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명품 - 사람이 명품이 되어가는 가장 고귀한 길
임하연 지음 / 블레어하우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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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은 개척하는 것이다란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정해진 운명을 타파하고 자신의 기회로 만들어갈 능력, 혹은 재능은 타고난 부모의 재산, 유전자로 결정되는 게 아니라는 말이 어느 때보다 값지게 다가온다. N포 세대로 불리는 젊은 층이 현생은 망했다며, 회빙환물에 열광하는 이유도 비슷하다.

나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게 없을까 한탄만 하지 말고, 스스로 명품이 되라며 설득하라는 책을 만났다. 며칠 전 일이 잘 풀리지 않아 비슷한 생각을 했던 나를 반성했고 부모님에게 미안했다. 임하연 저자의 《인간명품》은 상속자 정신을 통해 부모로부터만 오는 상속을 뛰어넘어 사회로부터 받는 더 큰 상속을 본인 것으로 얻어 가는 방법을 전한다. 학생과 상속자의 대화체로 구성되어 읽어나가기도 편하다. 추천하는 책이다.

내 인생을 스스로 상속하는 상속자란 '나는 흙수저야, 부모님에게 받은 재산도 없어'라며 한탄하지 말고, 즉 인생의 자율권 승계를 부여받는 것이다. 남의 지배나 구속을 받지 않고 내 인생을 다시 쓰는 권한은 본인에게 있다. 혈연관계에서 벗어나는 그날 상속자로 다시 태어난다고 전한다. 즉 파괴하고 실패해야 재탄생되는 것이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로 전 세계적인 한국의 위상과 인기가 높아진 이때 문화라는 모두의 유산을 이용해 본인의 가치를 발견하고 높일 계획을 세워 보는 거다.


책은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의 인생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그녀가 누구인가. 케네디 대통령의 아내이자 영부인일 때는 '재키'로 불렸으며 패션의 아이콘으로 불렸다. 이후 선박왕 오나시스와 재혼 후 엄청난 부를 누렸다. 케네디의 미망인으로서의 역사만 다뤘다. 영화도 호불호가 있듯 재클린의 인생을 서로 다른 관점으로 해석해보길 바란다.

물론 겉으로만 봐서는 행복과 부를 모두 얻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마음은 공허했다. 첫 남편과 사별 후 두 번째 남편과 재혼했지만 오나시스도 바람둥이였다. 첫 남편 존 F. 케네디는 마릴린 먼로와 두 번째 남편 오나시는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와 염문설을 낳았다. 이는 영화 <재키>와 <마리아>로 익힌 재클린의 생애를 재정비할 수 있었다. 부유하고 명망 있는 집안 출신이었을 거란 편견을 깨는 드라마틱한 과거였다.

굴절 많은 인생사지만 재클린의 삶은 망가지지 않았다. 특권의식에도 안주하지 않고 더 발전하려는 가치를 만들었다. 엄청난 독서광이었고 엄청난 구술 기록을 남겨 후대에 사료를 더했다. 또한 와스프(백인, 앵글로 색슨, 개신교)와 올드머니(대를 이어온 부자)도 아니었지만 성공했다.

시작은 아메리칸드림에 성공한 변호사 할아버지로부터였다. 프랑스 이민계의 가톨릭 집안의 딸이었던 재클린은 할아버지 존 부비에의 족보 조작으로 새롭게 인생을 개척하게 되었다. 훗날 프랑스의 명망 있는 가문의 자손이란 자부심은 존의 두 아들을 파멸로 몰아넣었고, 대공황으로 재산을 대부분 잃게 된다.

이런 시련은 오히려 재클린을 인간 명품으로 만드는데 일조했다. 알코올중독자였던 아버지를 사교적인 사람으로 바꿔 생각하며 낭만적인 해석을 했던 것이다. 불편한 게 생기면 차단해 버린다는 메커니즘으로 행동했다. 개인의 안목과 취향 같은 문화적 지식인 '문화자본'으로 돈 만이 아닌 사고방식 차이, 가정교육, 밥상머리 교육이 삶을 바꾸는데 영향을 끼쳤다.

