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쪽 바람
메리 올리버 지음, 민승남 옮김 / 마음산책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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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33.서쪽 바람-메리 올리버

 

대체적으로 시는 서정의 장르이고, 소설은 서사의 장르라고 합니다. 물론 스스로를 이야기 파괴자로 자처하는 오스트리아 작가 토마스 베른하르트 같은 이는 소설이 서사의 장르라는 것에 동의하지 않겠지만.^^;; 제 말은 일반적으로 그렇다는 말입니다. 일반적으로 시는 서정의 장르이기에, 시인이 느낌 감정을 서술하게 됩니다. 소설은 서사의 장르답게 소설가가 만들어낸 이야기를 서술합니다.

 

서정 장르라고 하지만, 세상의 모든 시가 독자에게 시인의 감정을 정확하게 이해시키는 건 아닙니다. 소위 모더니즘이라든가 포스트모더니즘, 실험적인 시들을 쓴다는 시인의 시들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제가 읽어본 경험으로는 이런 류의 시들에서 시인의 감정은 쉽게 파악이 안 됩니다. 실험적이고 난해하게 표현된 언어들 속에서 시인의 진의는 감추어진 채 독자는 언어의 미로를 헤매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어려운 시들보다는 직관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시를 더 좋아합니다.

 

메리 올리버의 시는 제가 좋아하는 서정 장르로서의 시에 해당합니다. 어려운 단어도 없고, 시인이 표현하고 싶어하는 감정을 파악하기가 어렵지 않기 때문에 이해하거나 감정이입하기 쉽기에. 주로 자신이 자연을 거닐고 바라본, 자연에서 파악한 아름다움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메리 올리버의 시들을 읽다보면 자연의 아름다움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조금 더 이야기해보도록 할께요. 시인이 마주친 자연의 아름다움은 모두 순간적입니다. 이 때의 순간이란 오직 현재뿐이라는 말입니다.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는, 오직 현재뿐이란 의미에서의 현재. 하지만 이 현재의 아름다움은 시인에게 영원합니다. 모순적인 말이긴 한데(^^;;) 시인에게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은 순간적이면서 동시에 영원합니다. 한 순간의 아름다움이 시인에게 영원히 뇌리에 남는다는 말입니다. 그건 지나가면 사라지지만, 시인의 뇌리에 영원히 남아서 시로 구현됩니다. 순간적인 영원의 아름다움으로. 시인은 순간에서 영원을 보는 겁니다. 아름다움을 통해서. 그러나 이 영원의 아름다움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다시 한번 말해보죠. 메리 올리버라는 시인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들여다봅니다. 현재로 존재하는 영원한 아름다움을. 하지만 거기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저는 <서쪽 바람>을 이렇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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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남자
아니 에르노 지음, 윤석헌 옮김 / 레모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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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32.젊은 남자-아니 에르노

 

<젊은 남자>에서 여전히 아니 에르노는 솔직합니다. 그리고 아니 에르노는 여전히 자신의 심리와 삶을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봅니다. 과거 자신의 삶을 솔직하고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글로 써내는 아니 에르노의 스타일은 이 작품에서 여전합니다.

 

, <젊은 남자> 이야기도 안 하고 바로 아니 에르노 스타일을 말해버렸네요.^^;; 늦었지만, 이 작품에 대해서 말해보겠습니다. <젊은 남자>50대의 여성인 20대 대학생인 젊은 남자의 연애 이야기를 50대 여성의 시각에서 그려낸 소설입니다. 아니 에르노 특유의 오토픽션으로서, 저자가 과거에 실제로 겪었던 연애 사건을 그리고 있습니다.

 

50대 여성의 연애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조금 더 젊었던 시절의 연애 경험을 다룬 <단순한 열정>과 비교해보면 확연한 차이가 느껴집니다. <단순한 열정>에서 아니 에르노는 거의 광기에 가까운 사랑의 열정을 보여주면서, 열정으로 가득한 연애의 현장을 독자에게 전합니다. 그에 비해 <젊은 남자><단순한 열정>보다는 차분하고 조금 더 정제된 느낌의 연애을 하고 있는 것처럼 독자들에게 다가옵니다. ‘20대의 나와 함께하면서 자신의 과거를 다시 체험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과거를, 자신이 살아온 삶을 다시 사는 기분으로서의 연애. 그에 비해 나는 젊은 남자에게 미래를 안내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젊은 남자는 나에게 과거의 삶을 나타내고, 젊은 남자에게 나는 미래를 표현하는 셈이죠.

