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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 간빙기 - 서윤후의 제4 간빙기 다시 쓰기 ㅣ FoP Classic
아베 코보 지음, 이홍이 옮김 / 알마 / 2022년 11월
평점 :
2023-30.제4간빙기-아베 고보
*스포일러가 있으니 유의 바람.
A: 저는 아베 고보만 생각하면 항상 일본의 카프카라는 말이 먼저 떠오릅니다. 무엇보다도 카프카라는 단어에 꽂혀요. 저에게 카프카는 잊을 수 없는 인상을 남긴 작가거든요. 그러면 카프카가 저에게 어떤 인상을 남겼느냐? 카프카의 작품을 읽다보면 출구 없는 미로에 빠진 느낌이 들어요. 미로에 갇힌 것은 아는데 출구가 없어서 빠져나올 수 없는 느낌. <변신>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을 거에요. 어느날 갑자기 벌레가 된 주인공이 어떻게 자신이 처한 위기에서 빠져나올 수 있나요? 거기에 출구는 없습니다. 소설은 벌레가 된 주인공의 죽음으로 끝나죠. 저는 카프카의 작품들을 거의 이런 느낌으로 읽어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부조리의 느낌을 많이 받아요, 말도 안되고 빠져나올 수 없는 어떤 사건에 처한 이들이 겪는 부조리의 사건을 다룬 소설로서.
B: 아베 고보가 카프카와 비슷한가요?
A: 물론 카프카와 아베 고보가 똑같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차이점이 있거든요. 하지만 유사점도 많아요. 아베 고보도 카프카처럼 부조리한 상황들을 잘 그립니다. 아베 고보의 대표작인 <모래의 여자>를 볼까요. 소설의 주인공은 곤충채집을 하러 어느 해안의 사구 마을에 갔다 모래에 갇혀 버립니다. 말도 안 되는 황당한 상황인데, 주인공은 몸부림치지만 모래에서 빠져 나오지 못합니다. 위에서 말한 카프카와 비슷하죠? 출구 없는 미로에 갇히 느낌의 부조리한 상황. 아마도 그래서 아베 고보를 일본의 카프카라고 부르는 것 같아요.
B: <제4간빙기>는 어떤가요?
A: 일본 최초의 SF라고 불리는 아베 고보의 <제4간빙기>도 카프카적인 느낌이 있습니다. 스포일러 느낌이라서 조금 꺼려지지만 이것에 대해서 말해볼께요, 일단 여기서는 이 작품을 저만의 방식으로 간략화하겠습니다. 저는 이 작품을 ‘나’가 ‘나’를 죽이는 작품으로 봅니다. 무슨 말이냐구요? 이 작품은 미래의 흐름을 따라가는 프로그램화된 ‘나’가 미래의 흐름을 거부하는 현재의 ‘나’를 죽이는 작품입니다. 나가 나를 죽이는 상황 자체가 말도 안되는 부조리한 상황이잖아요. 그래서 저는 이 작품도 카프카적인 부조리가 살아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B: 조금 더 자세히 말해주세요.
A: 소설은 우리가 살아가는 제4간빙기(빙하기와 빙하기의 사이에 얼지 않는 기온이 따뜻한 시기를 간빙기라고 합니다. 소설은 우리가 네 번째 간빙기인 제4간빙기에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의 기후가 바뀌면서 해수면이 상승한다고 말합니다. 해수면이 상승하면 무슨 일이 일어나나요? 땅이 바닷물에 뒤덮이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면적이 줄어들죠. 소설에서는 일군의 사람들이 그 변화에 맞추어서 수중인간과 수중동물들을 만들어냅니다. 그들은 미래를 예측하는 예언 기계를 통해서 미래를 파악하고 거기에 맞춰가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일본의 예언 기계를 만든 프로그래머 ‘나’죠. 그들이 파악하기에 ‘나’는 예언 기계의 예언도 믿지 않고 미래의 변화의 흐름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나’의 정신적 데이터를 통해 프로그램화된 나를 만들어내죠. 이 미래의 흐름을 받아들인 미래적인 나는 현재를 살아가는 나가 방해가 될 뿐만 아니라 미래의 흐름을 받아들인 이들에게 위협이 되기에 없애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움직이죠. 나를 죽이는 방향으로. 그래서 이 작품은 나가 나를 죽이는 작품이 되는 겁니다.
B: 부조리한 상황이 맞군요.
A: 네, 부조리한 상황이 맞습니다. 미래의 나가 현재의 나를 너무나 잘 알기에 반드시 죽이려 하고, 거기서 벋어나려고 하지만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 부조리가 아니라면 무엇을 부조리라고 해야할까요? 이건 미래가 현재를 죽이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현재에서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미래가 아니라, 현재와는 단절된 미래의 출현 속에서, 미래가 존속하기 위해서는 현재를 유지하려는 성향을 죽여야 하기 때문에. 변화하는 미래의 흐름에 탄 ‘나’는 현재를 유지하려는 ‘나’를 죽여야만 미래라는 삶을 살 수 있는 겁니다. 부조리하고 잔혹하지만 생존을 위해서는 어찌할 수 없는 부조리. 하지만 이 부조리는 카프카적인 부조리와는 다른 면이 있습니다. 카프카의 부조리는 부조리한 상황 설정만 하고 거기에 대해서는 거의 설명이 없습니다. 하지만 <제4간빙기>의 부조리는 부조리한 상황 설정을 하고 거기에 대해서 이야기해줍니다. 죽기 전에 나는 기계가 전해주는 미래의 영상을 봅니다. 해수면이 상승하고 대지가 물에 잠기면서 수중인간들이 점점 더 미래의 대세가 되어가는 영상. 거기서 지상의 인간들은 설자리를 잃어가다 과거의 화석이 되어버립니다. 미래의 주역이 된 수중인간들은 과거의 환상으로서 지상의 인간들을 바라보죠. 그 영상을 보고 나면 부조리는 단순한 부조리가 아니라 설득력 있는 부조리가 됩니다.
B: 분명히 차이점이 있군요.
A: <제4간빙기>에 그려진 부조리는 카프카적인 부조리와는 다릅니다. 그건 아베 고보식 부조리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제4간빙기>는 SF라는 형식을 통해서 아베 고보식 부조리를 펼쳐낸 소설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