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의 장례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5
천희란 지음 / 현대문학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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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31.K의 장례-천희란

 

이별이라는 행위는 우리가 이별이라고 외친다고 이별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입으로만 외칠뿐, 내 몸과 삶이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건 진정한 이별이 아닙니다. 진정한 이별은 몸과 삶이 이별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 사람이 떠나간 흔적, 자리가 내 몸에 스며들고, 그것이 삶이 되어 더 이상 그 사람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을 때, 그제서야 우리는 제대로 된 이별을 했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제가 왜 이별 이야기를 하냐고요? 그건 <K의 장례>가 이별에 관한 소설이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은 소설가 K라는 인물을 떠나보낸 두 여인의 삶의 방식을 그리고 있습니다. 정확하게 말해 이별을 하는 두 가지 방식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먼저 나의 이별 방식이 있습니다. ‘는 직업 없이 부모와 함께 지내며 아픈 어머니를 간호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우연히 기차에서 마주친 소설가 K가 자살했다는 뉴스를 보고 놀라죠. 그런데 죽은 줄 알았던 K에게 전화가 걸려오고, 그와의 기묘한 동거를 시작합니다. 사회적으로 없는 사람인 K는 자신이 쓴 소설을 나를 통해 세상에 내보냅니다. 나는 K의 소설을 자신이 쓴 것처럼 하며 소설가로 살아갑니다. 전희정이라는 이름으로. 나에게 있어 전희정으로서의 삶은 자기 자신의 삶이 아닙니다. K가 쓴 소설의 대리인이자 자살해서 죽은 것으로 알려진 소설가 K의 새로운 삶의 보조원 정도 되죠. 그런데 15년 만에 K가 방에서 죽음으로 인해서 나는 홀로서기에 나서게 됩니다. 이제 더 이상 나는 전희정으로 살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전희정으로서의 삶을 정리하고 필리핀으로 갑니다, 가서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자기 자신으로 삽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름입니다. 나는 K에게 의존하는 삶을 살면서 이름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소설 내내 나의 본명은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다 소설 마지막 줄에 나의 본명이 등장합니다. K를 완벽하게 떠나보내고 자기 자신으로 살기 시작했다는 의미겠죠.

 

두 번째는 강재인이라는 인물의 이별 방식입니다. 강재인은 K의 딸입니다. 그녀는 어머니의 헌신 속에 문학에만 집중하며 가정에 무관심했던 아버지가 싫습니다. 아버지의 자살도 아버지 스스로가 문학적 한계에 부딪쳐서 한 것이라고 봅니다. 그녀는 소설가로 데뷔하며 자신의 본명이 아닌 손승미라는 이름을 씁니다. 마치 아버지의 모든 것을 없애버리려는 것처럼. 하지만 그런다고 아버지의 그림자가 없어지지는 않죠. 손승미라는 필명을 쓰는 강재인은 지속적으로 아버지의 영향력 속에서 평가받습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그녀는 아버지의 흔적을 어떻게든 떨쳐내려고 하죠. 그런데 아버지 사후 15년만에 아버지의 숨겨둔 원고를 전희정을 통해서 받게 됩니다. 거기서 아버지가 자신을 생각하고 관심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사후 15년을 맞아 쓰게 된 원고에서 그녀는 문단에 데뷔 이후 처음으로 아버지와 자신의 관계를 적습니다. 글을 통해 아버지의 영향력과 빈자리를 인정하는 방식으로. 거부만 하던 강박적인 이별 방식에서, 직접적으로 아버지의 영향력과 빈자리를 인정한 채 떠나보내는 방식으로의 변화. 이게 강재인만의 진정한 이별 방식이 아닌가 싶습니다.

 

소설은 끝났죠. 하지만 이별 방식에 관한 이야기는 끝이 아닙니다. 세 번재 이별 방식이 있습니다. 이건 소설가 천희란의 이별 방식입니다. 소설가 천희란은 <K의 장례>라는 작품상을 머리 속에 떠올리고 오랜 기간 머리 속에 두었다가 드디어 책으로 펴냅니다. 그리고 작품을 마치는 순간 천희란의 머릿속에 넣어두었던 <K의 장례>라는 작품상과 이별하는 것이 됩니다. 소설을 씀으로서 머리 속의 작품상이 사라졌으니까요, 이제 공은 독자에게 넘어왔습니다.

 

아직 이별 방식에 관한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독자의 이별방식이 있으니까요. 독자는 소설가가 써낸 작품을 읽습니다. 읽어나가는 동안은 소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하지만 책과의 동행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책을 덮는 순간 소설은 끝나니까요. 여기서 독자는 다양한 이별의 행위를 할 수가 있습니다. 저는 저만의 서평을 쓰는 걸로서 이 소설과 이별하려 합니다.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가장 완벽한 소설과의 이별 방식이라고 여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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