 

그러나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는 법. 책을 쓰려는 열정을 가지고 있던 는 자신의 임신중절수술의 경험을 다룬 <사건>이라는 소설을 쓰게 되면서 젊은 남자와 헤어지게 됩니다. 자연럽게 이별로 소설은 끝이 납니다. 서른 살 나이 차이가 나는 연애의 생성소멸을 짧은 내용에 밀도감 있게 담아낸 <젊은 남자>는 이렇게 끝이 나지만,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작가 경력을 이어가는 아니 에르노의 작가로서의 삶은 지속되기에 그녀의 글은 지속될 것입니다. 그리고 독자로서의 저의 삶도 계속되고 있기에 아니 에르노와의 저와의 만남은 계속해서 이어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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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의 장례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5
천희란 지음 / 현대문학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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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31.K의 장례-천희란

 

이별이라는 행위는 우리가 이별이라고 외친다고 이별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입으로만 외칠뿐, 내 몸과 삶이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건 진정한 이별이 아닙니다. 진정한 이별은 몸과 삶이 이별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 사람이 떠나간 흔적, 자리가 내 몸에 스며들고, 그것이 삶이 되어 더 이상 그 사람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을 때, 그제서야 우리는 제대로 된 이별을 했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제가 왜 이별 이야기를 하냐고요? 그건 <K의 장례>가 이별에 관한 소설이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은 소설가 K라는 인물을 떠나보낸 두 여인의 삶의 방식을 그리고 있습니다. 정확하게 말해 이별을 하는 두 가지 방식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먼저 나의 이별 방식이 있습니다. ‘는 직업 없이 부모와 함께 지내며 아픈 어머니를 간호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우연히 기차에서 마주친 소설가 K가 자살했다는 뉴스를 보고 놀라죠. 그런데 죽은 줄 알았던 K에게 전화가 걸려오고, 그와의 기묘한 동거를 시작합니다. 사회적으로 없는 사람인 K는 자신이 쓴 소설을 나를 통해 세상에 내보냅니다. 나는 K의 소설을 자신이 쓴 것처럼 하며 소설가로 살아갑니다. 전희정이라는 이름으로. 나에게 있어 전희정으로서의 삶은 자기 자신의 삶이 아닙니다. K가 쓴 소설의 대리인이자 자살해서 죽은 것으로 알려진 소설가 K의 새로운 삶의 보조원 정도 되죠. 그런데 15년 만에 K가 방에서 죽음으로 인해서 나는 홀로서기에 나서게 됩니다. 이제 더 이상 나는 전희정으로 살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전희정으로서의 삶을 정리하고 필리핀으로 갑니다, 가서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자기 자신으로 삽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름입니다. 나는 K에게 의존하는 삶을 살면서 이름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소설 내내 나의 본명은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다 소설 마지막 줄에 나의 본명이 등장합니다. K를 완벽하게 떠나보내고 자기 자신으로 살기 시작했다는 의미겠죠.

 

두 번째는 강재인이라는 인물의 이별 방식입니다. 강재인은 K의 딸입니다. 그녀는 어머니의 헌신 속에 문학에만 집중하며 가정에 무관심했던 아버지가 싫습니다. 아버지의 자살도 아버지 스스로가 문학적 한계에 부딪쳐서 한 것이라고 봅니다. 그녀는 소설가로 데뷔하며 자신의 본명이 아닌 손승미라는 이름을 씁니다. 마치 아버지의 모든 것을 없애버리려는 것처럼. 하지만 그런다고 아버지의 그림자가 없어지지는 않죠. 손승미라는 필명을 쓰는 강재인은 지속적으로 아버지의 영향력 속에서 평가받습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그녀는 아버지의 흔적을 어떻게든 떨쳐내려고 하죠. 그런데 아버지 사후 15년만에 아버지의 숨겨둔 원고를 전희정을 통해서 받게 됩니다. 거기서 아버지가 자신을 생각하고 관심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사후 15년을 맞아 쓰게 된 원고에서 그녀는 문단에 데뷔 이후 처음으로 아버지와 자신의 관계를 적습니다. 글을 통해 아버지의 영향력과 빈자리를 인정하는 방식으로. 거부만 하던 강박적인 이별 방식에서, 직접적으로 아버지의 영향력과 빈자리를 인정한 채 떠나보내는 방식으로의 변화. 이게 강재인만의 진정한 이별 방식이 아닌가 싶습니다.

