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쇳밥일지 - 청년공, 펜을 들다
천현우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8월
평점 :
2023-8.쇳밥일지-천현우
1.
<쇳밥일지>의 마지막은 새로운 삶의 시작을 위해 저자인 천현우 씨가 고향인 마산을 떠나는 걸로 끝납니다. ‘그래, 이제 과거 같은 번영기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아직 이곳에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나의 친구들, 고마운 어른들과 치열하게 살아가는 후배들이 있다. 지금은 비록 돈을 벌러 떠나지만, 언젠가는 이들의 품속으로 다시 돌아 오고야 말리라. 돌아와서 고향을 위해 나 나름의 역할에 충실하리라. 비록 몸은 다른 곳에 있을지라도 오늘도 현장에서 치열하게 일하는 쇳밥꾼들의 마음을 잊지 않으리라. 주머니에 실패한 연인처럼 구겨져 있던 천원짜리 석장을 꺼냈다.
고향을 떠나기 전, 풀빵이 먹고 싶었다.(p.287)
2.
고향을 떠나는 천현우 씨의 마음을 한 번 생각해보면서, 저는 책을 덮습니다. 아, 좋았다.. 이 말이 떠오르네요. 다시 생각해봅니다. 도대체 이 책의 무엇이 저는 좋았던 걸까요? 책이 좋은 이유는 책마다 다를 겁니다. 어떤 책은 서사의 힘으로, 어떤 책은 논리적 정합성으로, 어떤 책은 아름다운 문장의 힘으로, 어떤 책은 사유의 기발함으로, 또 어떤 책은 상황에 딱 들어맞는 비판의 유효성으로. 이렇듯 책이 좋은 이유는 무수히 많을 겁니다. 그 중에서 <쇳밥일지>가 좋았던 이유는 뭘까요? 제가 보기에 이 책이 좋은 이유는 이 책에 넘쳐 흐르는 삶의 힘 때문인 것 같습니다.
3.
<쇳밥일지>는 삶과 밀착한 책입니다. 마산에서 태어난 한 청년이 공장에 다니며 쇳밥을 먹으면서 살아왔고, 그 과정을 가감없이 진솔하게 기록한 책답게, 이 책은 저자인 천현우 씨의 삶의 모습과 양상이 가득합니다. 공장 나가서 용접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서 관계를 맺고, 그 와중에 사랑도 하고, 산재사고도 겪고, 눈앞에서 다치는 사람들을 보고, 이 사회의 온갖 부조리를 마주치고, 빚덩이에서 헤어나려고 몸부림치고, 아픈 부모님을 돌보고, 사랑도 떠나보내고, 독서도 하고, 세상을 더 알아가고, 운동도 하고, 친구 만나고, 어떤 때는 눈앞의 일에 안주하고, 어떤 때는 우울해하고, 누군가의 말을 듣고 깨달음도 얻고, 운좋게 자신이 쓴 글이 알려져 글쓰는 일도 하는 등의. 읽다보면 책 속에 가득한 삶의 힘이 독자에게 전해져옵니다. 삶의 힘을 건네받은 독자는 저자의 삶에 고개를 끄덕끄덕 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자의 삶 그 자체가 독자에게 설득력으로 다가오니까요.
4.
때로는 삶이 더 영화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니, 서평을 쓰니까 영화보다는 문학이라는 말이 맞겠네요.^^;; 때로는 삶이 더 문학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게는 <쇳밥일지>의 천현우 씨의 삶이 그랬습니다. 바람기 가득한 아버지, 친모 같은 애정을 준 양어머니, 생모와 지내면서 받았던 가정폭력과 학대, 크게 다쳐서 찾아온 아버지 때문에 과거의 양어머니와 다시 살던 일, 가난했던 나날들, 서울 말씨 때문에 괴롭힘받다 게임 잘해서 괴롭힘을 극복한 일. 어린 시절의 에피소드들을 보면 드라마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살아나가면서 공장 일을 하면서 겪은 일들, 사랑과 좋은 이들과의 만남, 부조리한 일들과 힘겨움과 고통, 글쓰기를 통한 새로운 삶의 기회까지의 과정도 마찬가지처럼 만만치 않습니다. 본인에게는 평범한 삶의 과정이었겠지만, 그 삶을 글로서 읽어나가는 독자에게는 전혀 다른 삶의 영역을 들여다보며 생생하게 체험해나가는 시간이었습니다. 삶이 글이 되는 순간, 기대하지 않았던 문학적인 효과를 낳은 것이라고 할 수 있겠죠. 삶이 글이 되고, 글이 삶이 되는 것에 독자가 참여해서 그 합일의 과정을 체험하는 것. 이 과정이 좋았기에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좋은 걸 혼자 가슴 속에 품고 있기에는 너무 아까운 일이니까요.^^;; 아무튼 저자인 천현우 씨의 새로운 삶의 시작을 축하하면서 저 또한 천현우 씨 삶과의 만남을 끝내고 저의 삶이라는 세계로 다시 떠나가겠습니다.
‘청년공으로 살아가기란 생각보다는 힘들고 꾸역꾸역 생존은 가능한 나날이었다. 그때의 시간들. 고와 낙이 있었고, 땀과 눈물이 있었으며, 희망과 좌절이 공존했고, 꿈이 짓이겨졌다가 다시금 피어났던 과거를 문자로 남겨보고자 한다.’(p.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