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 함께 읽는 화가 피카소의 작은 이야기
휘나 두란 지음, 필라린 바예스 그림, 김광익 옮김 / 창조문화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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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인데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세계적인 화가였던 피카소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왜 이 대 화가에 대해 자세히 알아볼 생각을 못 했나 모르겠다.

  피카소는 1881년 스페인의 말라카에서 태어나 1973년 남프랑스 작은 마을에서 사망할 때까지 굉장히 많은 작품을 남긴 다작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알고 있는 그의 작품으로는 <게르니카><아비뇽의 처녀들>과 우리나라의 6.25전쟁을 주제로 한 <한국에서의 학살>이 전부였다. 그래서 쉽게 그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이 책을 보았다.

  이 책에서는 그의 일생과 그가 천부적인 미술 재능을 타고났다는 이야기며 친구의 죽음에서 시작된 그의 화풍인 청색시대와 연애할 때의 행복한 감정을 표현했던 장밋빛 시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또한 그는 스페인 전통의 이베리아 예술과 흑인 예술 그리고 입체파의 선구자의 세잔의 작품에서 받은 영감을 혼합한 독특한 자기만의 양식을 표현했다. 또한 그는 <게르니카>나 <한국에서의 학살>처럼 전쟁에 대한 반감을 예술로 표현하는 활동도 했고, 작품에 콜라주 기법도 적용했으며 도자기를 빚기도 했다. 이처럼 피카소는 다양한 미술 영역에 도전한 화가였다.

  피카소는 타고난 재능을 아낌없이 발휘하며 많은 작품을 냈으며, 생전에 대중으로부터 인정을 받은 복이 많은 화가다. 아마 그의 이런 행복에 질투가 나서 피카소라는 화가에게 그다지 흥미가 끌리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그는 20세기 최고의 화가이다. 그런 만큼 이 책을 본 것을 계기로 피카소에 대해 자세히 알아봐야겠다. 안타깝게도 이 책에는 피카소의 진품 사진 한 장 들어 있다. 어린이 그림책이긴 하지만 몇 컷이라도 그의 대표작을 수록해서 보여줬으면 좋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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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의 시끌벅적 하룻밤 시공주니어 문고 1단계 37
힐러리 매케이 지음, 지혜연 옮김, 샘 헌 그림 / 시공주니어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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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 시기를 거쳐 어른이 되었지만 알다가도 모를 것이 아이들 마음이다. 티격태격 싸우다가도 금방 마주앉아서 시시덕거리며 웃고 놀기 때문이다. 이 책의 찰리와 헨리처럼.

  찰리와 헨리는 단짝 친구다. 그렇지만 늘 싸운다. 찰리는 헨리를 넘어뜨려 다치게 하고 또 헨리는 찰리의 코를 때려 코피가 나게 한다. 그래서 두 아이의 엄마와 선생님은 이 둘을 무조건 떼어 놓으려고 한다. 하지만 둘은 언제 싸웠냐는 듯 절친한 사이로 돌아간다. 심지어는 금방 싸워놓고도 싸운 적이 없다고 우긴다. 찰리는 헨리가 넘어뜨려 주기를 좋아해서 그렇게 해주었을 뿐이라고 하고, 또 헨리는 찰리가 코피 나게 해주는 것을 좋아한다고까지 말한다.

  이렇듯 둘은 남들이 보면 싸우는 것 같지만 사실은 즐겁고 행복하게 노는 것이다. 어른들은 이해하지 못할 우정이다. 아무튼 이 별난 두 아이가 찰리의 형 맥스가 친구 집에 잠옷파티 차 가는 것을 기회로 찰리 집에서 자기로 한다.

  어른들은 이 말썽꾸러기들이 또 어떤 사고를 저지를지 두려워서 처음에는 이 둘의 잠옷파티를 허락하지 않는다. 하지만 결국 이 둘은 바라는 대로 함께 밤을 보낼 수 있게 되고 그야말로 환상적인 하룻밤을 보낸다. 결국 사고를 친다.

