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추리문학상 황금펜상 수상작품집 : 2022 제16회 나비클럽 소설선
김세화 외 지음 / 나비클럽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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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46.황금펜상 수상 작품집(2022 16)-김세화 외

 

반성합니다. 그 동안 장르문학을 꾸준히 읽고 좋아한다고 입으로 떠들면서 한국 추리문학상 작품집을 단 한 번도 읽은 적이 없다니. 그리고 한국 추리문학상 중에서도 단편 부문에 수상하는 황금펜상 수장 작품집을 읽지 않은 것도 반성합니다. 앞으로는 기회가 되면 꾸준히 읽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반성을 안하다가 갑자기 반성을 하고 읽기를 다짐하는 이유가 뭐냐고요? 그건 제가 202216회 황금펜상 수상 작품집을 우연히 읽고 작품들에 너무 놀랐기 때문입니다. 재밌고 구성이 너무 좋았거든요.

 

처음에 나오는 2022 황금펜상 수상 작품인 김세화 작가의 <그날, 무대 위에서>는 평이한 추리소설로 읽었습니다. 마지막의 반전이 놀랍긴 했지만 앞부분에 작가가 흐트려 놓은 힌트를 통해서 어느 정도는 유추가 가능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바로 그런 부분 때문에 좋은 추리소설이긴 합니다. 하지만 그 뒤의 한새마 작가의 <마더 머더 쇼크>는 정말 놀라웠습니다. 아주 자극적인 장면으로 시작하며 독자의 눈을 끈 뒤에 다인칭 시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이야기를 전개하며 독자들을 정신 못차리게 하다가 과격한 결말을 나름 잘 마무리합니다. 흥미진진하게 정신없이 잘 읽은 소설로서, 한국의 추리소설이 이렇게까지 스토리텔링이 잘 전개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더 머더 쇼크> 이후로는 기대가 되었습니다. 어떤 작품들이 나를 재미있게 해줄까 하며. 임진왜란 때 전투하다 도망친 의병 출신 인물과 일본인 스파이로 있다 조선인이 된 인물의 이야기가 그려진 <>도 재미있었습니다. 이 소설이 추리소설인지 의심이 가긴 했지만(??)) 이야기 자체의 힘과 임진왜란이라는 참혹한 상황이 주는 것들이 어우러지며 빚어내는 소설의 매력이 좋았습니다. 정혁용 작가의 <나쓰메 소세키를 읽는 소녀>는 미스터리 소설이라는 게, 언제나 범죄가 벌어지고 범인을 쫓는 소설이 아니라, 자기 삶의 미스터리를 푸는 소설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공감가는 소설이었습니다.

 

나머지 작품들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다만 제가 위에 적은 <마더 머더 쇼크><>, <나쓰메 소세키를 읽는 소녀>가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니 더욱 확신이 드네요. 한국 SF가 성공을 거두는 와중에 추리소설이라는 장르도 어느 정도 단계에 도달했다는 걸. 이제 저는 한국 추리소설들을 읽기만 하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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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게 빛나는 안전가옥 쇼-트 15
김혜영 지음 / 안전가옥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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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45.푸르게 빛나는-김혜영

 

저는 공포소설을 타자와 만나는 걸 공포스러운 방식으로 묘사하는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타자는 공포소설의 주인공이나 중심인물이 알 수 없는 낯설고 이해할 수 없으며 공포르 불러일으키는 존재로서 생각하면 됩니다. 낯설고 이해할 수 없기에 우리는 그 존재를 공포스럽게 여기고, 거기서 생겨나는 공포의 상황들을 전개해나가는 게 공포소설이라고 저는 생각한다는 말입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김혜영 작가가 써낸 공포소설 단편집 <푸르게 빛나는>에 나오는 첫 단편소설 <열린 문>은 제가 생각하는 공포소설에 대한 정의와 너무 잘 맞는 작품입니다. 너무나 바쁜 엄마 때문에 보살핌 받지 못하던 어린 남매가 심심함을 견뎌내기 위해서 밤에 집의 문을 열어놓으며 전개되는 이 소설은 아주 짧은 내용이지만, 마지막의 강력한 한 방으로 공포를 전해주는 짧지만 강력한 공포소설입니다. 문을 닫고 안전하게 지낸다면 아무 문제도 없겠지만, 바쁜 어머니의 무관심 때문에 다른 자극을 원하던 남매가 밤중에 문을 열면서 생겨나는 공포를 다룬 이 소설은 결국은 문을 통해 괴물같은 타자가 등장하면서 끝이 납니다. 안전한 내부와 안전하지 않은 외부의 경계인 문이라는 소재가 줄 수 있는 공포의 극한을 보여준다고 할까요.

