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 딕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214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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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잡이를 가장한 운명과 인간의 분투기-모비 딕


이를테면 산을 아는 이는, 산의 생김을 설명할 수 있는 이가 아니라 산이 우는 소리를 들었던 이라고 할 수 있다. 경험은 머리속에 각인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에 새겨지기 때문이다. 같은 곳에 올라도 저마다 다른 느낌으로 이야기 하는 것은 받아들이는 이의 감각이 모두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경험은 양보할 수 없고, 대신 할 수도 없다. 산을 직접 올랐던 이와 올라간 이야기를 읽어냈을 뿐인 이를 같은 결코 같은 선상으로 놓지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잘 옮겨 놓은 이야기를 듣는 이는 모르는 사람처럼 산을 세모꼴 험준함과, 초록으로만 이야기하지 않는다대상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와 이야기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는, 경험하지 않더라도 그에 준하는 체험을 미리 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잘 전달된 이야기일 수록 머리속에 각인되기 전에 감각에 와 닿는다. 그래서 이렇게 두꺼운 책을 읽는 것이겠지. 합해서 천쪽에 가깝다. '바다'다.

모비 딕은 장황하다. 더 장황할 수 없을 만큼 장황하다. 그러나 그것은 호들갑에서 나온 장황함이 아니라 고래를 잡으러 몇 년 쯤 바다 위를 떠다닌 사람이 간결하게 그간의 일을 압축한 끝에 나온 장황함이다. 상권의 중반에 가서야 포경선을 타는 거사가 이뤄진다(!). 도대체 그 머리가 희다는 고래는 어떻게 등장할 것이기에, 배에 올라타는 것 만으로도 이백 쪽 넘게 쓸 수 있는지. 깊숙이 들어있는 고래의 심장에 가기 위해서 바다 언저리를 크게 그려 놓아야 했던 모양인지, 중얼거리며 책을 들었다. 출렁이니 조심하게! 그러나 바다보다 더 출렁였던 것은 그가 난데 없이 툭툭 던지는 삶에 직면했을 때였다. 갑판에서는 도망칠 곳도 없는데, 그는 이런 말을 가차 없이 쏟아낸다.  

인간이란 누구나 포경 밧줄에 싸인 채 살아가는 것을. 모든 인간은 목에 올가미를 건 채 태어나는 것을. 그러나 조용하고 교묘하게 상존하는 삶의 위험을 깨닫는 건 느닷없이 갑작스레 죽음으로 방향을 틀었을 때 뿐이다. 상p460

목을 더듬거려도 이상할 것이 없다. 모비 딕은 엄청난 이야기와 함께 고래에 관한 해부학적인 지식으로도 유명하지만, (향유고래는 생애의 7분의 1만 숨을 쉬니, 이를테면 일요일에만 숨을 쉬는 셈이다. 하p142) 그것에 가려진 뭍을 고의적으로 떠난 인간에 대한 연구서의 조명이 아쉽다. 없던 포승을 목에 채우고 사람을 단번에 굴조개와 마찬가지인 신세로 전락하게 하는 이야기를 어디서 볼 수 있을까? 이런 유연에 골치가 아프다면 우리는 얼마나 단단하게 부착된 삶의 한쪽 면을 굳게 믿어 왔던 것일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삼차원으로 비춰지는 바다 속을 유영하는 것 처럼 그는 성능 좋은 카메라로 인간의 삶(뭍)과 바다의 삶을 속도감있게 줌인하고 아웃한다

내가 생각하기엔 이승에서 그림자라고 부르는 게 실은 나의 실체인 듯하다. 또 영적인 것을 보는 우리는 물속에서 태양을 보며 탁한 물을 더 없이 맑은 공기라고 생각하는 굴조개와 흡사하다. 내 생각엔 몸뚱이는 더 나은 실체의 찌꺼기에 불과하다. 몸뚱이 따윈 누구라도 가져가라지. 가져가라니까. 이건 내가 아니라고. 그러니 낸터컷을 위해 만세 삼창을 부르자. 그리고 배나 몸뚱이에는 언제 구멍이 뚫리더라도 상관없어. 내 영혼은 제우스가 온다 해도 뚫을 수 없을 테니까.
상p86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백문이불여일견'이라는 말은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라는 것에 손을 들자는 것이다. 이 책을 펴는 곳 어디라도 바다가 부어지고 고래의 분수와 꼬리의 은빛 출렁임이 나타난다. 더욱이 이런 구절이라도 만나다가는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저기 있는 향유고래의 표정이 보이나? 이마의 긴 주름이 조금 지워진 듯할 뿐, 죽을 때의 표정 그대로다. 놈의 넓은 이마에는 죽음을 바라보는 무심한 사유에서 유래된 대초원 같은 평온함이 깃든 것 같다. 하지만 또 다른 머리의 표정을 살펴보라. 공교롭게도 뱃전에 짓눌려 턱을 단단히 감싸게 된 저 놀라운 아랫입술을 보라. 머리 전체가 죽음을 바라보는 엄청난 실천적 결의를 말하고 있는 것 같지 않나? 내가 보기에 참고래는 스토아 철학자였고, 향유고래는 플라톤주의자였다가 말년에 스피노자를 만났을지도 모른다. 
하p88
 
내가 고래를 본다 하더라도 이렇게 고래를 이해할 수는 없으므로 백기. 나는 모비 딕을 백문하고 언젠가 일견하는 날 어떤 고래가 진짜인지 분간할 자신이 없으므로. 어떤 고래가 더 잘 읽어낸 것인지 말할 자신이 한마디로 '없다'(!). 그래도 분명한 것은 적어도 모르는 사람처럼 고래를 둥그렇고 꼬리가 아름답고 이따금 분수를 내뿜는 유유자적으로 읽지 않는다는 것. 인간의 행태에 경멸한다는 듯 꼬리로 쳐 부수며 다가오는 굉음으로 기억할 뿐이다. 모비 딕은 고래와 사람의 분투 이전에, 발을 뜰 수 없었던 뭍의 삶에 대한 지리멸렬 한 인사에서, 모든 가치로부터 자유롭고 싶어했던 이들의 험난한 여정이다. 운명과 인간의 분투기다. 껍데기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은 언제 뚫려도 좋다는 결의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안정된(고정된) 지상에서 발을 떼 바다를 경험하지 않는 이가 아니라면 말이다. 그곳에서 지상에서 가장 크다는 동물과 싸우는 것은, 실은 인간이 자신의 운명과 대적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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