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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은 장미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월
평점 :
장미의 이름은 장미 은희경
(그대의 이름만이 나의 적일 뿐이에요
몬테규가 아니라도 그대는 그대이죠.
몬테규가 뭔데요? 손도 발도 아니고
팔이나 얼굴이나 사람 몸 가운데
어느 것도 아니에요. 오 다른 이름 가지세요!
이름이 별건간요? 우리가 장미라 부르는 건
다른 어떤 말로도 같은 향기 날 겁니다.
로미오도 마찬가지, 로미오라 안 불러도
호칭 없이 소유했던 그 귀중한 완벽성을
유지할 거예요. 로미오, 그 이름을 벗어요.
그대와 상관없는 그 이름 대신에
나를 다 가지세요.)
<로미오와 줄리엣>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다.
줄리엣의 이 적극적이고 아름다운 대사는 밑줄 긋고
공책에 옮겨 써 가며 좋아했다.
그런 줄리엣의 대사를 은희경작가의 작품에서 만났다.
장미의 이름은 장미.
마마두가 마마두이듯, 수진은 수진일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수많은 문들을 만들어, 누군가는 밖에서 서성이게끔
혹은 누군가는 다른 문앞에 다다르게끔 또는 출구가 있을거라 믿은 문 앞에 절벽이나 벽을 만나게 한다.
겹겹의 그 문들엔 온갖 스테레오타입의 이름들이 붙어있다.
뇌는 게으르다. 그래서 새로운 생각들을 받아들이는데 불친절하다.
그래서 틀린 것임에도 바로잡아야 함에도, 바꾸지 않는다.
누군가의 감정보단 내가 그저 믿어버리는 그렇고 그런 고정관념으로
그들을 바라본다. 그게 편하고 쉬운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자신은 그런 문 앞에 서길 바라지 않는다.
인종의 집합소라는 미국의 뉴욕, 얽혀있지만 스치진 않는 그들이 각기 다른
사람들과 다른 만남에서 비슷한 경험을 한다.
문, 나에게만 열린 문, 나에게만 닫힌 문....문이라 생각했지만 벽이었던 막막함.
마마두가 느낀 수진의 문, 수진이 그 도시에서 느낀 벽.
“나는 여전히 미래에 대해 아무런 상상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가끔은 작가 마마두가 나무배를 타고 호수 한가운데로 가서 뜨거운 소금을 검은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을 때 그 푸른 하늘과 호수의 장밋빛이 얼마나 아름다울지를 상상해본다. 누군가의 왜곡된 히스토리는 장밋빛으로 시작한다.
인스타그램 속 친구가 살고 있는 뉴욕은 새로웠고 활기차 보였다. 그래서 그 친구를 보겠다고 소꼽친구 승아가 민영을 찾아온다. 그러나 그 곳은 인스타 속 세상과는 달랐다.
외로웠고 음침했고 어두웠다. 친구는 지쳐보였고, 승아는 단절 속에 친구의 부담감마저 느끼는 난감한 상황이다.
”알레르기 있는 거 친구도 아니?
“아니, 나중에 말하려고 했지.”
“언제?”
“글세, 걔한테 내가 고양이만큼 중요해졌을 때?”
그 말을 한 뒤 민영은 갑자기 활짝 웃었다.
“여기서 오래 혼자 살다보면 그냥 친절한 건지 특별한 감정인지 잘 구별 못하게 돼. 자기들끼기 선을 그어놓고 그 바깥에 있는 사람한테 친절하게 보이려는 사람들이 좀 있거든.”
승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어디살든 다 마찬가지 같아. 그럴때면 말야, 왜 얼마 동안 어디에를 생각해봐. 거기에 대답만 잘하면 문을 통과할 수 있어.”
왜 얼마 어디에의 질문은 승아가 뉴욕에 도착했던 날, 공항에서 받은 질문이다.
글을 쓰려하지만 무엇을 써야 할지 몰라 방황하는 현주, 팔순의 어머니와 얼떨결에 뉴욕으로 여행을 온 이혼한 작가의 이야기 등 4편의 단편이 담겨있다.
서로를 모르면서 안다고 착각한다.
그렇게 착각 속에 사랑을 하고 오해를 하고 헤어지기도 하고 다시 만나기도 한다.
우리는 모른다는 것, 결국 본질은 외롭다는 것,
그럼에도 눈이 펑펑 오는 어느 해변가에서 누군가의 손을 잡고 노래 부르고 싶다는 것,
춤을 추고 싶다는 것.
살다보면 그런 것쯤은 저절로 알게 되는 날이 올까.
(수잔손택의 말이 <아가씨 유정도 하지> 에 인용된다.
“항상 남성 여성이라든가 젊음 늙음 같은 전형적인 범주에 도전하고 전복하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스테레오타입이 인간으로 하여금 제한적이고 위험을 회피하려는 삶을 살도록 유도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책 앞표지 작가님의 글이 이 책의 주제가 아닐까 한다.
“장미의 이름은 장미, 당신의 이름은 당신.”
지금까지 만나온 남자만 해도 그랬다. 용기와 결단력이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무책임한 허세꾼이었고, 소심하고 이기적인 사람을 순수하다고 오래 착각한 일도있었다. 그럼에도 현주는 자신의 판단을 믿지 못하는 채로 주어진 관성에 끌려다녔다. 의심을 하면서도 눈앞의경로를 향해 계속 걸었고, 그러다보면 너무 멀리 와버려서 그 길이 맞는다고 믿는 데에 진심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뭔가 달라졌을까. 별로 차이는 없을것 같았다. 자신이 플롯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이 아니라는 생각에 익숙해져 있는 현주에게는 오랫동안 해온 착한 조연이 마음 편했다.
마마두를 검색해서 알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내가전혀 알지 못하는 마마두들의 국적과 언어, 그리고 마마두는 마호메트이고 그들의 나라에서는 가장 흔한 이름이라는 것 정도이다. 장미의 이름은 장미, 반찬의 이름은반찬, 마마두의 이름은 마마두. 나는 여전히 미래에 대해아무런 상상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가끔은 작가 마마두가 나무배를 타고 호수 한가운데로 가서 뜨거운 소금을검은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을 때 그 푸른 하늘과 호수의장밋빛이 얼마나 아름다울지를 상상해본다. 누군가의 왜곡된 히스토리는 장밋빛으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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