았다 말할 수 없다는 전제가 그래서 성립한다.


이 책에 실려 있는 사진은 대체적으로 먹먹한 담백함이다. 옅은 파스텔 톤의 흑백 사진들이 주를 이루니 색채의 화려함이 다소 적었다. 사진 스타일이 간혹 흑백 아닌 컬러 스타일도 있지만 주류는 아니었다. 글 또한 미려한 문장으로 화려하게 수식하지도 않는다는 느낌이 은은하게 들었다. 그야말로 표현에서 첨가된 양념보다 피사체 재료, 이 자체의 맛같은 느낌이 들었다. 작가는 몇 가지의 주제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표현된 장편 드라마 같은 구성을 이어 낸다. 때로는 밋밋하기도 하고 때론 소박하기도 한, 간이 덜된 피사체는 하나같이 시간의 늙음을 익음으로 나타내려 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어느 일부 사진작가들은 사진 주체나 화두를 하나의 공간에서 만들어 낸다. 동일한 장소에서 같은 시대의 모습을 담고자 한다. 그 속에서의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일정한 공간적 시간적 거리을 기록하는 르포 형식으로써 그 면면의 깊이 있는 탐색을 의도하려 한다. 같은 곳에서 매번 찾아갔을 때마다 발견되는 또 다른 면모의 사진은 그래서 익숙함에서 낯섬을 발견하는 상이점이다. 상이한 차이와 미세한 균열의 피사체에서 느껴지는 뉘앙스까지 보게 된다. 매번 자주 마주치는 사람들에게서 그때마다 달라지는 삶의 표정의 차이와 삶의 분위기를 읽는 것. 이게 사진을 더 심도를 더해가는 주요한 포인트가 아닐까 싶다. 처음 만난 낯선 이가 자주 찾아와서 대화의 물꼬를 트고 급기야 안부 인사를 주고받는 단계까지 이르게 되었을 때, 사진은 인위적인 것을 벗어나서 부담 없는 자연스러움 표정을 읽을 수 있다. 그만큼 사진가의 노력과 열정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피상적으로 한 번으로 쭉 주마간산처럼 흩고 지나가버리는 일회성의 사진이 아니라 자주 찾아서 그 속의 속속들이를 보고 싶은 의도. 이게 외형으로 다가가서 내형으로 전이하는 것. 사진은 모름지기 깊이 있게 작업해야만 하는 작가의 주제의식이자 작가주의의 모습이다. 시류에 따라 떠돌아다니는 유행 타는 사진이 아니라, 몇 가지의 카테고리를 자신의 사진 작업의 화두를 삼아 추구하는 자세가 그러하고 그런 태도에서 자주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무장해제된 표정을 보이기 마련이다. 자주 찾아와서 안부를 묻고 삶의 대화 상대가 되어 줄 때 나오는 자연스럽게 옮아가는 감정의 이입은 꾸미지 않는 사진의 솔직함을 만나게 해주는 중요한 포인트이다. 사진의 지속성은 그리 쉬운 게 아니다. 누구나 꾸준하게 작업하는 것도 어렵다. 그런 점에서 사진작가의 집념이 보이는 부분을 높이 평가할만하다. 따라서 사진에 등장하는 사람과 얼마나 많은 소통이 필요했을까라는 질문에 사진의 표정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인류의 역사는 부족하지만 이 결핍이라는 한계 속에서 끝없이 소통하려 했고, 표현하려 했고, 대화하여 그 뜻을 이해하려 했다. 세계의 이해는 소통에서 비롯된다. 마찬가지로 사진도 피사체의 대상들과의 소통이다. 사진 속에 사람이 있다면 사람과 소통이 필요하고, 자연이라면 나무나 숲이라면 그것과 소통해야 한다. 소통의 방식은 다를 수 있으나 기본적으로는 이해와 공감이 필요하고 교류로써 교감이 이루어져야 솔직해진다. 솔직해야 우리는 즐겁게 안심할 수 있는 본능적인 존재인 까닭이다. 나와 세계와의 소통. 이해와 교감으로 공감으로 확대 생산되는 선순환을 만나고 싶은 것이 아닐까 한다.


요즘은 소통의 수단인 매체는 나날이 다양화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그런 수단이 발전될수록 소통을 통한 공감력이 떨어진다. 수단은 기술적으로 높아졌으나 소통의 질은 손편지만도 못할 때가 있다. 따라서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 이해의 바탕이 되는 전과 후의 전제를 알지 못할 때, 사람들은 저마다 나를 제외한 모든 세계와의 단절을 느끼고 외로움을 만들어 내고, 이는 사람들이 제각각의 파편화되어 버리는 결과로 연결된다. 다들 외로운 시대라고 한다. 그만큼 각자가 공감 불능 시대의 각자도생이라고 한다. 그러나 여기서 핵심은 외롭다고는 해도 누군가 다가와 주기를 바라기만 했지 먼저 손 내밀며 소통의 적극성은 주저한다. 이런 점에서 이 사진 책의 작가는 카메라로 사진을 담으면서 자신의 손을 먼저 내밀었다는 것이다. 외로움을 견디는 제일 좋은 방법은 기다리지 말고 내가 먼저 나의 세계로 손을 먼저 내밀어 볼 일이다. 작가의 사진은 손 내밀기와 손잡기이다. 손잡기 사진이 아닐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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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9-10-13 09: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말과 글 또는 다른 어떤 수단으로든 자신을 표현할 수 있다면, 그리고 상대가 이를 알아들을 수 있다면 훌륭한 의사전달, 커뮤니케이션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언어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이를 통해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사상 흐름은 한계가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언어 역시 의미를 전달하는 수단에 불과하니까요.^^:)

