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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가우초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이경민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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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든지 살아있을 준비가 되어있다 : <문학+=>

 


제목이 문제였다이렇게 수식으로 '맞춰 보시오'하며 문제 내는 작가는 없었다수식을 보자오른쪽 변에 있어야 할 문학은 어디로 간 것이며 문학은 병과 더하면 사라지는 이름인 것인가아니면 혹시 문학은 0과 치환될 수 있는 것일까이 수식의 참과 거짓을 따질 수 있는 사람은 이것을 읽는 독자일 뿐일 것이다볼라뇨그가 낸 문제에 골몰해 보기로 했다어떤 계산도 필요 없이 그저 종횡무진한 입담을 따라갈 뿐이다.

 

이야기는 볼라뇨가 병원에서 진찰 받는 것으로 시작한다그러다가 순식간에 프랑스 문학이야기로 넘어가는데프랑스 문학의 시인들에 대해 읊더니 말라르메를 꼽는다말라르메 시를 같이 읽자고 하더니 보들레르로 넘어간다다시 좋지 않은 자신의 병세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카프카를 불러서 끝나는 식이다순식간에 읽을 수 있으나 어리둥절하다말이 끊어지는 곳이 적고 위아래가 모두 한 입으로 엮어 있기 때문에 발췌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원서의 어조는 어떨지 모르지만 이 통통 튀는 입담이 병원에서 진행되는 이야기임에도 유쾌했다.


거세된 인간이 욕망하는 단 한가지그건 섹스죠. p.133

이 작품에서는 섹스가 활기차게(?)쓰인다그 행위를 쓴 것 아니고그저 명사로써 섹스가 자주 나오는 것뿐인데 그것은 아주 쉽고늘 해야 하고곁에서 떼어 놓을 수 없는 즐거운 것처럼 여겨진다섹스란 무엇일까삶에 대한 열정삶 자체여러 가지로 치환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경쾌하고 발랄한 이름, 이것을 자꾸 부르는 것만으로도 금기를 깨는 일이 될 것같다그런데 이 '섹스'를 볼라뇨는 난처하게도 ''과 같은 것이라 말 하면서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책도 섹스도 유한합니다하지만 독서와 섹스에 대한 욕망은 무한하여 우리의 죽음과 두려움과 평화에 대한 열망조차 추월합니다그가 말하듯독서에 대한 열망도 섹스에 대한 욕망도 없는이제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는 이 훌륭한 시에서 말라르메에게 남은 건 뭘까요그건 바로 여행이고 여행에 대한 열망입니다. p.139

그는 말라르메의 시를 읽으며 말한다우리에게 독서에 대한 열망도섹스에 대한 욕망도 남지 않을 때 여행을 해야 한다고 말이다그렇다면 독자는 되물을 수 있다그렇다면 여행은 좋은 것인가열망과 욕구가 남지 않은 권태의 구렁텅이에서 구출할 수 있는 것일까?

 

여행은 사람을 병들게 합니다. p.140

그러나 볼라뇨의 대답은 어처구니가 없다. 독자는 (화가 나서)되물을 수밖에 없다그렇다면 "왜 여행을 하자고 하는 것인가(이 사람이)?" 그는 예상했다는 듯 이어서 말한다.

 

사실 여행하지 않는 편이 건강에 좋으며 움직이지 않는 편이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 편이겨울에는 따듯하게 입고 있다가 여름이 오면 목도리만 풀어 두는 게 건강에 이롭습니다입을 열지도눈을 깜빡이지도숨을 쉬지도 않는 게 건강에 이롭습니다하지만 모두가 숨을 쉬고 여행을 하고 있죠. p.141

한 마디로 줄이면 "병들지 않으려면 죽어버려라!"일까여행을 하지 않으면 일단 안전하고돈을 쓸 일도 없고고생을 할 이유도 없다여행이 무엇을 가져다 준다고 하지만 그것은 이 모든 것을 감수 할때 일어나는 일이다극단적인 사람. 여행하지 않고 숨은 쉬면서 안전하게 자기 생활 안에서만 있어도 되는 것 아닐까볼라뇨는 왜 병을 감수하면서 여행을 하라고 하는 것일까


권태의 사막 한가운데 있는 공포의 오아시스근대인의 병을 표현하는 데 이보다 더 명확한 진단이 있을까요그 권태를 벗어나는 데그 죽음의 상태를 탈출하는 데 우리 손에 주어진 유일한 것그렇다고 그다지 우리가 손에 쥐고 있지도 않은 그것은 바로 공포입니다.

다시 말해악이란 말입니다우리는 좀비처럼밀가루 빵으로 연명하는 노예처럼 살고 있습니다그게 아니라면 노예를 만드는 사람으로악한으로아내와 세 자식을 살해한 후 뻘뻘 땀을 흘리며 미처 알지 못한 뭔가를 지닌 것처럼 스스로를 낯설어하면서도 자유를 느끼고 그 희생자들이 죽을 만했다고 말해 놓고몇 시간이 지나 정신이 들면 누구도 그런 잔인한 죽음을 맞아서는 안 되며 자기가 미쳤었나 보다면서 경찰에게 자기를 내버려 두라고 요구하는 인간처럼 살고 있습니다. p.146

좀비처럼 산다는 말, 노예처럼 산다는 말도 모자라 노예를 만드는 사람으로 산다는 말이 이어진다. 연거푸 충격, 아니야, 나는 나 답게 살고 있어! 라고 말하는 독자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다 그것이 정말 내가 '생각'해서 나를 사는 것일까? 볼라뇨는 묻는다. 볼라뇨는 과연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말하고 싶다. 그것은 여행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사람을 병들게 하는 여행을 통해서 제발 '병 들어라' 말하고 싶은 것 같다. 이미, 우리의 행위와 언어 또한 병들어 있으니, 그것을 모르고 살지 말고, 제발 떠나라. 두려워 하지 말라 이어 말한다.  

