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향인 - 세상 밖에서 세상의 중심이 되는 사람들
라미 카민스키 지음, 최지숙 옮김 / 21세기북스 / 202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전히 유행인 MBTI에 속하지 않는 유형인 이향인. 오트로버트라는 새로운 유형을 추가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생겨버린 이 종족의 성향은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후반부 이향인 테스트에서 224점이 나오며 대문자 이향인임이 판명되었다. (저자는 188점 이상이 이향인이라 했음) 주변에서 MBTI를 물을 때면 I 성향의 내향인이지만 늘 '사회화된 내향인'이라며 덧붙였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이 필요한 게 결코 유별난 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이 책은 이향인 임상심리학자가 쓴 책으로  철저히 이향인을 위한 이야기다. 유별나다, 예민하다, 지랄맞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란 나로서는 위안이 되었던 이야기다. 지나고 보니 진단 생활과 맞지 않았던 거였다. 혼자, 묵묵히, 꾸준히 무언가를 하는 일을 좋아하고 여러 사람의 협력이나 집단 활동이 피곤했다. 사람 많은 곳이나 회식 자리가 피곤하다. 군중 속에 섞여 있는 게 좋지, 주목받거나 드러나는 건 원치 않았다. 어딘가에 소속되기 보다 조금 벌지언정 자유로운 프리랜서를 택한 게 우연은 아니겠다. 소속되기 보다 밖에서 필요할 때 거드는 외부인이 편하다. 


유행에 휩쓸리지 않는다. 모두가 유행하는 두쫀쿠를 먹거나 주식을 할 때 하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주로 했다. 즉 군집적 사고를 거부하는 것이다. <군체>의 서영철이 이끄는 좀비처럼 행동하지 않는다. 모두가 옳다고 말할 때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예의 바르게 행동하지만 규칙을 인정하지 않는다. 기존 틀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온순한 저항가다. 아는 사람은 적당히 있지만 마음을 나누는 사람을 몇몇 사람으로 한정되어 있다. 한 사람을 깊게 오래 사귀는 스타일이며 마음이 떠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관계를 끊어 버린다. 


곧잘 리더 역할도 했었다. 장녀였고 학급의 반장, 부반장 같은 리더 역할도 종종 맡았다. 그러나 혼자 있을 때가 편했고 혼자 만의 시간이 절실했다. 최근에는 반년 이상 혼자 있을 시간이 없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혼자인 게 좋다. 사람이 싫고 좋고를 떠나 혼자 무언가를 하고 정리하고 부산 떨지 않는 게 좋더라. 이런 나를 두고 '사회성이 부족하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개의치 않는다. 이 책을 읽고 나와 비슷한 사람이 많다는 동질감을 얻었으니까. 혼자인 것은 외로움과 슬픔이 아닌 고독이고, 고독은 스스로 택한 정서적 자립이다. 


아무쪼록 외향인도 내향인도 아닌 유형을 모아 규정해 준 상황이 흥미롭다. 무리 안에 속하려 애쓰지 않아도 되는 나이가 되니 편해졌지만, 단체 생활을 해야만 했던 초중고대학생 때까지는 힘들어도 호소할 곳이 없었다. 직장 생활도 마찬가지였다. 작은 회사였지만 편가르는 문화에 피곤했다. 다행이다. 지난 15년간 내 의지치로 살아갈 수 있었으니 말이다. 앞으로도 이 생활에 큰 변화는 없을 것 같다. 적당히 벌고 부족함 없이 먹고 낭비하지 않고 무분별한 소비하지 않는 삶을 이어가고 싶을 때 꾸준히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안토니 가우디, 삶과 일
아르만드 푸치 지음, 송병선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동안 한국에는 안토니 가우디의 삶을 제대로 다룬 책이 없었다고 한다. 저자 아르만드 푸치 신부는 안토니 가우디의 연구자이자 성서학자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장식을 신학적으로 해석한 대표적 학자다. 따라서 신학적 해석이 심층적으로 전개된다. 사진보다 글이 많으니, 염두에 두고 읽기 바란다.


총 18개의 탑 중 열두 개는 열두 사도, 네 개의 4대 복음사가 (마테오, 마르코, 루카, 요한) 두 개의 탑은 성모 마리아, 예수에게 헌정 된다고 한다. 특히 종교인으로서의 가우디는 크게 다뤄지지 않아 몰랐다면. 인품, 작품과 업적, 통찰력, 가족사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책이다. 


