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삶을 다시 한번
도다 세이지 지음, 조은하 옮김 / 애니북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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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추석 특선 영화로 어제 EBS에서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를 보았습니다. '드니 뵐뇌브'의 최신판 <블레이드 러너 2049>의 개봉을 앞둔 시점이라 참고 할겸 시청했는데요. 개봉 당시에는 성공한 망작이란 이상야릇한 말로 구설수에 올랐고, 시대를 앞서간 영화는 보기 좋게 흥행에 참패합니다.  그러나 꾸준하게 자신의 세계관을 쌓아간 '리들리 스콧' 감독은 현재 <블레이드 러너 2049>의 기획을 맡아 관객에게 돌아왔습니다.

 

 

이렇듯 시대를 앞서간  작품들은 현시점에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채 후에 재평가 받는 경우가 많은데요. 일본 인디 만화의 새로운 물결을 이끈  '도다 세이지'도 비슷한 반향을 만드는 작가임에 틀림없습니다.  《이 삶을 다시 한번》은 2003년 도다 세이지가 홈페이지에 올린 작품을 모아 만든 만화집인데요. 만화라는 장르, 그것도 단편이란 제약에도 불구하고  방대한 인생을 담아낼까라는 약간의 기우가 있었지만. 직유와 언어를 넘나드는 그만의 표현력은 컷과 컷 사이의 프레임 속에서도 강한 임팩트를 갖습니다.

 


까도 까도 계속 속이 나오는 양파. 한 겹이 나이 한 살을 뜻하지만 실체가 없는 그런 것.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는 우리의 인생이 양파와도 닮았으니까요. 결국 실체를 알고 싶어  탐미하고 파고들지만 없어져 버리는 무(無)의 영역에 다다르는 허무.   당신의 인생을 그려보라고 하면 선뜻 떠올리지 쉽지 않다는 것만 봐도 말입니다.


 

책 속의 단편들은 너무나 익숙해져 뜻을 생각해보는 것조차 어색한 '애인'이나 '가족', '인생'이란 단어를 고민하게 합니다.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 것이 아니니 억지로 사랑할 필요가 없지만 이해하고 노력한 결과 조금씩 행복하게 사는 법을 알아가는 가족처럼. 애인 또한 사전에서 단어를 찾아 볼 만큼 익숙한 말 같지만, 서로 다른 의미를 갖는 가변성을 갖는 것처럼 말입니다.


「꽃」은 온실 속의 화초처럼 커온 주인공이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만화가의 어시스턴트로 일하는 과정입니다. 무작정해보고 싶은 일을 위해 회사를 그만두고 스물여덟에 시작한 만화 어시스턴트 일. 일하면서 점점 깨닫는 것은 창작이란 건 사실 마음의 상처를 지닌 사람들의 특권이란 생각이 드는 겁니다.  만화가는 그림을 그려야만 치유되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직업은 아닐까요? 마치 계시를 받은 무당이 신의 선택을 거부해서 아픈 것과 같이 말이죠.

주인공은 본격적으로 손에 놓았던 만화를 그려보고자 하지만, 여전히 부족함 투성이인 자신을 그렇게 타이르고 있었건 거지요. 순탄하게 살아온 사람이 좋은 작품을 쓰는 일은 힘들 거란 말, 본격적인 작가의 평가 대신 주인공은 화분을 받습니다. 그 후 정말 소중하게 돌보지만 어째 꽃을 피울 기미는 보이지 않네요.

 


그러던 중 갑자기 작가는 입원을 하게 되고, 병세가 악화된 작가를 도와 만화를 그리던 주인공은 죽음에 압도되는 삶의 의지 그 이상의 것을 보게 됩니다. 죽음의 그림자가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지를 통해  창작물을 만들어 내는 숭고한 과정. 그림에 목숨 걸고 매달려야 할 이유는 없지만 그냥 원 없이 뭔가를 해보고 싶다는 인간만의 고유 의지는 모두를  숙연하게 만듭니다.


이는 자연의 법칙과 유사합니다. 사실 꽃은 척박한 조건에서 마지막 발악같이 꽃을 피운다는 것을요. 그렇게 작가를 돕느라 신경을 전혀 쓰지 못했던 사이,  꽃은 눈이 시릴 정도로 새빨간 꽃을 피워 놓고 있었습니다. 자손을 남기기 위해 영양분이 고갈된 상태에서 죽어가면서도 피웠던 한 떨기 꽃.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 본능이 아닌 자유의지, 고매한 정신, 지적 유희를 이루기 위해 참고 노력하는 것과 많이 닮았죠.


