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바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1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이인규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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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위가 없는 나침반-노인과 바다

 연말, 향초를 선물받았다. 상자에서 꺼내니 불투명한 유리컵에 향초가 가득 차 있었다. 유리컵에 붓고 굳힌 과정이 그려졌다. 액체로 시작해 다시 액체로 돌아가는 은은한 세계. 나는 이것을 한참 살펴 보았다. 코르크 마개를 열자 향내가 났다. 향초는 유리컵의 둘레와 높이를 가졌다. 심지는 중앙에 심어져 있었다. 배꼽 같았다. 향초의 배꼽은 곧게 향초를 관통했다. 심지에 불을 지피자 초가 녹으며 향을 냈다. 초는 타들어가며 자신의 둘레를 녹이고, 높이를 녹일 것이다. 향과 치환되는 순간이다.

 선물한 친구는 향초를 처음 켤 때 기억해야 할 규칙이 있다고 말해주었다. 향초가 가진 둘레를 다 녹일 때까지 불을 꺼서는 안된다는 것. 처음에 녹였던 둘레만큼만 타들어가기 때문이라고 했다. 처음에 도달했던 둘레를 자신의 끝으로 생각하며 그곳까지만 도착한다는 것이다. 나는 향초를 조금 더 오래 살펴보기로 했다. 

중간에 멈추면 초는 처음부터 탄다바깥을 녹이지 못하고 영영 남는다. 향초의 마지막을 생각했다. 바닥까지 이어진 배꼽, 심지를 다 태우고 나서도 향초는 더 이상 녹을 수 없다. 남는다는 것. 깨끗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누군가 패배가 무엇인지 묻는다면 나는 이것으로 답하고 싶어졌다. 패배는 싸우고도 그 자리에 남아 버리는 것이다. 노인이 이렇게 멀리까지 온 연유를 생각했다. 향초가 자신의 둘레를 다 태우는 것을 지켜보기로 했다. 향초와, 내가 동시에 기다리는 것이다.

84일 째, 그가 너무 멀리 까지 온 것은 고기를 잡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다. 노인이 잡을 수 있는 가장 큰 물고기가 노인이 최대로 갈 수 있는 둘레 끝에 살고 있기 때문이었다. 노인은 집이 보이는 물가거나, 두 시간 정도면 돌아갈 수 있는 바다에 나가도 물고기를 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노인은 자신의 심지를 다 태우기 위해서 그가 갈 수 있는 극단의 둘레까지 나갔다. 자신을 바다의 중앙에 꽂기 위해서. 그래야 더 멀리 다 태워버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돌아오는 길 물고기가 뼈 밖에 남지 않았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강건한 심지가 물고기를 잡는 것으로도 모자라 한참을 더 타올랐기 때문이다. 방안에 진동하는 향이 이제 몸에서도 나는 것 같았다. 노인의 다리와 뒷목에는 바다의 냄새가 진동할 것이었다. 

노인이었다. 자신의 경험과 습관에 안전한 둘레 안에 안전하게 있을 수 있는 노인이었다. 그러나 안전을 내다 버리고 멀리 나갔던 것은 노인은 그런 것에 방패 삼아 자신에게 머무는 꼴을 우스워 했기 때문이었다. 자신에게도 그렇고, 소년에게도 그렇고 진정한 형제인 물고기에게도 그랬다. 그는 자신이 최선을 다해 잡지 않으면 물고기 역시 최선을 다해 잡힐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먼 곳으로 떠나는 노인에게 나침반은 필요 없다. 그에게 북쪽이 어디인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 스스로가 나침반이며, 그가 있는 곳이 북쪽이기 때문이다. 그는 사자꿈을 계속 꾸기 위해서 노를 젓는다. 현실이 젖어버리면 꿈속 마저 물이 샌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그것을 젖도록 둘 수는 없었다. 매일 짠 물에 상처를 담그고 다 까진 손을 추켜 낚시줄을 끌었지만 초원에는 싱그러운 바람이 불어온다. 물에 다 젖어버리고, 젖은 곳을 또 젖는다. 그의 84일은 흠뻑 젖은채로 땅까지 적시며 비탄하게 집으로 돌아가야 했던 날이다. 노인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다. 그리고 스스로 아무것도 아니도록 두었기 때문에 젖기만 한다는 것도 알았다. 향초의 심지가 이따금 '타닥' 거리는 소리를 내며 액체로 흥건해졌다. 

