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 장정일의 독서일기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1
장정일 지음 / 마티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8386.빌린 책/산 책/버린 책-장정일(2)

3개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이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그 기간동안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았다. 아니 더 정확하게 책의 ㅊ도 쳐다보지 않았다. 책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도서관, 서점 근처에도 얼씬 하지 않았다. 책을 펼친다거나 책을 건드리지도 않았다. 책은 분명 내 근처에 있었지만, 이 3개월동안 나에게는 없는 존재였다. 있지만 없는 존재. 책을 읽지 않아서 행복했고 즐거웠다.

그러나 운명의 시간은 다가왔다. 책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미친 사람같겠지만(^^;;) 책이 나를 부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책의 노예인 내가 어쩔 수 있겠는가? 노예답게 주제를 파악하고, 주인의 말에 따랐다. 책이라는 주인의 노예인 나에게 책이 책을 읽으라고 하는데 피할 수 없었다. 행복한 족쇄로서의 책읽기를 다시 시작할 수밖에.

오랜만에 책을 읽으려고 하는데 바로 어려운 <순수이성비판>, <정신현상학>, <에티카> 같은 책을 읽을 수는 없다. 저런 책들을 읽다가는 부작용이 심해서 책멀미 때문에 구토를 하거나(^^;;) 머리가 멍해진 뒤에 자괴감에 빠져 책우울증이 찾아올 수도 있다. 책멀미, 책우울증이 3개월만에 책을 읽는 이에게 찾아오면, 더욱 심한 반작용으로 2021년 한해는 책을 안 읽을 수도 있는 법. 나는 안전빵(^^;;)으로 쉽게 읽을 수 있는 책, 책 자체와 책읽기를 사랑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책을 찾았다.

책장에서 내 눈에 띈 책이 <빌린 책/산 책/버린 책>이었다. 과거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어떤 때는 광오하게 독설을 날리고, 어떤 때는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스러운 사고를 하고, 어떤 때는 책과 책읽기에 대한 애정을 일깨우고, 어떤 때는 나에게 일깨움을 주는 서평들. 저 서평들 때문에 더욱 더 책과 책읽기를 사랑한 경험이 있는 나에게, 이 책이 눈에 띈 것은 계시였다. 읽으라는 계시.

계시를 따라서 책을 펼쳐 읽었다. 첫 서평은 <88만원 세대>에 관한 글이었다. 한 때 이 책을 열정적으로 읽고 토론도 하면서 엄청난 말싸움을 한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 내가 처한 상황과 위치가 달라져서 였을까? 장정일이 이야기하는 <88만원 세대> 이야기가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세대가 어떻고, 정치가 어떻고, 사회적 구조가 어떻고 말하는데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하품이 나고 잠이 왔다. 많이 들은 뻔한 세대론, 뻔한 사회 변화 이야기 같아서. 너무 지루해서 책을 덮으려고 했다. 하지만 3개월만에 처음 읽은 책을 10페이지도 못 읽고 덮는 건 말도 안 되는 것 같아서(^^;;) 하품과 수면욕을 참아가며 <88만원 세대>를 간신히 넘겼다. 이 부분을 넘기니 내가 아는 장정일의 서평이 나왔다.

어딘가 다른 시선, 틀에 얽매이지 않는 듯한 비판과 사유, 책과 독서에 대한 애정, 문학에 대한 그만의 사유, 그만의 시선으로 정리된 책의 내용들을 미소를 띄며 읽었다. 내가 아는 장정일 서평의 귀환 같은 느낌으로. 첫 부분에서 느꼈던 지루함은, 존 러스킨의 <나중에 온 이사람에게도> 부분을 읽으며 사라져갔다. 나는 <88만원 세대> 내용을 지루하게 느꼈을 뿐이었던 것이다. 장정일의 서평들은 내게 손짓을 하고 있었다. 책의 세계로 다시 돌아오라고. 나는 웃으면서 그 세계로 발을 내디딘다. <빌린 책/산 책/버린 책>의 서평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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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 장정일의 독서일기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1
장정일 지음 / 마티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3개월만에 처음으로 책을 읽었다. 장정일의 서평들이 나를 반겨주었다. 반가움과 함께 다시 책의 숲을 거닐 생각을 하니 즐겁고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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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86.빌린 책/산 책/버린 책-장정일(2)

읽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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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를 뒤져보니 6월 2일 이후에 처음으로 책을 펼쳐 보네요.^^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거의 세 달 동안 책을 안 읽었습니다.