어떤 책에서 읽었던 격언이 갑자기 생각납니다. '오늘은 어제 죽어간 사람이 그토록 살고 싶어 하던 내일이다'. 이 말을 본 순간 망치로 얻어맞은 듯,  한동안 헤어 나오지 못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삶은 그렇게 누군가에 의해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수치스러운 일이 되기도 하는 거겠죠. 어제 죽어간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허투루 살 수 없는 게 인생임을 또 한번 알아갑니다.

《이 삶을 다시 한번》에 담긴 서른 편의 단편은  도다 세이지의 가능성을 충분히 발휘하는 작품입니다. 이대로 괜찮은 걸까? 나는 누구인가? 가족, 결혼, 연인, 이혼, 친구, 삶, 죽음 등 궁금한 것 투성이인 삶을 총망라한 집약체입니다. 긴 연휴는 우리의 삶을 점검해보고 사색하기 좋은 날입니다. 세상이 바라는 방향으로 가고 있지 않다고 해도 당신의 인생은 그것 자체로 소중한 것입니다. 소중한 사람과 함께 혹은 오롯이 홀로 인생을 반추해보는 시간을 가져 보는 건 어떨까요?

《이 삶을 다시 한번》는 《몇 번이라도 좋다. 이 지독한 삶이여, 다시》를 새롭게 번역하여 재출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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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어
공지영 지음 / 해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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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런 내용이었군요. 1994년에 발표한 공지영 작가의 《고등어》를 지금에서야 새로운 표지로 읽어 보았습니다. 늘상 제목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지만 다른 작품은 읽어봤으면서  《고등어》만은 접하지 못했던 이유가 뭔지 모르겠어요. 아무래도 제목이 주는 비릿함과 각자만의 이미지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제게 고등어는 이제 밥 상위의 생선이 아닌, 자신의 운명도 모르고 열심히 무엇인가를 해왔던 바보 같은 지난날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될 것 같습니다.




"난 어쩌면...... 정말 유토피아를 꿈꾸었던 건지도 몰라. 이  세상에 없기 때문에 이름이 유토피아라지? 이 세상에서 우리가 상상했던 모든 좋은 세계에 대한 상상을 사회주의 속에 다 가져다 부어놓고, 그것이 단지 꿈으로 끝날 수도 있다는 상상은 해보지도 않았어. 다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었어, 굳게 믿었지 그리고 아직도...... 아직도..... 그 미망에...... 사로잡혀 있으니까. "

P216



《고등어》는 명우라는 남자와 세 여자의 실타래처럼 얽힌 인연을 하나하나씩 풀어 놓는 사랑 이야기의 외피를 입고 있습니다. 겉은 그렇지만 외피를 조심히 벗기고 안을 들여다보면 노동과 권력에 저항한 투쟁의 흔적을  간직한  속살이 나오죠. 그렇게 80년대 사회와 정치, 역사. 그리고 낮은 곳을 위해 소위 운동권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갔던 사람들이 만든 세상에서 천대받고, 아파하고, 잊히며 가장자리 귀퉁이로 내몰린 사연을 조심스럽게 풀어내고 있습니다.



동지란 이름으로 그룹에 들어온 남편 있는 여자 노은림. 설마 하는 우려는 명우와의 불꽃 튀는 사랑을 만들어 냈고, 치기어린 사랑이라 여겼던 명우는 같이 떠나자고 해놓고 돌연 약속을 어겨버립니다. 참 무책임한 남자의 표상입니다.


그 후로 은림의 삶은 걷잡을 수 없이 나락으로 추락해버려요. 현재 결핵을 앓고 있고 아버지와 오빠와 남편을, 그리고 그의 아이까지 잃어버린 다시는 회복될 수 없는 것들을 빼앗긴 사람입니다. 그녀와의 사랑을 꿈꿨던 명우는 연숙과 도망치듯 결혼했고, 딸 명지를 가진지도 모른 채 이혼했죠. 그리고 현재는 여동생 명희의 친구인 여경과 사랑하고 있습니다.