yureka01 2019-10-13 22:13   좋아요 2 | URL
오해없이 완전한 전달이 사실은 어떤 수단이라도 불가능하죠..
그런 점에서 완전함과 불완전함의 그 어떤 지점에서 있으니까요..^^..
그러니 다양하고 많은 표현이 풍부할수록 오해가 이해로 바뀌겠지요~~~

2019-10-13 11: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0-13 22: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9-10-13 13: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무래도 이 책을 사야겠어요.
이달의 리뷰 당선금으로다가 ^^

사람들의 뒷모습 사진은 저도 한번 찍어보고 싶었던 소재들이네요.

yureka01 2019-10-13 22:15   좋아요 1 | URL
사진이 아주 따뜻하면서도 느껴지는 사진 스타일입니다..
글도 좋더군요..
사진 참고 많이 될 거라 생각됩니다...

cyrus 2019-10-14 07: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진 찍기를 ‘손 내밀기’와 ‘손잡기’로 비유하는 내용이 정말 좋았습니다. 이런 사진들은 그저 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따뜻해질 것 같습니다. ^^

yureka01 2019-10-14 09:13   좋아요 1 | URL
대화할려면 일단은 악수부터 하고 시작해야 물꼬를 쉽게 틀수 있는 거 같아요..^^..

강옥 2019-10-14 09: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학사상 10월호를 읽었는데요
나태주 시인이 올해의 소월시문학상을 받으셨더군요
시인은 I love 보다 I need you 가 중요하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노시인에게 시는 인생 그 자체였다고 하네요. 간절하고 간절했다고.....
어느 방면으로 명성을 얻은 사람들은 그 내면에 사랑보다 필요가 간절했던 게 아닌가 싶고.
글로 못다한 얘기 사진으로, 사진으로 못다한 얘기 글로.....저도 이런 게 좋은데
어떤 사진가들은 사진에 글 붙이는 걸 질색하더라구요. 사진만으로 승부해아 한다나요? ㅎㅎ

yureka01 2019-10-14 09:13   좋아요 1 | URL
시인의 감수성으로 치면 더더욱 간절한 건 어쩌면 당연한 게 아닐런지요..

사진을 수단으로 삼느냐 사진을 목적으로 삼느냐 그 차이겠지요..
전 사진도 일종의 수단이라고 봅니다.
글도 수단이죠.
사진 이 자체의 완성도라는게 어떤 의미인지는 아직도 모르겠어요..^^..

2019-10-18 13: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0-18 22: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알려지는 사진 책이 드물어서 가끔 오래전에 출간된 사진 책을 종종 찾는다.  찾다 보니 걸려든 책이다. 저자 조민기라는 책에 포커스가 맞혀졌다.

 

훤칠한 외모와 영락없는 배우스러운 스타일, 연기력도 선이 굵고 성격도 짙은 지명도가 꽤 있는 배우였다. 언젠가 일전에 아빠와 딸이 함께 출연하는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해서 예능성도 보였기도 하고, 아이들에게 자상하고 가정적인 그런 아빠였던 모습으로 연출된 프로그램으로 기억한다. 게다가 지방 사립대학에서 연기를 지도하고 학생을 가르치는 어엿한 교육자였기도 하고 평교수가 아니라 학교에서 보직도 있는 공헌도가 상당했던 걸로 안다. 또한 그는 사진가로써도 명성이 적지 않았다. 배우이니 만큼 배우로서의 주목도를 바탕으로, 사진 관련하여 다큐 르포 프로그램에도 출연해서 그의 사진을 담아내는 모습을 기억하기도 한다. 이만하면 그의 이력과  타이틀 정도로 봐도 외적으로 보이는 부분으로서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유명한 배우이자 연기 전공의 교수, 사진작가까지. 참 부러운 모델이 아닐 수 없었다. 이른바 나름대로 보이는 부분은 잘 나가는 배우였다고 결론낼 수 있다. 더욱이 교수이기도 해서 책까지 내기도 하였다. 이 책을 찾아 주문하려 했지만 품절이었다. 물론 출간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터라 재고가 남아 있을 거 같지도 않았다.

 

그러나, 미투 운동이 활발히 벌어질 당시 그도 역시 미투 운동의 중심에서 각종 피해자의 증언과 하소연을 하여 경찰의 조사 대상이 되는 와중에서, 그가 쌓았던 명성과 타이틀의 도덕적 타격은 심각했을 것이다. 그러니 안타까운 결말을 스스로 지어 버렸던 건지도 모른다. 소위 잘 나가고 있던 그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불행의 중심에 있었고,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사람들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사람이 잊힌다는 건 순간이다. 그런 인지도와 영향력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잊혀간 전직 배우가 되었다.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자신의 과오나 오류, 혹은 실수에 대해 스스로 드러내어 자성과 함께, 피해자들에게 정중하고도 진정성의 행동으로써 사과하며 형사적, 민사적인 죗값을 치르고, 그럼으로써 반성하여 다시는 그런 오류나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럼으로써 용서받을 수 있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 누구나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을 잊고 사는 건 아닌가. 명성이 한순간에 추락해도 다시 반성과 용서로 재기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게 얼마나 용기가 없었던 건지, 그저 자신의 삶을 마감시켜 버림으로써 덮어가려 할까? 우리가 뉘우치는 것이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잘못한 사람이 진정성 있는 용서를 구하고 반성하는 순수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그래서 큰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그럼으로써 용서를 받고 다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천명을, 받들 수 있음에도 이를 활용하지 않는다.