 

두 번째 작품인 <우물>도 타자와의 만남이 중요한 요소로 등장합니다. 액취증 때문에 몸에서 나는 지독한 냄새로 시달리던 나는 정신과에서 우연히 만난 한 여자 때문에 기이한 검은물을 마시게 되고, 그 물로 인해 액취증을 벗어나게 됩니다. 그 이후로 펼쳐지는 기이하고 끔찍한 일을 공포소설 특유의 방식으로 그려내는 이 소설은 <열린 문>처럼 타자와의 만남이 새로운 공포이자 벗어날 수 없는 삶의 굴레가 되는 걸 보여줍니다. 벗어날 수 없기에 어쩌면 더 공포스러울 수도 있겠죠.

 

마지막 단편인 <푸르게 빛나는>는 수도권의 신도시로 이주한 신혼부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아이를 임신한 아내가 낯선 곳에 와서 임신으로 인한 여러 가지 불안정한 일들에 휩싸이고, 그에 더불어 직장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남편의 몰이해와 무관심 속에서 상태가 안 좋아지다 이상한 일들에 휩싸이는 걸 그린 이 작품은, 임신과 낯선 아파트 단지가 주는 다양한 공포와 불안을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푸른 벌레로 등장하는 타자는 부부에게 최악의 결말을 가져다주죠.

 

<푸르게 빛나는>에 나오는 공포 단편소설들은 명확한 결말을 전해주지는 않습니다. 대신에 공포스런 상황에 직면한 이들의 공포스런 감정을 전해주는 데 집중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무언가 여운이 남는 결말로서 뒷이야기를 상상하게 만든다고 할까요. 그런 감정의 묘사와 상상하게 만드는 것들이 좋았습니다. 특히 <열린 문>은 제가 근래에 읽은 공포소설 단편 중에서 가장 좋았습니다. 짧지만 너무 임팩트가 커서. 이 단편 하나로만 이 책을 읽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머지 작품까지 다 읽고 나니 삶이 너무 암울해지는 부분이 있네요.^^;; 이제 저는 조금 더 밝은 책을 읽으러 가봐야겠습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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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옷장 - 개정판 아니 에르노 컬렉션
아니 에르노 지음, 신유진 옮김 / 1984Books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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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44.빈 옷장-아니 에르노

 

<빈 옷장>을 읽으며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무언가 내가 아는 아니 에르노 소설이 아닌 듯한 느낌, 왜 이런 이상한 기분이 들었는지 한번 생각해봤습니다. 왜 저는 <빈 옷장>을 내가 아는 아니 에르노 소설이 아닌 것처럼 느꼈는가?

 

그건 제가 아니 에르노의 소설들을 읽어온 역사와 연관이 있습니다. 저는 아니 에르노가 노벨문학상을 받기 전부터 꾸준히 아니 에르노 소설을 읽어 왔습니다. <단순한 열정>부터 시작된 저의 아니 에르노 읽기는 지속적으로 이어집니다. 저는 자신의 개인적 경험을 여과없이 솔직하게 표현하고, 차갑고 냉정하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는 아니 에르노 소설의 매력에 흠뻑 빠져있었고 독서를 멈출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아니 에르노의 한국에 출간된 소설들을 책들을 많이 읽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저는 <빈 옷장>에 도달했습니다.

 

저의 아니 에르노 읽기는 데뷔작이자 첫 소설인 <빈 옷장>을 빼고 이루어졌습니다. 저는 아니 에르노 소설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첫 소설을 빼고 다른 소설들을 읽었습니다.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처럼, 시간이 거꾸러 흐르는 것처럼, 저는 아니 에르노의 미래를 거쳐 아니 에르노 문학의 가장 먼 과거이자 소설의 시작점에 도달했습니다.

 

미래를 거쳐 과거에 도달하고 보니 <빈 옷장>은 낯설었습니다. 어떤 면에서? 이 부분에 대해서 한 번 말해보겠습니다. 제가 읽은 소설들에서 아니 에르노는 자신이 과거의 삶을 이야기하겠다고 말합니다. 저 같은 독자는 아니 에르노라는 필터를 통해서 그녀의 과거를 들여다보는 느낌을 가집니다. 작가가 자신의 과거와의 거리감을 독자에게 말하면서, 독자는 그녀를 거쳐서 그녀의 과거를 만나는 셈이 되죠. (독자)-작가-작가의 과거.

