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고1, 내년이면 고2가 되는 딸아이와 공부에 대해 갈등이 있다는 것을 최근에 알았다.
이번 2학기 기말시험에 영어도 100점이나 얻은 아이가 영어가 싫다고 한다. (아, 미치겠네.) 영어를 자기가 아주 잘하는 줄 알았는데 자기보다 더 잘하는 학생도 너무 많고 그들처럼 따라가기 벅차다고까지 한다.
100점 맞았다고 아빠가 너무 기분 좋아서 10만원 내기도 해서 쾌척까지 했는데, 정작 영어에 자신이 없다고 한다. 그럼 고딩영어 상당히 어려게 난이도 높은데 100점은 자신없는 성적표인지? 얼마나 황당한 지경이었던지.
영어가 잘하고 못하고가 어딛어? 영어를 읽고 쓰고 말하는 능력이 갖춰지느냐, 마느냐가 관건이지 잘하고 말고가 없는 것이 언어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성적과 시험으로만 영어를 판단하는 영어 교육은 정말 이건 나무 아니지 않는가. 아이가 지금 여기에 세뇌 당했는 거 같았다. 이런 현실의 우리나라 영어 학교 교육은 정말 아니더라도 너무 아니다.
어릴 때는 아빠가 너무 좋아해서 아빠의 기뿐 모습이 좋아서, 공부 잘하는 척했다고 한다. 세게 머리를 얻어 맞은 기분이었다. 부모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억지로 한 공부한 거나 마찬가지였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칭찬을 많이 했었고, 용기와 노력에 찬사를 자주 보냈다. 그렇게 하면 어느 정도는 알아서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딸아이 마음은 아빠에게 잘 보이기 위한 고역이였던 셈이다. 착한 딸이 아빠에게 말도 하지 않고 속으로 억지 춘향을 했다고 하니,,, 그럼 결국 아빠 때문에 공부를 한 거랑 뭐가 다를까? 내가 너무 극성적이었던가?
난 딸아이에게 정성을 기한다고 생각했는데, 이 최선이 아이를 옥죄는 마음으로 연결되었다던 것은 아닐까?
자신도 영어를 좋아한다고 생각했고 열심히 하길래, 장차 영문과에 뜻을 품어도 좋겠다고 한 것이 이게 자신의 뜻이 아니라고 한다.
자신을 위한 공부의 경지는 상당히 어렵다. 대부분은 이것을 단 한번도 겪어 보지도 못하고 죽고 만다. 그러나 인간된 숙명은 공부를 하지 않으면 개같이 사는 인간이 된다는 것을 피할 수 없다. 그러니 안하고 살 수 있으면 좋겠는데 불행히도 인간은 인간된 도리에서는 거절할 방법은 없다.
자 그렇다면, 딸아이에게 다시 제로 베이스에 놓고 출발하자고 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공자님 말씀같은 격언도 있는데 어떻게 하면 어렵지만 이 어려움을 즐거움으로 바꿀 수 있는 역량을 키울 수 있을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다 집어 치우고 진정 원하는 공부를 찾도록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그래서 고민 끝에 책을 찾았고 만났다.
공부가 무엇인지 부터 알고 시작하자. 공부가 무언지도 모르고 공부하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보면, 딸아이를 위해 책을 선물 하기로 했다.
딸아이가 공부때문에 스트레스 받지 않고, 공부를 통해서 진리를 알아가는 진정한 즐거움, 배움으로 느끼는 기쁨을 스스로가 알아갔으면 하는 마음....이 것을 꼭 심어 주고싶었다.
학이시습지불역열호아라는 공자님의 그 진정한 뜻을 딸아이에게 전달되면 얼마나 기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