 

더구나 무엇보다도 더 안타까운 것은, 그는 사진을 찍어 왔던 사진작가가 아니었던가. 사진은 피사체를 렌즈로 통해 사색의 근원을 짚으려 하는 모티브이다. 사진을 통해서 사유하고 자신에 대한 철학적이며 관념적인, 나아가 예술의 지향성을 추구하는 삶이다. 이는 껍데기의 사진이 아니라 사진의 철학적 근간으로 들어가려는 예술의 순수성에 대한 자기 추구이다. 당연히 자신의 삶을 사진에 이입시키는 사색의 골몰이다. 결국 그의 불행한 선택은 이런 사진의 가르침을 통해서 배운 삶이 아니었단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껍데기의 사진에 치중하는 부분이 있는지 다시금 한번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 아닐까라는 질문이 뼈아프게 다가오는 이유이다. 사진은 물론 보여주는 부분이 전부라 하지만 반드시 전부도 아니다. 자신에게 보여주는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사진은 자신의 삶에 이입시켜 투영하는 삶이라야 한다. 사진의 명성, 경력, 어디 수상 이력의 공명감 따위에 사진에 골몰하게 되면 사진에서 그 가르침을 배울 수 없다. 그런 공명심이란 것도 반드시 사진 아니라도  얼마든지 쌓을 수 있다. 특히 그는 배우였으니 배우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훌륭할 수 있는데, 굳이 사진은 왜 추가되었을까라는 부분이다. 따라서 성찰과 되돌아보는 계기의 사진이 되지 않는다면 사진은 그저 허영과 사치의 사진이 되고 만다. 특히 여기서 사진의 예술론으로써의 허영과 사치가 될 때, 사진의 본질을 잃어버리는 꼴이다. 사진의 허영과 사치는 결국 표피적 외형적인 보여주는 과시용으로 전락하고, 수상 경력과 사진 이력에 집착하기도 하고 때로는 카메라의 뽀대에 더 관심을 가지는 경향으로 흐르기 마련이다. 작은 똑딱이 카메라로도 얼마든지 훌륭한 사진을 담는 작가들의 과시하지 않는 진솔한 모습은 그래서 더 감동으로 다가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람은 사회적 위치와 명성, 혹은 권력이 높아갈수록 유혹에 빠질 위험성은 증가한다. 이는 욕망의 사이즈가 커지는 결과를 만들어 위험한 유혹에 빠지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위험으로부터 얼마만큼 자신을 절제시켜 제어할 수 있는 자성과 자각이 폭주의 욕망에 따른 위험성과 비례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유혹의 파멸적 위험성에 비례하는 자성은 늘 부족하거나 따라가지 못하게 될때 사고는 발생하기 마련이다. 가장 안타까운 점은 그가 사진으로 자신의 진실한 내면과 마주하였을까라는 점이다. 사회적 명성이 높아도 오롯한 자신의 내면적 사진이 아니었다는 결과적인 결론이 무척이나 아쉬운 점이다. 왜냐하면 사진은 끝이 없는 자신과의 대화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신과의 질문과 대화에서 도출해낼 수 있는 자각은 유혹의 위험성으로부터 조절되어야 하는 이유기도 하다. 물론 사진은 외형적 이미지로만 보일 뿐이고, 그게 자신의 내면적인 질문과 대화인지는 자신만이 안다. 그래서 사진심리학에서는 움직이는 동선과 행위로써 사진이 내면으로 오버랩으로 덧대진다. 많은 사진가들이 사진 따로, 삶의 행위 따로인 경우를 보게 된다. 사진과 삶의 합치성은 사진 활동에 중요한 덕목이다. 아무리 사진을 잘 찍고 외형적 이미지가 절묘해서 대단한 작품성으로 돋보인다 하더라도 그 삶이 사진의 보이는 의도와 전혀 다른 이중성으로 포장되었다면 사진의 철학은 자동 격하되기 쉽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의외로 사람의 평가에 있어서 한 번의 실수를 너무 가혹하게 치부해버린다. 항변해도 아무런 소용도 없고 한 번의 낙인은 죽을 때까지 따라다닌다. 이와 비슷하게 사업에 실패하고 알거지가 된 사람도 극복하기란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재기할 여력조차 깡그리 박탈해버린다. 너무 막다른 골목까지 몰아세워 빠져나갈 구멍조차 없애 버리는 경향이 있다. 실수에 대한 온갖 비난과 매도, 살아온 삶의 전부 그 자체까지 부숴버린다. 한치의 용서조차 허락하지 않는 섬찟함이 있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누구라도 완벽한 사람이 없다고는 하나 전부 완벽해져야 한다고 믿는다. 누가 저 여인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가라고 예수께서 가르쳤으나, 우리는 비난 비판을 너무 쉽게 한다. 직간접적인 피해자까지는 그럴 수 있다 치더라도 아무나 마구 돌부터 던지고 있는 셈이다. 세상엔 용서받지 못할 자는 없다. 세상엔 용서 구하지 못할 것도 없다. 그러나 용서에 어찌나 인색한지 사람 하나 죽이는 건 눈도 깜짝하지 않을 만큼 강렬하다. 욕먹을 짓 했다 해서 욕만 날리는 것도 아니었더란 거다. 역시나 비난은 쉽고 자성은 어렵다. 이는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해당한다. 다른 산의 돌을 보고 내 산의 돌을 생각하는 것. 이것을 타산지석이라고 했다. 타인의 행위에 돌을 던지기보다는 타인의 악행에 나를 비추어 나의 돌은 얼마나 연마할 것인지를 먼저 따지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어느 일방의 잘못을 매도하기에는 후순위가 되어야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가장 큰 피해자는 그 가족일 것이다. 아빠를 잃었고 남편을 잃었다. 명망 높았던 교수라는 것에 가리어져 수치감에 치를 떨었을 학생들이었다. 정작 본인 스스로가 파국으로 끝을 맺어 버렸으나 그들이 입은 상처는 크고도 깊다. 앞으로도 상흔이 많이 남았다. 상처의 아픔을 이겨 내고 극복할 수 있는 기회조차 없애 버렸다는 점이 더 가슴 아픈 부분이다.