누가 보면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복받은 남자 아닌가요? 옛 애인과 옛 아내와 현 애인이 그리고 딸이 한자리에 모인 장면은 생각만으로도 숨이 막혀오고 당장이라도 누군가 소리를 지른다고 해도 이상할게 없었습니다. 명우는 대학시절 은림과 연숙과  운동권으로 활동했고, 한때 문학상도 받았던 버라이어티한 삶을 살았습니다. 지금은 살기 위해 그 능력을 다른 곳에 써버리는 사람이 되어버리죠. 자본주의 사회에서  잘 살아남은 사람들의 삶을 멋지게 꾸며 써주고  있는 자본주의의 시녀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들은 생각할 거야. 시장의 좌판에 누워서 나는 어쩌다 푸른 바다를 떠나서 이렇게 소금에 절여져 있을까 하고. 하지만 석쇠에 구워질 때쯤 그들은 생각할지도 모르지. 나는 왜 한때 그 바닷속을, 대체 뭐 하러 그렇게 힘들게 헤엄쳐 다녔을까 하고. "

P256


여기서 말하는 '고등어'는 이들을 상징합니다. 바닷속에서 무리를 지어 다니며 은빛 비늘을 무수히 반짝거리리던  살아 있는 고등어 떼. 짙은 초록의 등을 가진 은빛 고기 떼.  자유롭게 물속을 오가는 자유의 떼들,  탱탱한 생명체들은 서울의 어느 좌판에서 소금에 절여 배가 갈라지고 오장 육부가 뽑혀 나가고. 이렇게 허무하게 죽어갈 줄은 몰랐던 거겠죠.


누구는 미쳐가거나, 죽어가거나, 감옥에 가 있거나, 사회에 순응합니다. 거시적인 관점에서는 사랑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미시적인 관점으로 보자면 사회의 냉대에 저항하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시든 80년대 운동권의 상징이 고등어입니다.


80년대 대학생이었던 그들은 대체 무엇을 위해 그토록 모든 것을 쏟아부어 투쟁했을까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뿌리내린 2017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는 당시의 그들 마음을 다 헤아리지 못합니다. 공지영이 심어 놓은 '노은림'이란 캐릭터는 그 중심에선  대표적인  희생자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희생자를 양산해야 하는 걸까요? 그리고는 쓸모없이 버려지는 수많은 사람들. 신뢰를 잃은 사회를 지금에서야 다시 생각 해 봅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료로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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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개와 같은 말
임현 지음 / 현대문학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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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제8회 젊은 작가 상 대상을 수상하며 가장 주목할만한 신인 작가 '임현'의 소설집이 발간되었습니다.  《그 개와 같은 말》이란 거친 제목은 상처투성이인 대한민국의 자화상을 들여다보는 것만 같아 두렵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란 말이 자동으로 떠오르는 노란 리본. 금방 끓어올랐다 금방 사그라드는 대한민국의 냄비 근성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을 잊은 채로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화상 같았습니다.


사느라 바빠 잊고 지낸 기억을 상기 시킨 작가는 자전적인 이야기처럼 10개의 단편 소설을 모아 소설집을 출간합니다.


그중 동명의 단편 시작은 잠깐 머물다가 간 걸지도 모를 앞 마당의 동사한 개를 기억하는 것을 계기로 삼습니다. 외풍이 심하던 집 마당이라 부르는 실제는 공터였을 곳에서 키우던 개. 이름도 품종도 기억나지 않는 개를 기억하는 건. 그 해 추웠던 겨울 얼어 죽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그 개를 하천을 향해 던져버립니다. 철교 아래로 개들 무리가 무언가를 뜯어 먹을 때마다 내 마음은 불편해집니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난 뒤 나는 세주와 크게 싸우게 된다. 하루가 지나기 전에 화해하고 일주일이 되기 전에 같은 이유로 언성을 높인 뒤 연락하지 않았다. 지금에 와서야 드는 생각이지만, 우리는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원했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 아니라면 나는 어떤 말로든 세주를 위로했어야 했는데 그때마다 내가 떠올린 것은 겨울에 죽은 그 개뿐이었다. "

P173

 

이야기는 그 '개'가 있었는지에 대한 기억을 더듬으며, 옛 애인 연경과 현 애인 세주를 떠올리는 것으로 대체됩니다. 개의 이야기는 그녀들을 회상하는 매개체 같은 존재이기 때문인데요. '개 같은'이란 말이 붙는 언어는 그 자체로 불쾌감과, 부정적인 의미를 풍깁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말을 생각 없이 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세주가 이야기하는 언어폭력은 소설집에 실린 소설들을 관통하는 주제의식이란 생각도 듭니다.