정말로, 책의 ㅊ조차 쳐다보지 않았습니다. 책 근처에도 가지 않았고,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제가 다시 돌아가리라는 것을.

이렇게 쓰고 보니 무슨 탕아가 죄를 고백하는 느낌이 드네요.^^;;;

책을 안 읽은 탕아의 죄 고백(??)의 마지막은 위에 적은 예감과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저는 다시 책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언제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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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21-09-03 00:0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환영합니다. ^^

짜라투스트라 2021-09-03 00:25   좋아요 2 | URL
반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파랑 2021-09-03 06:2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독서슬럼프 탈출을 응원합니다~!!

짜라투스트라 2021-09-03 10:39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막시무스 2021-09-03 11:2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두 3월부터 지금까지 독서슬럼프 격고 있어서 짜라투스트라님의 마음 십분이해합니다!ㅎ 이제부터 읽으시는 책마다 포카리스웨트처럼 쭉쭉 흡수되시길 기원합니다!ㅎ 즐건 주말되시구요!ㅎ

짜라투스트라 2021-09-03 11:39   좋아요 4 | URL
감사합니다.^^ 그리고 막시무스님도 슬럼프를 극복할 시기가 꼭 올 것입니다. ㅎㅎㅎ

붕붕툐툐 2021-09-03 22: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럴 때가 있더라구요~ 근데 짜님 말씀처럼 결국은 돌아오게 되는 거 같아요!! 언제나처럼 책을 펼치고 읽으시니 멋지십니다!!^^

짜라투스트라 2021-09-03 23:10   좋아요 0 | URL
아이고, 감사합니다.^^
 
엔네아데스 (천줄읽기) 지만지 천줄읽기
플로티노스 지음, 조규홍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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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8357.엔네아데스-플로티노스

총페이지:113p

읽은 기간:2021.5.9~2021.5.9

특이사항:신플라톤주의의 대표적 사상가인 플로티노스의 대표작

나만의 서평:

N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

N, 나는 고전을 읽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어. '이런 책을 누가 읽고 있을까'라는. 책을 읽으면서 책을 요모조모 살펴보고 바라보면서 이 책을 과연 몇명이나 읽었고, 지금도 누가 읽고 있을까 하는 호기심이 생긴 것 같아. <박학한 무지>나 <모놀로기온&프로슬로기온>,<하일라스와 필로누스가 나눈 세 편의 대화> 같은 책들을 읽을 때 마다 그런 생각이 들어. '책 읽기의 고독'에 대한 자각이라고 해야할까. 독서라는 게 혼자서 하는 행위인 건 맞지만, 내가 읽은 책들을 누군가 읽었으며 현재 읽고 있다는 확신이 들면, '함께 읽는다'라는 느슨한 연대감이 들어. 혼자 하는 독서가 함께 하는 행위처럼 느껴지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안도감이 생겨. 일종의 동지를 만난 느낌이랄까. 그런데 위에 적은 책들을 읽고 나서는 항상 '책읽기의 고독'을 철저하게 느껴.

'책읽기의 고독'이 나쁜 감정인 것은 아니야. 기본적으로 독서는 혼자 하는 행위라서 고독하지. 고독하지만 책과 대화하며, 책속의 내용과 책속에 남겨진 저자의 목소리와 대화하며, 혼자이자만 정신적인 충족감을 느낄 수 있지. 문제는 책읽기의 고독이 아니야. 책읽기의 고독이라면 익숙하거든. '책읽기의 고독'을 철저하게 느낀다는 것에서 문제가 있어. 철저하게 느낀다고 해서 반드시 나쁜것도 아니야. 남들은 쉽게 하지 않는 행위를 혼자서 한다는 만족감, 지적 허영심의 충족이 들기도 해. 하지만 철저하게 '책읽기의 고독'에 매몰되었다 나오면 이상한 고독감이 엄습하지. 혼자 해서 좋기도 하지만 혼자 해서 이상하게 외롭다고 해야할까. 세상에 나 혼자서 등불을 밝히고 책을 읽는 느낌, 잊혀져가는 옛 책의 수호자가 된 기분이랄까. 그 감정이 엄습하면 나도 모르게 책의 이름을 치고 그 책의 서평을 검색해. 서평들이 나오면 조금은 안심이 돼. '나 혼자 이 책을 읽는 게 아니구나, 다른 누군가도 이 책을 읽고 글을 남기는구나' 하고.