예술분야에서 자원과 재료를 다양한 형태로 활용하는 점, 그리스와 비잔틴의 요소들, 나아가 프랑스 수학자 몽주의 곡면 이론까지 받아들여 고딕 양식을 완성한 점, 그리고 교회의 전통과 전례에 주의를 기울이면서도 강력한 그리스도교 상징 체계를 발전시킨 점으로 특징지어진다.

p 318


이 책은 1868~1894년, 1894~1911년, 1911~1926년 세 시기로 나눠 그를 평가한다. 작가는 가우디가 모더니즘에 가까운 인물이었지만 르네상스적 인물이며, 카탈루냐의 르네상스인 레내센사 사람이면서도 전 세계인에게 알려진 보편적 건축가의 맥락을 짚는다. 또한 역사적 관점에서의 가우디를 설명한다.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맥락을 고려한 해석이 필요한 인물이라 말한다. 스스로 일기나 글처럼 자신을 소개하고 속마음을 담은 글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올해는 가우디 서거 100주년(1926년 6월 10일 사망)이라고 한다. 사실 "제 의뢰인은 서두르지 않습니다"라는 유명한 말을 했던 만큼 100년 동안 완성되지 않았던 성당의 정당성이 느껴진다. 그는  생전 여러 세대의 건축가들이 있어 완공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돌로 만든 교과서란 개념은 자연과 절대자를 높이면서, 19세기 장인 정신과 21세기 혁신이 만나는 건물임에 틀림없다. 아마 당시에는 가우디의 건축적 공법, 기하학적 설계를 제대로 실현한 재료, 방식, 창의성이 부족했을 것으로 판단한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핵심이 완성되며 144년에 걸친 기다림이 결심을 맞게 되었다. 1882년 시작한 마무리가 얼추 되긴 했지만  사실상 조금 더 보수를 해 2035년까지 계속된다고 한다. 영광의 파사드에 설치될 장식과 조각군을 비롯한 성당 내부가 더 남았다. 


성당 한켠에서 숙식하며 조카딸과 친한 친구를 잃고 홀로 일에만 매진했을 가우디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인생 말기에는 어릴 적부터 관절염을 앓아 성치 않은 몸으로 성당 건축에 매진하며 재산을 처분해 성당에 기증했다. 성당은 국가 주도가 아닌 기부 형태로 진행되었는데 재정이 극도로 어려워지자 자기 보수도 포기했다. 예전에 얻은 수입으로 근근이 버티며 빈곤했지만 부끄럽지 않았다. 


가난한 자를 곁에 두고 청렴과 노동과 성실함이 몸에 배었던 가우디가 전차에 치여 황망하게 세상을 떠난 것은 어쩌면 늘 따랐던 예수의 삶과도 닮은 예견된 죽음이라 생각한다. 장례식에 참석한 수많은 인파를 통해 생전 인품을 확인할 수 있다.  금욕주의자였던 천재 가우디는 성인처럼 세상을 떠났고 건축물을 남겨 자신이 따랐던 절대자의 성경처럼 오랫동안 남겨질 운명을 택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초한지 인생 공부 - 오만과 냉정 사이, 천하를 가른 심리전 인생공부 시리즈
김태현 지음, 사마천 원작 / PASCAL / 202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 마음을 얻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누구나 관계의 어려움을 겪어 보면 알 수 있다. 잘해주고 싶으면 대가없이 잘해주면 될 것을 감정을 등가 교환 방식으로 얻으려고 했을 때가 있었다. 내가 해준 만큼 대가가 없으면 서운하고 기분 나빴다. 관계란 사실 무언가를 얻으려고 하면 못 미치는 경우가 많은데 알면서도 잘되지 않는다.


《초한지》를 읽는다고 인생의 무엇이 달라질까 싶었는데 책 속에는 영웅호걸의 이야기 보다 관계가 숨겨져 있었다. 왜 고전을 읽어야 하는지 또 한 번 확인하게 되었다. 다양한 인간 군상과 리더의 자질, 인간의 심리에 대해 알아볼 수 있다. 토사구팽, 배수진, 사면초가, 파부침주 등 일상에도 잘 쓰이는 사자성어의 유례를 알 수 있다. 장기판의 초와 판의 기원도 바로 여기서 온 것이다.