부모의 이혼은 재클린을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계층 상승을 중요시한 재혼한 엄마를 따라 새아버지를 맞았지만 큰 혜택을 받기보다는 안정적인 생활을 누리는데 만족해야 했다. 이후 재클린은 할아버지의 거짓 가문 부풀리기가 폭로되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도서관에서 책을 탐독하며 역대 프랑스 여왕, 귀족 부인, 영향력 있는 여성을 공부했다. 인간의 품격은 사람에 대한 예의, 배려, 존중으로 구성됨을 배운다. 즉 책에서 내내 강조하는 '상속 자본'은 태어나면서 생기는 사회, 문화, 경제 가본과 반대로 스스로 얻는 것이라는 점이다.

아일랜드 혈통으로 미국 사회의 주류로 인정받기 힘들었던 케네디와 재클린은 독서로 위안을 삼았다. 재클린은 프랑스의 영웅 드골 장군을 케네디는 영국 처칠 총리를 통해 인생을 설계했다. 아일랜드인 입장에서는 모국의 역사를 파괴한 아픈 역사지만 미국에서라면 입장이 달랐다. 자신의 신분을 역이용해 새로운 기회의 땅에서 새 출발을 하게 된 것이다.


결국 이 책은 혈연에 연연하지 말고 운명을 개척한 사람들의 자수성가 프로젝트를 빗대 청년들의 자존감을 끌어올리고 있다. 실존 인물의 경험담은 이해와 용기를 준다. 비록 합법적인 방법이 아니더라도, 스스로 최면을 걸며 자기 위안을 했더라도 신세한탄만 하며 방구석에서 좌절할 시간에 무언가라도 하라며 독려한다.

시대가, 나라가 다르다며 딴지를 건다면, <케데헌>의 골든을 만든 이재를 떠올려 보라. 물론 외조부의 배경이 밝혀지긴 했지만 아이돌을 꿈꾸던 이재는 데뷔에 실패했다. 음악을 좋아했던 만큼 아이돌이 아닌 작곡가의 길로 전향했고 수많은 노크 끝에 자신의 곡을 전 세계에 알릴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영화 같은 삶의 주인공이 내가 될 수 있겠냐마는 성공한 명사의 인생을 통해 우리들의 내면을 갈고닦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득이라 생각한다. 빠르고 간결한 도파민을 추구하는 현대사회에서 느리고 많은 활자를 읽는 독서는 사치이자 바보라는 인식도 있다.

하지만 누구나 대세와 유행을 따라야 하는 건 아니다. 자신의 길을 자신만의 속도로 가는 사람도 분명히 있다. 나는 왜 이런 걸 까라며 우울해하기 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내일을 살아가고 싶자면 이 책을 추천한다. 분명히 나처럼 위로와 희망을 전해 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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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살 것 같은 느낌에 관하여 - 저항의 문장가 윌리엄 해즐릿 에세이의 정수
윌리엄 해즐릿 지음, 공진호 옮김 / 아티초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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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살아가는 기준을 무엇일까. 어쩌다 보니 윌리엄 헤즐릿의 에세이를 세 권이나 읽어보게 된 필자(출판사에서 지속적으로 보내 줌)는 사느라 피곤한 존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사는 걸까. 그의 날카롭고 염세적인 생각을 공유하다 보면 나까지 뾰족해진다. 급진적이고 양심적인 저항가의 생각은 펜 끝에서 더 날카로워졌다.

다만 영국인 답게 아일랜드, 스코틀랜드를 멸시하는 발언과 프랑스 혁명을 지지하며 영국 보수 권력을 비판하는 뉘앙스는 감안하고 읽도록. 그는 나폴레옹을 독재자가 아닌 세습 권력을 타파한 인물로 평가했고 프랑스 혁명의 가치인 자유와 평등을 지지했다.

