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너머에 신이 있다면 - 2022년 제5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대상
김준녕 지음 / 허블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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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막 너머에 신이 있다면-김준녕

 

하루하루 글 쓴다는 핑계로 비슷비슷한 글을 쓰는 게 지겨웠다. 지겹고 쓰기 싫어서 하루하루 글 쓴다는 말을 하긴 했지만 안 썼다. 하지만 써야 하는 사정이 있어서 이렇게 글을 쓰려고 앉았다.

 

조금 다른 글, 지금까지 써오지 않은 글을 쓰고 싶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가장 쉬운 건 오독하고 왜곡하는 것이다. 진실이 아니라도 내 마음대로 해석해서 쓰는 글. <막 너머에 신이 있다면>의 서평을 예로 든다면 이 책을 내 마음대로 오독하고 왜곡해서 쓰면 된다. , 떠오른다. 어떻게 써야 할지가.

 

일단 작가의 나이를 본다. 96년생. 아주 좋다. 지금 담론계에서 대히트 치고 있는 세대론적인 분석을 충분히 적용할 수 있는 밀레니엘 세대에 속해있기 때문에. 작가가 태어나고 몇 년 뒤에 한국은 IMF 사태를 맞게 된다. IMF 사태 이후의 한국은 그 이전과는 다른 세계라는 걸 나는 안다. 그야말로 신자유주의의 본격적인 향연이 펼쳐지는 시대를 한국인들은 IMF 이후로 살아가게 된다. 작가는 신자유주의의 시대에 태어나서 신자유주의로 숨을 쉬고 살아갔을 것이다. 작가의 10대 초반에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덮친다. 역사상 최악의 불황 중 하나였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한국 사회에 또다른 충격파로 다가온다. IMF 사태로 시작해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겪은 청소년기를 보낸 삶을 상상해보려 노력한다. 내가 그걸 상상할 수 있을까. 상상력의 부족으로 그 삶의 재현은 힘들다. 하지만 작가가 쓴 소설에서 약간의 추측을 해본다.

 

<막 너머에 신 있다면>은 참혹한 소설이다. 소설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걸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온난화를 겪고 몰락한 소설 속 지구는 대기근이 덮친 뒤에 최후만을 기다리고 있다. 이 사실에 더해서 지구인들은 우주 탐사를 통해 태양계를 감싼 막을 알고 있다. 인간들은 막 때문에 더 나아갈 수 없다. 우주로 더 나아갈 수도 없고,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지구는 몰락해가고 있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한국을 지배하고 있던 독재자 B는 이런 상황 속에서 우주선 무궁화 호를 띄우고 막에 가닿으려고 한다. 마치 그것만이 희망이라는 듯. 미래를 기대할 수도 없고, 굶주림 속에서 괴로워하던 첫 번째 주인공 는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한 탈출구로서 우주선 승선을 선택한다. 140년이 넘게 걸릴 우주 항해이기에 아이들을 뽑을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아이로서 나에게 새로운 희망은 우주선 탑승 밖에 없다고 여기며. 나는 굶주림 속에서 자신을 잡아먹으려던 부모를 죽인 냉혹한 형섭의 도움을 받아가며 온갖 참혹한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우주로 나아간다. 우주선에서 형섭이 냉정한 독재자가 되었다가 살해되었음을 알리며 일종의 1부격인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시간이 흐른 뒤에 우주선의 현실을 바탕으로 2부격의 이야기가 전개되고, 새로운 가 등장한다. 1부의 주인공들이 사라지고 새로운 세대들이 주인공이 된 우주선 무궁화는 철저한 계급제에 기반하고 있는 사회이다. 이들은 철저한 효율을 추구하며, 비효율적인 건 최선을 다해 처리한다. 인간의 죽은 몸은 비료로서 우주선 속 사람들을 위해 이용된다. 비효율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이나 규율을 지키지 않은 이들은 철저하게 죽음을 내리는 식으로. 나는 우주선의 이발사로 죽을 이들의 머리를 깎고, 죽은 이들의 시체를 처리하는 스팀기를 작동시키는 인물이다. 철저한 계급화와 효율성 속에서 살아온 나는 이 삶에 환멸을 느끼고 있다. 우주선의 냉혹한 현실 속에서 아내와 아내가 임신한 배 속 아이에 작은 희망을 거는 나에게 우주선의 현실을 뒤바꾸려는 반란군이 접촉해오고, 동료의 잔혹한 죽음 앞에서 나는 우연히 그들과 함께 반란에 나서서, 막 너머로 향하는 발걸음을 향하게 된다.

