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내내 두근두근 거렸다. 혹시 루시가 전망 좋은 방을 포기할까봐, 칙칙하고 낡은 커튼들이 달린 틈으로 도망 가, 그 곳에서 차나 따르며 소위 교양과 덕목을 갖춘 그 시대의 고루한 이가 되어 버릴까봐.
그래서 맑고 시원한 바람과 제비꽃들의 향기와 그 아름다움을, 그 사이로 비치던 햇살과 운명같던 두근거림을. 그저 젊은 날의 불안과 초초 그리고 신경쇠약쯤으로 여기며 평생 그저 슈만만을 치며, 더 이상 베토벤을 기억하지 못할까봐.
다행히 루시는 전망 좋은 방에서 사랑하는 이와 함께 경치를 본다. 그 곳엔 따뜻한 바람과 햇살, 그리고 위선적인 아름다움이 아닌 진짜 아름다움이 있다. 예술가의 이름쯤은 틀려도 되며, 신나게 땀을 흘리며 테니스를 쳐도 괜찮으며, 서로 믿고 가식 떨지 않는 곳, 그 곳이 바로 루시의 방이다.
전망 좋은 방에 대한 좋은 리뷰들은 많으니, 루시와 함께 이탈리아를 한 번 거닐어 볼까.
(이때 필요한 것은 베데커여행 안내서가 아니라,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이야기 5권이다.)
루시와 레비시양이 잠시 머물렀던 안눈치아타 광장을 지나 산타크로체 교회로 들어가 보자.
산타크로체 교회는 성프란체스코 성당(프란체스코 성인, 이름에 프랑스인이란 뜻이 담겨있는데, 아마 아버지가 프랑스로 무역을 다닌 대상인이며, 프랑스에 갔을 때 낳은 아이라 그렇다는 설이 있다. 부유했지만 무너져 가는 성당에서 계시를 받고, 모든 것을 버리고 빈민들과 함께 하며 신의 가르침을 전했다고 한다.)이며 조토 그림으로 유명하다.
아래 그림은 조토의 프란체스코 성인의죽음,
그 당시 가장 유명했던 화가치마부에가, 어린양치기 소년이 들판에 혹은 바위에 그린 그림을 보고 감동해서 제자로 삼았다고 하는데 그 양치기 소년이 바로 조토이다. 곧 조토는 스승의 명성을 능가하며 수많은 프레스코화를 남긴다. 프레스코화는 특징상 보존이 어려워서 안타깝다.
조토의 그림들은 산타크로체보다 스크로베니 성당에 더 많다고 한다. 루시가 조토 그림에 관심이 더 있었다면 아마 스크로베리 예배당으로 가지 않았을까.
(아래 그림은 조토의 애도, 스크로베리 예배당에 있다.)
대부분의 성당들은 부유한 은행가 등에 의해 지어졌다. 부유한 자들이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지만, 속세에 성당을 지어 봉헌하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믿었다. 단테의 신곡에도 지옥에서 돼지 무늬 돈주머니를 목에 걸고 있는 이를 봤다는 대목이 나오는데, 스크로베니 집안의 상징이 살진 암퇘지였다고 한다. 결국 스크로베니 집안은 성당을 짓고, 조토의 그림들로 도배한 후 하늘에 바쳤다고 한다. 은행가들이라고 하지만 대부분 고리대금업이니 세상의 시선도 그리 좋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성당을 짓고, 글을 모르는 이들도 깨달음을 얻도록 수 많은 그림들로 성당을 장식하고, 자신의 집안 이름을 본 딴 예배당을 성당안에 건립했다. 피렌체의 산타 크로체 성당 또한 바르디와 페루치 가문의 예배당이 있다고 한다.
(단테의 묘사도 그렇고 지옥은 끔찍 그 자체다. 테드 창의 '지옥은 신의 부재'란 단편이 있다. 그저 지옥이란 신이 신의 사랑이나 은총이 없는 곳일뿐, 오히려 현실과 닮은 곳이다. )
산타크로체 성당에서 루시는 조토의 그림을 보게 되지만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았을 것이다.
루시가 좋아한다고 언급한 “루카델라 로비아”(로비아 가문으로 그의 조카 안드레아와 아들 조반니와 지롤라로 등이 계승)는 이탈리아의 조각가로 ‘델라로비아 블루’로 유명하다고 한다.(로비아의 도자기에서 볼 수 있는 선명한 청색을 일컫는다.) 첫번째는 루카델라, 아래는 조카 안드레아의 작품이다.
며칠 후 루시는 알리나리의 가게에서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서풍의 신 제피로스와 클로리스 혹은 아우라가 열심히 비너스를 해안가로 밀어주고 있다. 그 앞에는 봄의 여신 플로라가 옷을 들고 대기 중)
프라 안젤리코의 대관식,
조토의 성 요한의 승천,
델라 로비아의 아기 그림들과
구이도 레니의 마돈나 그림
을 찍은 사진들을 구입했다. (물론 이 그림들의 사진이 아닐 수도 있다.)
시뇨리아 광장의 넵투누스신 분수대앞에서 살인 현장을 목격하게 되고 조지의 도움을 받는다.
로마에서 루시는 세실과 만나게 되고, 결국 집으로 돌아와 세실의 청혼을 받아들였다.
세실이 에머슨을 만난 곳에서 본 작품은 루카 시뇨렐리의 작품이었다.
루카 시노렐리는 르네상스시대의 위대한 도안가로 로렌초가를 위해 ‘판의 긍정’을 그렸지만,2차대전으로 불타버렸고, 흑백사진으로만 남았다.
그림뿐만 아니라 이 책에선 음악도 꽤 큰 역할을 한다. 세실앞에선 베토벤을 연주하지 않는 루시, 그저 그 곳에 어울리는 무난한 슈만만을 연주할 뿐이다. 위선적인 모습과 신분에 따른 뒷담화들, 세실이 주는 불편함과 무시와 조롱,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을 맞춰 살아간다는 건 어쩌면 마음속에 베토벤 작품번호111번을 숨긴 루시에겐 맞지 않을지도. 그저 전망이 없는 방일뿐인 세실을 보며 넓고 환한 세상을 꿈꿀 순 없을 테니.
그림과 음악이 오고가고, 화가들의 이름들을 주고받지만, 내게 남는 것은 제비꽃, 역시 살아있는 사랑이, 느끼고 흔들리는 따스한 감정들이 좋다. 특히 해피앤딩이라서 정말 다행이다. 만약 처음 구상대로 조지와 루시가 도망가다 나무에 깔려 죽는 전개였다면, 작가의 멱살이라도 잡지 않았을까.
그리고 내가 보고 싶은 작품 하나는 바로 조토의 '동방박사의 경배'이다 낙타의 저 예쁜 눈도 좋고, 실제로 헬리혜성이 그려진 그림이기도 하단다. 조토가 1301년 실제로 혤리 혜성을 보고 그림에 그려 넣었다고 한다.. 아, 저 귀여운 낙타와 푸른빛이 배경, 헬리혜성을 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