 

<빈 옷장>은 다릅니다. 이 작품에서 아니 에르노라는 작가이자 화자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책은 시작하자마자 바로 이야기로 들어갑니다. 아니 에르노의 다른 소설들에서 느껴지는 작가를 거쳐서 다가가는 과거와의 연결성, 과거와의 거리감은 흔적조차 없습니다. 아니 에르노의 소설이 아닌 다른 소설들처럼, 책은 지속적인 스토리텔링으로 독자들을 이끌어나갑니다. 제가 아니 에르노 소설들을 지속적으로 읽어오지 않았더라면, 저는 이 책을 가상의 이야기로 생각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아니 에르노의 다른 소설들을 읽었고, 그 때문에 <빈 옷장>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그녀 자신의 자전적 삶을 그리고 있다는 점을 잘 압니다. 첫 작품부터 아니 에르노는 아니 에르노였습니다. 다만 아직 작가적 스타일을 구축하지는 못했던 거죠.

 

시작부터 자신의 자전적 삶의 현실을 소설인 척 제시하는 작가 아니 에르노. <빈 옷장>은 자신만의 오토픽션 장르를 만들어가는 아니 에르노의 시작점으로, 그녀의 문학이 펼쳐질 지점을 예고합니다. 하지만 저는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 아니 에르노가 어떤 작품들을 쓰게 될지. 미래를 아는 사람의 입장에서 과거를 읽어나가다 보니 다시 욕망이 타오릅니다. 이번에는 과거에서 미래로 아니 에르노 작품을 읽어나가고 싶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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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마물의 탑 모토로이 하야타 시리즈
미쓰다 신조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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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43.하얀 마물의 탑-미쓰다 신조

 

<하얀 마물의 탑>은 미쓰다 신조의 모토로이 하야타 시리즈 두 번째 작품입니다. 이 시리즈의 주인공인 모토로이 하야타는 만주국의 학교를 다니다 2차대전이라는 전쟁에 휘말리고, 거기서 전쟁의 현실에 환멸을 느낀 인물입니다. 그는 전쟁에서 살아남아 일본으로 돌아와서는, 전후 재건의 현실에 참여합니다. 모토로이 하야타 시리즈는 전후 재건에 나서는 모토로이 하야타라는 인물이 일본 각지의 어둠과 미스터리를 만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시리즈 첫 작품인 <검은 얼굴의 여우>는 탄광 노동자가 된 모토로이 하야타가 탄광에서 마주친 검은 어둠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나쓰메 소세키의 <갱부>를 뒤집어 놓은 것 같은 이 작품은, <갱부>가 탄광의 현실보다는 탄광으로 향하는 길의 비현실적인 현실 묘사를 통해 꿈같은 느낌으로 다가오는데 반해, 당대 탄광촌의 어둡고 축축한 현실을 호러 미스터리를 통해 전하며 악몽 같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광부들의 얼굴에 낀 검댕의 색깔처럼, 광부들이 탄광에서 계속 마주치는 어둠의 색깔같은, 검은색으로 무장한 공포스런 존재와의 대면과 그 존재의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모토로이 하야타의 모습은, 전후에 새로운 모습으로 삶을 복원시키려는 일본인들의 염원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동시에 그의 앞을 막아서는 검은 어둠의 존재는 그런 일본인들의 행동을 막아서는 일종의 방해물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 방해물이 일본의 현실 속에서 존재한다는 점에서 일본의 재건이 생각보다 쉽지 않으리라는 점이 유추가 됩니다.

 

호러 미스터리이지만 호러보다는 미스터리에 더 가까운 느낌의 <검은 얼굴의 여우>의 이야기가 끝나면, 주인공의 행보를 따라서 이야기는 <하얀 마물의 탑>으로 이어집니다. 탄광에서의 재건의 삶이 검은 존재와의 대면으로 실패로 돌아가면서 주인공인 모토로이 하야타는 등대지기라는 새로운 삶을 선택합니다. 등대지기로서 바다에 빛을 비추며 배들의 항해를 돕는 식으로 재건에 도움이 되려는. 등대지기로서 외롭지만 세상에 도움이 되려는 모토로이 하야타의 계획은 바다의 하얀 포말과 같은 하얀색의 마물과 같은 존재와 만나며 또다시 틀어지기 시작합니다. 책은 그 과정을 미쓰다 신조 특유의 호러 미스터리의 색채로 그려냅니다.