소년은 노인에게 저녁을 매일 묻는다. 그래서 노인은 매일 노란 쌀밥과 생선 요리 한 냄비를 만들어야 했다. 거짓말을 믿으면 거짓이 참으로 바뀌는 마법이 일어나기도 한다는 것을 이곳에서 보았다. 노란 쌀밥이나 생선 한 냄비는 없지만 소년의 모른 척으로 노인의 저녁은 매일 배불렀을 것 같다. 노인에게 소년은 자신이 분명히 지나왔으나 기억나지 않는 어제, 결코 오지 않는 미래와도 같다. 소년이 노인을 챙기고 노인이 소년을 그리워 했던 것은 소년과 노인이 서로의 어제이자 미래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소년이 없는 투망을 매일 빌려갔기 때문에 노인은 짠내 나는 옷을 말릴 수 있었다. 그것으로 그는 정말로 멀리 나갈 준비를 할 수 있었다. 노인이 위대한 것은 소년이 그의 주위를 줄곧 지켰기 때문이었다. 바다가 도망가지 않고 노인의 곁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큰 물고기는 먼 바다에서만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노인이 뼈만 남은 물고기를 갖고 도착한 오늘은, 소년의 내일이다.

그렇다고 노인에게 어려운 순간이 없었을까. 노인은 멀리 온 것을 무척이나 후회한다. 물고기에게도 미안해 하고. 혼잣말이 길게 이어진다. 그러나 특유의 긍정으로 위기를 넘긴다. 뭐가 어려운 일이라는 거야? 자네가 별이나 달과 싸우는 것이 아니잖아. 그저 자네 자신하고만 싸우면 되는 일이라고. 자네가 다 타기를 기다리는 향초처럼 말이야. 노인의 목소리가 책 밖으로 넘어오는 것 같다. 

어쨌든 우리가 태양이나 달이나 별을 죽이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는 건 다행이야. 바다에서 살아가며 우리의 진정한 형제들을 죽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말이야. 99

심지가 불안정하게 타들어갔다. 불이 꺼지지 않도록 바람이 없는 곳으로 옮겨다 놓았다. 초는 자신의 둘레와 높이를 녹이는 것 뿐이다. 대지나, 바다나, 하늘을 녹이라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스스로 끝까지 태울 수 있으면 그것으로 위대하다. 그러나 나의 끝을 누가 알려주지? 끝은 끝까지 가보지 않는 이상 결코 확인되지 않는다. 내가 나를 탐험하는 것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는 것, 육지가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까지 나를 끌고 나가 심지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 물살마다 올라왔다. 아무도 없는 밤을 새우다가 아침이 떠오르기를 기다리는 무시무시한 시간을 생각했다. 향초는 유리벽을 향해 타들어 간다. 어쩌면, 우리가 두려워 하는 것은 재가 되는 순간이 아니라 제대로 타기 위해 바다 한 가운데로 나가야 하는 고독의 시간일지도 몰라. 잘 말리고 곧게 키운 심지. 어느 바다에 꽂으러 갈까 생각해 보았다. 눈이 채 녹지 않았고 일월의 해가 아직 높게 떠 있었다. 어제 하던 작업을 이어서 다시 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초의 가장자리가 울렁울렁 거리며 액체로 변했다. 눈가로 맵게 향이 퍼져올랐다.

"바다에서 팔십사 일 허탕 친 것으로도 행운을 사려고 했잖아. 그리고 거의 살 뻔했잖아." 155

노인과 바다의 가장 소중한 목소리는 팔십오 일째 바다에 있다. 책에는 나오지 않는다. 85일 째 바다는 내 몫이기 때문이다. 남기지 않고 남겨지지 않는 것. 나를 다 태울 수 있는 둘레를 갖는 것. [싸우는 거지, 뭐. 죽을 때까지 싸우는 거야. 154] 노인의 중얼거림을 두 귓가에 놓고, [인간은 패배하도록 만들어 지지 않았어. 136] 노인의 말을 목에 건다. 방위가 없는 나침반을 꼭 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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