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여행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윤정 옮김, 무라카미 요오코 사진 / 문학사상사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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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여행-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요오코(사진) 

 

하루키는 이 책에서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고 한다면, 이처럼 고생할 일은 없었을

 입니다.'(p.15) 라고 애기하고 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만약 이 책의 언어가 위스키라

고 한다면 굳이 내가 시간을 내어 이 책을 다 읽을 필요 없이, 책 속 위스키 맛만 보면 됩니

다. 굳이 책을 읽고 느끼고 상상할 필요 없이 위스키 맛만 보고 우리는 알게 될 겁니다. 하

루키가 얘기하고 싶었던 맛을. 하지만 언어는 위스키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루키가 

느끼고 체험한 것을 록한 글을 통해,  가 느꼈던 위스키 맛을 추리할 수 있을 뿐입니다. 

하루키가 경험하고 묘사했던 풍경들과 생활들에세 배여들어 형성된 위키의 맛을 우리는

오직 하루키가 써내려가는 글로만 알아내야 한다는 말입니다. 어쩌면 이건 명탐정이 살인

사건의 범인을 밝혀내는 것보다 어려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명탐정이 살인 현장에 가서 오

감을 모두 동원해서 범인에 대한 힌트를 얻어 수 있는 것과는 달리, 우리에게는 오직 우

리 자신의 시각과 눈앞에 보여지는 하루키의 글밖에 없으니까요. 우리는 시각에서 미각을

창조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부여받은 겁니다. 더군다나 저 같이 스카치 위스키나 아이리

시 위스키나 상관없이 스키를 한번도 마셔 보지 못한 인간에게는 더욱 힘든 과제입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 일은 저에게 의미 있는 일이 될 겁니다. 왜냐하면 그 맛은 세상에

서 오직 저만이 만들 수 있는 맛이기 때문입니다. 이 전무후무하고 유일무이한 상상의 맛 

만들기를 위해 이제 집중해보렵니다. 그리고 그전에 이 맛을 만들 수 있게 도와준 이 책과

루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네요.^^;; 그럼 저는 이제 가상의 맛을 만들어야 하

기 때문에 바빠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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뮐러 희곡선 지만지 희곡선집
하이너 뮐러 지음, 정민영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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뮐러 희곡선-하이네 뮐러 

 

해체된 서사, 모호한 막과 장의 구분, 남녀를 넘나드는 배우들의 연기, 심지어는 정형화된

희곡이라는 문학 장르 자체를 거부하고 새로운 연극 텍스트를 추구하는 모습까지 담겨 있

는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하이네 뮐러의 희곡들을 만날 수 있는 책. 희곡이라는 틀에 얽매

이지 않은 상태에서 희곡을 쓰려 하고, 때로는 희곡을 넘어서려는 시도까지 하는 희곡들이

모인 이 책은, 결국 그 실험성과 전위성 때문에 읽기가 쉽지 않다. 나도 읽다가 '알 수 없음'

의 영역에 가닿고 헤매다 보니 어느새 독서가 끝나있었다. 그러나 '알 수 없음'은 그것 자

로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작품들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알 수 없음'을 즐기고

그것 자체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들었다. 아직 나는 그 수준에 이르

지 못했기에 그저 이런 류의 책들 을 읽고 또 읽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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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습속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경남 옮김 / 모비딕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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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습속-마쓰모토 세이초 

 

<시간의 습속>은 잔혹하거나 끔직하거나 기발하거나 뭔가 이상한 느낌의 양념이 전혀 없는

추리 소설이었습니다. 또 일본 사회파 미스터리의 거장이라고 불리는 마쓰토모 세이초의 소

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사회 비판적인 요소도 전혀 없었습니다. 그저 한 사람의 죽음의 수수

께끼를 밝히는 형사들의 진득한 땀냄새와 꿋꿋함이 가득찬 담백한 추리 소설이었습니다. '한

사람을 누가 어떻게 죽였는지 알아낸다'는 추리소설의 본질로만 가득하고 명탐정의 매력이나

성, 이야기의 힘, 소설이 가지고 있는 특성들에 침식되지 않는 추리소설을 만난다는 것이 작

금의 현실에서 드문 일인걸 생각해볼때, 이 소설은 묘한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 양념 가득하

고 자극적인 맛만 가득한 음식만 잔뜩 먹다가 갑자기 양념이 거의 없어서 자극적인 맛을 느낄

수 없는 음식을 먹은 느낌이랄까? 재미있는 사실은 자극적인 음식만 먹다보니 밍숭맹숭한 맛

이 매력적이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자극적인 것들보다 훨씬 더 인간적이고, 더 추리소설 같

거든요. 다시 이런 맛을 가진 추리 소설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밍숭맹숭한 맛

때문에 최근에 나온 어떤 추리소설보다 특색 있었거든요. 물론 그런 추리 소설을 만나기는 힘

들겠죠. 시대가 더욱 더 자극적이고 강한 것을 원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래도 가능성 없는