 

타산의 돌을 보고 내 산의 돌이나 더 갈고 닦아야 하지 않을까, 오점을 남기지 않고 상처 주지 않는 나의 돌을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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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0 13: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0-10 13: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9-10-10 15: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나름 좋아했던 배우였는데 안타깝게 됐죠.
모르긴 해도 그런 일을 당할 때 자신이 어떻게 처신을 해야하는지에 대해선
아는 바도 들은 바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쪽에선 애꿎은 사람만 죽어나갔다고 미투운동을 비난하곤 하죠.
연출가 이윤택 씨는 복역중인 걸로 아는데 그의 책은 아예 품절되었더군요.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던 고은 씨도 그 리스트에서 제외된 것 같구요.
안타까운 일이지만 한번은 통과해야하는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명예는 높은 도덕성과 함께 온다는 걸 이 나라 셀럽들은 이제 좀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yureka01 2019-10-10 15:27   좋아요 1 | URL
명예는 도덕성과 함께라는 것이 핵심이네요..
누군가 억울하고 부당한 피해자가 있다면 그 명예는 허울이 되어 버리거든요.

왜 평생을 쌓은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유념하지 못했을까 이게 너무 미스테리하거든요.
특히 남여의 성적인 부분은 예민한 거라서 말이죠.
흔히 권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자의적으로 해석해버리는 독선에 빠지게 될때. 발생하거든요..

매우 안타까웠던 이유입니다.

강옥 2019-10-11 11: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람들은 네거티브에 약하더군요
여태 쫗게만 보던 사람도 나쁜 소문이 돌면 금방 손가락질 해요
진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일단 색안경을 끼고 보더라구요
한 사람을 지목해 그를 탈탈 털어 왕따시키는 행태가 서울 강남에서 횡행햇다고 하더군요
같은 무리들 속에서도 미운 넘 하나 골라 자빠뜨리는-
광화문파와 서초파가 격돌하는 작금의 세월이 내란같이 불안한데 과연 누굴 믿어야할까요?

yureka01 2019-10-11 11:46   좋아요 0 | URL
항상 크로스 체크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단편적이고 일방적인 한쪽의 주장만으로 판단하면 자칫 오해할수도 있거든요.
주장에 타당성.주장의 신뢰성 이게 보완되어야 할 거예요.
요즘 뉴스가 뉴스라기보다는 의혹으로 소설같아서요.
일반적으로 팩트쳌라고는 하지만 이게 간단한게 아니라서요.

2019-10-12 1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0-13 07: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진 스타일 : ★

아주 좋아하는 스타일의 사진들이 겔러리 마냥 나열되어 있음.


사진 감각 :   

카메라를 항상 들고 다니며

오래 담은 내적 압력이 느껴지는 사진들.


사진 책 가격 : 

사진 책 4만 원 5만 원은 싼 책.

심지어 7만 원 8만 원 넘는 책값.

그런데 이 책은 고작 2만 원. 

이렇게 싸게 출간되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놀람.


오랜만에 사진 책으로 인해,

당장에 카메라 들쳐 매고 나가고 싶게 만든 책.


사진 관심없는 분들은 별로 감흥 없을 겁니다.

좋아하는 것.

좋아하는 것에 돈을 쓰고 즐거울 수 있는 것.