 

위에 적은 내용을 보면 알겠지만 이 소설에 희망이나 이상이 들여설 여지는 거의 없다. 대기근을 겪은 지구에서부터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혹은 막으로 가려는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서로 죽고 죽이고 이용한다.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죽이고, 내가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남을 죽이고 짓밟고 이용하는 게 일반화된 현실의 모습. 어쩌민 이 비정하고 잔혹한 현실은 신자유주의의 삶을 숨쉬듯 살아온 밀레니얼 세대에게 내면화된 삶의 또다른 문학적 형상화가 아닐까. 이것이 오독이고 왜곡일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밀레니얼 세대에게 드리운 신자유주의적 삶의 모습들이 이런 식으로 형상화되는 게 일말의 삶의 진실을 담고 있다고 느낀다. 자신이 살아온 삶이 자신이 쓴 글에 반영될 수 밖에 없는 게 진실이기에.

 

일전에 나는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일본 만화 <원피스><진격의 거인>을 쓴 작가는 전혀 다른 삶을 그리고 있다고. <원피스> 속 세계는 꿈과 희망, 동료애, 우정이 넘쳐흐른다. 넘쳐 흐르다 못해 폭발할 정도로. 그에 비해 <원피스>보다 후대에 나온 <진격의 거인>에는 냉혹하고 잔혹한 현실이 담겨 있다. <진격의 거인>에서 중요한 건, 꿈과 희망, 우정이 아니라 생존이다. 이 두 만화의 차이는 그 만화가 시작된 일본 삶의 차이를 반영한다고. 이 말을 <막 너머에 신이 있다면>에도 쓰고 싶다. 이 소설에 담긴 현실은 작가가 살아온 삶을 반영한다고. 물론 소설에 절망만 있는 건 아니다. 2부의 주인공인 나와 지구인으로 우주선에 건너온 이아의 우정, 나를 돕는 유전자 인간 백팔의 행동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사이의 유대감을 절멸 시킬 수 없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막으로 향하는 나의 행동과 사고 속에는 우리가 포기할 수 없는 삶의 진실이 담겨 있다. 이 세상이 아무리 비정하고 냉정하고 참혹하더라도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살아갈 수밖에 없고, 살아가면서 무언가를 추구할 수밖에 없고, 그런 추구 속에서 자신만의 의미를 만들어 갈 수밖에 없다는 진실, 그 의미에 이라는 이름을 붙여 희망을 걸 수도 있고, 믿음을 가질 수도 있는 게 인간이라는 진실. 거기에 인간 삶과 문학의 의미가 있는 게 아닐까. 포기할 수도, 폭주할 수도 없는 삶 앞에서 인간은 살아갈 수밖에 없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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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 강의 2 : 패풍·용풍·위풍 고전완독 시리즈 2
우응순 강의, 김영죽 정리 / 북튜브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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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경강의2-우응순

 

길게 적었던 글이 날라가면서 내 멘탈도 날라가버렸다. 이 서평을 다시 써야만 하는 걸까. 고민했다. 하지만 악에 받혀서 다시 쓰기로 했다. 이전과는 다르게. 근데 내가 쓴 것들이 떠오르지 않는다. 뭐라고 썼더라. , 모르겠다. 내 마음대로 쓰자.

