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을 끓이며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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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온통 먹방에 쿡 방이다. tv에도 요리 채널이 몇 개인지 모르겠지만 실로 엄청난 먹방과 쿡 방이다. 기아에 허덕이는 시대인 마냥 먹는 것에 대해 집착하는 시대상은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다 있다. 먹는다는 것은 생물의 세계에서는 필수적이고 절대적인 요소 중 하나 있다. 삶이 먹는 것인지 먹는 게 곧 삶인 것인지 분간할 것까지도 없이, 온통 먹는 이야기들이 난무로 어지러울 지경이다. 문제는 왜 이렇게 과도하게 먹는 것에 집착하는 성향을 어떻게 분석하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이다.

이게 우리가 사는 시대에 먹는 것에 극단적으로 집착하는 이유도 결핍의 극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말이다. 먹는 것만큼 가장 직접적이고 직설적이고 직관적인 것도 없다. 또한 효과도 즉각적이고 연쇄 반응이다. 식욕은 본능 중에서도 으뜸이고 다른 무엇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절대적인 행위이다. 먹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강력한 신호이다. 배가 고프면 섹스도 생각 안 난다.

 

 

그러나 오늘날은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시대도 아니다. 요즘과 같이 먹거리가 풍요로운 시대에서 더욱 역설적이게도 먹을 것에 이렇게 집착하려는 이유는 혹시 다른 것에 있지 않을까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다. 먼저 이야기했다시피, 즉각적이고 직설적인 욕망을 먹을 것 이외에서는 이처럼 먹는 것만큼 즉각적인 결핍의 해소를 찾을 수 없다는 결론은 아닐까 싶다. 행복의 첫째 순위가 먹거리가 대상이고 보면 오늘날은 먹을 것 이외에서 즐거움이나 행복을 찾기가 아주 곤란한 지경은 아닐까 싶었다.

그래도 그렇지 아무리 결핍의 시대라고는 하지만 간단하게 배부를 수 있을 만큼의 풍요는 다른 것으로는 쉽게 대체할 만큼의 대체재가 없다는 점이다. 그러니 이와 같이 먹방의 효력은 모든 것을 아우를 만하다. 7포 시대라고 하지 않는가 말이다. 서민이 밥 벌어먹고 살아가는 모든 일들에 있어서 이런 상황 하에서 간단하고 즉각적인 생의 포만감은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가 없다. 그림이라도 그리려면, 악기 하나라도 제대로 포만감을 느끼게 하거나 장황한 글이나 사진으로 표현해낼 만족감은 지난한 훈련의 과정이 필요하고 노력이 뒤따라야 하는데, 음식은 그야말로 즉각적인 효과를 나타내니 이제는 요리라는 과정도 없이 어디든 들어가서 돈만 내면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시대이다. 우리 민족의 유전자에는 기아에 대한 악몽이 기록되어 있고 이 기록이 현대의 상대적인 박탈감과 결합해서 새로운 결핍의 양상으로 나타나는 까닭은 아닐까 싶었다. 먹는다는 이 행위는 거의 본능적이라서 배우고 자시고 할 것도 없으니 얼마나 간단하게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다른 무엇과 비교가 불가능할는지도 모른다. 현대의 심리적인 허기증이 결국은 먹는 걸로 대신 채우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그러나 산다는 것은 먹는 것이 첫 번째이지만 결코 먹는 것으로 마지막일 수가 없는 것 또한 인간의 섭리이다. 하지만 먹는 것을 더 이상 나갈 수가 없다면 과연 인간과 짐승의 차이가 있을까. 온통 먹을 것만 따지고 찾고 염원한다는 시대는 그래서 썩 괜찮은 시대가 아님을 애써 증명하는 셈이 아니고서는 달리 생각할 틈도 없다. 미련스러워 보일지언정, 포기될 수 없는 혓바닥의 논리는 그래서 더 정직하고 더 순수하고 더 기막힌 시대임을 증언하고 있는 셈이다. 오늘날의 시대는 조선시대의 어느 선비가 불렀던 문집 가사만큼도 못하다. 지족할 수 없는 과다의 에너지는 비만으로 건강의 심각한 증상으로 병 들어간다. 부족함이 빚어낸 심리적인 허기증이 끝없이 찾아 먹어도 늘 그러게 뒤돌아서면 또 찾게 된다.

김훈 작가는 물 말은 밥에 짠지 한 그릇으로도 혓바닥의 안위에 위로를 받는다고 했다. 하지만 짠지 하나에 물발은 밥으로 허기는 면할 수는 있어도 여기서 위로를 찾을 수없는 시대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현대를 사는 모습이다. 그래서 대가다운 맛을 그는 소박함이 진정 아름다운 충만을 심리적인 만족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가난의 기억도, 여행의 기억도 우리는 음식과 결합되어 있다. 그 때 당시에 무엇을 먹었는가에 대한 기억이 이미 기억의 반은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우리의 먹거리는 그렇게 절박했던 것이다.