 

소설은 끝났죠. 하지만 이별 방식에 관한 이야기는 끝이 아닙니다. 세 번재 이별 방식이 있습니다. 이건 소설가 천희란의 이별 방식입니다. 소설가 천희란은 <K의 장례>라는 작품상을 머리 속에 떠올리고 오랜 기간 머리 속에 두었다가 드디어 책으로 펴냅니다. 그리고 작품을 마치는 순간 천희란의 머릿속에 넣어두었던 <K의 장례>라는 작품상과 이별하는 것이 됩니다. 소설을 씀으로서 머리 속의 작품상이 사라졌으니까요, 이제 공은 독자에게 넘어왔습니다.

 

아직 이별 방식에 관한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독자의 이별방식이 있으니까요. 독자는 소설가가 써낸 작품을 읽습니다. 읽어나가는 동안은 소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하지만 책과의 동행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책을 덮는 순간 소설은 끝나니까요. 여기서 독자는 다양한 이별의 행위를 할 수가 있습니다. 저는 저만의 서평을 쓰는 걸로서 이 소설과 이별하려 합니다.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가장 완벽한 소설과의 이별 방식이라고 여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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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 간빙기 - 서윤후의 제4 간빙기 다시 쓰기 FoP Classic
아베 코보 지음, 이홍이 옮김 / 알마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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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30.4간빙기-아베 고보

 

*스포일러가 있으니 유의 바람.

 

A: 저는 아베 고보만 생각하면 항상 일본의 카프카라는 말이 먼저 떠오릅니다. 무엇보다도 카프카라는 단어에 꽂혀요. 저에게 카프카는 잊을 수 없는 인상을 남긴 작가거든요. 그러면 카프카가 저에게 어떤 인상을 남겼느냐? 카프카의 작품을 읽다보면 출구 없는 미로에 빠진 느낌이 들어요. 미로에 갇힌 것은 아는데 출구가 없어서 빠져나올 수 없는 느낌. <변신>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을 거에요. 어느날 갑자기 벌레가 된 주인공이 어떻게 자신이 처한 위기에서 빠져나올 수 있나요? 거기에 출구는 없습니다. 소설은 벌레가 된 주인공의 죽음으로 끝나죠. 저는 카프카의 작품들을 거의 이런 느낌으로 읽어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부조리의 느낌을 많이 받아요, 말도 안되고 빠져나올 수 없는 어떤 사건에 처한 이들이 겪는 부조리의 사건을 다룬 소설로서.

 

B: 아베 고보가 카프카와 비슷한가요?

 

A: 물론 카프카와 아베 고보가 똑같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차이점이 있거든요. 하지만 유사점도 많아요. 아베 고보도 카프카처럼 부조리한 상황들을 잘 그립니다. 아베 고보의 대표작인 <모래의 여자>를 볼까요. 소설의 주인공은 곤충채집을 하러 어느 해안의 사구 마을에 갔다 모래에 갇혀 버립니다. 말도 안 되는 황당한 상황인데, 주인공은 몸부림치지만 모래에서 빠져 나오지 못합니다. 위에서 말한 카프카와 비슷하죠? 출구 없는 미로에 갇히 느낌의 부조리한 상황. 아마도 그래서 아베 고보를 일본의 카프카라고 부르는 것 같아요.

 

B: <4간빙기>는 어떤가요?

 

A: 일본 최초의 SF라고 불리는 아베 고보의 <4간빙기>도 카프카적인 느낌이 있습니다. 스포일러 느낌이라서 조금 꺼려지지만 이것에 대해서 말해볼께요, 일단 여기서는 이 작품을 저만의 방식으로 간략화하겠습니다. 저는 이 작품을 를 죽이는 작품으로 봅니다. 무슨 말이냐구요? 이 작품은 미래의 흐름을 따라가는 프로그램화된 가 미래의 흐름을 거부하는 현재의 를 죽이는 작품입니다. 나가 나를 죽이는 상황 자체가 말도 안되는 부조리한 상황이잖아요. 그래서 저는 이 작품도 카프카적인 부조리가 살아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B: 조금 더 자세히 말해주세요.

 

A: 소설은 우리가 살아가는 제4간빙기(빙하기와 빙하기의 사이에 얼지 않는 기온이 따뜻한 시기를 간빙기라고 합니다. 소설은 우리가 네 번째 간빙기인 제4간빙기에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의 기후가 바뀌면서 해수면이 상승한다고 말합니다. 해수면이 상승하면 무슨 일이 일어나나요? 땅이 바닷물에 뒤덮이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면적이 줄어들죠. 소설에서는 일군의 사람들이 그 변화에 맞추어서 수중인간과 수중동물들을 만들어냅니다. 그들은 미래를 예측하는 예언 기계를 통해서 미래를 파악하고 거기에 맞춰가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일본의 예언 기계를 만든 프로그래머 . 그들이 파악하기에 는 예언 기계의 예언도 믿지 않고 미래의 변화의 흐름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의 정신적 데이터를 통해 프로그램화된 나를 만들어내죠. 이 미래의 흐름을 받아들인 미래적인 나는 현재를 살아가는 나가 방해가 될 뿐만 아니라 미래의 흐름을 받아들인 이들에게 위협이 되기에 없애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움직이죠. 나를 죽이는 방향으로. 그래서 이 작품은 나가 나를 죽이는 작품이 되는 겁니다.