취향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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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사진은 제가 담은 사진 방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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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9-10-03 07: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간밤에 남부지방에서는 많은 비가 내렸다 들었습니다. 별 피해 없으신지요? 6번째 사진은 현실과 추상이 겹쳐진 느낌을 받습니다. 르네상스 시기 인간 중심의 세계관을 대표하는 원근법 구도에서 기독교의 신을 상징하는 십자가(?)를 가까운 곳에 표현하셔서 절묘하게 구도를 잡으셨다 생각했습니다. 물론, 교차로 표시판을 제 관점에서 멋대로 해석했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저 가로수의 끝을 향해 가면 누군가 무엇이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유레카님 좋은 사진 잘 봤습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yureka01 2019-10-03 08:38   좋아요 2 | URL
네 아직 낙동강에 나가보지는 않았는데요..밤새 문자로 홍수주의보 경고가 날라 오더군요..
비가 많이 내렸거든요..

사진 해석이야 어떻게 하는가는 사진 보는 분의 자유라서^^..

감사합니다~^^..

CREBBP 2019-10-03 10: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찍으신 사진 너무 좋네요. 배경화면으로 써도 좋을 거 같아요 ^^

yureka01 2019-10-03 22:2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즐거운 감상되셨길^^..

stella.K 2019-10-03 18: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우, 황홀하네요. 제가 대나무와 가로수를 좋아하는데 입이 다물어지지 않습니다.
대나무는 수묵화 같고, 가로수는 어디가면 볼 수 있나요?
사진집 디게 비싸군요.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싸게 나왔을까요? 좋으셨겠습니다.
암튼 잘 보고 갑니다.^^

yureka01 2019-10-03 22:22   좋아요 0 | URL
대나무는 수묵화 느낌으로 담았습니다.
작은 카메라에 달린 흑백효과기능이 좋더군요..
네 대부분 사진집이 두께가 있고 책 싸이즈가 큰편이라서 비싸거든요..
이 책 사진도 크게 담았는데 의외로 가격이 비교적 낮아서 놀랬습니다.
3-4만원정도 해도 될 사진집이었어요..사진 참 맘에 드는 책이었어요..
감사합니다~

서니데이 2019-10-04 20: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이퍼의 사진이 참 좋습니다. 흑백사진은 컬러와는 느낌이 또 다른 것 같아요.
유레카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yureka01 2019-10-05 09:11   좋아요 2 | URL
흑백이 뭔가 사진 스럽다고나 할까요.ㅎㅎㅎ 제가 왜 흑백이 좋을까 궁금하더군요..
혹시나 허영끼가 있나..왜 뭣때문일까..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뭐 이랫든 저랫든 좋으면 그만이죠.^^.

강옥 2019-10-05 13: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2만원짜리 사진집 제목과 작가를 갈켜주세욤
확대해도 잘 안보여요
유레카님이 별 다섯개를 주실 정도면 돈이 아깝지 않을 거라고 사료됨 ㅎㅎ
유레카님이 사진집 내면 득달같이 주문할 거예욤

yureka01 2019-10-05 22:18   좋아요 1 | URL
사진 책치고 가격이 부담없이 감상할 수 있는 책입니다..

deja vu lsland 입니다.
클릭하면 책이 바로 링크됩니다..

사진 좋아하시는 지우당님 성향에 후회하지는 않을 거예요..

아고..전 사진집 언젠 한번 낼까요..흐흑....

2019-10-05 22: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0-05 23: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0-10 12: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0-10 13: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0-12 10: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0-13 07: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 읽기만 해도 수월한 팔자?라서 살만하면 "까이 거" 좋아하는 독서를 안 할 이유가 없다. 시간 없다는 핑계라 해도 어쩔 도리 없이 바쁜 일상에 정신이 아득하다. 돈 복은 없이 일 복이 터진 인생이라 그런지 독서할 시간이 "좃또마떼" 부족하다. 널널한 시간을 가진 사람이 진짜 부자라는 걸 실감한다. 돈 많아도 늘 시간이 부족해서 허덕거리는 놈은 가난한 자이다. 시간의 여유를 가질 수만 있다면 모를까, 다들 이렇게 바쁨으로 삶에 매몰되는 줄도 모르고 인생이 묻어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러나저러나 책 사놓고 책장에 쌓인 책도 아직 몇 권이나 된다. 낮에 일하고 퇴근하여 운동이라도 한두 시간 소비하고 나면 그다음은 책을 펴놓고 졸음과 싸운다. TV는 거의 보지 않는다.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것은 눈꺼풀이라는 게 괜히 나온 건 아니다. 피곤함인지 그야말로 몽롱함으로 마치 꿈을 꾸는 듯 멍해진다. 내가 무슨 수험생이나 된다고 읽다만 책과, 사놓고 읽지 못한 책을 읽어 내야만 하는 의무감을 가질 것도 없다. 맑은 정신으로 또렷할 때나 가능하다. 책상에 앉으면 졸리니 러닝머신에 걸으면서 책을 읽는다. 한편으로 내가 뭘 하겠다고 이렇게까지 책 읽기에 몰입해야 하는가라는 회의감도 살짝 들기도 한다. 함께 운동하던 와이프가 옆에서 "운동으로 워킹하며 책 보는 냥반은 당신이 처음이지?"라고까지 핀잔성 거들먹거린다. 답은 간단하다. 안 그래도 희미해지는 지성이랍시고 조금은 또렷해지고 싶은 몸부림, 이게 독서라고 설명했다. 사진 찍으러 가고 싶다. 책 끼고 살고 싶지는 않는데, "그나마 책이라도..."라는 꿩 대신 닭의 심정일뿐이었다.