표제어 '영원히 살 것 같은 느낌에 관하여'는 동양의 공수래공수거, 인생무상, 무아지경과 닮았다. 나이 들어감과 돈이 없는 생활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환희와 고통을 넘나들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역자 후기에는 청춘의 시간, 감각, 존재 방식의 통찰은 BTS 화양연화 시리즈와 같은 주제를 다른 방식(글, 음악)과 언어로 풀어 냈다고 해석했다. 세 권을 읽어 본 후기로 시간이 없다면 이 책 하나만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화려함으로만 포장된 인플루언서들의 sns 글 뒤에 진짜 삶을 엿볼 기회, 불편한 진실과 나를 돌아볼 기회를 만날 수 있다.


아.. 명언이로다. 돈도 없고 몸이 아픈데 예술적 성취가 무엇인가. 에세이의 마지막은 그럼에도 인간은 생명의 불꽃이 꺼지기 전 이름을 남겨야 하며, 그것이 인류의 유산 중 하나임을, 병상에서도 책을 통해 고매한 정신을 간직하는 게 낫다고 말하지만. 아프고 돈 없고 배고프면 모두 귀찮아진다. 로코코 시대의 화가 윌리엄 호가스의 '가난한 시인(성가신 시인)'을 예로 들기도 한다. 그가 돈을 벌기 위해 거리의 부랑자의 삶이나 귀족을 풍자하는 연작을 그렸다면 윌리엄 해즐릿은 글로써 상상을 펼친 인물이다.

19세기 영국인이 쓴 돈 없이 가난하고 아픈 현실이 21세기 한국에서 살아가는 내게 공감을 이끌어 냈다. 고전은 시대와 나라를 떠나 공통적인 감정을 이끌어 낸다는 진리다. 돈 없는 가난은 사람을 우수꽝스럽게 만드는 불편함이라는 말이 꽂힌다. 또한 건강하고 아름다우며 명랑한 사람에게 끌리는 것은 탐욕이나 도덕적 판단이 아닌 인간 본질의 갈망이며 우리를 더 나은 곳으로 인도한다고 전한다. 우울하고 아픈 사람과 되도록 멀리하려는 습성은 내가 얻을 가치를 떠나 자연스러운 본능이란 말도 공감한다.

그가 내일 아침이란 희망으로 저녁은 굶을 수 있지만 아침, 즉 첫 끼니가 없으면 그날의 리듬이 깨지고 마음이 무기력해진다는 말도 공감한다. 가난은 사람을 작게 만든다. 인간의 위선을 마치 내 이야기처럼 들추는 통찰력에 반했다. 자신을 감추지 않고 당당하게 바라보는 힘, 꼿꼿한 자존감은 인간이란 과연 무엇인가를 다시금 떠올리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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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까지 다섯 걸음
장강명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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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출신 장강명의 장편 소설을 여러 편 읽어봤다. 가장 좋아하는 소설은 《댓글부대》와 《한국이 싫어서》다. 왜냐고? 영화로 만들어졌으니까. (이노무 직업병) 아무튼 기억으로는 사회적 문제를 파고들거나 인터넷체나 요즘 유행하는 말투, 즉 트렌디함에도 잘 좇아간다고 생각했었는데 최근에는 잘 읽지 못했다. 그러다가 최근에 종말을 주제로 다섯 가지 이야기를 엮은 앤솔로지 소설을 읽고 여러 생각이 들었다. 


소행성 충돌로 인해 부정 절망 타협 수용 사랑을 키워드로 이야기하는 놀라운 20가지 근미래 현실이다. 다섯 키워드는 마치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말한 ‘죽음의 5단계’ 이론과 닮았다. 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 사실을 마주했을 때 크게 5단계에 걸친 심리 변화를 보인다. 처음에는 믿을 수 없어 사실을 ‘부정’하고, 왜 그래야만 하는지 ‘분노’를 터트린다. 이후 어떻게 해야만 이 사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타협’ 보지만,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음에 ‘우울’해지며 마지막에는 받아들이는 '수용'을 택한다.