AI로 뭐든 쓰고 읽고 알아볼 수 있는 시대에, 굳이 불편하게 고전이 현대사회에도 꼭 필요한 이유,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이 인간은 똑같기 때문이다. 옛날 사람들의 지혜를 본보기 삼아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 맞게 변형하고 편집하면 되는 것이다.


사마천의 초한지를 읽어보지 않았는데 이번 기회에 얕게라도 훑어볼 수 있었다. 이 책은 오랜 세월로 축적된 역사와 인물, 자기계발, 심리가 녹아들어 간 백과사전 같아. 두껍고 어려운 책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정리한 것은 물로 AI 시대에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알게 해준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 완벽을 향해 가는 길이 있을 뿐이다. 드라마 <모자무싸>의 황동만도 데뷔까지 20년이 걸렸다. 공모전을 통해 상을 받고 영화만 찍으면 되는 줄 알았지만 순탄치 않은 길은 제발 완주만 하자라는 숙연함으로 달려졌다. 데뷔 전에는 남의 영화를 깎아내리는 데만 혈안이 되었지만 막상 링 위에 오르는 다른 일이 펼쳐진 것이다.


누구나 실수를 하고 이를 통해 성장한다. 남아 있는 나날을 어떻게 살아갈지는 인간 만이 할 수 있는 사고다. 인생을 더욱 현명하게 살아가길 원한다면, 그저 흘러가게 놔주지 않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어두운 길을 밝혀줄 손전등이 되어 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종의 비애 세종의 눈물 2 - 조선 정치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왕실 최대의 비극, 개정증보판 단종의 비애 세종의 눈물 2
유동완 지음 / 휴앤스토리 / 202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흥행으로 인해 단종, 세조, 세종을 향한 관심이 뜨겁다. 얼마 전 가족 여행으로 문경에 갔는데 문경새재 세트장을 구경하고 오기도 했다. 곧 단종과 세조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몽유도원도>가 개봉하니, 반드시 이 세 인물을 파악해 두는 게 필요했다.


단종은 적통 중의 적통의 피를 물려받았다. 원손-왕세손-세자- 국왕이 된 유일한 계승자다. 할아버지 세종 승하 한 닷새 후 아버지 단종이 즉위하였고 다섯 달 후 10살에 왕세자로 책봉된 인물이다. 문종이 세상을 떠나고 조선의 정치는 급격하게 흔들렸다. 세종이 만들어 낸 기틀이 사실상 이어받게 된 12살 이홍위는 새로운 판에 희생되기 충분했다. 그와 별개로 학문적 열의와 국정 책임감은 출중했다. 세종, 문종, 단종은 똑똑하지만 무예는 어려운 공부벌레학자, 학문군주 스타일이었던 거다.


어렸지만 허수아비로 전락하지 않고 유교적 군주로 최종 결정을 내리려고 자각했다. 사냥을 즐겼고 할아버지를 그리워했으며 학문도 게을리하지 않았던 세종 보다 더 잘 될 왕이 될 상이었다. 부모도 아내도 없이 왕이 되어 힘이 약했지만 혼자서라도 고군분투했다. 하지만 수양의 무리한 혼인 추진으로 약해져만 갔다. 혼인은 수양에게 미혼의 어린 군주에게 가할 폐위나 찬탈의 범퍼이자 권력 재편의 의미였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인터뷰 차 장항준 감독을 만났을 때 그는 단종 이야기를 꺼내 이유를 두고 이렇게 정의했다.


"단종은 태어날 때부터 왕이었던 사람이다. 원손, 세손, 세자, 왕이 된 유일한 적통 코스를 밟았던 인물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왕이고 할머니와 엄마도 왕비였던 적통 중의 적통이다. 세종의 총애를 받은 총명함, 문종도 단명했을 뿐 훌륭한 왕이었고 혈통을 이어받아 심지도 곧은 사람이었다. 대신들도 큰 인물이 된다는 기대가 컸다."


그 여파로 읽어 보게 된 책 《단종의 비애 세종의 눈물》 두 권은 단종이 비극의 역사에 이름을 새겨 넣어야만 했나, 그 원인을 추적한다. 즉 구조적 원인과 배경을 찾는 과정인데 중심에는 세종과 문종의 통치 과정에 있다는 의견으로 진행된다. 단종이 왕의 지위를 회복하기까지 241년이 되었다니 실로 놀라운 일이다. 이 속에는 정치적 잇속이 자리하고 있었다. 권력을 행사할 때 원칙과 규범이 흔들리면 어떠한 결과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주는 예다. 


