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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들의 세계사
폴 존슨 지음, 왕수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제목만 보고 내가 익히 아는 세계사의 영웅들을 떠올려봤다. 알렉산더 대왕, 카이사르, 나폴레옹, 칭기즈칸, 링컨 등이 떠올랐다. 아마도 이들이 세계사의 흐름을 많이 바꿔놓지 않았을까 생각돼 나는 이들을 영웅으로 떠올렸다. 그런데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영웅은 내가 생각하는 영웅과 많은 거리감이 있었다.
이 책은 전부 13개 항목으로 나눠서 영웅들을 살펴보고 있는데, 이 중 ‘세계사에서 가장 빛나는 이름’편에서 소개된 알렉산드로스 대왕, 율리우스 카이사르, ‘근대의 포문을 연 전쟁 영웅들’편에서 소개된 워싱턴, 넬슨, 웰링턴, ‘구시대를 뒤흔든 거물 정치인’편에서 소개된 윈스턴 처칠과 샤를 드골, 남북전쟁의 영웅으로 소개된 링컨과 로버트 리 장군 정도가 내가 생각했던 영웅에 속했던 사람들이고, 다른 사람들은 내가 한 번도 영웅이라고 생각해 보지 못한 사람들이어서 다소 의아스럽기도 했고 흥미롭기도 했다.
특히 맨 첫 단원에서 소개된 드보라, 유딧, 삼손, 다윗의 이야기는 이 작가가 혹 유대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유대인들의 영웅에 대해 자세히 적어놓았다. 이 중 유딧은 내가 최근에 읽은 서양화집에서 아르테미시아 젠텔레스키라는 근대 여성 화가에 의해 자주 그림 소재도 사용되었다는 이야기를 읽었기에 남다르게 다가왔다. 왜 유딧이 화가들의 단골 그림 소재가 되었는지, 그리고 저자가 왜 그녀를 영웅으로 꼽았는지가 잘 설명돼 있다.
‘파티의 여왕’편에 소개된 패멀라 베리와 ‘전사의 심장을 지닌 불꽃같은 페미니스트’에 소개된 부디카 여왕은 처음 듣는 이름이었는데, 이는 아마 작가가 영국의 역사가이기 때문에 영국사 중심으로 영웅을 선정하다 보니 그랬던 것 같다. 부디카는 60~61년에 브리튼족이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을 때 로마에 항거해 반란을 일으켰던 여성 영웅이라고 한다. 패멀라 베리는 프랑스의 문화 산실이 되었던 살롱 문화를 영국에 정착시키려 했던 여성인데, 영국에서는 살롱 문화는 정착되지 않고 대신 파티라 열렸다고 한다. 이들의 파티는 예술가 들이 주로 참여했던 프랑스 살롱과는 달리 정치인들이 참여했기 때문에 정계에 직접 나설 수 없는 여성이 정치에 관여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고 한다. 이밖에도 역대 잉글랜드 국왕 중 가장 위대하다고 평가받을 만한 헨리 5세, <유토피아>를 쓴 토머스 모어, 에드워드 4세 사후에 여왕으로 추대되었던 제인 그레이, 스코틀랜드의 메리 스튜어트, 엘리자베스 1세, 군인이자 시인이었으며 <세계사>를 쓴 월터 롤리경이 소개되었다. 또, 영국의 역사가이자 비평가인 토마스 칼라일의 아내로서 남편에게 1000통이 넘는 불평의 편지를 보냈지만 남편의 작품에는 헌사를 아끼지 않은 제인 웰시 칼라일의 얘기도 들려준다. 그녀의 편지들은 작품으로 나와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이들은 내게는 그다지 세계적인 영웅 같지 않은데 저자는 이들을 영웅이라 소개하고 있다,
이밖에도 우리가 익히 알고는 있지만 영웅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인물들이 소개돼 있다. 철학자인 비트겐슈타인, 미국의 여류시인 에밀리 디킨슨, 미국의 영화배우 겸 희곡작가인 메이 웨스트, 배우인 매릴린 먼로가 소개되어 있다. 그리고 최근의 인물로는 레이건 미국 대통령, 대처 영국 총리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냉전체제를 종식시킨 영웅으로 설명돼 있다.
영웅이라고는 내가 전혀 예상지 못한 인물들도 많았지만, 저자들이 이 사람들을 영웅으로 꼽았던 기준은 자신을 굳게 믿고 결코 신념을 흔들리지 않았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람마다 생각하는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면을 부각시켜 보느냐에 따라 영웅으로 평가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소신대로 삶을 살았다는 것을 위대한 평가를 받아 마땅하다. 그런 점에서 그들이 결코 영웅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내가 조금은 미안해지기까지 한다. 아무튼 다른 사람들의 생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은 재미있기도 하지만 숙연해지게 된다.
이 책은 폴 존슨이 <창조자들>과 <지식인들>이라는 작품들에 이어 쓴 3부작의 완결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저자는 전작에서는 인간의 창조성과 위선을 보여주기 위해서 애썼고, 이 책에서는 신념을 굽히지 않았던 사람들만이 세계를 바꿀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해주려고 했다고 한다. 그의 의도가 무엇이었든지 간에 다른 사람의 삶의 얘기를 듣는 것은 내 인생을 알차게 하고 나를 성숙되게 하는 자양분이 되는 것 같다. 즐겁고 유익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