 

<시경강의> 2권도 1권과 유사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우응순의 강의는 세밀하면서고 꼼꼼하고 친절하게 시경 속 노래들을 한 글자 한 글자씩 소개한다. 그 흐름을 따라가다보면 그 시대의 삶이 눈앞에 그려진다. 최선을 다했지만 젊은 아내에를 받아들인 남편 때문에 쫓겨가는 나이든 아내, 전쟁터로 떠나간 남편을 그리워하는 아내의 슬픔, 반대로 전쟁터에서 아내를 그리워하는 남편, 연인들간의 그리움과 아쉬움과 질투 같은 복합적인 감정들까지. 현대를 살아가는 누구라도 느낄 수 있는 감정을 담은 시들은 보편성을 선사하며 독자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2권의 주인공은 따로 있다. 바로 2권에 담겨 있는 노래들이 전해진 지역인 위나라의 역사적 사건들이 담긴 노래들. 이 노래들이 보여주는 역사적 사건들은 현대인들이 쉽게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었다. 죽은 아버지의 아내를 취한 아들, 죽은 형의 아내를 위찬 동생, 배다른 형을 죽인 동생과 동생의 어머니, 그 동생을 몰아낸 배다른 형의 동복 동생 같은 사건들. 지금이라면 패륜이나 막장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는 현실 앞에서 막장, 패륜이라는 단어는 힘을 잃고 그 시대의 하나의 현실이 되어 버린다. 그리고 주희 같은 후대의 해석가들은 특유의 도덕적이고 교화적인 해석을 덧붙인다. 우응순은 거기에 넌지시 숟가락을 얹으면서 동시에 열린 해석의 가능성도 제시하면서 독자들에게 잠깐의 숨구멍을 열어준다.

 

보편성과 그 시대 특수성을 왔다갔다 하면서 우응순의 강의를 따라가다보니 어느새 2권도 끝나버렸다. 나는 아쉬움을 느끼며 다음 강의를 기대해본다. 나에게 다시 이렇게 시경의 노래들을 쉽게 전해준 책은 없었다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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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화폐 전쟁 - 투자인가? 투기인가? 암호화폐의 거짓과 진실
에리카 스탠포드 지음, 임영신 옮김 / 북아지트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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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암호화폐 전쟁-에리카 스탠포드


 

11리뷰 쓰기 3일째. 시계를 본다. 벌써 1050. 다시 허겁지겁 의자에 앉아 컴퓨터를 들여다본다. 이번에도 이틀 전에 읽은 책 리뷰를 쓰기로 한다. 어제처럼 쓰다 보면 써지리라 여기면서.

 

2017, 2018년은 암호화폐 버블의 시기였다. 사람들은 암호화폐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여긴 채 무수한 돈을 쏟아부었다. 그 당시 모두가 암호화폐로 일환천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했다. 누구라도 암호화폐에 투자하기만 한다면 부자가 되는 게 가능하다 여겼다. 그건 일종의 광기였다. 눈이 벌건 상태로 암호화폐에 돈을 집단적으로 넣기만 하면 된다는 광기. <암호화페 전쟁>은 그 당시 일어났던 말도 안 되는 암호화폐 사기극을 집중적으로 조명한 책이다. 책은 그 당시의 광기의 현장으로 독자들을 안내하며, 돈 벌려는 욕망에 미친 사람들이 미친 사기극을 벌이는 미친 사기꾼들에게 넘어가는 현장을 생생하게 알려준다.

 