 

말라르메는 여행과 여행자의 운명이 어떤지 알면서도 그 여행을 다시 시작하고자 합니다다시 말해이지튀르의 저자는 우리의 행위만 병든게 아니라 언어 또한 병들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우리가 치료를 위해 해독제나 약을 찾을 때새로운 것오직 미지의 곳에서 발견 되는 그것을 찾으려면 섹스와 책과 여행을 탐험해야 합니다비록 이것들이 우리를 심연으로 이끌지라도 말입니다어쩌면 그 심연이 해독제를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일지도 모릅니다. p.163

'병들어 있는 것'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 그래야 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낫게 하는 것은 심연으로 이끄는 섹스와 책과 여행의 탐험이라며 외치고 소설을 빠져나가려 한다.

 

글쓰기와 떨어질 수 없다는 말로 난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일까요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아마도 나는 카프카가 여행과 섹스책은 어디로도 이어지지 않는 길이며그럼에도 뭔가를 찾아서 그 길에 들어서고 길을 잃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고 말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152

나는 제목으로 돌아가 <문학+=기우뚱한 수식의 참과 거짓을 따지기 위해 읽었던 것을 다시 생각한다


지나왔던 날을 들춰본다이것이 온전하지 않은 것이었다면 내가 지금껏 해왔던 것은 무엇인가내가 있는 세계는 과연온전한가오아시스는 어디인가썩은 물이 계속 나오는 오아시스를 삶의 원천으로 여겨 빌붙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여행의 시작은 살아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병들 수 있다. 이것을 알고 난 후에 시작된 독서와 섹스는 무엇을 가져다줄까그것이 혹 겨우 찾아온 괜찮은 여행지를 의심에 빠뜨린다 하더라도, 그때에는 병을 감수하고 떠날 수 있는 배짱이 있을 것이다. 무언가를 찾지 못하거나, 찾을 수 있어도. 그러니 언제든지 병들 준비가 되어 있다, 언제든지 살아있을 준비가 되어 있다.  

 

볼라뇨가 말한다. "문제가 그럴 듯 했나?"

 

 

 

 

+볼라뇨는 실제로 간부전을 앓고 있었고 그로 인해 죽었다참을 수 없는 가우초는 볼라뇨의 세 번 째 단편집이자 첫 번째 유작이다이 흥미진진한 작가가 일으킨 돌풍을 <볼라뇨 전염병>이라고 부른다는데우리나라에서도 발견 될 것 같다. '볼라뇨라니정말로 병 이름 같잖아!

 

+열린책들 표지는 언제나 멋졌지만, 이 표지는 그중에서도 최고다. <참을 수 없는 가우초>의 한 장면을 이토록 몽환적으로 그려놓았다. 

 표지그림 야후벨. 열린책들의 작가 로베르토 볼라뇨의 한국어판 컬렉션 표지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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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만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 1~3 세트 - 전3권 - 더 깊고 풍부해진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만화 상상력 사전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김수박 그림 / 별천지(열린책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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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 혹은 마야, 마르크스 혹은 핑크 플로이드, 그리고

 

고백하건데 나는 이 책을-학습용 만화시장에-적합한 기획의 책이라고 생각했다.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의 성공을 다시 한번 부흥시키기 위해 만화로 옮겨 놓은 것일 뿐이라고 폄하했다. 이것은 슬쩍 본 그림에서 비롯된 비호감에서도 기인했다. 인물의 비율이며 인상이며, 그림이 이게 뭔가?(솔직한 마음이었다) 그러나 책을 다 읽은 후 생각이 바뀌었다. 잘 못 그리는 듯한 그림은 [작화는 이야기를 도울 뿐]을 실천하려는 김수박의 고도의 계산이 아니었는가 말이다. 적당히 못 그린 작화는 지문에 집중을 방해하지 않으며, 만화의 구성은 지문을 쉽게 이해하고 진행하는 역할에 충실했다. 오해를 반성하며 쓴다. 언젠가 둘러 앉은 저녁에서 <상상력 사전>에 관한 이야기를 할 가족을 상상하며 적는다. 단언컨데, 이 책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을 원작 이상으로 끌어올린 작품이다.


원작과 다른 새로운 구성
우선, 이 책은 전작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이하 백과사전)과 전혀 다른 구성을 갖고 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가(이하 베르나르)수집하고 생각했던 백과사전 형식의 책은 말 그대로 사전식의 구성을 따르고 있다. 상상도 하지 못한 것 표제어가 제시되고 그에 대한 이야기가 각각의 이야기가 한 권의 책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베르나르 한 사람의 생각과 관심에서 시작된 책이기 때문에, 단절된 이야기지만 앞 뒤가 이어지거나 확장되는 주제가 많다. 이것을 재구성 하는 것은 책을 완전히 다른 각도에서 이해했음을 의미하고 그것을 새롭게 만드는 창작과 다름없는 일을 뜻한다. 전체의 이야기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그 내용 안에 분절된 마디를 감싸고 있기 때문에 베르나르의 방대한 관심과, 들쑥날쑥한 이야기를 고른 호흡과 예상 가능한 주기로 정리해 독자를 이끈다.

