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전 의료 의향서
저는 지난 20여 년간 내과의사로서, 특히 종양내과의사로서 많은 암 환자를 치료해왔고, 동시에 많은 환자의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생생하게 경험하였습니다. 이러한 경험으로부터 건강의 소중함을 절실하게 느꼈고, 질병을 치료하는 현대의학의 위대함과 한계를 직접 경험하였습니다. 한편으로는 인간으로서 죽음은 누구에게나, 언제든 찾아 오게 되며,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인생의 소중한 과정이라는 사실도 잘 알게 되었습니다.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저에게도 인생을 마무리 할 시간이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가능한 평화롭고 고통 없이 죽음을 맞이하고픈 바램입니다. 더불어 평화로운 인생의 마무리는 저의 인생을 완성하는 유일한 기회임을 깨닫고 있습니다.
저는 50대 중반으로, 아직 당뇨나 고혈압 등의 만성질환도 없을 뿐 아니라, 부모님도 여든 가까운 나이에도 두분 모두 비교적 건강하시니, 저도 80세까지는 건강하게 살 수 있을 것으로 희망하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그렇듯, 갑작스러운 사고나, 뇌혈관 장애, 치매, 암 등 예기치 않은 질병이나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에 의식이 혼미해지거나,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황이 언제라도 발생할 수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안락사를 반대하며, 안락사와 유사한 의학적 치료에도 절대로 반대합니다. 그러나 자연스러운 편안한 임종을 방해하는 불필요하고 고통스러운 의학적 처치로 인하여 인위적으로 죽음의 과정을 연장시키거나 불필요한 고통을 초래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저는 저의 운명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 자연스럽고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고 싶습니다.
물론 정상적인 의식이 있을 때는 저와 상의하여 결정하면 되겠지만, 의식이 없거나, 정상적인 판단 능력이 상실된 경우에는 아래 저의 뜻을 최대한 존중해 주기를 바랍니다.
1. 몇 가지 예외적인 상황을 제외하고는 절대로, 어떤 경우에도 심폐 소생술을 받지 않겠다. 건강한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심장 혹은 호흡 마비가 왔을 때, 급성 심근 경색, 급성 부정맥, 물에 빠지거나, 전기 감전, 교통사고, 화재로 인한 연기 질식, 이외에는 어떤 경우에도 심폐 소생술을 하지 않기를 강력하게 소망한다.
2. 어떤 이유로든 의식이 소실된 상황에서 1달 이내에 의식이 회복될 가능성이 50% 가 안 되는 경우에는 연명치료를 거부한다. 지속적으로 2주 이상 의식이 소실이 지속되는 경우에는 인공호흡기, 인공 튜브 삽입 등의 연명 치료는 조속히 중단해 줄 것을 강력히 요청한다. 3주 후에도 의식이 없을 때는 수액 공급, 영양 공급도 중단하여 평화롭게 생을 마감하도록 도와 주기 바란다.
3. 갑작스럽게 발생한 응급상황이 아니면, 절대로 중환자실에 입원하지 않겠다. 설사 응급 처치 상황에서 입원했다고 해도, 일주일 이내에 일반 병실이나 집으로 퇴원하고 싶다. 그로 인한 의학적 책임을 나의 의료진에게 묻지 않겠다.
4. 사고로 인한 급격한 출혈이 아니고는 다른 사람의 혈액을 수혈 받지 않겠다.
5. 어떤 경우에도 항암 화학치료, 암 수술, 방사선 치료를 하지 않기를 바란다.
6. 직접적이고 분명한 의사 표시 없이는 CT, MRI, 피검사를 하지 않기 바란다.
7. 상당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고 판단되면, 충분한 양의 강력한 진통제와 신경 안정제를 투여하여 고통이 없도록 해주길 강력하게 소망한다.
8. 집에서 연결된 선이나, 산소 마스크 없이 평화롭고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
이상 “나의 사전의료 의향서”는 다음 개정 시 까지는 의식이 없는 상황에서 저의 분명한 의사 표시로 간주되어 저에 대한 의학적 결정의 기준이 되기를 바랍니다.
2014년 1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