역사서라고 고리타분하고 어렵지만 않다. 태종을 상왕으로 한 세종을 즉위를 두고 '인턴 왕'이라 하거나, 세종 즉위하고 경연을 치르는 제도를 두고 국가 원수와 참모, 장관이 '스터디 그룹'을 결정했다고 비유한다. 세종이 새로운 제도 도입을 앞두고 실제 농민의 형편과 생각을 조사하게 하는 일은 '국민투표', '대규모 여론조사'에 예를 든다. 세종이 문종의 두 번째 세자빈을 뽑을 때 '왕실 간택 대회'를 연다는 표현도 한다.


이 세 인물의 비극을 단순히 감정을 향해 읽어가는 것도 좋지만, 그 안에 함의된 정치적 변화와 권련 구조의 재편이 조선이란 나라 전반에 끼친 영향을 떠올려 보는 것도 좋다. 비극의 아이콘을 떠나 충절과 비극의 상징으로 추앙받으며 신격화된 과정까지 조명했다. 정통성의 판단, 충성과 현실 정치의 시각, 인간 운명의 관점 것들이 담겨 있다. 


특히 어질고 똑똑하며 백성을 사랑했던 세종의 이면을 알게 되어 흥미로웠다. 세종의 유교 정착은 제도, 이념적 차원에서 성과를 거두었지만 백성들의 생활까지는 아니다. 성군의 시대와 실질적인 사회 모습은 차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풍수지리 논리, 길흉화복 이념을 극대화해 신하를 의금부에 가둘 정도로 과도했다. 


백성들에게도 유교 예법을 따르지 않거나 민간 신앙에 의존하면 벌했다. 내로남불 생각으로 벌어진 이들이 많았다. 그래서일까. 세종을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조선의 군주이기 이전에 자연재해나 미신을 극도로 믿었던 두려움 많았던 왕은 무당과 법사를 따랐던 어느 대통령의 롤 모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끝으로 이 책이 왜 2020년 출간되고도 계속 인기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개정판에는 서사적 내용의 보완은 물론 유배지 지도를 추가 삽입해 이해를 높였다. 특히 노산군으로 강봉된 이홍위가 유배 생활을 하게 되는 자세한 타임라인은 2권에 수록되어 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이면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는 기회다. 


역사는 언제나 반복된다. 그동안 다양한 미디어에서 보여 준 것처럼 세종은 성군이고 수양대군은 악인이며 단종은 피해자라는 인식은 이제 그만할 때도 되었다. 21세기에 새롭게 재해석된 영화, 책, 드라마가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인물을 재평가하는 도구다. 진실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을 뒤집어 보고, 낙인찍힌 무엇도 다르게 보면서 비판적이고 좋은 생각을 해보는 건 어떨까. AI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이 역사를 통해 성장을 도모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성찰이 책 속에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종의 비애 세종의 눈물 1 - 조선 정치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왕실 최대의 비극, 개정증보판 단종의 비애 세종의 눈물 1
유동완 지음 / 휴앤스토리 / 202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흥행으로 인해 단종, 세조, 세종을 향한 관심이 뜨겁다. 얼마 전 가족 여행으로 문경에 갔는데 문경새재 세트장을 구경하고 오기도 했다. 곧 단종과 세조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몽유도원도>가 개봉하니, 반드시 이 세 인물을 파악해 두는 게 필요했다.


단종은 적통 중의 적통의 피를 물려받았다. 원손-왕세손-세자- 국왕이 된 유일한 계승자다. 할아버지 세종 승하 한 닷새 후 아버지 단종이 즉위하였고 다섯 달 후 10살에 왕세자로 책봉된 인물이다. 문종이 세상을 떠나고 조선의 정치는 급격하게 흔들렸다. 세종이 만들어 낸 기틀이 사실상 이어받게 된 12살 이홍위는 새로운 판에 희생되기 충분했다. 그와 별개로 학문적 열의와 국정 책임감은 출중했다. 세종, 문종, 단종은 똑똑하지만 무예는 어려운 공부벌레학자, 학문군주 스타일이었던 거다.