희망을 마음 속에 품어볼 겁니다. '가능성 없음' 때문에 실제로 희망이 현실화되었을 때 더욱

더 좋았다는 느낌이 커지거든요. 그러니 저는 불을 들고 외쳐보렵니다. '어딘가에 인간적이고

순수한 추리 소설 더 없나요?'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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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아스, 영웅들의 전장에서 싹튼 운명의 서사시 리라이팅 클래식 11
강대진 지음 / 그린비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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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아스, 영웅들의 전장에서 싹튼 운명의 서사시-강대진 

 

이 책을 다 읽고나니 저절로 '기다림','인내'라는 단어들이 떠올랐다. 이 작품 자체가 가지고

있는 특성부터 얘기를 시작해서 등장인물들의 면면, 신화적인 배경을 거쳐서 책의 내용을

무엇하나 놓치지 않고 꼼꼼하게 분석하고 해석한 이 책은, <일리아스>라는 작품 자체가

양이 만만치 않고 등장인물들이 많은데다 그 많은 인물들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든 언급을

하고 있다는 측면을 가지고 있고, 거기에다 해석과 분석을 붙인 책이기 때문에 읽기가 쉬운

것은 아니었다. 가장 읽기가 힘든 점은 너무나 많은 등장인물들이 나오고 그 인물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작품을 따라서, 이 책도 똑같이 하면서도 저자의 해석을 붙이고 있다는 점.

이점 은 정말 고통스러울 정도로 책 읽기를 힘들게 만들었다. 과거에 밀턴의 <실낙원>,

단테의 <신곡>을 힘겹지만 다 읽어낸 경험이 아니었다면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읽

기가 힘겹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혼자서 꾸준히 희랍,로마의 고전 작품들을 읽어온 사람이

알 수 없는 부분들에 대한 언급은 앎의 즐거움을 느끼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그 앎의 즐거

움을 상쇄할 정도로 책은 기다림과 인내를 강요했고, 나는 그 강요에 따라서 꿋꿋하게 견디다

가 책 읽기를 종료할 수 있었다. 여기서 끝이면 좋겠지만, 나는 책에서 저자가 요구하는 원전 

번역 읽기에 대한 욕망을 지울 수 없어 <일리아스> 원전 번역본 읽기에 도전하려고 생각 중이다.

그것도 그 나름대로 분명 무언가의 힘을 지니고 있어서, 읽는 이에게 무언가를 전해준다고

생각하기에. 아무리 힘겹고 고통스러워도 나는 반드시 원전 번역본을 읽을 것이다. 아니 책의

내용을 따라해본다면, 나는 원전 번역본을 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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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 제14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장은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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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편지하지 않다-장은진 

 

우리는 모두 고독하다. 이 말은 고독이라는 존재의 상태가 우리 삶에서 쉽게 떨어져나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요한 사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 고독할 수밖에 없기에, 우리는 '모두 함께 고독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된다. 이건 책을 읽는 독자와 책을 쓰는 작가 모두 마찬가지다. 어쩌면 문학은 고독한 작가가, 자신의 고독을 원동력으로 삼아서, 자신의 고독함이 담긴 '문학'이라는 편지를, 고독한 독자에게 보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만일 문학이 그런 방식의 '고독의 소통'이라고 한다면 

이건 독자와 작가 모두에게 굉장히 좋은 일일 것이다. 고독한 독자는 작가가 보낸, '고독함이 담긴 편지인 문학'을 통해 나만 고독한 것이 아님을 알고 자신의 고독을 조금 더 줄일 수 있을 것이고, 고독한 작가는 자신의 고독을 문학이라는 편지를 통해 독자와 세상을 향해 띄워 보내며 자신의 고독을 견뎌낼 수 있을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의 문제는 내가 말하는 '고독의 소통'이 독자와 작가 간에 진짜 이루어지는가 아닌가에 있을 것이다. 물론 나는 타인이 아니기에, 나 아닌 타인이 

독자와 작가로서 '고독의 소통'을 하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를 읽은 나의 경험을 토대로 얘기해본다면, 나는 이 작품을 통해서 '고독의 소통'을 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나의 고독을 견딜 수 있게 만들 수 있었다. 그래서 이 글을 통해서 나에게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라는 '고독의 편지'를 보낸 작가에게 짧지만 답장을 보내고 싶다.  

 

작가여, 나는 당신이 보낸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라는 편지를 받고 나의 고독을 견뎌내는 힘을 얻어낼 수 있었다. 그러니 앞으로도 쭉 자신의 고독이 담긴 편지를 보내주기를. 나는 언제라도 당신의 편지를 받고 함께 고독할 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 편지가 작가에게 닿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소설의 내용을 보건대 최소한 작가 옆집에는 닿을 수 있지 않을까? ^^;; 작가 옆집에만 닿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이제 '고독'이라는 글자로 가득한 이상한 편지를 끝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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