 

사실 소설이 좀 어렵습니다. 시를 소설로 옮긴 듯 압축적이고 은유적인 문장은 한번 읽어 의미를 유추하기가 어렵더군요. 그래서 몇 번이도 들춰보고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그때마다 새롭게 보이더군요. 마치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씁쓸한 맛 끝에 아릿한 단맛이 깃든 약초처럼요. 하지만 매우 고무적인 일입니다. 젊은 작가의 기근에 시달리는 한국 문단에 신선함을 줄 작가가 또 하나 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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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마음에 고요가 머물기를
마크 네포 지음, 박윤정 옮김 / 흐름출판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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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도 수십 번씩 일렁이는 내 마음의 파도. 스트레스받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기란 현대인에게는 불가능한 일이 돼버린지 오래입니다.  이런 불평은 '마크 네포'의 책 《그대의 마음에 고요가 머물기를》를 읽은 후 서서히 사그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암 투명으로 서서히 일어가던 청력의 고통을 글로 써 내려간 전작 《고요함이 들여주는 것들》이 깨달음을 통해 감동을 전하는 방식이었다면 이번 책은 더 깊은 들음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자 하는 저자의 의미를 담았습니다.


 

마치 한 편의 시를 읽어 내려가는 듯한 산문은 깊어가는 가을을 재촉합니다. 시인이자 철학자인 탓에 삶의 농밀하고 세밀한 표현이 쉽게 이해 가는 것은 아니지만. 한 번 읽고 두 번째 읽었을 때 느껴지는 새로운 의미는 바쁜 삶 속에서도 느리게 사색하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고요의 지점을 만났을 때 우리는 존재의 맨 모습 속으로 들어선다. 그리고 이런 경험은 모든 존재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하나의 살아 있는 감각과 우리가 태어나면서 맺고 있던 관계를 새롭게 만들어 준다. "

P218



 

소통의 부재 속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소중한 것을 잃음으로써 알게되는 가치와 직면합니다. 암 투병을 이겨내고 삶을 계속해서 얻었지만 청력의 상실은 저자에게 절망이자 새로운 앎으로 다가옵니다. 청력을 잃어갈 수록 자연, 주변, 지인의 소리에 더 깊게 듣고자 하는 습관이 생겼으니까요. 삶은 더 깊게 듣고자 할 때 열린 마음으로 곁을 내주는 법입니다.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보는 방법은  나와 하는 대화는 삶을 더욱 풍요롭게 돕습니다. 의문이 많아질수록 찾아야 하는 답, 가야 할 길이 많이지는 것이겠죠. 그때마다 고요한 소리는 당신에게 화살표가 되어 줄 것입니다.


평소 타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들으려고 하고, 어려운 곳에 있는 사람들 외침을 들어보려고 노력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나 먹고살기도 바쁜데, 누굴 신경 써'라면 내 코가 석자라고 지나쳐 버리기 일 쑤죠. 하지만  금세 입장은 바뀌기 마련이고  뒤 바뀐 삶을 살아보니 절실하게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을 때가 많아지더라고요. 나이가 하나씩 먹어 갈수록, 바쁘게 살아가면 그럴수록 주변의 소리를 놓치는 게 인생인 것 같습니다.


"내가 아는 것은 전체를 들을 때와 부분에 귀 기울일 때, 삼라만상의 결합 방식에 귀  기울일 때, 우리의 가면 밑에 살아 있는 것들을 들을 수 있게 모든 것을 차단해야 할 때가 있다는 것뿐이다. 또 조용한 곳에 있을 때와 도심의 거리에 있을 때, 동이 트기를 갈망할 때와 일몰을 그리워할 때 들리는 것이 다르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과 우리가 발견한 것에 귀 기울이는 방식도 각기 다르다. "

P 205

그때마다 잠시만 멈추어 볼까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불가마 같던 더위가 가고 청명한 가을이 찾아왔습니다. 깊어가는 자연의 변화, 낙엽 밟는 소리, 귀뚜라미 우는소리를 조용히 들어보는 일. 분명 쉽지 않을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소음과 소리를 침묵시키는 자신과의 대화! 앞으로 당신을 지탱해주는 방법이 될지 또 누가 압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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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콜스 - 영화 [몬스터콜] 원작소설
패트릭 네스 지음, 홍한별 옮김, 짐 케이 그림 / 웅진주니어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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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기 위해서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영화의 감동을 이어가고 싶어 《몬스터 콜스》를 읽었는데요. 아직도 영화와 소설의 엔딩을 떠올리면 눈물부터 왈칵 쏟아져요. 진실을 알고 있지만 입 밖에 차마 꺼낼 수 없는 말, 진신의 이면을 극복하고 치유하고 싶은 상처가 있다면 오늘 당장 내면의 몬스터를 꺼내 보세요. 내가 아니라고 부인하던 흉한 모습의 몬스터도  내가 아껴주어야 할 우리의 또 다른 모습일지도 모르니까요.


