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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씨아저씨네, 차별 없는 과일가게 ㅣ 작고 단단한 마음 시리즈 2
공석진 지음 / 수오서재 / 2025년 3월
평점 :

제목이 참 특이하다. 지은이가 공석진 저자 이름이 공씨 아저씨는 알겠는데 차별 없다는 건 무슨 소리일까. 저자 소개도 인상적이다. 잘 익을 때까지 기다렸다 수확하는 상식이다. 미리 따서 강제 약품을 처리해 익히는 게 아니라는 자연스러움이다. 모양이 예쁘고 반짝이는 과일만 선호하지 않겠다는 거다. 최소한의 포장지로 환경을 생각해 보겠다는 포부다. 가장 듣고 싶은 말은 '낭만 과일가게'라니. 장사에도 낭만을 챙기는 이상한 과일가게 사장님의 장사 노하우가 더 궁금해진다.
기후변화로 밥상 물가에 직격탄을 맞은 건 채소와 과일이다. 귤은 2-3년부터 미친 상승세를 타고 올랐고 작년에는 사과가 무척 비쌌다. 원두도 수확이 어려워 커피값도 조금씩 오고 있고 카카오 때문에 초콜릿도 마친가 지다. 먹는 기쁨으로 사는 나는 하루하루 물가 걱정에 싸고 싱싱한 재료를 찾아 발품을 판다.
할머니가 과일을 좋아하신 탓에 맛도리 과일을 자주 섭취하게 되었고 그 결과 황금 입맛을 갖게 되었다는 후문. 낭만 과일을 말하는 걸로 봐서 상상, 공상을 즐기는 분 같았는데 역시나 영화감독이 꿈이었던 분이셨다. 하지만 일은 잘 안 풀려 직장을 7년 동안 다니면서 힘에 부쳤고, 경영난으로 퇴사를 나오며 황폐한 마음만 남았단다. 30대 중반 두 아이가 크고 있었고 유통회사 시절 인연을 맺은 동료의 도움으로 감귤 판매 사이트를 운영하게 되었다.
역시 사람은 주변에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걸 또다시 느낀다. 운도 실력이다. 주변 관계 형성도 잘 해 놓은 사장님은 본격 과일 장수를 어쩔 수 없는 위기, 그리고 기회, 주변인의 도움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이후 과일장수로 살아오며 겪은 일을 세세히 적어 놓은 게 이 책이다.
과일의 가격이 고무줄인 건 마진 때문이다. 명절 전에 수확해서 특수를 노리려는 과일이 대부분이다. 저자는 제일 맛있을 딱 먹는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유통 시장 편의에 따라 과일을 소비하고 있다. 명절 대목에 맞춰 재배하고, 유통하고, 먹는 오랜 관행을 옳고 그름의 잣대로만 평가하기 힘든 점도 알게 되었다.
여름 과일 참외가 3월부터 나오는 이유는 수박과의 경쟁을 피하기 위함이었고, 비에 약한 토마토의 특성상 맛있는 노지 토마토가 비닐하우스에서 365일 재배되는지도 알았다. 특히 딸기는 봄과일이라 생각했지만 겨울에 나오는 이유가 3월 미국산 오렌지와 경쟁을 피하기 위해서였다니. 미국산 오렌지는 3월-8월 관세가 없단다. 오렌지철 전에 나와야 경쟁력이 있어 시기가 달라지는 거다. 결국 노지 재배에서 시설 재배로 전환, 수입 과일의 증가, 다른 계절 과일과 경쟁을 위한 재배 시기 변화, 기후변화에 따라 달라진다.
공씨 아저씨는 대목 장사를 포기하고 제철 맛있는 과일을 맛 보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명절에 먹는 과일보다 제철에 먹는 잘 익은 과일이 상식이 되는 세상을 꿈꾸고 있는 사람이다. 과일도 유행을 기업이 주도하고 소비를 부치는 행위도 짚는다.
생각해 보니 저자의 지적처럼 새콤한 홍옥은 자취를 감추었고 산미가 강한 한라봉보다 단맛이 강한 레드향이 대세다. 얼마 전 세일해서 스테비아 토마토를 먹다가 토할 뻔했다. 세상에 설탕물에 절여도 너무 절였네 싶었고 다 못 먹고 버리고 싶었다. 샤인 머스캣의 인기 거품도 비슷하다. 단맛, 신맛, 짠맛, 감칠맛 등 맛이 다양성을 앗아가고 요즘 과일 유통가는 높은 당도가 대세다. 맛의 선택권이 좁아지면 영향학적으로 문제가 생기고 피해를 받는지도 모른 채 소비자는 피해자가 된다.
특히 외모지상주의가 생물 업계 가격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게 관례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예쁘고 보기 좋은 게 맛도 좋을 거란 인식은 유통, 판매, 홍보에 큰 영향을 미친다. 나도 그렇다. 흠 없는 과일, 예쁜 모양의 과일을 집어 들게 되지만 소위 못난이 과일이라 불리는 과일, 채소를 자주 산다. 이유는 맛에 등급 없이 저렴하기 때문이다. 알고 보면 못생겼단 이유만으로 차별받고 버려지는 과일이 많다는 거다. 인간인 나도 살아가는데도 쉽지 않은데, 과일도 크기 모양으로 등급 줄 세우기를 하는 거다.
공석진 저자는 흔히 B급, C급으로 분류된 과일을 대하는 태도 변화를 원했다. 우박 맞아 흠집이 생긴 사과는 '보조개 사과'라는 이름으로 팔아 성과 낸 사례가 대표적이다. 늦은 장마로 빨간 얼굴이 진 시나노골드에 '연지곤지'라는 이름을 뭍여 선물했는데 인기가 많아서 오히려 사과를 건네야 했던 상황도 발생했다. 사회적으로 남의 외모를 지적하는 일은 지양하는 주체지만 농산물의 외형은 버젓이 언급되는 문화를 바꾸겠다는 생각이다. 오랜 관습을 바꾸는 일은 브랜드 마케팅을 넘어 판매의 혁신 사례가 되기 충분했다.
저자는 친환경, 무기농, 포장재 줄이기를 작게나마 실천하며 탄소 줄이기에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환경을 위한 나름의 노력이 에이블리즘(비장애중심주의)에 갇힌 사고라는 것도 깨닫는다. 대표적인 예가 빨대의 종이화인데 몸의 기능이 떨어져서 주름진 빨대를 사용해야만 하는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는 논리였다.
이15년 차 과일장사의 입을 통해 알게 된 농업 현장은 영화 <리틀 포레스트>처럼 낭만적이지 않았다. 점차 더워지는 기후변화로 밥상 변화는 불가피하기 때문에 원인을 아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저자는 농산물 시장의 외모 지상주의, 포장 쓰레기, 사라진 제철 과일, 소멸하는 농업과 보이지 않는 농민을 이야기하며 과일 판매의 철학을 말한다.
당연하다고 여기고 궁금해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무언가를 해보는 실천력이 저자 공석진님의 판매 전략이고 유지 비결임을 확인했다. 먹기만 했지 전혀 몰랐던 분야를 공부해서 좋았고, 조금 더 합리적인 소비를 할 눈을 떠 흥미로웠던 독서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