라면을 끓이는 소리에 침을 삼키며 가난한 자의 한 그릇에 담긴 허기는 우리가 살아왔던 조상들의 본질인지도 모른다. 춘궁기에 아사자가 몇이나 되었던 처절했던 기억은 유전자에 사슬의 매듭으로 그대로 새겨진 탓에 그 유전자의 코드에 그저 충실했던 오늘의 현실은 행복함의 가장한 또 하나의 우울적 형상을 하고 있다.

문상을 가더라도 아무것도 먹지 않고 나오면 망자의 귀천이 순조롭지 못하다는 되먹지도 않는 변명까지 늘어놓게 되는 민족에게 라면은 그야말로 먹거리의 산업화의 첨병이요, 결정판이다. 우리나라 라면의 소비량은 중국 다음으로 1년 소비 수량이 36억 개라고 한다. 말이 36억 개라고는 하지만 이게 통계가 가능하기나 한지는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이런 추정치가 의미하는 가난한 자들의 한 끼를 누릴 수 있는 간편한 먹거리에서 시대의 우울과 미련과 연민이 도사리고 있다. 아 라면을 먹는 자. 위장이 뒤틀리고 혀끝에 얼얼할 정도로 톡 쏘는 감각을 그 무엇으로 대신할 수없는 가격의 맛. 이 시대는 라면이 잘 팔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 차라리 굶는 것보다 더 짜증이 돋는다. 우리나라의 라면은 기아의 산물이며 기근의 대용식이었다. 그럼에도 맛은 산업화의 개량된 자기 착각이다. 작가는 음식이 시간이 만든 심층 구조를 사랑한다고 했다. 그러나 라면에는 심층구조는 찾을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면을 들이킬 수밖에 없는 오늘날의 가난한 이들의 먹거리에서 공감의 위로를 느낄 수 있었다. 라면에 은 수저를 넣으니 수저의 색이 변하더라는 독에 오염된 먹거리라고 강조하고 건강에 별로 유익하지 못하다는 것으로 라면을 대신할 다른 간단하면서 즉각적인 화끈 거리는 맛은 포기할 수는 없다. 우리 시대는 라면에 밥이라도 말고 깍두기 한점 아작아작 씹어 먹을 패배를 감수할 용기가 있기 때문이다.