올해 단 하나의 작품을 꼽자면 단연 《몬스터 콜스》라고 해도 좋을 것 같아요. 영화와 원작 모두 독립 작품으로 훌륭해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원작 《몬스터 콜스》는 2011년 영국 도서관 협회에서 시상하는 '카네기상'과 그해 가장 우수한 일러스트레이션에게 주는 '케이트그리너웨이상'을 동시에 수상한 이력이 있습니다. 평론가들과 작가, 편집자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도서입니다.

한가지 독특한 이력이 더 있어요. 원안자 '시본 도우드'가 전체적인 구상을 했지만 사망합니다. 이후 '페트릭 네스'에 의해 쓰인 소설로 죽은 사람의 아이디어를 이어받아 완성한 독특한 소설이죠. '페트릭 네스'는 감독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감독과 함께 후반부 시나리오 작업을 함께 하기도 했습니다.

 

 

​《몬스터 콜스》는 아픈 엄마와 엄격한 외할머니 사이에서 커지는 반항심,  부모님의 이혼, 무엇보다 학교 폭력에 노출된 상처받은 아이 코너를 주인공으로 합니다. 아직 어리지만 언젠간 떠날 거라는 엄마의 상황을 인지하고 있는 철든 아이기도 하죠. 그런 엄마를 간절히 구하고 싶기도 하지만 동시에 힘든 모든 상황이 어서 빨리 끝나기만을 바라는 모순된 마음이 충돌하는 우리 모두를 대변하는 캐릭터입니다.

 

분명 소설은  아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어른인 누구에게도 적용되는 이야기일겁니다. 진실을 외면하고 싶은 상황 속에서 갈등하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몬스터를 통해 전해 듣습니다. 몬스터는 12시 7분이 되면 코너를 찾아와 세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합니다. 처음에 코너는 듣고 싶지 않아 외면하는데 결국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이야기를 듣게 되죠.

 

"어떻게 둘 다 진실일 수가 있어?"

"사람은 복잡한 짐승이니까"


 

살인자이면서도 태평성대를 이룬 군주가 된 왕자, 마녀지만 실제로는 좋은 마음을 가졌던 왕비, 유능하지만 목사를 돕지 않은 이기적인 약제사, 신앙을 갖고 영리를 취한 장사꾼 목사, 그리고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의 두려움을 알게 해준 투명인간의 이야기를 통해,   삶은 선악을 구분할 수 없는 복합성을 띠고 있음을 드러냅니다. 세 가지 이야기는 엄마 없이 살아갈 코너가 겪게 된 세상의 이치이며, 엄마가 해주고 싶었던 이야기이자, 코너가 겪고 있는 상황을 우화로 표현한 것입니다.

 


 

"네가 무슨 생각을 하든 그건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네 마음은 하루에도 수백 번 모순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너는 엄마가 떠나길 바랐고 동시에 엄마를 간절히 구하고 싶었다. 너는 거짓말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고통스러운 진실을 알면서도 마음을 달래 주는 거짓말을 믿은 것이다. 그리고 네 마음은 두 가지를 다 믿는 것에 대해 너를 벌주는 것이다."

P254


 

할머니는 괴팍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코너를 사랑했던 왕비를 닮았고, 언행불일치의 목사와 약제사는 엄마가 떠나길 바랐고 동시에 엄마를 간절히 구하고 싶은 코너의 모순된 속마음이죠. 마지막으로 세상에서 잊히기를 거부하는 코너의 마음은 투명인간을 통해 전달됩니다.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존재가 무엇보다도 싫었던 코너. 이런 마음은 동급생 해리를 구타하면서 폭발하고, 퇴학당할 위기에 직면하죠. 하지만 일전에 할머니 집의 가구를 엉망으로 만든 일처럼 어른들은 벌을 내리기는커녕,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니?'라며 넘겨버립니다. 보이지 않는 존재, 무관심이 코너에게는 더 힘든 일이 됩니다.  그래서 더 발악했지만 이제는 사람들에게서 오히려 더 멀어지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삶은 말로 쓰는게 아니다. 삶은 행동으로 쓰는거다. 네가 무얼 생각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오직 네가 무엇을 하느냐게 중요하다. "

P254

결국 몬스터는 코너가 불러낸 자아의 모습입니다.  진실을 차마 입밖에 꺼내지 못해 발만 동동구르는 상황을 몬스터에 이입해 행동하고 말해보는 대리행위인 거죠. 이로써 상처를 치유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겪게 되는데요. 세 이야기를 통해 극복하는 코너를 모습은 소설의 가장 큰 메시지이자  어른에게도 공감되는 따스한 위로입니다.