 

B: 부조리한 상황이 맞군요.

 

A: , 부조리한 상황이 맞습니다. 미래의 나가 현재의 나를 너무나 잘 알기에 반드시 죽이려 하고, 거기서 벋어나려고 하지만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 부조리가 아니라면 무엇을 부조리라고 해야할까요? 이건 미래가 현재를 죽이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현재에서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미래가 아니라, 현재와는 단절된 미래의 출현 속에서, 미래가 존속하기 위해서는 현재를 유지하려는 성향을 죽여야 하기 때문에. 변화하는 미래의 흐름에 탄 는 현재를 유지하려는 를 죽여야만 미래라는 삶을 살 수 있는 겁니다. 부조리하고 잔혹하지만 생존을 위해서는 어찌할 수 없는 부조리. 하지만 이 부조리는 카프카적인 부조리와는 다른 면이 있습니다. 카프카의 부조리는 부조리한 상황 설정만 하고 거기에 대해서는 거의 설명이 없습니다. 하지만 <4간빙기>의 부조리는 부조리한 상황 설정을 하고 거기에 대해서 이야기해줍니다. 죽기 전에 나는 기계가 전해주는 미래의 영상을 봅니다. 해수면이 상승하고 대지가 물에 잠기면서 수중인간들이 점점 더 미래의 대세가 되어가는 영상. 거기서 지상의 인간들은 설자리를 잃어가다 과거의 화석이 되어버립니다. 미래의 주역이 된 수중인간들은 과거의 환상으로서 지상의 인간들을 바라보죠. 그 영상을 보고 나면 부조리는 단순한 부조리가 아니라 설득력 있는 부조리가 됩니다.

 

B: 분명히 차이점이 있군요.

 

A: <4간빙기>에 그려진 부조리는 카프카적인 부조리와는 다릅니다. 그건 아베 고보식 부조리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4간빙기>SF라는 형식을 통해서 아베 고보식 부조리를 펼쳐낸 소설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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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한 내일 - 듀나의 아득한 내일 다시 쓰기 FoP Classic
리 브래킷 지음, 이수현 옮김 / 알마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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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29.아득한 내일-리 브래킷

 

N에게 보내는 편지

 

N, 오랜만이야, 잘 지내고 있지?^^;; 오랜만에 예전처럼 책 이야기를 담은 편지를 너에게 보내려고 해. <아득한 내일>을 읽고 나니까 너에게 편지를 다시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내 마음이 이렇게 하라고 하네. 내 마음이 시키니까 나도 따라야지 어쩌겠어. 어쨌든 이제 시작해볼게.

 

<아득한 내일>은 핵 전쟁 이후의 몰락한 세상을 배경으로 하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소설이야. 인류 명말 이후를 그리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소설 답게 아주아주 암울할 거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사실 그 정도는 아니야. 사람들이 평범하게 삶을 이어가기는 해. 물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문명은 없지. 사람마다 생각하는 게 다르겠지만 정도를 따지자면 아주 약한 정도의 몰락한 세상을 그리고 있어. 대규모 도시가 없고, 고도의 문명이 없고, 사람들은 기술의 발전과 도시의 성장을 두려워하고, 두려움 때문에 기술을 발전시키고 도시를 성장시키려는 이들은 사람들을 쫓아내거나 없애려 하지.

 

큰 틀에서 보자면 이 소설은 두 개의 대립되는 믿음이 양 축을 형성하고 있어. 하나의 축은 세상 사람들의 믿음이야. 이 믿음은 핵 전쟁을 문명과 기술과 대규모 도시의 탓으로 돌리고 있지. 이 믿음을 가진 세상 사람들은 기술의 발전과 문명의 성장, 대규모 도시의 형성을 두려워하고 그것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그들에게는 문명,기술,대규모 도시=핵전쟁=멸망이지. 그들은 자신들의 믿음을 성경과 성경에 나오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정당화하고, 그에 반대되는 이들은 악으로 몰아 죽이지. 초반 부분에 한 남자를 광신도들이 돌로 쳐 죽이는 장면이 그것을 증명해. 그들은 영원히 문명 없이, 기술의 발달 없이, 자신들의 안락함 속에서 살아가고 싶어해. 발전없는 퇴보만의 자신의 삶이라고 여기며.

