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한 죽음, 좋은 죽음이란 어떤 것일까?
어떤 사람들은 팔팔하게 잘 살다가 어느날 갑자기 자는 듯이 고통없이 죽는 것이 가장 좋다는 사람도 있다. 극단적으로는 비행기 타고가다가 죽는 것이 가장 좋다는 사람도 있다. 혹은 심장병으로 급사를 가장 좋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자신이 죽는 지도 모르게 죽는 것도 복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죽은 사람에게 "괜찮았소? " 라고 물어볼 수없으니, 알 도리는 없다.
그러나 오랜동안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을 보아온 결과, 좋은 죽음에 대한 나름대로의 기준을 만들어 보았다.
먼저 갑작스러운 죽음은 가장 피해야할 죽음이다. 자신에겐 물론 가족 친지에게도 충격이고, 이 충격은 살아남은 사람의 일생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특히 중요한 사람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또다른 죽음을 부르는 위험하고도 무서운 존재이다. 그래서 가능한 갑작스러운 죽음은 가장 피해야할 요소이다. 가능하면 죽음은 최소 3개월 좋게는 약 6개월 이상 예측이 가능한 상황이 좋다. 1-2년도 괜찮다. 사실상 미리 알 면 알 수 록 좋다고 생각한다. 충분히 예측이 가능해야 자신도 삶을 두돌아보고 준비도 하고, 충격에 대비할 수도 있다. 시간은 쿳션과 같아서 대부분의 충격을 흡수해주는 것 같다.
그 다음으로 당연하게도 육체적으로 고통이 없어야 한다.
극심한 통증이나, 호흡곤란등이 가장 중요한 고통이다. 정신 착란, 의식 소실 등도 상당히 고통스러운 증상이다. 이런한 고통이 가능하면 적어야 하고,가능하면 짧을 수록 좋은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이외에도 정신적 , 영적 고통이 없어야 한다.
정신적 고통은 육체적 고통에 못지 않은데, 자신의 후회, 자식들에게 지우는 부담에 따른 고통, 인간적 갈등에서 오는 고통등이다. 사실 정신적 고통과 육체적 고통은 서로 깊은 연관을 지고있어서 어느게 어는 것인지 분간치 못하는 경우도 있다. 영적 고통은 성직자의 영역이니 여기서 논하지 않겠다.
무었보다도 중요한 점은 자신이 "죽음을 맞이하고있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다. 죽음을 자신이 인식치 못하면 사실상 좋은 죽음 나쁜 죽음에 대한 논의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마치 주인공이 출연하지 않는 영화같은 느낌이다. 사실상 좋은 죽음에 대한 모든 논의가 이 것으로 귀결되는 느낌이고.. 죽음을 인지하면 그자체로 어떤 의미에서는 성공적인 좋은 죽음이라고도 할 수있다. 불행스럽게도 너무 많은 사람들이 본인은 물론 가족들마저도 죽음자체를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하고있다. 다 지나고 나서야. 아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 하는 데 하고 말해봐도 다 지난일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