"탐욕스럽고 무례하고 까칠하긴 했지만 어쨌든 병을 고치는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목사는 뭐였나? 아무것도 아니었다. 치료의 절반은 믿음이다. 치료 약에 대한 믿음, 앞으로 올 미래에 대한 믿음. 그런데 믿음에 기대어 사는 사람이 역경을 맞닥뜨리자마자, 믿음이 가장 절실히 필요할 때 그걸 저버렸다. 목사의 믿음은 이기적이고 비겁했다. 그래서 딸들이 목숨을 잃고 만 것이다. "

P148​


코너에게 더 이상 사랑하는 엄마는 없지만 연결고리를 가지는 외할머니가 있습니다. 세상은 이렇듯 단순하지 않으며 앞으로 순탄치 않은 역경이 매번 일어나는 우연의 집합체죠. 하지만 어떤 상황이라도 굳은 믿음이 존재할 때  우리의 삶은 단단해지고 살아갈 의미를 갖는다는 이치를  소설을 통해 배웠습니다.


 

영화 <몬스터 콜> 과 원작의 이야기

 

 

영화 <몬스터 콜>은 아카데미 노미네이트에 빛나는 리암 니슨, 시고니 위버, 페리시티 존스 배우들의 라인업과 '코너'역의  루이스 맥더겔이 열연해 빛나는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특히 코너 역의 '루이스 맥더겔'의 큰 눈망울과 호소력 짙은 연기기는 관객의 마음을 울리는 진정성으로 다가오죠.  

 

 

원작자가 직접 각본을 맡았기 때문일까요? 원작의 느낌을 잘 살리면서도 영화의 매력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책 속에 밑줄 긋고 싶은 대사들도 영화와 비슷하고요. 몬스터가 들려주는 세 이야기를 애니메이션 처리 한 부분도 좋았습니다.

그래도 원작과 차이점을 찾아보자 합니다.  코너가 해리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계기는 아픈 엄마 때문인데요. 어릴 때부터 엄마끼리 친구였던 동급생  '릴리'가 코너 엄마의 소식을 학교에 퍼트리면서 시작됩니다. 이 일로 둘 사이는 멀어지게 되는데요.  후에 릴리의 진심을 알고 둘은 화해합니다. 영화에서는 릴리가 등장하지 않아요.


코너를 괴롭히는 해리는 우등생입니다. 코너와 폭력 사건이 일어나 해리의 부모님은 분노하지만 급우를 괴롭혔다는 기록이 남는 것을 우려해 선처하죠. 해리는 사실 진정한 악인도 선인도 아니며, 그냥 보통 사람인 것입니다. 앞에서 이야기 해온 것처럼 세상에는 이분법적으로 나뉜 사람보다는 여러 형태가 섞인 모순된 인간이 훨씬 많으니까요.  

 

원작 소설과의 차이점 중에 가장 두르러지는 것은 엔딩! 코너의 방을 그대로 꾸며 놓은 장면은 각색된 경우입니다. 마음이 참 따스해지고 뭉클해지는 장면이었습니다. 영화에서는 코너가 그림에 재능 있는 아이로 나오는데, 예술가를 꿈꿨지만 코너를 가지고 꿈을 포기한 엄마의 재능을 물려받은 것 같습니다.

 

연출을 맡은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감독은 <임파서블>, <오퍼나지 : 비밀의 계단>을 만들며 성장영화의 틀을 쌓았고,  <판의 미로> 제작진이 참여해 다중성과 작품성, 비주얼을 갖춘 완벽한 판타지 영화를 선물합니다. 정말 선물이란 말은 이럴 때 써야 하는 것 같아요. 저에겐 선물 같은 위로의 영화와 소설이었습니다. 다시 곱씹어 봐도 뭉클해지는 잊지 못할 스토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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