 

반대편에는 이들과 대립되는 바토스타운의 믿음이 있지. 핵 전쟁에서 살아남은 소수의 기술자들이 만든 이 도시는 과거의 발달된 기술 문명을 간직하고 있어. 이들은 세상 사람들과는 달리 기술이 있어야 한다고 믿어. 단지 이들은 자신들이 간직한 기술을 안전하게 만들고 싶어해.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원자력 기술을 최대한 안전하게 만들기 위한 연구를 컴퓨터의 도움을 받아가며 계속해서 해나가지. 바토스타운의 믿음은 기술의 안전에 대한 믿음이자 기술을 안전하게 인간이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이야.

 

주인공인 렌 콜터는 이 두 믿음 사이를 왔다갔다해. 처음에 렌은 과거의 화려한 문명을 경험한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사촌인 에서의 자극까지 받아서 기술 없이 멈춰 있고 퇴보를 유지하려는 마을에서 벗어나게 돼. 그는 에서와 함께 전설의 바토스타운을 찾아 떠나지. 상인인 호스테터의 도움으로 바토스타운에 간 그는 그곳의 삶이 자신의 이상과 다르자 실망을 하게 되지. 같이 이곳에 온 에서는 기술의 힘을 보고 동화되어 살아가는 데 반해서. 그래서 그는 바토스타운을 떠나서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하지. 하지만 그 길에서 그는 깨닫게 되지. 고향도, 바토스타운도, 자신을 완벽하게 만족시킬 수 없으며, 그 누구의 고정된 믿음이 아니라 자신이 생각하는 믿음만이 자신을 구원할 수 있다는.


나는 렌을 이해해. 자신이 사는 곳의 삶에 만족하지 않았던 그는 자신이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곳에 가서도 실망하게 되지. 그곳이 자신의 생각과 다르니까. 그는 광신도가 될 수 없는 사람인거야. 완벽하게 한 쪽의 편을 들 수 없는 사람인거지. 그는 불확실한 믿음의 사람인거야. 내가 그를 이해할 수 있는 건, 내가 그렇기 때문이야. 예를 들어볼게. 나는 유신론과 무신론 사이에 서 있는 사람이야. 내 삶의 방식과 살아온 나날들이 유신론과 친할 수 없기 때문에 나는 유신론자가 되기 힘들어. 반대로 생각하면 무신론자가 가까울 수 있다고도 볼 수 있어. 그런데 나는 리처드 도킨스나 대니얼 데닛 같은 서양의 무신론자들의 책을 읽으면 강렬한 신의 그림자를 느껴. 그들에게서 나는 일신교적 믿음의 문화권에서 태어나 마치 거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일종의 반발심이 보여. 사실 그들과 달리 나는 반박할 필요가 없어. 왜냐고? 내 삶에 기독교의 유일신이 단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으니까. 존재한 적이 없으니까 그림자를 느낄 필요도 없고, 그림자를 느끼지 않으니까 반발심을 가질 필요도 없어. 존재한 적이 없는데 왜 반발해야 하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유신론이든, 무신론이든 신이 있다는 믿음과 신이 없다는 믿음을 가져야 성립하는 건데, 나는 아예 그런 믿음 자체가 없다보니까 둘 사이의 불확실한 영역에 서서 둘의 믿음을 어렴풋하게 추축하고 있다는 말이야. 유신론과 무신론이라는 두 축 사이에 서 있는 나는 이 소설 속의 렌처럼 불확실한 믿음을 가진 사람일 수밖에 없지. 대신에 나는 나 자신의 믿음을 끊임없이 바꾸어나갈 수 있는 장점이 있지. 과거에 유신론을 이해할 수 없었던 나는 유신론자들의 책을 읽으며 그들을 조금씩이나마 이해하게 되었어. 물론 이해한다고 그들의 말에 다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나는 유신론과 무신론을 왔다갔다하며 내 삶의 믿음을 조금씩 바꾸어나가며 살아갈 수밖에 없어. 완벽한 믿음을 가질 수 없으니까. N, 그래도 내가 안심하는 건, 내가 믿음 때문에 누군가를 돌로 쳐 죽일 수 있는 사람이 아직은 안 된다는 거야. 그것만은 믿고 있어. 나는 앞으로도 렌처럼 불확실한 믿음의 삶을 이어나갈 거 같아.

 

N, 내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마워. 앞으로도 기회 되면 또 이런 식의 책 편지를 너에게 쓰도록 할게. 그때까지 건강하게 잘 있어.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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