김훈의 산문집 라면을 끓이며라는 책은 나오기 전부터 예매 들어 간 나머지, 이를 두고 베스트셀러의 순위 조작이라는 구설수에 휘말렸다. 예매는 다 돈부터 미리 걸고 예매하는 것이고 책이 나오지 않더라도 책의 선급금이 되었다. 그런데 실제로 읽히지 않더라도 집계 방식의 허접함으로 순위에 들었으니 이를 따지는 글이 나와서 마음이 쓰였던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예판 하면서 끼워 팔기라는 식으로 마케팅이 또 질타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단언 컨대, 김훈의 책을 예매하면서  베스트셀러 따위는 꼽아 보지도 않았으며, 특히 마케팅 차원에서 뿌리는 상품으로 현혹 당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실제로는 현혹당한 듯한 모양새가 되어 버렸으니 억울할만했다. 아 조금은 짜증 났다. 김훈이 책을 파는데 양은 냄비 끼워 팔자는 아이디어는 어디까지나 출판사의 끼워 팔기라는 마케팅 방식이었지만 그런데 이 마케팅 방식에 대한 방식이 작가에게 구설에 휘말리게 하는 것은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모를 일이다. 참 작가 책 내고도 이런 소리 듣는다면 앞으로 또 글이야 쓰고 싶을까 싶었다. 혹시나 이런 꼴 보기 싫어서 글 안 쓰고 발표하지 않는다면 이건 고스란히 독자에게 손해가 이만저만한 게 아니지 않을까 싶었다. 작가가 출판사 마케팅에 이렇게 하자고 했을 리도 없을 것이고 그 정도의 급수가 되는 작가가 뭐가 아쉬워서 휘둘리겠는가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책을 막상 받아 들고 단숨에 한 권을 석고상이 된 것처럼 움직이지 않고 읽었다. 글이 재미나다. 그럼 된 거 아니가? 잘난 체하면서 책에서 온갖 예쁜 미사와 여구를 써가며 수준 높여 은유하거나 듣도 보도 못한 단어들의 나열로 무슨 말인지도 헛갈릴 글 따위나 쓰는 작가들은 난 알 빠도 없다. 라면 하나에도 처절하게 인이 박히는 글이 그런데 너무 쉽게 읽힌다. 그럼 작가는 성공한 거다. 마구 써 내려간 거 같지만 일단은 첫 페이지부터 끝 페이지까지 읽히는 문장에서 역시 글 밥이 참 맛깔나고 나라는 걸 느낀다. 글 몇 줄 쓰기가 보통 곤란함과 지난함이 겹치게 보였다. 작가도 글쓰기가 녹록찮구나. 잘 팔리는 책이 될지 말지는 재쳐 두더라도 출판사의 마케팅 방식에서 조금은 너그럽게 봐라 봐주고 이 책을 내면서 제목이 라면을 끓이며 라는 제목에서 양은 냄비를 사은품으로 주면 일종의 재미 삼아 보는 거지 냄비에 꼬드김 당할 독자는 진짜 난센스 같은 일이 아닐까 했다. 그저 책 한 권 보고 재미로 라면 하나 끓여 먹으면서 책 읽어보니 이게 또 즉설적인 느낌이 훨씬 배가 되는 거다. 참 재미난 발상이었다. 냄비 없다고 안 볼 것도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가을이라는 계절은 풍성한 결실과 더불어 색으로 물들어가는 시간이지만, 늘 그렇듯이 이 가을이 왜 이렇게 매가리가 없는 것인지 나도 모를 일이다. 천성적으로 태생이 우울을 끼는 관성적인 작용은 가을이라고 더 심해지는 것은 나도 어찌할 바도 없다. 그래서 그럴까. 책을 다 읽고 나서 황당하게도 울렁거림이 치 쏟아 오르는 모종의 음울함도 등 달아올랐다. 마지막 작가의 에필로그를 끝으로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나는 한동안 멍하니 음악을 들었다.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op 35번을 줄기차게 들으며 David Oistrakh의 곡은 강물의 발원지를 닮았다. 그러고 보니 이 바이올린 협주곡이 라면을 닮을 것은 아닐까. 가을이라 매가리 없는 시간에 밤늦게 야식으로 라면 한 그릇은 차이콥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처럼 면발을 잡아당기고 당기면서 바이올린의 현을 키는 것 같은 기분이다. 까짓것 아침에 일어나면 분명 눈두덩이 퉁퉁 불어 터지는 한이 있어도, 위장이 아침에 주리를 틀지도 몰라도 지금 나는 이 매가리 없는 가을밤을 라면 빨로 현을 꼬불꼬불하게 켜나가고 싶었다. 차이콥스키는 라면을 몰랐을 테다. 그런데 그 양반이 이 라면 한 그릇을 비우고 나서 이곡을 다시 썼다면 과연 어떤 곡을 쓰게 되었을까라는 상상을 마구마구 하게 된다.

PS : 이 책은 블로그 책 이웃인 연꽃 폴라리스님께서 선물해주신 책입니다. 다시 한번 더 감사함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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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행복하자 2015-10-15 18: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멋진 후기~ ^^
며칠 라면을 읽었더니 .. 이제는 짠지에 물 말은 밥으로 입안을 씻어내고 싶어요. 라면과 과하다 싶은 쿡방이 비슷한 느낌이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 지금쯤은 보리차에 물 말아 오이지 올려 아삭아삭 속 달래고 싶어지는 때~~

첫작품이 임팩트가 쎄서 이후의 글들이 기억에서 휘발되어버린것 같아요.. 그래도 그 은은한 뒷맛은 있는데 정확히 뭐라 말할 수 없어, 곧 다시 읽어봐야겠다 싶어요~ ^^

yureka01 2015-10-15 18:47   좋아요 1 | URL
ㅎㅎㅎ진짜로 라면 먹으면서 읽었습니다.
그 참말로 ..먹는 것의 안쪽에 대한 비애가 더 진해지더라구요..

물론 야식으로 먹은 후라 그다음날 아침은 속이 부대껴서 비애가 치밀었구요..흐.

희망찬샘 2015-10-15 19: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 읽다가 그만 라면을 끓여 버렸습니다. 제일 좋아하는 육개장 한솥 끓여두었는데... 빨간 라면 없어 하얀 라면을 끓였는데... 육개장을 밤참으로 먹어야 겠어요! ㅎㅎ~~~

yureka01 2015-10-15 23:47   좋아요 1 | URL
진짜 라면 끓여 먹으면서 책읽으니 책이 더 잘 읽히더라구요..우아 ㅎㅎㅎㅎ
대박!!!!

stella.K 2015-10-15 2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프로다움이 느껴지는 멋진 글이군요.
주방 인테리어가 나름 고급지네요. 저런데서 라면을 끓이는 것도 분위기 있어 보입니다.
언젠가 <수요 미식회>에서 라면에 대해서 다뤘더라구요.
못 봤는데 오늘 당장 IP TV에서 찾아 보고 싶네요.