이야기 밖의 주인공들
이 새로운 구성은 원작의 백과사전에 없었던 주인공이 등장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주인공은(얼마나 촌스러운 이름인지) 헐렝이, 이쁜이, 멋쟁이이다. 새로운 세 명과, 원작에서도 역시 없었던 베르나르 본인이 친근한 얼굴로 등장하며 그린이 김수박 또한 화자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소소한 유머도 빠지지 않는다. 이것은 만화라는 양식을 채용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왜 스무살 인가
원작 <백과사전>은 읽을 대상의 나이를 고려하지 않았다. 쉬운 부분도 있지만 딱딱한 부분이 더 많다. 어렵고 다방면에 흩어져 있는 관심을 쉽게 풀고자 만화로 기획했을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주인공이 나이가 스무살인가. 대부분 스무살은 더 이상 학습용 만화를 보지 않는다. 나는 이 점이 의문이었다. 예를 들어 학습만화의 신기원 이원복의<먼나라 이웃나라>를 보면 주인공은 이름과 나이가 명확하지 않다. 화자가 이원복 자신이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웃나라에 대한 지식을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화자는 화자만의 나이나 고민을 갖을 이유가 없었다. 

사랑은 우리 모두의 초점
 이들이 교복을 입은 청소년이었다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도 독자도 더 명확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러나 김수박은 욕심이 있었던 것 같다. 만화는 단지 아이들에게 읽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중에게 더 쉽고, 틀을 깨는 방법으로 다가 설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던 것 같다. 세 주인공은 사랑을 하고 술을 먹기도 하며 군대도 간다. 이들은 우선 만화의 주인공이어서 <상상력 사전>을 이야기 하지만 스무살이 갖고 있는 고민을 조금씩 내보인다. 중요한 점은 작가가 이들은 이십대가 아니라 '스무살'에 고정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름을 대명사로 하지 않고 어리숙한 것을 가져온다.(헐렝이, 이쁜이, 멋쟁이) 책을 읽을 대상은 우선 고등학생까지이기 쉬운데 이 책은 중고등학생이 바라보는 스무살의 호기심(스무살은 과연 무엇일까) 스무살 이후에서 바라보는 스무살(스무살이 포함된 이십대의 대체적인 고민)을 모두 잡으려 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꽤 성공적으로 보인다. 화자가 스무살로 설정되었기 때문에 무엇보다 '사랑'의 관념적인 이야기가 가능했다. 헐렝이와 이쁜이가 자신과 남에 대해서 이해하고, 사랑을 하고, 맞춰 나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아가는 것이 <상상력 사전>의 큰 틀로 움직인다. 이 안에서 다른 이야기가 유기적으로 조합되며, 독자층을 청소년에게 한정하지 않을 수 있다. 이점은 일반 어른이 읽어도 좋다. 그럴듯 하게 포장되어 나오는 "심리 실용서"보다 더 나를 돌아보는 데 이로울 것이다. 스무살은 <상상력 사전>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물으며 때로는 반박하는 것을 스무살의 멍청함과(어른인가 아이인가) 스무살의 명민함(중2와 비교할 수 없는 날카로움)으로 효과적으로 나타낸다.

김수박은 누구인가
 이 책의 최대 수확은 김수박의 시선이나 생각이 곳곳에서 배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관념]을 설명하는 장에서, 공산주의 관념을 설명한 후 칼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나온다. 원작에서 하려는 이야기는 "문명은 관념들 간의 투쟁을 통해 발전한다"는 것이었을 테지만 "공산주의라는 관념이 쇠퇴해서 소수의 사람에게만 영향을 미치고 있으나, 이 과정에서 자본주의라는 관념도 변하게 만들었다." 라는 내용이 따라온다. 여기에 "인터넷에서 어떤 관념을 전파하거나 퍼올 때는 신중해야 한다"는 내용이 붙는다. "관념이 만든 사람이나 그것을 전달하는 사람보다 더 강력하기 때문"이라는 설명과 함께 말이다. 이것은 대상이 명확하다. 일베나 디씨 등등 웹상에서 쉽게 소비되고 회화화 되는 '관념'에 일침을 놓는 것이다. 그곳에 무분별하게 노출된 아이들의 생각에 전환을 가져오지 않을까. 이것은 단순한 기대가 아니다. 이 설명에는 생각을 재고할 수 있을 것 같은 논리가 있다.   

기억하고 싶은 한 컷
[세 가지 반응]이라는 항목은 생물학자 앙리 라보리의 『도피예찬』의 한 구절로 시작된다. 그는 "인간이 마주칠 때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세가지 뿐"이라고 한다. 첫째는 '시련에 맞서 싸우는 것'이고, 둘째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며, 셋째는 '도피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생물학자라니 과연 베르나르의 관심은 개미만큼 많다. 그가 아니었다면 보통사람은 알기 어려웠을 지식을 만화로 첫 번째와 두 번재에 관해 자유롭게 풀어 쓴다. 그리고 세 번째 방법인 도피 중에는 '예술적 도피'도 있다고 설명한다. 자기의 분노와 고통 여러가지 분야로 표출하는 것을 적는다. 여기서 김수박은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이 책의 곳곳에서 세상의 불합리함을 알리고 있었다. 그것은 먹먹했다. 영화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올리버 스톤의 'JFK'가(존 F.케네디 의 암살 사건에 대한 진실), 음악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We don't need no education(우리는 교육같지 않은 교육은 필요없어)', 핑크 플로이드의 'Another Brick in the Wall'노래 가사를 적는다. 책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그린다. 이어지는 다음 칸에 "현실 세계에서는 감히 주장하지 못하는 것을 상상 세계의 자기 주인공으로 대신 말하게 합니다"라며 김수박이 만화를 그리고 있다. 마지막 컷에서는 무엇이 나왔는 줄 아는가. 김수박이 그린 "용산 남일당 건물"이 나온다. 낡은 콘크리드 건물 위, 망가지고 주저앉은 컨테이너가 흑백으로 말이다. 나는 이 페이지를 오래 넘기지 못했다.

