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상의 사진에서 추출된 언어들이 곧 시가 되었다. 그래서 시가 사진을 다시 수식한다. 언어는 언어로써 제각각의 역할이 있어도 사진에서 추출된 시각적 이미지가 시로 도출될 때, 사진은 더욱 진득해지고 끈끈해지고 접착이 강력한 점액으로 마음에 척척 달라붙는다. 붙음의 감동이란 시와 사진의 앙상블에서 만들어지는 거 같다.
2. 모처럼 주말 아침 일주일 만에 처음 아침밥을 먹으면서 거실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우두커니 밥알 하나하나를 멍하니 씹고 있으면서, 거실 창밖에서 안으로 침투하는 빛을 본다. 창밖에 겨울의 나목이 아직 메마른 가지에 붙은 바싹 바른 잎사귀를 본다. 거실 안에 서 있는 커다란 화분에 나무 한 그루. 밖의 마른 잎과 안의 푸른 나뭇잎의 차이는 온도의 차이. 바로 이 세계에서 밖의 경계 너머의 세계와 대비되는 현실을 느낀다. 시와 사진이 만들어내는 창에 세워진 유리창을 투영되는 투명한 세계를 보는 거 같은 느낌이랄까 싶었다.
3. 사진시집의 제목이 변곡점이라 마음에 들었다. 현실 세계의 시와 사진이었지만 현실을 넘어의 경계 밖으로 진출된 세계는 항상 변곡점 같은 점과 선의 이상 세계를 염원하는 것처럼, 아침에 시집 안의 글이 점액질처럼 달라붙는다. 어떻게 살아야 잘 살았다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시집이 화두같이 던진다. 어떤 변곡점의 그 타이밍은 매 순간 결정적이었다던 앙리 브레송의 사진과 같은 결정적인 변곡점은 아니었을까라는 믿도 끝도 없는 생각을 밥을 돌돌 말아 삼키는듯하다.
4. 사진도 마찬가지지만, 책도 일종의 전달이란 수단이다. 그래 책이 목적이 아니라 단지 수단이라는 것. 책이란 도구. 책의 내용을 위해 우리 삶의 전부를 소모시킬 필요는 없다. 그래서 나는 사진 또한 수단이다. 어떻게 사는 것이 후회 없이 미련 없이 버려질 수 있을까라는 비움을 위한 목적. 그래서 때로는 유용하기도 하고 무용스러울 때도 있다. 삶이란 어느 단편의 조각을 시간의 구성으로 퍼즐을 조립되어 간다. 그 단편의 각각의 시간 속의 일부가 책과 마주할 따름이다. 오늘도 운동하면서 한편을 한 페이지를 읽고 또 역기를 한 세트를 들었다 놨다의 반복이다. 그래 수단을 통한 목적은 존재의 이유이다. 가끔 벽돌같이 두꺼운 책을 만날 때에 벽돌 한 장 한 장 조적하듯이 이유의 존재라는 집을 짓고 이 집에서 영혼의 안식을 만나려는 수단. 책은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5. 또 한 해가 저물어 간다. 작년 이때쯤 어떤 마음으로 무엇으로 또 한 해는 365일의 시간이란 강을 건너왔던가. 그리고 또 앞에 놓인 시간의 강을 건너갈 것인가. 그동안 꾸준히 물에 비친 반영의 형상을 추상화처럼 찍었다. 우린 이렇게 삶에 대해 시간에 어떻게 투사되어 반영하여 무엇으로 비칠 것인가. 과거는 흡사 내가 흐려진 형상의 물상처럼 찍힌 은유나 같다. 그럼으로써 다시 앞에 놓인 강에 어떻게 비칠 것인지 시간의 USE PLANNING를 할 수 있을까.
6. 매 순간이 결정적인 순간이었듯이, 매시간이 우리 삶의 야금야금 변화하는 변곡점이다. 시간은 항상 변화의 일상이다. 변곡의 점점이 순간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영향을 지배하고 지배당한다. 10원을 은행에 예치해도 이자는 정해진 이자율만큼 불어난다지만, 시간에는 이자가 붙지 않는다. 혹여 더 줄어들지도 모르는 마이너스 금리일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시간의 변곡점은 항상 매 순간이 결정적일 수밖에 없는 존재의 섭리이다.
7. 당신만이
때로
지치고 힘든 것이
인생이라 해도
당신만은
나에게
늘
그 무엇이기를
-변곡점, 김상일 지음, 2019, 44P
한 해 마무리 알라딘에서 시 한 편으로 마무리한다.
"늘 누군가에게 그 무엇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