마지막, 끝, 종말, 파멸이란 단어를 들었을 때 각각의 반응이 흥미로운데 읽는 내내 ‘나라면 어땠을까’ 상상하는 재미가 있었다. 소행성 충돌로는 ‘이시카 고타로’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한 넷플릭스 시리즈 <종말의 바보>가 떠올랐고, 우주선에 선별적으로 태운 상황은 에드워드 애슈턴의 소설의 《미키 7》원작인  한 봉준호 감독의 <미키 7>도 떠올랐다. 여러모로 영감을 주었던 소설이다. 


종말 앞에 마녀사냥을 당한 여자가 진짜 마왕을 소환하는 내용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봐왔던 뿅 가는 소재와 비슷했다. 행복한 주인과 산책하는 반려견, 무작위 추첨으로 선별했던 우주선이 사실은 부정적인 방법으로 공평을 어겼다는 걸 알았다면 어떨까.  이들은 일단 탈출은 했다지만 어디로 갈 것인가, 우주선은 충분히 사용 가능할까. 여러 상상력이 펼쳐졌다. 지구에 남기로 지원한 50여 명의 사람이 나라면, 내일을 걱정하지 않고, 살찌거나 아플 걱정 없이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할 것 같다. 어차피 다 같이 죽으면 문명이 사라지고 뭐고 괜찮은 죽음 같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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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은 뇌를 어떻게 바꾸는가 - 충동에 사로잡힌 이들을 위한 처방전
저드슨 브루어 지음, 최호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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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은 수많은 중독과 살아간다. 쾌락과 갈망 사이에서 음식, 담배, 술, 영상, 마약, 사랑, 도박 등 수만 가지 중독을 겪는다. 책은 피할 수 없는 중독으로 인한 2차 장애와 질환, 인간의 고통과 외로움에 대해 말한다. 특히 디지털 중독은 빨라지는 시대에 악영향을 준다. 스키너의 행동 양식인 촉발 요인-행동- 보상의 반복이 중독을 유발한다. 중독은 또 다른 보상을 찾아 헤맨다. 배가 부른데 계속 먹는 스트레스성 과식, 넷플릭스 드라마를 자제 못하고 계속 시청한다는 예가 나온다. 누가 날 본 건가. 부처는 이와 같은 스트레스는 행복으로 착각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필자는 술, 담배를 하지 않아 SNS 중독과 음식 중독에 특히 공감했다. 최근 본 영화 <잠자는 바보> 속 주인공은 숏츠를 8시간 동안 본 본인이 쓸모 있는 인간인지 고민했다. 과연 하루 종일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릴스, 숏츠, 동영상만 방구석에서 봤다고 실패한 인생일까. 생각했다. 물론 영화에서는 그 행동 장체도 충분히 의미 있다고 말하지만. 사람에 따라 시간 낭비하고 생각하는 건 자유다. 


특히 SNS에 게재한 사진으로 명확한 피드백(좋아요)를 받는 중독 과정을 촉진하는 보상 같은 유형의 생물학적 보상이 제공된다는 점은 개인의 일상 속에 깊숙하게 침범해 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지만 칭찬 중독은 심한 현대병이다. 좋아요를 많이 받기 위해 벼랑 끝에서 사진을 찍다가 추락한 사람은 다음 세상에서 그 보상을 전달받았을까. 이렇듯 중독은 부정적인 결과를 낳는데도 계속 사용하는 것이다. 


저자는 관심, 강화, 칭찬 등을 좇는 중독성 스펙트럼에 빨려 들러가면 주관적 편향(자아 중독)이 이를 촉진하고 강화되는 악순환을 반복한다고 말한다. 어떤 점에 편향되는지 스스로 안다면 왜곡된 세계관이란 안경을 벗을 준비를 마친 상태다. 즉 주관 편향이 언제 어떻게 문제를 일으키는지 깨닫는 것은 편향을 바로잡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벼처럼 상대방의 피드백에 감사히 여길 줄 알며, 타인의 자아를 부추기지도 말자는 충고다. 