상상력 사전에서 용산 남일당 건물로
 <상상력 사전>에서 용산 남일당 건물로 리뷰를 마무리 할 줄 어떻게 알았겠는가? 이것은 김수박이었기 때문에, <상상력 사전>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나는 이 책으로 베르나르의 <백과사전>이 완전히 우리의 것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번역과 또 다른 작업이다. 외국 작품을 우리의 정서로 읽는것이나 만화로 조금 더 쉽게 풀어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나라에서 할 수 있는 고민들을 곳곳에 적었다. 이것은 '고민 할 수 있어야'했던 것이었으나 '고민 할 수 없었던(하지 않았던)'것이다. 상상력 사전을 통해서 내가 사는 세상을 다시 생각할 수 있게 된다면,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상상력 사전>의 역할이 아닐까. 이 어리숙해 보이는 책을 학부모들은 고민 없이 사야 한다. 아이들은 읽을 것이다. 공부에 바쁘지만 돌고래나 바퀴벌레, 뇌나 알끈에 대한 탐구를 시작 할 수도 있을 것같다. 때로 자신의 궁금점과 생각을 부모에게 이야기 할 것이다. 일과 생활에 지친 부모들은 가끔은 대답을 궁리할 것이고, 아이들은 스스로 궁금한 이름을 검색하기도 할 것이다. 저녁, 부모와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함께 <상상력 사전>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을 상상한다. 개미 혹은 마야인, 마르크스 혹은 핑크 플로이드를. 그리고 정부와 언론, 사회의 무관심에 묻혀 그저 '사건'으로만 기억되는 일들을,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을 말이다.
 





김수박 홈페이지 : http://www.kimsubak.com/
김수박의 책들 : 『빨간 풍선』과 『먼지 없는 방』은 김수박이 그렸고, 그 외 다른 책은 다른 만화가와 함께 참여했다.

이미지 출처 :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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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인류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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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인류-거대한 이파리와 빈약한 줄기

 

 소설을 읽기 전 그의 궤적을 살펴보았다중고등학생을 벗어나면서부터 그의 책을 보지 못했던 것을 떠올릴 수 있었다.『뇌』이후로 발간되는 소식만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의 궤적. 그의 소설에 대한 기억도 '중고등학생 때'에서 '머물러 있다는 것'것을 점검했다. 그를 만나기전 나의 준비는 읽지 못했던 그의 전작을 나열하는 것과, 『개미』를 읽고 느꼈던 흥미진진함을 다시 떠올리는 일이었다. 『제3인류』는 중고등학생 때의 향수를 불러왔다그의 세계는 변하지 않았던 것이다매력적이고 젊고 똑똑한 남녀 주인공이 나오며, 이야기의 전개가 그럴듯 하지만 급작스럽고, 그렇지만 잘 읽히고, 추리·모험의 형태를 띄지만 연애이야기도 물론이며, 몇 백 페이지를 끌고 나가는 패기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제3인류는 베르나르 자신이 썼었던 전작에 많이 기대 있었다. 2권에 나오는 감사의 말을 살피면 '개미가 출간된 지 20년이 되었고많은 시간 동행해준 독자들을 위해서 전작의 원리를 다시 채용한 것'이라는 친절한 설명이 있다자신의 이야기가 모자라서 전작의 소스를 가져올 수는 있다. 읽어본 결과 그의 전작의 채용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그것을 독자를 위해서라고 명시하는 것은 독자를 핑계 삼아 자신의 좁은 세계를 가리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러웠다. 전 소설과 연관되어 하나의 큰 이야기를 이루는 것이 그의 특징이라고 해도 말이다.

 

 제3인류는 그의 전작 중 내용 측면에서 『아버지들의 아버지』를 떠올릴 수 있다. 그러나 제3인류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과거-현재-미래로 이어지는 다음의 인류에 대한 천작은 과연 '우리 이후의 인류'는 무엇일까 대해 상상해볼 수 있는 신선한 지점을 갖고있다. 소설은 거인족을 남극에서 발견하면서 시작된다. 

 거인족이 있었다는 착안이 무척 놀라웠다. 모든 대륙에서 보통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거대한 건축물-피라미드이스타 석상 등이 확인 되는 것과 거의 모든 신화에서 거인족과 보통 신장의 인류의 싸움 등이 나오는 것을 꼼꼼이 살피고 물었을 결과일 것이다그들의 크기는 지금 보통사람의 10즉 17m에 이르는 것으로 제시된다보통 인류를 기준으로 10배 큰 인류가 있었고다시 제3인류라는 후속의 인류로 보통 인류의 10배 작은 인류(여성)를 탄생시키는 설정이다이들은 무려 난생하며새로운 인류를 만드는 목적(!)은 어떤 위험에도 저항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소설은 크게 네 가지 줄기가 나선형으로 하나의 몸통을 만든다각자의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그리고 서로를 보완하면서 나아가는 형식이다우선 주인공들이 진화를 연구하는 이야기그리고 지구가 화자가 되어 하는 이야기중간 중간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발췌해 소설의 이해를 돕는 챕터가 있으며 전 세계 동향을 나라별로 뉴스 전하듯 보도하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기둥을 튼튼히 하려고 네 가지의 줄기가 서로 다른 지점에서 끌어왔지만 이들의 화합이 제3인류라는 제목을 받치고 있기에도 빈약해 보이는 문제가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지구가 화자가 되는 상황에서 잘 나타나는데, 지구는 보통 혼잣말을 하거나 자신의 상황을 설명한다나는 베르나르의 분신을 지구에서 보았다지구는 신의 입장으로 등장해 스스로 생각하고 말을 한다소통은 하지 못하지만 주인공들의 상황을 들을 수 있고도와주기도 하고대화를 설명해주기도 하는 존재이다그러면서 자신의 탄생과 그 동안의 비화를 설명해간다. 이것은 그동안 사람의 시선을 벗어나 개미나 다른 동물들혹은 신 등의 입장에서 인간을 회의적으로반성적으로 바라보았던 그의 시선이 이제는 지구의 시선으로 옮겨 갔다는 새로움을 이르기도 하지만 그것을 통해서만 소설을 이룰 수 있다는 취약점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했다. 다시말해 '지구가 하는 말'은 그 자체로 신선할 수 있지만 그 목소리가 지구를 이해하기보다 소설의 진행을 돕는 비중이 역력하다는 것이 아쉬웠다하나의 예로여자 주인공인 오로르가 여성들의 마을에 가서 신과의 대화를 하기 위해 의식을 치루는 장면이 끝나고 이어지는 지구의 목소리를 살펴보자.