오래 전 아는 지인한테서 들은 얘긴데 어떤 과학자가 쥐를 가지고 실험을 했다더군요.
성욕과 식욕 어떤 것이 더 센가. 그랬더니 식욕 보다 더 센게 성욕이라나요?ㅎㅎ
저도 그건 좀 못 믿겠더군요. 기운이 있어야 그 다음의 것도 생각해 보는 거지
배고파 죽을 것만 같은데 무슨 얼어죽을...
근데 어쩌면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성욕이 식욕을 대신하는
뭔가의 대사 분비물을 방출하면 말이 되는 것 아닙니까?ㅋㅋㅋ

참고로 역시 라면은 저렇게 냄비에다 끊여야 해요. 컵라면은 뜨거운 물만 부으면
짧은 시간안에 풀어져야 하기 때문에 끈기도 없고 포만감이 일반 라면에
비해 떨어지더군요. 열량은 높다고 하던데. 그런 것을 오늘 백만 년만에
처음으로 먹었습니다. 미쳤지요.ㅠ

yureka01 2015-10-15 23:52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 연어는 섹스가 곧 죽음이죠..먹지도 않고 강을 거슬러 산란장에서 알을 낳고 정액을 뿌리는 과정이 곧 죽음이니까요.^^.
하기사 아프리카에서도 배곯아가면서도 아이가 태어 나는 걸 보면..한편으론 그렇겠다 싶기도 해요.그런데 저는 불가능하지 싶어요..배고푸면 다른생각이 전혀 안나니 ㅋㅋㅋ

그럼요..라면 먹으면서 책보라고 냄비를 보내 준게 참 신선했습니다.(누군 이걸 씹기 좋은 타켓이 되었구요..뭐 개의치 않습니다.마케팅기법에 끼워 팔기는 고전적이라서..)

samadhi(眞我) 2015-10-15 21: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요즘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그 일들 가운데 하나가 라면 끓여주는 거예요. 제가 끓이면서 지긋지긋할 법도 한데 집에 가면 신기하게(?) 라면 생각이 나더라구요. 손님이 제가 끓인 라면을 국물도 안 냉(남)기고 다 먹어주면 기분이 좋더라구요.

yureka01 2015-10-15 23:52   좋아요 1 | URL
요리사마인드시네요..요리사가 맛나게 먹어주면 그렇게 흐뭇한 기분이 든다고 하더군요..^^..

2015-10-15 21: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yureka01 2015-10-15 23:54   좋아요 1 | URL
ㅎㅎㅎ 마케팅 기법중 하나이니...이게 자본주의적이긴 하죠. 끼워팔기...그런데 아무 꺼나 끼운다고 뽄때가 나는 건 아니죠..책 제목에서 이미 연상되는 아이템이었으니...썩 재미있었습니다.

cyrus 2015-10-15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이코프스키와 라면의 조화. 신선한 표현입니다. 라면이 땡기기보다는 유레카님이 언급한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듣고 싶어져요.

yureka01 2015-10-15 23:56   좋아요 1 | URL
차이콥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이곡이 초연되었을 때, 음악비평가들이
곡에서 시궁창같은 악취가 난다고 혹~~~평을 했다더군요..

라면을 닮았더라구요 ㅋㅋㅋ현의 소리가 꼭 라면 꼽슬한 맛이랄까..
책읽을때 이곡 들으면서 라면 먹으면서 읽었거든요..그래서 연상되었던가 봅니다.ㅎㅎㅎ
하여간 아주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yureka01 2015-11-10 15: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호 이달의 리뷰 당첨^^..감사합니다.!~

stella.K 2015-11-10 20:17   좋아요 0 | URL
여물 한바구니에 대한 위로라고 생각합니다.ㅋㅋ 3=3=33

yureka01 2015-11-10 21:10   좋아요 1 | URL
일단 소주 한병쯤 됩니다..^^..쫘륏^^

비로그인 2015-11-19 19: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제목과 정말 어울리는 설정 잘 하셨네요.
저도 이 책 읽어보고 싶더라구요.

yureka01 2015-11-22 09:43   좋아요 1 | URL
추천드립니다. 이름 석자가 믿게 해주는 몇안되는 작가.^^.

프레이야 2015-11-22 08: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뜸했더니 이제 보게 되었네요.
축하 드립니다, 유레카님.
저 냄비, 저도 애용하고 있어요. ㅎㅎ

yureka01 2015-11-22 09:43   좋아요 1 | URL
딱 한개의 분량에 맞는 적정성이 참 맘에 들더군요.ㅎㅎㅎ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