   굉장한 말썽꾸러기들이다. 하지만 미운 정 고운 정 다 든 진정한 친구다. 이런 친구가 있다면 행복할 것 같다. 상대의 마음에 상처를 줄까봐 말을 가려하고 행동을 조심하거나 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친구, 아주 편하고 좋을 것이다.

  아이들은 싸우면서 큰다는 말이 떠오른다. 찰리와 헨리, 쑥쑥 잘 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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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간 사자 웅진 세계그림책 107
미셸 누드슨 지음, 홍연미 옮김, 케빈 호크스 그림 / 웅진주니어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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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다니는 도서관에서 이런 사자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부럽다. 아마 그렇게 된다면 굉장한 뉴스가 되겠지...

  아무튼 도서관에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도서관 예절 때문에 답답할 때가 있다. 특히 어린이 도서실은 아이들의 특성상 완전 정숙을 기하기가 어려운데 지나치게 정숙만을 강조하는 경우가 있어 아이들이 따분해 할 때도 있다.

  이 책에 나오는 사자는 아마도 도서관이 뭐 하는 곳인 줄은 조금은 알고 온 것 같다. 이 사자를 보고 대출창구의 맥비 씨는 허겁지겁 관장에게 달려가 사자가 도서관에 들어왔다고 이르지만, 관장은 사자가 들어왔다는 사실보다는 사자가 규칙을 어겼는지만 묻는다. 그렇지 않다고 하자 사자가 자유롭게 도서관에 다닐 수 있게 된다.

  조용히 하는 것이 도서관의 규칙이라는 것을 알게 된 사자는 규칙을 지킬 뿐 아니라 관장의 일도 도와주고 도서관에 책을 보러 온 아이들도 도와준다. 그러나 관장이 팔을 다치는 것을 보고는 급하게 뛰어가서 맥비 씨에게 보고한다. 맥비 씨가 규칙을 어겼다고 하자 사자를 도서관을 나가서는 오지 않는다.

  융통성 없는 규칙이 문제이다. 앞뒤 상황 따져보지 않고 보이는 것에만 적용되는 규칙말이다. 이런 규칙 준수의 문제 때문에 빚어지는 문제들이 얼마나 많은가? 수많은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다. 반드시 원칙을 고수해야 하는 일도 있지만, 때에 맞는 융통성으로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일이라면 가끔은 규칙 위반을 눈감아줘도 좋으리라.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어른들의 세계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아이들 눈에 이런 융통성은 좋지 않게 보일 수도 있으리라. 이랬다저랬다 줏대 없이 보일 수도 있고 적당주의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규칙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다. 언제든 당당하려면 규칙을 준수해야 한다. 이 책의 사자처럼. 인간 세상에 온 사자이니만큼 아무리 밀림의 왕이라고 해도 인간이 정한 규칙을 따라한다. 본받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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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동새 누이 네버랜드 우리 옛이야기 23
이광익 그림, 박윤규 글 / 시공주니어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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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옛이야기 중에는 원한 때문에 죽게 되어 꽃이나 새로 환생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다. 아마도 이는 꽃이나 새의 이름을 짓다가 그들의 생김새나 우는 소리를 듣고 상상력이 발동돼 생겨난 일인 것 같다. 또한 억울하게 죽은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꽃이나 새로 다시 살아나서 세상을 누려보라는 의미이기도 한 것 같다.

  이 책의 접동새도 마찬가지다. 계모 때문에 억울한 죽음을 당한 구형제의 막내 누이동생이 접동새(소쩍새)가 된다는 이야기다. 이 누이동생의 아홉 오빠들도 계모 때문에 죽을 운명에 놓이지만 다행히도 아버지의 도움으로 목숨만은 부지하고 한양으로 도망친다. 이들은 한양에서 열심히 공부를 해서 과거에 급제해 고향에 내려가서 여동생을 구하려 하지만 여동생은 이미 죽어 새로 환생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두 가지 형태로 전한다고 한다. 하나는 계모의 구박으로 집을 떠난 오빠들이 입신양명하여 돌아와 계모를 없애 억울하게 죽어 접동새가 된 누이의 원수를 갚는 것이고, 또 하나는 계모의 모함으로 접동새가 된 누이가 남겨진 어린 동생이 그리워 밤마다 서럽게 울며 다닌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이 둘이 접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책에는 두 가지 주제가 숨어 있다고 한다. 남아선호사상에 대한 비판과 자녀의 부모와의 분리가 자녀가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다. 나는 아직 전래동화에 숨어 있는 이런 깊은 뜻까지는 찾아낼 수는 없어 책 뒤 설명에서 힌트를 얻었다.