 

물속에 가스를 보내어 작은 거품들을 일으켰지만 기대했던 효과를 얻지 못했다하는 수 없다나에게는 그 <오로르 카메러>라는 이름이 남아 있다내가 기억하기로 그 여자는 내가 지켜보고 싶어 하는 진화 프로젝트들 가운데 하나를 제안한 사람이다.(중략)

나 자신의 역사를 회상하고 있었는데 어디까지 했더라?」 p268

 

지구는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 반복해서 알려주면서, 인물의 동향을 알려주면서 페이지를 장식한다. 소설을 창조하는 것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얼마나 정교하게 구체적으로 있을 법하게 그리느냐가 소설의 승패가 되겠다그의 이야기는 점점 커지는데 그것을 뒷받침할 만한 세밀함은 점점 부족해 보였다성의 없는 인물간의 대화과감함을 뛰어넘는 이야기 전개, 주인공들은 이야기 속에서 스스로의 모순을 벗어나기 위해 급급한 것으로 보인다물론 그의 소설에서 정치적인 풍자나 인간의 탐욕으로 빚어진 지구의 파괴 등은 주의 깊게 들을만 하다. 그러나 그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제3인류의 탄생이라는 어마어마한 이야기이다. 다른 인류를 탄생 시키는 지금의 인류에 대한 위험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지금 인류로써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위해 '만들어지는 인류'는 과연 어떤 존재일 것인가. 거대하고 무성하지만 매력적인 주제에 비해 그것을 뒷받침 하는 소설의 기둥이 빈약하다. 

 

베르나르는 『개미』를 기억하는 자신의 팬들을 위해서라도 좀더 구체적이고 세밀한 그림을 그리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책이 쉽게 읽힌다는 것은 강점이지만, 책이 허술해서 쉽게 읽히는 것과 재미있기 때문에 쉽게 읽히는 것은 다르다. 초판을 20쇄나 찍었다. 그는 이야기꾼으로써의 책임을 무겁게 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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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토크라트 - 모든 것을 가진 사람과 그 나머지
크리스티아 프릴랜드 지음, 박세연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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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계급의 확인

 플루토크라트(PLUTOCRAT)는 부와 권력을 모두 가진 이를 말한다. 이 새로운 이름은 그저 부자로 뭉뚱그려졌던 부자 중의 부자,  0.1%를 수면 위로 드러나게 했다.그들의 존재는 알았으나 그들의 문화이익을 추구하는 방식 등은 일반인들이 알기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플루토크라트를 알아가는 동시에 내가 있는 세계가 그들에 의해서 재편되고 있다는 것을 효과적으로 알린다거미줄 같이 연결되어 있는 자본의 세계에서 세세하게 그들의 영향을 꼽기는 어려울지 몰라도 국가와 국가가 정치적인 협정으로 인해 영향을 주고받는 것 보다 더 가시적인 것으로 생각된다. 국적을 가리지 않는 막대한 영향력은 설사 자본주의가 통용되지 않는 곳이라도 미쳐 있을 것 같다.

 

플루토크라트의 목차

 책은 총 6장으로 이뤄져 있는데이들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플루토크라트를 알리고 조명하는 목적에’ 부합한다. <역사그리고 역사가 중요한 이유>라는 개설 성격의 1장에서 과거의 플루토크라트는 어떠했는가어떻게 다시 발현되는가에 대하여 적는다이어서 <플루토그라트의 문화>를 설명한 2장이 나온다국가와 정부와 상관없이 조직되는 플루토크라트들의 네트워크에 대해서 그들의 활동에 대해서 서술한다. 3장에서 플루토크라트 중에서도 플루토크라트인 <슈퍼스타>들을 집중 조명하며이어진 4장에서 이들이 <혁명에 대처하는 능력>에 대해서 설명한다. 5장은 플루토크라트들이 부를 축적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여기는 <지대 추구>에 대해 알아보며 마지막 6장에 가서 <플루토크라트와 우리들 나머지>라는 주제로 플루토크라트의 이야기를 나열한다'근시안적이고 자신의 이익에만 몰두하는 플루토크라트'를 견제해야 한다는 결론은 방대하게 다뤘던 플루토크라트의 이야기에 비해 소극적으로 이뤄진다.