 

오늘도 많은 책들이 출간되고 있는 중이다. 게다가 요즘은 책을 읽지 않는 시대에 책이 너무 흔하게 다량 출판 시대이다. 하루에 몇 권이나 출간되는지조차 다 모른다. 알라딘 서재에서도 소개되는 거의가 대부분 신간으로 구입도 못 했던 책이다. 그거 다 보겠다는 목표라면 도저히 무리. 간행물 등록 건수가 얼마인지도 찾아보기도 벅차다. 그리 많은 책은 누군가에게 읽히기나 해야 할 텐데 결국 다 못 읽고 세상을 떠난다. 그래서 선택과 집중이었다.

 

한편으로는 내가 뭐라고 되는 것도 아닌데, 이 책의 편집자께서 친히 메일까지 주셔서 고맙기는 한데 '앗, 철학 책을 소개' 했다, 솔직히 (학문적 혹은 기타 등등) 철학은 내가 쥐뿔도 모른다. 철학에 사용하는 단어조차 전혀 적응이 되지 않는 독자 중 하나이다. 아쉽게도 편집자 분께서 나의 알라딘 서재 글 몇 번만 주의 깊게 봤다면, "아 이놈은 사진 좋아하는 놈이구나"라고 간파하고도 남을 것이다. 대상을 잘 못골랐다. 그런데 철학 책이라니. 뭔가 조금 찜찜하다. 철학 책은 상상의 세계. 대부분 단어조차, 개념조차 모르니까 활자가 레코드판에 바늘 튀듯이 글씨가 겉돈다. 게다가 꾸벅꾸벅 졸다 보면 책 페이지가 진도가 잘 나가질 못한다. 그래서 휴일 주말에 몰아서 읽는 편인데 가끔 책 읽기도 때로는 노동같이 피로하다.

 

내가 아주 좋아하는 사진에 관한 현장에서 기록한 메시지를 담은 책이었더라면 진짜, 뻑~갔겠지만, 철학의 읽기가 어렵다. 괜히 메시지 받고 책까지 구입해놓고 쌓여 있는 책 읽기에 대한 부채감이 생기기도 한다. 빨리 읽지 못해 뭐라도 책 안내성 글이라도 쓰고 싶지만 빨리 쓰지 못해 미안하고 한편으론 뭐냐, 사진 서재 블로그에게 사진 책 소개는 못할망정 철학 에세이 책이라니, 갑뿐사~이기도 하다.

 

그래도 어쩔까? 개인적으로, 누구 부탁이나 요청에 대해 진짜 거절을 못하는 편이다. 오죽했으면 거주하는 집 명의를 와이프 이름으로, 통장이나 카드의 대부분을 와이프 명의로 했겠는가. 보험도 마찬가지로 와이프 명의로 했다. 아예 내 이름으로 하지를 않는 이유를 누구보다도 잘 하는 와이프의 안전장치였다. 그런데 책에 대한 요청은 와이프 허락받을 건 아니라서 질렀는데 여전히 책장에 쌓여있어도, 또 이 책도 구입했다. 이 나이에 아직도 부사수 하나 없이 가방 들고 다니며 버티는데 게다가 요즘 가을철로 접어들어 사진 찍으러 나가기가 너무 간절하다.  책보다 사진이 좋은데 언제 책을 읽고 리뷰까지 마칠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집중하여 몰입하게 읽어야 하지만 책상에 앉아서 읽자니 너무 졸아서 시간 관계상 이 책도 운동하면서 읽었다. 쉽게 쓴 철학 담론의 책이라고 저자가 설명하고 있지만 역시 퍼득 이해되기가 간단하지가 않다. 며칠 동안 땀나게 걸으며 읽은 바, 첫 느낌은 그저 "쎄하다"였다.

이 책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문자가 "그"이다. "그것, 그들, 그런데, 그러나, 이런저런 그런 등등의 지시대명사와 접속사의 연속". 내가 철학"적" 사유나 지식과 정보가 부족해서 지시하는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철학의 문장은 왜 "그것", "그들"이 많이 나오는가? 지시하는데 지시의 대상을 찾아도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 재차 "그것"이 대체 뭘 지시하여 말하려 하는 건지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그것"을 찾는다. "그것들, 그것이, 그들은"이 너무 많이 나와서 읽어도 읽은 거 같지가 않았다. 아! 책 읽기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또한, "우리, 우리들"이란 단어가 상당히 많이 나온다. 과연 여기서 의미하는 "우리"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타자인가 자아인가? 한참을 헤맨다. 다음으로 많이 나오는 "~~적"이다. 논증적, 자연과학적, 선험적, 초월적, 현실적, 윤리적, 도덕적, 철학적, 종교적, 실증적, 관념론적, 독자적, 자발적, 어떤 단어에 무슨 적, 무슨 적 적적적이 줄줄이 알사탕으로 엮어져 나온다. 그야말로 ~적은 만능"적"인 철학"적"의 조어 같은 단어인듯하다. 아무런 단어 하나라도 "~적"이라 붙여도 문장이 되는 듯이 보인다. "그"와 "우리"와 "~적". 이 세 가지를 빼면 과연 책의 정체는 무슨 철학 책인가? 문장 자체가 이 셋을 빼면 뭘까? 오늘도 마지막 페이지를 향해 끝까지 달린다.