  이 이야기에서는 전실 자식들을 향한 계모의 잔인성을 보여주는데, 계모가 이렇게 변한 것은 아홉 딸을 낳은 뒤라고 한다. 그래서 어떤 이야기에서는 ‘아들을 낳지 못하여’라는 표현을 사용했다고 한다. 여기에 비춰 볼 때 계모는 ‘남아선호사상’이라는 그릇된 가치관 때문에 만들어진 괴물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시대와 환경이 사람을 망치게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또한 자식들은 어머니와의 분리를 통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아홉 형제가 집에서 쫓겨난 뒤 열심히 노력해서 과거에 급제할 수 있듯이, 스스로 자기 삶을 개척할 수 있는 상황에 놓인 자만이 적극적인 삶의 자세를 가질 수 있다는 얘기다. 우리 부모들이 명심해야 할 부분이다. 그냥 재미있는 옛이야기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이런 깊은 뜻도 숨어 있다니 우리 옛이야기가 위대해 보인다.

  처음 이 이야기를 접했을 때에는 계모에 대한 편견만 키워주는 것이 아닐까 우려했는데, 그런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보다 사회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글이었음을 알게 되어서 다행이다. 앞으로는 옛이야기를 볼 때 행간을 보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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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알고 있지 보림 창작 그림책
정하섭 글, 한성옥 그림 / 보림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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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금증을 자아내는 제목이다. 도대체 나무가 무엇을 알고 있다는 이야기일까? 나무는 뇌도 없는데 무엇을 알 수 있을까. 재미있는 이야기일 것 같다.

 나무는 보지도 듣지도 냄새 맡지도 못하고 죽을 때까지 잠자코 그 자리에 서있지만 나무는 누구보다도 계절의 변화도 먼저 알고 싹이 나고 꽃이 피는 법도 안다. 그러고 보니 정말 그렇다. 그리고 동물처럼 움직이지 않고도 먹이를 만들어 살 수 있으며 햇빛을 고루 받기 위해 잎을 겹쳐지지 않게 하는 지혜도 있다. 또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고 잎을 키워 양분을 얻을 줄도 알고, 동물과 벌레들과 더불어 사는 법도 안다.

  그리고 나무는 동물들에게 많은 것을 내어 주고 시달리면서도 동물들보다 더 오래 산다. 가시를 내어 자신을 지키는 나무도 있고 냄새나 독을 내는 나무도 있다. 또 나무는 동물들을 이용하기도 고 길들이기도 한다. 게다가 나무는 자기가 피운 꽃이 아름다운지 보지도 못하고 냄새도 못 맡지만 어떤 곤충들이 찾아오고 그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알고 있다.

  와! 정말 대단하다. 이렇게 생각해 보니 나무가 알고 있는 일들이 한둘이 아니다. 나무는 움직이지 않아도 아주 많은 것들을 알고 있으며 지혜롭기까지 하다. 이밖에도 나무가 알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더 많이 설명돼 있다.

  마치 나무에 대한 다큐멘터리 같은 그림과 이야기다. 그리고 나무의 소중함과 위대함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나무는 사람이나 동물과 달리 나무답게 살아. 이 세상에 나무가 있어서 우리가 나무와 같이 살 수 있어서 참 다행이야’고 하는 마지막 글귀가 인상적이다.

  ‘답게’ 산다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사람이 사람답게 산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나무의 생태에 관한 자연 그림책이었지만 동시에 인간은 인간답게 사는지 반성을 촉구하는 철학 그림책 같은 느낌도 풍긴다. 아무튼 나무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이래서 고대 사람들을 나무들을 숭배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점에서는 고대 사람들이 자연의 본질을 꿰뚫어볼 수 있는 훌륭한 눈을 가졌던 것 같다.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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