 

인상적인 본문과 책 서술의 특징

<플루토크라트 의 문화>에서 빌 게이츠의 활동이 인상 깊었다. 그의 활동은 원래 의도와 무관하게 국가들 전체의 사회 안전망에 왜곡을 가져올 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래서 풍족한 자금 지원을 받으며 에이즈 치료제와 결핵, 말라리아 백신에 집중하는 의사와 간호사들로 하여금 절실하게 필요하지만 별로 눈에 띄지는 않는 일상적인 의료활동을 꺼리게 하는 역효과를 낳고 있는 사례가 나온다. p127 

그것은 일부 플루토크라트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공공 기관을 매수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국가나 지역, 심지어 세계 전체의 지배 이데올리기의 향방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들을 어떻게 견제 할 수 있는 것일까? 라는 물음이 나와야 하지만 다루지 않는다. 호기롭게 자신의 부를 이용해 정치적인 성향을 뚜렷이 나타내는 활동을 기술해 갈뿐이다. 장을 마무리하며 나가기 전에 미국의 갑부들이 그들의 나라를 좌지우지 하고 있다면, 정말로 사악한 조직적 집단일 것이라 p131 하면서도 그녀는 부자에 대한 반감을 기술하지는 않는다. 버핏의 예를 들며, 부자들에 대한 세율이 점점 낮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인들에게 세율을 높이라고 했던 점을 인용하면서 그들의 입장을 충분히 전한다. 

 

<지대 추구>부분에서 새롭게 탄생하는 플라토크라트들은 대부분 정부의 사업을 민간화 하는 과정에서 만들어 진다는 사실을 적는다. 이것을 이끈 계기는 자유주의 바람이라고 한다. 80년대 멕시코는 경제 성장률이 둔화되면서 시장개혁을 필요한 과제로 생각하게 되었다. 특히 '슬림'이라는  플루토크라트는 멕시코의 매각 프로젝트를 이끈 살리나스와 연결되어 비효율적인 국영 기업을 민간화 하는데 성공했다. 성공의 결과로 OECD국가들 중 가장 높은 비용의 전화비용을 지불하게 되었으며 휴대전화 보급율 60%(2007년 기준)에 불과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국영 기업의 초기 민영화 사업에 참여해 경제 게임의 규칙을 바꾸어 나가는 방식으로 부를 축적했다. 플라토크라트라고 까지는 할 수는 없겠지만, 4대강을 파헤치고도 모자라 인천공항을 매각하려 했던 그분이 생각나서 잠시 고개를 숙였다. 책의 독특한 시선은 여기에서도 잘 확인된다. 국영기업을 민간화 하면서 벌어지는 부분에서 부의 집중과 그것의 불합리에 대한 비판이 이어져야 할 것 같지만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 책의 몫이 아니기 때문이다.

 

알려져 있지 않았던 새로운 것을 대할 때는 그것의 상태를 '아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이와 같은 선상에서 이해한다면 이 책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새로운 계급을 발견하고 미지의 세계에 가려져 다가가기 어려웠던 플루토크라트의 세계를 있는 사실을 나열할 것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어떻게 자신의 부를 계속 키워나가는가? 라는 물음에에만 충실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플라토크라트의 생각에서 지젝을 떠올리다

 책에서 플라토크라트들의 생각을 알 수 있는 인터뷰가 종종 나오는데 그것을 취합하면그들은 자신의 돈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자신들의 끊임없는 이익추구가 무엇을 위할 수 있는 것인지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의 삶은 어떤 것인지에 대해 너무나 '무지한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중 도드라지는 대화는 단연 프리스이다.

 

프리스는 전체 99퍼센트의 패러다임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그의 생각에 따르면미국 소득 분배상 하위 계층에 있는 미국인들은 무임승차를 하고 있다. (중략프리스는 우리 사회가 1퍼센트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며그만큼 그들을 존경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99퍼센트보다 상위 1퍼센트가 세상을 좋은 곳으로 만드는 데 더 많은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가난한 사람들이 빌 게이츠와 같은 훌륭한 일을 한 경우를 저는 본 적이 없습니다가난한 사람들이 많은 일자리를 제공한 것도 본 적이 없습니다그러므로 저는 가치를 만들어 내고 있는 1퍼센트들을 우리 사회가 마땅히 존중하고 떠받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p373

그러나 부자들의 기부가 왜 일어나야 하는 것인지를 우리는 안다. ‘훌륭한 일을 한 빌 게이츠에 대해 지젝은 이렇게 말했다인류 역사상 가장 커다란 규모의 자선가이기도 한 그는, “사람들이 배불리 먹지 못하고 이질로 죽어간다면 컴퓨터를 가진다는 게 무슨 소용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자유주의적 공산주의자의 윤리로는자선을 베풀면 무자비한 이윤 추구 행위도 상쇄된다자선은 경제적 착취라는 얼굴을 감추고 있는 인도주의적 가면이다.폭력이란 무엇인가, p52.

 

「자선행위는 자본주의적 순환이 논리적으로 낳을 수밖에 없는 것이며, 이는 철저하게 경제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그래야만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를 연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선 행위는 진정으로 곤궁에 처한 이들에게 부를 나눠준다는 일종의 재분배를 통해 균형을 재확립하며, 치명적인 덫을 피해간다. (중략) 그러니까 파괴적 원한의 논리와 국가주도의 강제적 부의 재분배를 피해간다는 것이다.(중략)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저 스스로 재생산을 할 수 없다. 사회적 재생산의 순환을 유지하기 위해 자본주의에는 경제 외적인 자선행위가 필요한 것이다. 

같은 책, p54.