 

회사의 회식이 있어서 입빠이 한잔하고 얼큰하게 취한 술기운에도 불구하고 운동을 하며 오기로 책을 펼쳤다. 끝까지 페이지를 넘기려 했다. 꼭 마지막 페이지까지 끈기와 인내를 가지고 펼치려고 작정을 했다. 그런데 또 지겹게 나온다. 그것들. 우리들. 뭐시적들. 아니 이 세 가지를 빼면 문장이 아니게 된다. 일부러 빼고 읽었는데 아, 너무 철학"적"이다.  (김어준처럼) 씨발!~. 철학을 다루는 책에서 철학이 "것"과 "적"과 "그"라는  세 가지의 복합 작용은 아닐까. "그, 우리, ~적."이 셋을 빼면 과연 문장이 되는 걸까 모르겠다. 진짜로~. 아 또 하나 빼먹은 "것이다"이다.

 

실증과학? 예술, 문학. 이런 단어도 종종 등장한다. 철학 책에서 과학과 예술과 문학이 등장하는 이유는 뭘까. 사진을 10년 넘게 사진으로 예술을 구하려 해도 예술이 뭔지를 여전히 모르겠는데 철학을 전공한 학자의 예술에 대한 관념이 도대체 무엇인가. 혹은, 과학자로써 실험실에서 데이터를 구하고 데이터를 토대로 수식을 더하여 공식을 만들어 내며 기호를 써서 표현하는 그 과정을 알기는 아는가? 뭘 해봤다고 하지 않고도 상상으로 언어의 유희같은 애매함과 모호함의 지시대명사 남발과 "것"과 "~적"의 나열이 주야장천 나오는가 말이다. 정 궁굼하면 전자기 회로도를 공부해서 컴퓨터 PC 메인 보드의 회로도를 캐드로 한번 그려나 보시라는 말을 꼭 하고 싶다. 하다못해 건축학을 전공해서 캐드로 건축 도면이라도 그려서, 철근과 시멘트의 저항을 구하고 힘의 공식을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해보는 건 어떨까? 혹은, 전자기학으로 전류가 어떻게 흐르고 많은 콘덴서와 저항 보드를 거처서 모니터에 나타는 현상이 어떤 건지 철학"적"인 사유로 말이다. 아! 철학은 이렇게 공허하게 나열해도 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막상 예술을 하는 사람은 말로는 하지 않는다. 내가 찍은 사진이 얼마나 개 허접해서 마냥 사진에 글을 써대는 이유가 뭐겠는가. 여전히 다 사진으로 만으로써의  사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와 적과 것과 우리가 철학인 거 같았다. 이게 대체 뭐냐는 거다. 철학이 이렇게 모호하고 애매하고 오리무중의 언어의 난무의 무용수가 되어 막춤으로 오늘도 책을 넘긴다. 힐렐레 팔렐레. 맥락도 없는 상징도 의미조차 내가 모르는 읽어도 읽은 거 같지 않은 느낌은 내가 뭔지도 모르는 무의식 속에서 한 판의 춤사위라고 해도 좋을듯하다.

 

철학은 사유와 논증이라고 한다. 사유는 어쨌거나 단어의 능력에서 나온다. 일단 내가 자주 접하는 단어가 아니라서 그런지, 철학적인 사유는 어렵다. 아니 불가능에 가깝다. 이 책의 저자는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을 전공했는 거 같다. 학위를 못봤으니 무엇으로 학위를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무래도 비트겐슈타인이 많이 등장한다. 그런데 종군 기자로 전쟁 사진으로 유명했던 로버트 카파, 유진 스미스,  결정적 순간의 카르티에 브레송 이런 작가들의 사진을 자주 봤었다. 난 비트겐슈타인이 뭘 했던 사람인지를 전혀 모른다. 그래서 찾아 봤다. 비트겐슈타인이 남긴 가장 유명한 말은 "말할 수 없는 것은 보여져야 한다"라고 했다. 비트겐슈타인의 문장을 쮜뿔도 모르면서 내 나름대로 해석하고 이해를 하고자 했다. "언어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에 아무리 떠들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라" 즉 주절거리지 말고 행동으로 말하라는 의미로 받야 들어진다. 이 해석이 맞든 틀리든 난 아쉽지만 비트겐슈타인을 만나서 대화를 해본 적은 없다. 대체 그 말의 의미 해석이 맞나요?라고 묻고 싶지는 않다. 살아온 시대가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사유가 전혀 다르기 때문이며 설사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대로 돌아가서 만난다 하더라도 대화는 불가능하다. 즉 알 턱이 없다. 혹시 비트겐슈타인도 그, 우리, ~적, 것이다 이걸 많이 사용했을까 난 이게 더 궁금하다. 궁금할 뿐 직접 답변을 듣는 건 역시나 불가능하다.

 

글이 길었다만은, 하나의 예를 들고 끝내기로 한다.