<엔네아데스>를 읽고 나서도 그랬어. 이상한 고독감이 엄습해서 책 제목을 검색해봤어. 역시 몇 편의 글이 검색되더군. 그 글 중에 한 편을 읽는데, '누가 이런 책을 찾아서 볼까요?'라는 구절이 나왔어. 나는 무릎을 칠 수밖에 없었어. 책을 읽으면서 나도 똑같은 생각을 했거든. 나야 고전독서라는 길을 자발적으로 선택한 사람이니까 눈에 보이면 찾아서 읽는다고 치자. 다른 사람은 이 책을 찾아서 읽을까? 이 책을 아는 사람도 드물 것이고, 안다고 해도 또 읽는 것은 다른 얘기라서. 하지만 나도 읽었고, 어떤 이유로 읽었는지는 모르지만 읽은 소수가 분명히 한국이라는 땅에 있는 것도 사실이야. 어느 정도는 안심이 됐어.

쓰다 보니까, 이상한 이야기만 잔뜩 하는 기분이야.^^;; 그래도 어쩌겠어? <엔네아데스>를 읽다가 떠오른 이 이상한 고독감을 이야기하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는 걸. 일단 내가 느낀 기분을 다 쓰고 나니까 이제 책 이야기를 해야겠어.^^ <엔네아데스>는 신플라톤주의를 대표하는 사상가 중 한 명인 플로티노스의 대표작이야. 신플라톤주의라는 사상의 이름에 플라톤이라는 이름이 있기 때문에 예측 할 수 있겠지만, 당연하게도 플로티노스는 진리를 강조해. 플로티노스는 우리가 사는 삶 너머에, 불변하고 절대적으로 선하고 지혜로우며 모든 것의 원형이 되는 진리가 있다고 이야기해. 그는 우리가 할 일이란 진리를, 다른 말로 하면 이데아를 좇는 것이라고 말해. 이거 뭔가 비슷한 게 떠오르지 않아?^^;; 맞아. 진리나 이데아를 으로 바꾸어도 크게 다르게 느껴지지 않을 거야. 실제로 신플라톤주의는 고대 그리스 사상에서 기독교 사상으로 바뀌는 가교 역할을 했다고 알려져 있어. 플라톤이 말한 이데아를 기독교의 신으로 변형시키는 데 신플라톤주의 사상가들이 기여했다는 말이지.

이 책은 <엔네아데스>의 모든 부분을 이야기하지는 않아. 딱 세 가지 파트만 발췌해서 적어 놓았어. 아름다움, 정신의 아름다움, 사랑에 관한 세 가지 파트. 위의 글들을 읽었다면, 플로티노스가 세 가지에 관해서 무슨 말을 할지는 대충 예상이 될 거야. 그는 아름다움, 정신의 아름다움, 사랑을 진리와 연관지어서 이야기해. 아름다움의 원형은 진리에 있다든지 육체의 한계를 넘어서서 정신의 아름다움을 들여다봐야 진리에 가까이 갈 수 있다든지 사랑은 인간이 진리로 가는데 도움이 된다는지. 물론 진리 이야기만 하는 건 아니야. 사랑의 경우는 사랑이 신에서 유래한 개념인지 정령에서 유래한 개념인지 따지기도 해. 사랑을 하나의 감정으로만 알고 있는 현대인들은 어리둥절할 수 있겠지만, 사랑이 신이 인간에게 불어넣은 감정인지 정령에 의해서 인간의 마음 속으로 들어오는 감정인지를 따지는 건, 신화와 종교의 힘이 생생히 살아 있는 고대 그리스의 영향이 막강했던 그 당시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아주 중요한 이야기였던 것 같아.

적어 놓고 보니 내가 왜 고독을 이야기했는지 알겠지? 발달한 기술 문명을 가지고 바쁘고 힘겹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플로티노스가 이야기하는 진리는 씨알도 안 먹힐 확률이 높아. 누가 진리에 관심을 가지고 진리를 탐구하겠어. 먹고 살기도 바쁘고 건강관리도 힘든데다 우리의 눈과 귀를 자극하는 온갖 동영상들이 널려 있는데. 하지만 그래서 가끔은 진리를 탐구하는 이들의 삶이 궁금해. 절대적인 무언가를 추구하고 그것을 확실하게 믿는다는 삶의 확실성이 부럽기도 하거든. 그것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그 삶의 태도가 불확실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내 입장에서는 뭔가 신기하고 독특하거든. 아마 그래서 내가 플라톤 같은 고대 그리스의 책들도 읽고, 이렇게 신플라톤주의 책도 읽나봐. 낯선 세계를 탐험하는 기분으로. 아니 잊혀져가는 옛 책의 수호자 같은 기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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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15 10: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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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15 10: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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