 

책을 덮으며

 플라토크라트를 읽고 『폭력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읽어보게 되었다. 『플라토크라트』는 그들만으로 재편되는 세계를 더할 나위 없이 묘사하고 있다그들의 세계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살피는 것은 물론이다. 그 결과, 그들은 완전히 유리된 사회에서 살고 있는 '전혀 다른 종의 사람은 아닌가'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며 호기롭게 도전하는 '일하는 부자'의 모습을 그리며 '자수성가'라는 표현을 쓰고 있지만, 이들 대부분 기반이 되는 부가 있었거나, 교육에서 남다른 코스를 밟아왔다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 책에서 조명하는 그들이 부를 쌓는 부분에서는 수완이 좋고 아이디어가 뛰어난 훌륭한 사업가로 보이기도 한다. 직원들과 회사생활을 공유하며 창의적인 활동을 하기 위해 좋은 기업을 세우는 것도 가치있는 일로 보인다. 그러나 일반인들과 같이 밥을 먹고, 같이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플라토크라트의 삶과 생각이 99.9%들과 같을 수 있을까? 책은 그들은 융합되는 듯이 보이지만 그들의 삶은 0.1%만이 알 수 있는 곳에 가 있다고 말한다. 게다가 이렇게 이룬 부는 자신의 성공을 견고하게 해줄 두터운 벽으로 작용할 뿐이다. 그것도 모자라 깊은 협곡까지 만들어 자신들의 섬을 보전하기에 이른 듯 하다한정된 부를 불공정하게 나눠 갖게 되는 것양극화가 불러오는 곳에서 필요한 다음 수순은 무엇일까. 그들과 같은 사고와 삶을 본받아 끊임없는 부를 추구하는 것일까? 아니다. 플루토크라트의 존재가 명확히 감지될 수록 자본주의의 적신호가 커지고 있다는 것을 제대로 봐야하는 일이다. 기부가 아니라면 사회적 재생산의 순환을 유지할 수 없는 오늘날의 자본주의에서 기를 쓰고 조금이라도 유리한 곳으로 나아갈 것이냐아니면 함께를 포용할 수 있는 다른 가치를 생각할 것인가. 결국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들의 사고와 삶이 아니라, 그들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스스로 연대하는 개인의 탄생'을 촉구하는 것인지 모른다.

 

 

 

 인용한 책 : 슬라보예 지젝 지음/이현우·김희진·정일권 역, 『폭력이란 무엇인가』, 도서출판 난장이, 2012.

 이를 제외한 모두 『플라토크라트』본문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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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제임스 설터 지음, 박상미 옮김 / 마음산책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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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보는 눈, 말하지 않는 입
셔츠를 걸쳤으되 걸치지 않은 여자의 몸을 읽는다. 몸을 내보이고 고개 돌린 얼굴은 무표정하다. 그녀의 시선이 책 밖의 사람과 눈 마주치려나 싶어 표지를 바라본다. 그러나 그녀는 나의 시선을 '비껴가' 내 왼 편에 있는 '어떤 것'에 고정한다. 그녀와 마주치려면 책에서 '비켜서'야 한다. 읽기를 그만두어야 가능한 마주침. 그녀, 분명한 입술은 '다물어'져 있고 한 쪽 눈은 '감기지' 않는다. 

앞뒤 알 수 없는 그녀의 몸
 음영이 진하게 드리운 등-에 의심이 인다. 진한 고동색으로 음영은 근육이 아니라 가리기 위한 자국 같지 않은가. 깊게 팬 그림자를 지나면 둥글게 유선을 잡은 듯한 가슴팍, 동심원이 생기다 자국, 뻗으려다 만 쇄골을 따라가고, 마주치는 것은 명백히 돌아선 얼굴. 거의 다 드러낸 몸을 보고도 그것이 앞인지 뒤인지 확실하지 않다. 그녀를 넘기면 분명해질까. 책을 펼친다.

<혜성> 오지 않는 것을 기다리는 사람 
벌써 옷에 와인을 흘렸고 그 자리에 냅킨을 덮어놓았다. p16

일상의 언어가 기척도 없이 주저앉는 것은 공들여 쌓아온 사건이 무너지는 것보다 더 깊은 자국을 남긴다. 와인은 흘려지기 마련이고 그 자리를 냅킨으로 덮어두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혜성>의 아델이 발화하는 순간 일상의 언어는 절벽으로 옮겨와 그곳을 뛰어내려간다. 사뿐한 걸음으로 수직을 내딛는다. 이 장면들이 당연하게 연결되어 혹시 아침 산책길을 뛰는 것인가 착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책을 거꾸로 읽는 것이 아니라면 그녀는 절벽을 뛰어내려 가고 있는 것이 맞다. 맨발로 흩날리는 치마, 절벽 끝은 궁금하지 않았다.

나도 비슷한 일이 있었어요. 하루는 버그도프 백화점 앞을 지나는데 쇼윈도에 맘에 드는 초록색 코드가 걸려 있었어요. 그래서 들어가서 그 코트를 샀어요. 그런데 며칠 지나서 다른 곳에서 처음 코트보다 더 좋은 걸 본 거예요. 그래서 그것도 샀어요. 나중에 옷장 안엔 초록색 코트가 네 벌이나 걸려 있게 됐죠. p21

그녀는 재혼한 남편 필립의 과거를 사람들 앞에 폭로하고 있다. 그것은 어떤 기대나 각오도 없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그리고는 "필립은 자기가 어쩔 수 없었던 것처럼 말하는데,..."라고 말을 잇는다. 이 말 뒤에는 당연히  '그렇지 않다'라는 부정이 와야 하 것만 "나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며 자신의 이야기를 내온다. 그래서 아델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어느 날 옷장을 열었을 때 초록색 코트가 네 벌이나 걸려 있는 당혹스러움. 결국 무엇을 더 나았다고 생각했던 것인가. 나의 욕망은 조금도 나아진 적이 없다. 지리함, 한 번에 네 벌의 코트를 입을 수는 없는 그를 그녀는 무심히 바라본다.

