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옷장 - 개정판 아니 에르노 컬렉션
아니 에르노 지음, 신유진 옮김 / 1984Books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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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44.빈 옷장-아니 에르노

 

<빈 옷장>을 읽으며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무언가 내가 아는 아니 에르노 소설이 아닌 듯한 느낌, 왜 이런 이상한 기분이 들었는지 한번 생각해봤습니다. 왜 저는 <빈 옷장>을 내가 아는 아니 에르노 소설이 아닌 것처럼 느꼈는가?

 

그건 제가 아니 에르노의 소설들을 읽어온 역사와 연관이 있습니다. 저는 아니 에르노가 노벨문학상을 받기 전부터 꾸준히 아니 에르노 소설을 읽어 왔습니다. <단순한 열정>부터 시작된 저의 아니 에르노 읽기는 지속적으로 이어집니다. 저는 자신의 개인적 경험을 여과없이 솔직하게 표현하고, 차갑고 냉정하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는 아니 에르노 소설의 매력에 흠뻑 빠져있었고 독서를 멈출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아니 에르노의 한국에 출간된 소설들을 책들을 많이 읽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저는 <빈 옷장>에 도달했습니다.

 

저의 아니 에르노 읽기는 데뷔작이자 첫 소설인 <빈 옷장>을 빼고 이루어졌습니다. 저는 아니 에르노 소설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첫 소설을 빼고 다른 소설들을 읽었습니다.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처럼, 시간이 거꾸러 흐르는 것처럼, 저는 아니 에르노의 미래를 거쳐 아니 에르노 문학의 가장 먼 과거이자 소설의 시작점에 도달했습니다.

 

미래를 거쳐 과거에 도달하고 보니 <빈 옷장>은 낯설었습니다. 어떤 면에서? 이 부분에 대해서 한 번 말해보겠습니다. 제가 읽은 소설들에서 아니 에르노는 자신이 과거의 삶을 이야기하겠다고 말합니다. 저 같은 독자는 아니 에르노라는 필터를 통해서 그녀의 과거를 들여다보는 느낌을 가집니다. 작가가 자신의 과거와의 거리감을 독자에게 말하면서, 독자는 그녀를 거쳐서 그녀의 과거를 만나는 셈이 되죠. (독자)-작가-작가의 과거.

 

<빈 옷장>은 다릅니다. 이 작품에서 아니 에르노라는 작가이자 화자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책은 시작하자마자 바로 이야기로 들어갑니다. 아니 에르노의 다른 소설들에서 느껴지는 작가를 거쳐서 다가가는 과거와의 연결성, 과거와의 거리감은 흔적조차 없습니다. 아니 에르노의 소설이 아닌 다른 소설들처럼, 책은 지속적인 스토리텔링으로 독자들을 이끌어나갑니다. 제가 아니 에르노 소설들을 지속적으로 읽어오지 않았더라면, 저는 이 책을 가상의 이야기로 생각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아니 에르노의 다른 소설들을 읽었고, 그 때문에 <빈 옷장>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그녀 자신의 자전적 삶을 그리고 있다는 점을 잘 압니다. 첫 작품부터 아니 에르노는 아니 에르노였습니다. 다만 아직 작가적 스타일을 구축하지는 못했던 거죠.

 

시작부터 자신의 자전적 삶의 현실을 소설인 척 제시하는 작가 아니 에르노. <빈 옷장>은 자신만의 오토픽션 장르를 만들어가는 아니 에르노의 시작점으로, 그녀의 문학이 펼쳐질 지점을 예고합니다. 하지만 저는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 아니 에르노가 어떤 작품들을 쓰게 될지. 미래를 아는 사람의 입장에서 과거를 읽어나가다 보니 다시 욕망이 타오릅니다. 이번에는 과거에서 미래로 아니 에르노 작품을 읽어나가고 싶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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