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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레오니트 안드레예프 지음, 이수경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22년 8월
평점 :
7.어둠-레오니트 안드레예프
책을 읽으며 다양한 목소리들이 흘러 나오는 경험을 했다. 나는 그 목소리들을 그 다양한 목소리 그대로 옮겨 적기로 한다. 지금까지 써오던 서평과는 다른 서평을 쓰고 싶다는 욕망에 따라서.
A: 이 소설의 줄거리는 굉장히 단순합니다. 우선 거사를 며칠 앞둔 혁명가가 있습니다. 이 혁명가는 경찰의 추적을 피해 매춘업소로 가고, 거기서 평범한 가정집 여인 같은 류바라는 매춘부를 선택합니다. 그는 매춘부와 대화를 나누면서 심경의 변화를 겪고, 매춘부의 밀고로 경찰에 잡히게 됩니다. 더 단순하게 말하면 ‘매춘업소로 갔고, 매춘부를 만났고, 대화를 나누고, 심정의 변화를 겪고, 경찰에게 잡혔다’입니다. 줄거리로만 보면 특별한 게 없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중요한 건 줄거리가 아니라, 혁명가의 심경의 변화를 다룬 심경 묘사입니다. 세밀하면서도 자세하게 묘사되는 개인의 심리 묘사가 이 소설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것이죠.
B: 이 작품을 비판적으로 보는 이들에게 문제가 되는 건 개연성입니다. 혁명의 대의에 충실한 한 인물이 매춘부와 대화를 나누고 갑자기 심경의 변화를 겪는다는 게 개연성이 없다는 거죠. 개연성이 없다는 건, 다른 말로 설득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혁명에 대의에 빠져 자기 목숨을 걸고 거사를 하려던 인물이 갑자기 매춘부와 대화를 나누고 뺨을 맞은 뒤에 혁명을 버리고 나쁜 인물이 되기로 한다? 빛나는 혁명의 대의가 아니라 무기력한 어둠을 선택한다? 이 작품을 비판하는 이들에게 이건 말이 안 되는 겁니다. 혁명을 위해 자신을 바치려는 이가 대화를 나눈다고 아예 다른 사람이 되는 걸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 거죠. 어쩌면 러시아의 혁명이 다가오는 시절을 살아가던 이 소설의 비판가들에겐, 혁명의 대의를 받아들인 이가 무기력한 인물이 되는 게 싫었던 겁니다. 혁명이 다가오는데, 혁명을 해야할 이들이 무기력하게 패배주의적인 인물로 변화해서는 안 되는 거죠. 지금 그들에게 필요한 건, 혁명을 성공시킬 영웅같은 이들이니까요.
C: 반대로 이 소설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이들에게 중요한 건 개연성이 아닙니다. 어쩌면 그들도 비판가들처럼 개연성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들은 개연성 보다는 이 소설의 특징인 심리 묘사에 주목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은 주인공의 변화가 개연성이 없을지라도, 섬세하고 디테일한 심리 묘사가 문학의 힘을 제대로 보여준다고 말합니다. 문학이란 인간의 영혼을 세밀하고 자세하게 보여주면서 인간 삶의 어떤 가능성을 실현하는 것이니까요. 섬세하고 디테일한 심리 묘사로 인간 영혼의 어떤 가능성을 보여주고, 심리의 어두운 모습까지 파고들어가면서 인간이란 어떤 존재가 될 수 있는가를 나타내는 게 문학이니까요.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충분히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D: 특징, 비판적인 평가, 긍정적인 평가들을 다 들여다봤습니다. 골고루 저 요소들을 바라봐도 저에게 이 소설은 쉽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너무나 섬세하게 파고들어가기 때문에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면도 있고, 인간 심리의 병적인 요소도 드러내기에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부분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비판가들의 말처럼, 너무 긴박하게 변하는 심리를 이해하기가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해하지 못해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해도, 문학은 자신만의 가능성과 특징을 가진 채 좋은 작품이 될 수 있습니다. 내가 이해하지 못할 뿐이지, 자신만의 특징으로 문학적인 아름다움을 드러낼 수 있으니까요. 그게 지금까지 꾸준히 파악해 온 문학세계 속 문학의 모습이니까요. 이해할 수 없어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 받아들이기 어려워도 멋진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 그게 문학이라는 예술의 힘, 아니 어쩌면 예술이라는 영역의 힘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