어렸지만 허수아비로 전락하지 않고 유교적 군주로 최종 결정을 내리려고 자각했다. 사냥을 즐겼고 할아버지를 그리워했으며 학문도 게을리하지 않았던 세종 보다 더 잘 될 왕이 될 상이었다. 부모도 아내도 없이 왕이 되어 힘이 약했지만 혼자서라도 고군분투했다. 하지만 수양의 무리한 혼인 추진으로 약해져만 갔다. 혼인은 수양에게 미혼의 어린 군주에게 가할 폐위나 찬탈의 범퍼이자 권력 재편의 의미였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인터뷰 차 장항준 감독을 만났을 때 그는 단종 이야기를 꺼내 이유를 두고 이렇게 정의했다.


"단종은 태어날 때부터 왕이었던 사람이다. 원손, 세손, 세자, 왕이 된 유일한 적통 코스를 밟았던 인물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왕이고 할머니와 엄마도 왕비였던 적통 중의 적통이다. 세종의 총애를 받은 총명함, 문종도 단명했을 뿐 훌륭한 왕이었고 혈통을 이어받아 심지도 곧은 사람이었다. 대신들도 큰 인물이 된다는 기대가 컸다."


그 여파로 읽어 보게 된 책 《단종의 비애 세종의 눈물》 두 권은 단종이 비극의 역사에 이름을 새겨 넣어야만 했나, 그 원인을 추적한다. 즉 구조적 원인과 배경을 찾는 과정인데 중심에는 세종과 문종의 통치 과정에 있다는 의견으로 진행된다. 단종이 왕의 지위를 회복하기까지 241년이 되었다니 실로 놀라운 일이다. 이 속에는 정치적 잇속이 자리하고 있었다. 권력을 행사할 때 원칙과 규범이 흔들리면 어떠한 결과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주는 예다. 


역사서라고 고리타분하고 어렵지만 않다. 태종을 상왕으로 한 세종을 즉위를 두고 '인턴 왕'이라 하거나, 세종 즉위하고 경연을 치르는 제도를 두고 국가 원수와 참모, 장관이 '스터디 그룹'을 결정했다고 비유한다. 세종이 새로운 제도 도입을 앞두고 실제 농민의 형편과 생각을 조사하게 하는 일은 '국민투표', '대규모 여론조사'에 예를 든다. 세종이 문종의 두 번째 세자빈을 뽑을 때 '왕실 간택 대회'를 연다는 표현도 한다.


이 세 인물의 비극을 단순히 감정을 향해 읽어가는 것도 좋지만, 그 안에 함의된 정치적 변화와 권련 구조의 재편이 조선이란 나라 전반에 끼친 영향을 떠올려 보는 것도 좋다. 비극의 아이콘을 떠나 충절과 비극의 상징으로 추앙받으며 신격화된 과정까지 조명했다. 정통성의 판단, 충성과 현실 정치의 시각, 인간 운명의 관점 것들이 담겨 있다. 


특히 어질고 똑똑하며 백성을 사랑했던 세종의 이면을 알게 되어 흥미로웠다. 세종의 유교 정착은 제도, 이념적 차원에서 성과를 거두었지만 백성들의 생활까지는 아니다. 성군의 시대와 실질적인 사회 모습은 차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풍수지리 논리, 길흉화복 이념을 극대화해 신하를 의금부에 가둘 정도로 과도했다. 


백성들에게도 유교 예법을 따르지 않거나 민간 신앙에 의존하면 벌했다. 내로남불 생각으로 벌어진 이들이 많았다. 그래서일까. 세종을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조선의 군주이기 이전에 자연재해나 미신을 극도로 믿었던 두려움 많았던 왕은 무당과 법사를 따랐던 어느 대통령의 롤 모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끝으로 이 책이 왜 2020년 출간되고도 계속 인기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개정판에는 서사적 내용의 보완은 물론 유배지 지도를 추가 삽입해 이해를 높였다. 특히 노산군으로 강봉된 이홍위가 유배 생활을 하게 되는 자세한 타임라인은 2권에 수록되어 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이면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는 기회다. 


역사는 언제나 반복된다. 그동안 다양한 미디어에서 보여 준 것처럼 세종은 성군이고 수양대군은 악인이며 단종은 피해자라는 인식은 이제 그만할 때도 되었다. 21세기에 새롭게 재해석된 영화, 책, 드라마가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인물을 재평가하는 도구다. 진실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을 뒤집어 보고, 낙인찍힌 무엇도 다르게 보면서 비판적이고 좋은 생각을 해보는 건 어떨까. AI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이 역사를 통해 성장을 도모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성찰이 책 속에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