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게 빛나는 안전가옥 쇼-트 15
김혜영 지음 / 안전가옥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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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45.푸르게 빛나는-김혜영

 

저는 공포소설을 타자와 만나는 걸 공포스러운 방식으로 묘사하는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타자는 공포소설의 주인공이나 중심인물이 알 수 없는 낯설고 이해할 수 없으며 공포르 불러일으키는 존재로서 생각하면 됩니다. 낯설고 이해할 수 없기에 우리는 그 존재를 공포스럽게 여기고, 거기서 생겨나는 공포의 상황들을 전개해나가는 게 공포소설이라고 저는 생각한다는 말입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김혜영 작가가 써낸 공포소설 단편집 <푸르게 빛나는>에 나오는 첫 단편소설 <열린 문>은 제가 생각하는 공포소설에 대한 정의와 너무 잘 맞는 작품입니다. 너무나 바쁜 엄마 때문에 보살핌 받지 못하던 어린 남매가 심심함을 견뎌내기 위해서 밤에 집의 문을 열어놓으며 전개되는 이 소설은 아주 짧은 내용이지만, 마지막의 강력한 한 방으로 공포를 전해주는 짧지만 강력한 공포소설입니다. 문을 닫고 안전하게 지낸다면 아무 문제도 없겠지만, 바쁜 어머니의 무관심 때문에 다른 자극을 원하던 남매가 밤중에 문을 열면서 생겨나는 공포를 다룬 이 소설은 결국은 문을 통해 괴물같은 타자가 등장하면서 끝이 납니다. 안전한 내부와 안전하지 않은 외부의 경계인 문이라는 소재가 줄 수 있는 공포의 극한을 보여준다고 할까요.

 

두 번째 작품인 <우물>도 타자와의 만남이 중요한 요소로 등장합니다. 액취증 때문에 몸에서 나는 지독한 냄새로 시달리던 나는 정신과에서 우연히 만난 한 여자 때문에 기이한 검은물을 마시게 되고, 그 물로 인해 액취증을 벗어나게 됩니다. 그 이후로 펼쳐지는 기이하고 끔찍한 일을 공포소설 특유의 방식으로 그려내는 이 소설은 <열린 문>처럼 타자와의 만남이 새로운 공포이자 벗어날 수 없는 삶의 굴레가 되는 걸 보여줍니다. 벗어날 수 없기에 어쩌면 더 공포스러울 수도 있겠죠.

 

마지막 단편인 <푸르게 빛나는>는 수도권의 신도시로 이주한 신혼부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아이를 임신한 아내가 낯선 곳에 와서 임신으로 인한 여러 가지 불안정한 일들에 휩싸이고, 그에 더불어 직장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남편의 몰이해와 무관심 속에서 상태가 안 좋아지다 이상한 일들에 휩싸이는 걸 그린 이 작품은, 임신과 낯선 아파트 단지가 주는 다양한 공포와 불안을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푸른 벌레로 등장하는 타자는 부부에게 최악의 결말을 가져다주죠.

 

<푸르게 빛나는>에 나오는 공포 단편소설들은 명확한 결말을 전해주지는 않습니다. 대신에 공포스런 상황에 직면한 이들의 공포스런 감정을 전해주는 데 집중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무언가 여운이 남는 결말로서 뒷이야기를 상상하게 만든다고 할까요. 그런 감정의 묘사와 상상하게 만드는 것들이 좋았습니다. 특히 <열린 문>은 제가 근래에 읽은 공포소설 단편 중에서 가장 좋았습니다. 짧지만 너무 임팩트가 커서. 이 단편 하나로만 이 책을 읽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머지 작품까지 다 읽고 나니 삶이 너무 암울해지는 부분이 있네요.^^;; 이제 저는 조금 더 밝은 책을 읽으러 가봐야겠습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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