생생한 암호화폐 사기극을 보면, 사람들이 무언가에 씌었다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무언가에 씌이지 않고서야 저런 거에 넘어간다고? 저게 가능하다고? 물론 가능했다. 사람들이 진짜로 씌었기 때문에. 마르크스가 물신이라 부른 것의 변형된 형태라고 할 수 있는 돈귀신, 일확천금 귀신, 한탕 귀신에 씌인 인간들은 돈을 벌 것이라며 여기며 부나방처럼 사기라는 불꽃에 뛰어든다. 책은 초반부에 ICO부터 시작한다. ICO는 기업이 신규 암호화폐를 발행하기 위해 돈을 모으는 방식으로, 백서를 공개하고 일반 투자자들로부터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모으는 것을 말한다. 당연하게도 그 당시에는 암호화폐 시장은 미지의 영역이었고, 그에 따라 관련법도 전무했다. 따라서 말도 안 되는 온갖 ICO들이 남무한다. 어떤 이는 암호화폐로 섹스를 중개해주겠다 하고, 어떤 이는 연애를 이루게 해주겠다 했다. 어떤 이는 암호화폐로 사람들을 구원에 도달하게 해줄 수 있다. 이 외에도 무수한 말도 안되는 주장들이 넘쳐났다. 가장 황당했던 건, 이 돈으로 사람들에게 아무 도움도 안 줄 것이며 자기 소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던 사람도 돈을 모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래도 위의 사건들은 황당하긴 하지만 액수로 따지면 크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 등장한 건 액수 단위가 달라진다. 암호화폐 여왕으로 불리며 희대의 사기극으로 유명한 원코인을 만든 주역 루자 이그나토바는 5조를 들고 사라졌다. 아직도 잡히지 않은 채로. 비트코인을 넘어설 것이라 주장하며, 구글을 믿지 말라고 외치던 그녀는 고전적인 피라미드 방식을 이용한 폰지 사기로 돈에 눈 먼 이들의 돈을 들고 세상 어디간로 떠나갔다. 돈을 빼앗긴 이들의 절망과 한탄을 먹은 상태로.

 

원코인부터 시작한 사기극들은 말도 안 되는 이자를 약속한 비트커넥트 코인, 중국에서 시작되어 170억 달러 먹튀로 유명해진 플러스토큰, 거래소 운영자가 죽은 것처럼 보였지만 살아 있을 걸로 의심되어 부활 사기처럼 보이는 캐나다의 쿼드리가 거래소 사건, 부실한 운영으로 연속 해킹당해 막대한 피해를 초래한 마운트콕스 거래소 사건, 채굴기가 사라지는 마법을 부린 클라우드 채굴소 비트클럽네트워크 사건, 유명인을 이용한 시장조작으로 사람들을 울린 펌프앤드덤프 사기 사건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마지막에 책의 저자는 암호화폐의 유용성을 갑자기(??) 말하며 책을 마무리한다.

 

사람들의 욕망이 없었다면 위의 사기극들은 불가능했으리라. 돈을 벌겠다는, 일확천금을 마련하겠다는, 남들 다 같이 돈 버는데 나도 뒤질 수 없다는 욕망이, 욕심이 사람들의 눈을 멀게했다. 욕망 때문에, 사람들은 말도 안 되는 것들을 무시한 채 돈을 사기꾼들에게 건넸다. 그리고 그들은 돈이 사라지자 절망 속으로 추락해간다. 집단적으로 귀신에 씌인 듯한, 집단 광기의 무서움을 실감하면서 생각해본다. 현명한 투자 이전에 그 당시 암호화페 열풍은 투자도 무엇도 아닌 광기 그 자체였다고. 아무런 법도, 역사도 없는 그 당시 암호화폐 시장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수준이 아닌, 크레이지 리스크 크레이지 리턴이었다고. 그런 크레이지한 상황에서 돈을 버는 건 크레이지한 사람 아니면 힘들었을 거라고. 그리고 사람들을 미치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마르크스가 말하는 물신 그 자체라고. 어디 다른 글에서 적은 것을 다시 쓰며 이 글을 마친다. 물신은 죽지 않았다. 자본주의가 계속되는 한, 물신은 불사조처럼 살아나고 또 살아나며 사람들을 홀리고 미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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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 강의 1 : 주남·소남 고전완독 시리즈 1
우응순 강의, 김영죽 정리 / 북튜브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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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경 강의1-우응순

 


멍하니 앉아 있다 시계룰 들여다본다. 1110. 순간 깜짝 놀란다. 아 어제부터 하루에 하나씩 책 리뷰를 쓰기로 했지. 허겁지겁 컴퓨터에 앉아 글을 쓰기 시작한다. 어떤 책 리뷰를 써야 하나. 맞다. 이틀 전에 읽은 책이 있지. 그 책 리뷰를 쓰면 되겠다. 조급함에 일단 키보드의 글자부터 누르기 시작한다. , 쓰다보면 글이 나오겠지 생각하며.

