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명의료 결정법: 의료 현장의 목소리를 더 들어야 한다.

 

정부가 연명의료 결정법()을 발표한 이후로 수많은 윤리적, 철학적, 종교적 논란에 휩싸여 있다. 이 와중에 정작 의료 현장에서 죽음과 생의 갈림길에서 고민하는 의사와 환자, 가족의 목소리는 묻혀버린 느낌이다. 알다시피 법제화의 기본적인 취지는 말기 암으로 임종을 앞둔 환자에게 항암치료를 하거나, 기도를 절개하고, 인공 호흡기를 끼워서, 중환자실에서 가족과 격리된 채로 극심한 고통 속에 생을 마감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개선해 보자는 것이다.

애석하게도 이러한 의도는 생명의 존엄성을 지키자는 더욱 큰 명제와 자신의 운명을 자신이 결정해야 한다는 자기 결정권을 주장하는 의견에 철저하게 무력화 되고 있다. 물론 생명은 항상 존중 되어야 하고, 보호 받아야 한다. 그러나 생명 존중은 무조건 연장시키고 지킴으로써만 이루어 지는 것은 아니다. 생명은 그 자체로 유한성을 갖는 의미가 있다. 유한한 생명을 무한하게 지키려는 노력은 오히려 존엄성을 해칠 우려가 있고, 이러한 우려는 의료 현장에서 그대로 현실화 되고 있다.  현재도 오랜 암 투병으로 심신이 허약하고 임종이 가까운 환자에게 항암제를 투여하고, 기관지를 절개하여 중환자실에 눕혀놓고, 가슴을 누르고, 전기 충격을 주는 의료 행위가 행해지고 있으며, 이는 결코 생명을 존중하는 태도가 아니다.  

자신의 운명을 자신이 결정해야 한다는 일견 당연해 보이는 명제도 제고할 필요가 있다. 항암치료를 할 것인지, 심폐 소생술을 할 것인지 안 할 것인지, 중환자실 치료를 받을 것이지 안받을 것인지를 왜 환자와 가족이 혼자서 고민하고 결정해야 하는 가?  이런 의학적 결정은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갖춘 의료인도 심사 숙고와 고민이 필요한 결정이다. 극히 전문적인 결정을 의료인이 아닌 환자와 가족이 먼저 결정하고 이에 따라야 한다는 것도 큰 모순이다.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의학적 판단을 의학적 전문가가 아닌 환자와 가족이 스스로 결정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모든 의학적 판단과 결정에는 당연히 책임 문제가 따른다. 환자와 가족에게 중대한 의학적 결정을 내릴 것을 강요하고 책임을 떠맡겨서는 안 된다. 의료진은 당연히 자신이 내린 판단과 결정에 대하여 윤리적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 환자가 사망하면 무조건 의료진의 책임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의료진은 환자의 안녕과 이익을 위하여 최선을 다해야 하는 책임이 있고, 최선을 다한 의료진에게는 법적 보호와 신뢰를 보장해주어야 한다.

공허한 윤리 논쟁보다는 의료 현장의 목소리에 좀더 귀를 기울여야 생명을 존중하는 역할을 다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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