 

전작에 비하면 확실히 이 책은 미스터리보다는 호러에 가깝습니다. 전작처럼 추리소설의 면모가 있지만, 추리보다는 공포가 소설 전체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 때의 공포는 전쟁 후의 재건에 나선 일본에 아직 남아 있는 전근대의 습속과 이어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여기서 제 머릿속에 무언가 떠올랐기에 그걸 한 번 써보겠습니다. 사실 일본의 근대화는 일본이라는 국가를 바꾸려는 엘리트층의 강력한 의지로 이루어졌습니다. 평범한 이들의 주도가 아닌 위로부터의 개혁이 일본 근대화의 핵심이죠. 이걸 공포소설의 문법으로 바꾸어 표현하면, 일본의 엘리트 층이 근대화라는 귀신에 씌었다라는 말로도 쓸 수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일본 자체가 근대화라는 귀신에 씌인 겁니다. 근대화의 씌인 일본인들은 엘리트들의 주도로 근대화에 나섰고 몇 번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제국을 만들어냅니다. 진짜 귀신에 씌인 것처럼 맹목적으로 앞으로 나아가던 일본인들은, 두 번의 핵폭탄을 맞고 일본이라는 나라가 폐허가 되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게 됩니다. 그들에게 씌었던 맹목적인 근대화라는 귀신은 떨어져나간 셈이죠. 그래서 그들은 미국 주도의 새로운 재건을 시작하게 됩니다. 모토로이 하야타의 행동은 이 재건기의 삶을 상징하고 있다고 봐도 됩니다. 그런데 이 재건이 쉽지 않은 건, 근대화라는 귀신은 물러났지만, 그들의 삶 곳곳에 스며있는 또다른 귀신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광산의 힘겨운 삶에 씌어있는 귀신, 등대에서 마주친 전근대의 그림자로 무장한 귀신 같은.

 

<하얀 마물의 탑>에서 모토로이 하야타는 하얀 마물의 방해를 물리치고 자신의 삶을 지켜나나갈 수 있을까요? 재건과 더불에 세상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그의 의지는 하얀 마물이라는 공포스런 존재와의 만남에서도 이어질 수 있을까요? 미쓰다 신조의 소설을 좋아하는 저의 입장에서는 모토로이 하야타의 앞에 마주친 공포가 생각보다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하지만 설사 실패하더라도 모토로이 하야타는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미쓰다 신조의 다른 시리즈의 주인공인 도조 겐야처럼, 그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따라서 지속적인 방랑의 삶을 이어갈 것이니까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은 그의 삶의 여정을 따라서 공포를 계속 마주하는 것 정도일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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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미래에 당신이 없을 것이라고 - 목정원 사진산문
목정원 지음 / 아침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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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42.어느 미래에 당신이 없을 것이라고-목정원

 

이 책은 사진이 가득한 책입니다. 많은 사진과 적은 글로 이루어진 사진 에세이. 책 가득한 사진이, 무수한 책의 여백과 함께 책을 장식하며, 중간중간 잠시 모습을 드러내는 목정원 작가의 아름다운 글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잠시간의 사유의 순간을 선사합니다. 글의 여백이라고 할 수 있는 사진 앞에서 독자는 사진을 이미지이지만 동시에 하나의 문자 텍스트로도 읽어낼 수 있습니다. 사진으로 제시되는 이미지들을 자신만의 상상을 동원하여 읽어내면서.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을 읽으면서 느낀 감동처럼, <어느 미래에 당신이 없을 것이라고>에 적혀 있는 목정원 작가의 글들은 저에게 감동을 줍니다. 이 감동은,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에서도 말한 영원한 사랑에 대한 갈망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목정원 작가는 기다렸다는 듯이 100여장의 사진과 사진 사이사이의 아름다운 글로, 영원한 사랑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아낌없이 풀어냅니다. 미래에 이미 없을 사랑하는 당신을 생각하면서. 혹은 사랑하는 당신은 없지만, 당신의 흔적이 남아있는 사진을 통해 지나간 사랑을 기억하면서.

 

하지만 이런 질문도 있을 수 있습니다. 왜 사진을 통해 사랑을 표현하는가? 사진 말고도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것들이 있는데.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책 속에 있습니다. 목정원 작가는 먼저 기억술에 대해 말합니다. 저자는 기억술의 시작이 죽은 이들을 기억하기 위해서였다는 전설을 말합니다. 그리고 기억술의 시작과 사진을 연결시킵니다. 사진이 사라져간 이들을 기억하는 기억술의 도구라고 하면서.

 

여기에서 사랑과 사진은 이어집니다. 사진은 사랑했던 이들의 흔적을 남깁니다. 사진은 지나간 사랑의 기억으로서 남아 있습니다. 사진은 어느 미래에 없을 사랑하는 당신의 삶의 흔적으로서 사랑을 경험한 이의 삶에 남겨집니다. 결국 목정원 작가에게 사진은 사랑의 기억이자 사랑 그 자체입니다. 사진=사랑. 우리는 목정원 작가가 부르짖는 사랑과 사진의 앙상블을 통해서, 혹은 홀로코스트라는 역사적 상처를 기억하는 방법을 통해서, 잊지 못하는 아름다운 심리적 상처를 얻어냅니다. 영원한 사랑을 갈망하는 사진의 이름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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