 

<시경>은 사서삼경에 속하는 책이다. 성리학의 국가였던 조선에서 주자가 정립한 사서삼경은 너무나도 중요한 책이었다. 하지만 성리학이 아닌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핵심으로 내세운 한국에서, 더군다나 SNS와 디지털 경제가 급속히 퍼진 2022년의 한국에서 사서삼경 중 하나인 <시경>을 강의한 <시경 강의>라는 책을 읽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누가 뭐라고 해도 거기에는 보편성을 내세울 수밖에 없다. 아무리 오래전에 쓰인 책이고, 오래전 사람들의 삶을 담고 있다고 해도, 그들의 삶과 우리의 삶에는 서로 이어지는 보편성이 있다는 것. 그들도 사랑하고 슬퍼하고 행복해하고 괴로워하고 일하고 노래하고 기뻐한 사람이었다는 점. 2022년을 살아가는 우리도 그들처럼 사랑하고 슬퍼하고 일하고 노래하고 기뻐하고 있다. 고대인과 2022년의 현대인이 같은 인간이라는 점에서, 우리가 그들과 같은 인간으로서의 보편성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경>에 나오는 고대 노래를 읽을 의미가 있을 것이다. 기술적으로 봤을 때 우리보다 확실히 열악한 상황에서 살았을 그들의 삶에게서, 우리가 배울점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먼저 삶을 살다간 선인들에게서, 삶의 선배로서 무언가 배운다는 의미에서.

 

그들의 삶에서 무언가 배우기 위해서 <시경>을 읽는다는 것에 있어서 우리가 넘어야할 것이 있다. 바로 독해력. 누가 뭐라고 해도 사서삼경은 고전이고, 과거의 가치와 삶을 반영하여 과거의 언어로 기록된 책이다. 말을 줄여쓰고, 책도 거의 읽지 않고, 유튜브 같은 이미지 매체에 길들여진 현대인들에게 2000년 전의 삶과 가치관을 전하는 사서삼경은 넘어서기가 쉽지 않다. 아무리 고대인들과 현대인들이 인간이라는 보편성을 공유한다고 해도, 과거의 방식대로 기록된 과거의 텍스트를 읽는 건 지난한 일이다. 그나마 <시경>은 사서삼경 중에서 노래를 다룬다는 점에서 가장 딱딱하지 않고, 공감의 가능성이 가장 큰 텍스트라는 점에서, 내 개인적으로 사서삼경 중에서 가장 쉽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기서 쉽다는 말은 사서삼경 중에서 쉽다는 말이지, 책의 난이도를 따지면 결코 쉬운 책이 아니다. 결국 <시경>을 읽는다는 건, 그 어려움을 넘어서서 고대에 가닿는 것이다.

 

다행인 건, 우응순의 <시경 강의>라는 책이 나와있다는 점이다. <시경 강의>는 내가 지금까지 읽은 <시경> 해석서 중에서 가장 친절하고 꼼꼼한 책이다. 저자인 우응순의 강의를 실제로 꼼꼼하게 기록하여 풀어낸 <시경 강의>, <시경>에 나오는 고대 노래의 한자한자를 친절하고 세밀하면서도 꼼꼼하게 풀어내며, 고대 노래를 터럭 한 올이라도 빠뜨리지 않고 알려주려고 노력한다. 그러면서도 노래의 맥락과 배경설명도 충실히 하고 있다. 해석에 있어서도 주자의 교화주의적인 해석을 알려주고, 그러면서도 그 해석에 얽매이지 않고 지금 현실에 맞는 해석도 알려준다. 주자를 넘어서면서도 존중하는 올바른 거리두기의 느낌으로. 동시에 저자인 우응순은 우리 스스로 한자를 해석할 수 있다면서 열린 해석의 가능성도 알려준다. 여러모로 <시경> 초심자에게 유용하게 도움이 될 수밖에 없는 이 책을 읽으며, 나도 <시경> 초심자로서, 저자의 실제로 들려오는 듯한 강의 목소리를 책에서 읽어내며 <시경> 구절구절들을 넘나들고 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한번 맘먹고 <시경>이라는 텍스트를 저자의 도움을 받아 정복하고 싶다. 기회는 언제나 오는 것이 아니기에, <시경 강의>의 도움만 있다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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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무타납비 시 선집 소명출판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동양편 288
김능우 옮김 / 소명출판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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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알무타납비 시선집-알무타납비

