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일은 노동절이다. 노동절이라도 쉬지 않고 출근했다. 하필 현장 하나가 준공 시점이라 준공서류를 챙기지 않을 수도 없었기 때문이고 기한 내라는 단서 조항은 항상 그렇듯이 사람을 조급하게 만들고 약속한 날짜 전이라도 맞추어야 하는 의무감 때문이다. 기한을 정하는 기준에 있어서 클라이언트는 휴일 따위 정도는 안중에 전혀 없다. 다만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이런저런 사정과 여건을 감안한 합리성, 준수성 그런 건 기대하기 어렵기도 하다. 왜 그런지는 어떤 공감이 될 것이고. 이익이 걸린 문제에서 누군가의 권리는 가볍게 무시해도 좋은 인간성들이 아니었던가 말이다. 세상의 사람들은 그렇다. 항상. 공통의 공감대는 자기 이익 앞에서는 가볍게 즈려 밟아 주시는 게 도리가 된 시대이니 그게 곧 사람들이 악착같이 잘 사는 길이라 믿어도 누가 탓하지도 못한다.
그런데, 노동절 당일에 거제도 조선소에서 대형 사고가 났다. 크레인이 전도되어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것도 노동절에 말이다. 노동하는 사람들의 하루 쉬는 날에 쉬지도 못하고 일하다가 죽거나 다쳤다고 하니, 억장이 무너지는 기분이다. 물론 뻔하지. 조선소 정규직이 나와서 일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도급 업체일 것이 확실하다.(역시 사실로 드러났다.) 나도 거제도에서 사고 때문에 매형을 잃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고는 언제나 일어나는 일상이 되어 버린 거 같다. 사람은 죽어 떠나고 또 누군가는 떠난 빈자리를 메워질 테고, 사람이 교체되어도 사고는 안전으로 좀처럼 교체되지도 않는다. 그래. 교체될 수 있는 사람들은 줄 서서 기다리는 인간의 과잉 시대이니 소모품처럼 취급당해도 새삼스럽지 않는 것이 된 걸까. 사상자가 의외로 많이 생긴 것도 휴식시간이라 휴게실도 없이 야외에 모여서 쉬는 곳으로 전도되어 미쳐 피할 틈도 없었던 이유. 쉬는 시간, 그 짧은 10분간의 달콤함이 이승과 저승을 갈라 버렸다. 왜 안전한 곳에서 쉬지 못하고 휴게공간이 아닌 곳에서 휴식을 하게 되었을까? 별도의 휴게 공간조차도 없었다는 점도 너무나도 아쉬운 부분이다. 그거 얼마나 한다고 야외에서 쉬어야 했단 것일까? 그렇지 뭐. "휴게 시간과 공간"이라는 규정을 정하고 공간을 만드는 디테일함은 없었을 것이다. 다 돈이 들고 비용과 경비가 수반되는 일들이고 보면, 의지만 갖고는 어렵다는 것도 사실이다. 역시나 우리는 왜 이렇게 실천이 안되는 걸까?
남들 쉬는 날에 일을 원해서 일한 것은 아닐 것이다. 가난하고 힘들고 어려운 현실에 하루라도 더 벌어먹고 살려는 가난한 자들의 몸부림들. 결국 사고는 이런 가난한 사람들에게 먼저 들이닥친다. 그렇지 않은가? 누가 남들 쉬는 시간에 무슨 용감 백배한 마인드로 더 열심히 일하겠다고 자발적으로 일하러 나왔겠는가? 다 원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을 타동적인 외부적 요인이 일을 하게 만들었다. 삶이란 원하지 않는 삶을 살도록 강요당하는 현실들. 원하지 않는 삶을 살면서 원하지 않는 죽음이었던 것은 아니었던가.
철학은 본질을 탐구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안전에 대한 철학, 이것의 본질은 무엇인가? 현상으로 본질을 유추한다고 볼때, 과연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본질적으로 인간이 최소한의 안전을 위해 사회적 시스템을 운용하고 있기나 한 걸까? 사람은 죽어도 또 누군가 그 빈자리를 대체할 것이다. 늘 사람은 넘치고 빈 곳은 채워진다. 채워지지 못하면 이젠 외국에서 수입하면 된다. 철학의 인간적 본질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오늘의 우리가 만들어낸 자화상이 초라하고 누추하다.
EU의 5배, 북유럽 국가의 산재사고의 10배. 이젠 쪽팔리지도 않는가? 그럴지도 모르겠다. 다 안다. 안전이 제일이라고 노래를 부른 지가 언젠지도 기억나지 않을 만큼 오래된 것도 다 안다. 안다고 해서 실천이 되지 못하는 본질은 무엇인가. 안전은 시스템의 문제도 될 수 있고 인식의 문제도 될 수 있고 사상의 문제가 될 수 있다. 사회가 비열한 것이 아니라 사회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이 비열하다. 오늘도 외부적인 요인과 내부적인 요인으로 사람들은 죽고 다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타동적인 타살의 공공연한 살해 행위는 여전하다.
안전에 대해 태무심하거나 무시하는 불감증은 사실 답이 없다. 안전을 공부하는 것의 첫 번째 목적이 더 안전하기 위함일 텐데, 나는 오늘 무슨 공부를 하고 있는지 문득 회의감이 든다. 헛공부는 아닌가? 5월 7일 다가오는 일요일이 시험이다. 안전이 갈팡질팡한 곳에서의 안전 자격증이 왠지 쪽팔릴 것만 같다. 아 안타까운 부끄러움. 수치심이 느껴진다. 과연 여기가 사람 사는 곳이긴 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