 

오래전에 모 방송국 TV프로그램 중에 가족오락관이 있었다. 가족 오락관 프로그램 중에 게임의 참여자가 5명씩 일렬로 서서 맨 첫 사람이 진행자가 보여준 단어 팻말에 적힌 단어를 맨 끝 사람이 맞추는 게임이었다. 다만 입모양만으로 진행자가 보여준 단어를 표현해서 처음 팻말을 봤던 사람이 맨 끝 사람이 맞추어 점수를 내게 되는 식으로 진행하였다. 오늘날 우리가 만나는 철학도 어쩌면 가족 오락관에서 하는 게임처럼, 원래의 저자인 철학자가 펴낸 철학의 책과 논문으로 다음 사람으로 전달되고 또 전달되고 다른 언어로 번역되고 번역된 언어로 다시 다른 언어로 번역되어, 최종적으로 나에게 까진 전달될 때, 과연 나는 원 저자 철학자의 뜻과 마지막으로 내가 전달받은 철학"적"인 것을 얼마나 알아먹을 수 있을까 싶었다. 가족 오락관에서 처음 전달한 사람과 마지막 전달자의 입모양은 거의가 빗나갔으며 전혀 엉뚱한 단어로 둔갑해버린다. 언어의 소리가 없는 단어의 무음 전달은 뉘앙스가 없고 억양이 없고 고저가 없는 흡사 금붕어가 뻥긋하며 입만 벌리는 무음의 입모양으로 금붕어의 철학을 알아듣는 듯이 철학자의 뜻을 알아듣고 있는 셈이다.

 

물론, 나는 이 책이 뭔 말인지 몰라도, 활자만큼은 끝까지 다 읽을 예정이다. 이제 반 이상 읽었고 취향 편에서 변명 편으로 넘어간다.

이 책은 철학자로써 쉽게 쓰려고 노력했다고 머리말에서 언급하였다. 쉽게 쓴 책이었는데 그렇다면, 내가 철학에 대해 무지하였다는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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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9-09-28 11: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 예전에 소개팅을 나갔을 때 여러 면에서 좋은 사람임에는 분명하지만, 계속 만남을 하기에는 주저하는 상대가 생각이 나네요. 모든 사람과 다 맞을 수 없는 것처럼 맞지 않는 책이 있는 것도 당연하다 여겨집니다. 유레카님 좋은 하루 되세요!^^:)

yureka01 2019-09-28 11:57   좋아요 1 | URL
사진 책은 소개를 안시켜 주니 사진 출판사에게 뭔가 섭섭함이 들어요..ㅎㅎㅎ...
감사합니다.~

2019-09-28 18: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28 17: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9-28 15: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책을 읽다가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면 끝까지 안 읽고 중간에 덮어요. 아는 분이 이 책을 언급하셔서 책 소개를 봤는데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더라고요.. ^^;; 책 소개마저 어렵게 쓰면 그 책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ㅎㅎㅎ

yureka01 2019-09-28 17:11   좋아요 1 | URL
읽는다와 본다의 차이죠..
이 책은 읽는 책보다는 글자를 본다는 느낌이었어요..
물론 너무 모르는 분야의 책은 늘 낯설어서요..

강옥 2019-09-29 16: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려운 걸 쉽게 말할수 있어야 해요. 글도 마찬가지지요.
침팬지가 읽어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철학인지 처락인지 장르 자체가 어려워서 현학적으로 쓸수 밖에 없는 모양이지요 ㅎ
철학도 쉽게 풀어놓은 책이 있던데요. 가독성 높은 책이 좋은 책이다, 라고 생각하는 지우당 ^^*
애러븐 책은 휙 던져버립니다. 느낌 아니까~

yureka01 2019-09-29 20:01   좋아요 1 | URL
전기공학을 공부하지 않고 전기 회로도를 이해 못하겠지요.
전축학 전공하지 않고 건축캐드 도면 보고 적산을 못하거든요...
철학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더군요..
일단 철학에서 자주 사용되는 용어의 개념 조차 없으니 당연히 어렵더군요..
어려운걸 지시대명사가 너무 많이 나오니 더어렵더라구요..ㅎㅎㅎㅎ

2019-10-01 10: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0-01 22: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REBBP 2019-10-03 10: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너무 공감되는 글이에요. 철학적 사유 뭐 이런 거 다 좋은데.. 이런 ~적 이라는 표현이 한 문장에 2~3개 이상 나오면, 가독성이 쏙 떨어지죠. 문제는 ~~적이라고 하는 말의 뜻이 명확하지 않다는 거에요. ~적이라는 게 ~~같다는 소리인건지, 사실 ~적 뿐만 아니라 쉽게 뜻을 알 수 없는 용어들이 많은 것도 문제죠. 아 이 책에 대해서 말하는 게 아니라, 전문평론가들이 쓰는 평론류나 2차저작물 형태의 철학서적에서 흔히 볼수 있는 글들 말이에요. 그래서,, 뭘 분석한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인가보다.. 이렇게 어렵게 글을 써야 하니 말이지 라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공감하다보니 두서도 없는 답글이 되었네요 ^^

yureka01 2019-10-03 22:25   좋아요 0 | URL
한문장에 ~적이라는 게 너무 많아서요..
철학에 주로 사용되는 단어 하나 하나가 파고 들면 깊이가 상당해서인지
한 문장을 읽는데도 꽤 긴 생각이 필요하고 찾아봐야 할 문제가 많았어요..
철학이 참 멀리 있구나..싶었습니다..
긴 답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