 

책을 읽으면서 생겨난 취향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거나 대중적이지 않은 시대나 사건들에 대한 책을 읽는 것. <알무타납비 시선집>은 저 취향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읽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 취향은 저로 하여금 <알무타납비 시선집>을 붙잡아 읽게 했습니다. 이게 중세 이슬람 황금기를 대표하는 시인의 시라면서 속삭이며.

 

이슬람 시인들의 시를 읽지 않은 건 아닙니다. 오마르 카이얌의 <루바이야트>나 잘랄루딘 루미의 시들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이 시들은 저에게 이슬람 특유의 시라기 보다는, 어떤 특성을 가지면서도 보편적인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철학적이거나 사색적이거나 신비적이고 종교적인 느낌으로. 이슬람 시인이라는 특색을 지우더라도 이들의 시는 누구에게나 읽힐 수 있는 보편적인 힘이 있습니다.

 

하지만 알무타납비의 시는 조금 느낌이 다릅니다. 중세 이슬람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시인 중에 최상의 자리에 위치한 알무타납비의 시는, 중세 이슬람 황금기의 현실로 시를 읽는 독자를 데려갑니다. 알무타납비의 시에서는 그 당시 이슬람의 자신감과 당당함, 용감함과 자기긍정의 힘이 강하게 느껴집니다. 지금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제국주의와 분쟁, 내전 등으로 얼룩진 중동의 근대 이후 역사에서는 볼 수 없는 강렬한 자신감이 가득한 시들 속에서, 저는 시대의 차이를 확연하게 느낍니다. 동로마 제국을 가뿐하게 물리치고, 다시 쳐들어와도 너희들 따위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며 자신감을 표출하는 이슬람의 군주를 묘사하는 시들 속에서.

 

누구에게나 찬란한 시절이 있습니다. 한 국가나 문명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이슬람이 황금기가 있었다는 걸 들어서는 알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체감하지 못했을 뿐. <알무타납비 시선집>을 읽으며 말로 듣는 거랑 다수의 시를 통해 그 강렬한 자신감을 체험하는 건, 전혀 다른 영역이라는 걸 깨닫습니다. 자신감은 군주를 훌륭하게 묘사하는 시에서만 있는 건 아닙니다. 알무타납비는 자신의 기대를 배반한 군주들을 통렬하게 풍자하고 조롱하는 시들도 남깁니다. 여기에서도 저는 알무타납비의 기개를 느끼는 걸 넘어서서, 동시대 이슬람에 가득했을 수도 있을 자신감을 느낍니다. 저의 지독한 오독이겠지만, 알무타납비의 오만함은 그 시대 이슬람의 강렬한 자신감에서 유래한 것이 아닐까요?(^^;;) 오독이 여기까지 진행되니 이쯤에서 그만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찌되었든 중세 이슬람의 넘치는 자신감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시들을 읽으며 그 자신감에 감염된 저 자신을 꿈꾸어봅니다. 아직 오지 않을 저만의 황금기를 꿈꾸며. 그러면서 저는 다른 책으로 넘어가보려 합니다. <알무타납비 시선집>처럼 예상할 수 없는 그 무언가를 만나기를 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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