폭로가 끝난 후, 둘은 여느 때의 일상을 맞는다. 필립은 '오늘'만 볼 수 있다는 혜성을 바라보기 위해 바깥에 서 있고 아델은 필립에게 집으로 가자며 부른다. 아델은 발을 '헛디디며'집으로 먼저 들어간다. 모든 비극은 오늘 시작하고, 모든 행복은 오늘 끝난다. 내일이 시작되면, 그들은 여전히 맞을 수밖에 없는 오늘 앞에서 어떤 표정을 지을까. 오늘 앞에서 어젯밤의 모습은 어떻게 떠오를까. 이어서 책의 가장 끝에 실린 <어젯밤>을 읽는다.
  

'어젯밤'은 완전하다. 어떤 신이 와도 <어젯밤>을 '어제' 아닌 곳에 놓을 수 없다.

그럼, 행복한 나날들을 위하여. 그녀가 말했다. 그러곤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무서운 미소였다. 미소에 반대되는 게 있다면 바로 그거였다. 184p

월터는 안감힘을 쓰며 앉아있다. 행복을 들킬 수 없고 슬픔에 취할 수 없다. 아내와 보내는 마지막 저녁식사가 될 것이다. 월터는 아내가 원하는 죽음을 도와주기로 한다. "행복한 나날들을 위하여."라는 말은 역시 평소에 쓰이는 말이지만 죽음을 '선택'한 사람이 발화해도 괜찮은 말일까. 위치를 배반하는 단어들이 소설의 간극을 벌리고 일상을 으스러뜨린다. 그녀는 자신에게 없을 '나날들'이라는 말을 살아갈 사람에게 건넨다. 그녀는 정말 그의 앞으로 '행복한 나날들'을 위해 건배하고 있는 것일까. 그녀는 월터가 숨기고 싶었던 기쁨, 수잔나를 부른 자리에서 '행복한 나날들'을 빌고 있다. 그녀는 둘의 관계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녀는 두 사람의 들리지 않는 진동을 두드린다. 예고 없이 떨어지는 단어의 폭격을 뚫고 지나면 무심히 던진 보통의 인사가 물 한가운데 떨어져 비가 된다. 주변이 어두워진다. 
 
그는 접시를 꺼낸 다음 마른 수건으로 덮었다. 그렇게 하니 더 끔찍했다. 접시를 내려놓고 주사기를 집어 여러 가지로 손에 쥐어보았다. 결국 거의 다리 뒤로 감추는 모양새가 되었다. 192p
저녁식사가 끝난 후, 월터 부부와 수잔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월터는 앞의 소설 <혜성>에서 처럼 '자국'을 덮는 일은 반복한다. 덮는 것이야말로 자국의 명징한 해설. 덮어서 더 끔찍한 것은 덮은 것으로 인해 모양이 더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마른 수건은 주사기만을 덮는 것이 아니다. 용액을 채운 주사기가 접시에 담겨 냉장고에 들어가 있던 시간을 덮는다. 아니, 그 이전 수잔나를 만나게 되었을 때부터의 아내로부터 변한 마음, 모든 총합이 마침내 주사기 하나로 환한다. 그는 그것을 덮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사기가 고장 나길 바라는 마음은 안쓰럽다. 마음은 힘이 없고 행동은 마침내 주사를 그녀의 팔에 꽂는다.  

모두 잘못되었어요. 마리트가 되풀이해서 말했다. 그러더니 수잔나를 향해, 아직 여기 있어요?
지금 가려고 했어요. 수잔나가 말했다.
이해할 수가 없어. 월터가 다시 말했다.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해요. 마리트가 흐느꼈다.
미안해. 그가 말했다. 정말 미안해. p198

다음 날, 그녀는 살아서 계단을 내려왔다. 그리고 '모두 잘못되었다'는 말을 반복한다. 어젯밤, 아래층에서 월터는 수잔나를 안았다. 그리고 그녀는 '오늘' 출현함으로써 '어젯밤'을 만들었다. 거대하게 출몰한 그녀. 월터는 '미안해.'라고 말한다. 그러나 '미안해.'라는 말은 아무에게도 쓰이지 못한다. 월터는 어젯밤의 자신이 되어 '미안해'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월터 자신도 듣지 못한다. '어젯밤'은 모두의 손을 떠나 완전해졌다. 어떤 신이 오더라도, '어젯밤'을 어제 아닌 곳에 놓을 수 없다. 
 '어젯밤'의 출현으로 수잔나는 떠났고 수잔나와 만났던 월터 자신도 떠났다. 죽음을 뚫고 온 그녀만 남았다.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해요." 이 말은, 무엇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는 것일까. 자신의 죽음을 놓아 달라는 부탁일까. 혹시 그와의 시작을 다시 해야 한다는 말은 아닐까. 자신의 죽음이 잘못되어 수잔나를 영영 떠나보낼 수 있었으니, 그녀는 비로소 홀로 남은 그를 만날 수 있었다. 

당신의 왼편
책을 덮는다. 책 읽으려는 사람 왼편에 있는 '어떤 것'을 보는 그녀. 그리고 동시에 입 '다문' 그녀. 집요한 눈동자가 바라보는 것을 읽는 이의 보이지 않는-'과거'라고 한다면, 그리고 그녀는 그것을 '바라볼 뿐'이라고 한다면, 나는 그림이 의도하지 않았던 무엇을 더 오독해 버린 것일까. 

소설은 표지의 그녀처럼 '어떤 것'을 끈질기게 바라보고는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곳에는 언제나 정확히 맞춰지는 것이 있다. 스스로 드러날 수 없었던 거짓이나 덮어 두고 싶었던 진실. 그것은 그녀의 몸처럼 등이나 가슴을 다 꺼내 보여도, 끝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것들이었다. 가만히 나의 왼편 허공을 쓰다듬는다. 가만히 '미안해'라고 말해본다. 오지 않는 것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영원히 올 수 없는 '어젯밤'에게. 그리고 앞으로 마주치게 될 수많은 '어젯밤'에 대한 예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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