저자는 중독 심리학자로서 중독을 고칠 방법으로 '마음 챙김'을 추천한다. 마음 챙김 이 뇌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정신질환 치료에 도움받을 수 있는지 말이다. 마음 챙김 접근법은 만성통증, 우울증, 불안에 도움 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욕망의 파도타기를 즐기는 거다. 파도는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이다. 파도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해변까지 파도를 타라는 것이다. 추상적인 설명이지만 나의 몸에 주의를 기울이고 집중하란 말로 해석된다. 



갈망의 다스림은 무자비한 강제력이 아닌 갈망을 향해 다가가거나 갈망과 친해지는 역설이다. 직접 관찰은 번뇌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이란 소리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책 속에 답이 있다. 뇌를 쉬게하는 게 당신의 진정한 휴식이다. 어떤 중독에 빠져 있는가. 당신이 벗어날 수 없는 건 꼭 의지가 약해서만은 아니니 너무 좌절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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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나는 현대미술 - 21세기가 사랑한 예술가들
김슬기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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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때문에 국립현대미술관(국현미) 근처를 출퇴근하는 나는 가끔 아주 가끔 시간과 체력이 허락하면 이곳을 찾는다. 현대미술은 어렵다는 편견이 크지만 그 안에 들어가면 다양한 영감이 떠오른다. 볼 줄 모른다고? 에이 그게 무슨 대수인가. 피카소의 그림을 보고 눈 코 입을 정확히 안다고 좋은 점도 나쁜 점도 없다. 그저 본인의 감상과 시선에 따라 '알려고 하지 말고 느껴!'라고 생각하면 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읽다가 국현미를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론 뮤익의 긴 줄과 대기 시간으로 가보지 못한 게 안타깝기는 했다만. 어쩔 수가 없다. 사진으로라도 감상해야지.


이 책은 현존하는 가장 비싼 작품과 작가 24명을 모아 두었다. 아름다움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세상에서 예술은 돈이 된다. 요즘은 미술품으로 재테크 하는 사람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알아두면 다 쓸 데 있는 거란 소리다. 


1장은 40대 이하 젊은 작가를 소개한다. 니콜라스 파티, 매튜 웡, 플로라 유크노비치, 헤르난 바스, 루시 불 등이다. 옛날 사람인 나는 2장에서 다룬 20세기 거장에 눈이 더 갔다. 데이비드 호크니, 게르하르트 리히터, 나라 요시토모 등 여전한 영향력과 인기를 과시하는 스타 작가 말이다. 


그래서 2장부터 읽을 수밖에 없었다. 런던에 거주 중인 작가의 현안에 맞춘 24명의 작가들은 현대 미술이란 이름으로 묶여 있고 크리스티, 소더비, 필립스란 3대 경매사를 통해 사고 팔린다. 이 중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데이비드 호크니'다. 물론 몇 년 전 그의 다큐멘터리나 그림을 감상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영화감독을 예로 들면 우리나라의 주류를 이끌고 천만 감독으로 등극했던 사람들이 팬데믹 이후 줄줄이 고배를 마시고 있기 때문이다. 빠르게 변하는 시장을 읽지 못하고 늘 하던 것, 습관대로 움직이는 까닭이다. 


데이비드 호크니는 어떤가. 20세기 태어난 80세 노장 화가는 '영원한 청년'이란 수식어답게 아이패드에 그림을 그리며 자신의 미술사도 변함없이 천착한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레디 플레이어 원>을 만들었던 것만큼, 거장이란 수식어에 갇히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탐구하고 발전하려는 태도를 가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혜안을 호크니로부터 재확인하게 되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사진의 저작권 때문인지 대부분 큐알코드로 대체되었다는 거다. 사진이 있어 보는 맛이 있는데 하나하나 찾아가면서 읽는다면 독서 흐름이 끊기는 건 당연하다. 예술 관련 책의 어쩔 수 없는 단점이긴 하다. 책을 읽기 어렵다면 작가들의 관련 다큐멘터리 영화나 유튜브를 찾아보는 것도 추천한다. 교양의 지경을 넓히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게 바로 AI 시대 쓸모 없어질 인간이 최소한으로 갖추어야 할 차이가 아닐까 생각해 보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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