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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 따위는 없다 - 교양으로서의 동양철학
신메이 P 지음, 김은진 옮김 / 나나문고 / 2025년 7월
평점 :

저자는 32세, 무직, 이혼 후 부모님 집으로 들어가 이불 밖을 나오지 못한다며 자신을 대뜸 소개한다. 18세 동경대에 입학해 꽃길만 걸을 줄 알았건만 마을의 신동이 14년 만에 가문의 수치로 돌아왔다고 말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흰소리 같지만 책 한 권을 세상에 배출한 엄연한 작가이니 부러워할 수밖에. 본인은 루저라고 말하고 있지만 내가 보기에는 한국까지 번역된 성공한 작가다.
아무튼 그는 세상을 해탈하고 허무함을 알아버렸다. 의욕이 생기지 않았고 공허함을 채우고 해답을 얻고 싶어 자기계발서를 읽었으나 답을 얻지 못했다. 그러다가 서양철학 책을 읽다 보니 이런 나조차 꽤 괜찮은 인간 같은 생각이 커졌지만. 삶의 태도를 더 공부하고 싶어 동양철학자에게 눈 돌리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동양철학은 대체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답이 존재한다는 거다. 철학은 답이 존재하지 않는다지만 어쨌거나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는 게 아닐까. 저자는 일본인이라 서양 철학보다는 동양철학자가 편했을지도. 언뜻 올해 불교 박람회에 몰린 젊은 세대를 접하고 놀랐다. 다양한 굿즈뿐만 아니라, 위엄을 근간으로 하는 종교계에 재치와 장난이 섞인 말장난의 난무라니. 친근한 개그 코드, 혹은 귀여움과 키치적인 무드로 접근한 불교 박람회는 그야말로 대성공을 기록했다. 전도, 포교란 역시 문화와 결합할 때 시너지가 생기는 것 같다.
각설하고 이 책은 철학 에세이다. 허무함의 끝에서 동양철학가 7명을 만났고 삶의 방향을 조금을 알게 되었다는 뜻이다.

첫판부터 심상치 않다. 2500년 전 나를 찾아 떠난 출가한 붓다를 역대급 스펙의 노숙자, 백수, 히키코모리라 소개한다. 따지고 보면 다 맞는 말이다. 왕가에서 태어난 왕자가 돈과 명예가 넘쳐흐르게 많으니 허무함을 느껴 수행의 길에 나선 것이다. 새삼 느껴졌지만 번역가도 극한 직업 같았다. 일본어로 쓰인 말투였을 텐데 유행하는 말로 찰떡같이 번역하다니. 한국 사람이 쓴 줄 알겠다.
두 번째는 용수(나가르주나, 히로유키)다. 용수도 붓다처럼 인간이었지만 천재였다. 친구들과 지금으로 따지면 성적 문제를 일으킨 범죄자였지만 개과천선의 아이콘이 되어 모든 건 공(空)이라는 가르침을 전했다. 가장 유명한 건 불교의 대중화, 대승불교를 전파했다는 점이다. 모든 만물은 환상이고 픽션이니 붓다가 말한 나는 없다는 말이 명료해지는 순간이다. 그는 퇴사, 이혼 등으로 사회적 고립을 겪을 때 용수의 '공'을 만나 이겨낼 수 있었다. (실제로 이 부분이 가장 길고 본인 이야기가 녹아들어 가 있다) 저자는 인도의 두 인물을 통해 이 세계는 픽션이고 만물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세 번째는 노자와 장자의 도(道)다. 인도의 철학이 세상(논리)의 해탈이자면 중국(경험)은 세상을 즐기는 게 목적이다. 그래서 자연을 벗 삼아 인생이 잘 풀리는 처세술에 집중한다. 저자에 따르면 노자는 전혀 꾸미지도 않고 존재감도 없는 잡초, 장자는 패기 있어 보이는 백수라고 묘사한다.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해석도 괜찮게 들린다. 하지만 노장사상을 이해하기 어려웠던 저자는 '도'와' 공'의 경지를 가르쳐 줄 또 다른 철학을 탐닉하기 시작한다.
네 번째는 달마의 선(禪)이다. 달마는 인도 출신으로 붓다의 1000년 후 인물이다. 그의 사상을 설명하기 위해 진짜 백지를 넣었다. 인쇄 오류인가? 내 책만 불량인가 싶었는데 의도했다니, 이런 것이 참된 가르침인가 보다. 말을 버리라는 가르침을 원고 압박과 원고 집필로 승화했다. 3년 반 만에 책이 나왔으니 말이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으니 무언가가 나와버린 해탈에 도달했다.
다섯 번째는 신란의 타력이다. 타력은 800년 전 헤이안 시대의 엘리트 스님으로 정토진종을 만들었다. 그리고 결혼도 한다. 신란의 행동은 '무능한 인간일수록 구원받는다'는 가르침에 큰 힘이 되어간다. 하지만 지나치게 개혁적인 타력 탓에 유배를 떠아게 되고 승려 자격도 박탈당한다. 일반인이 된 유배지에서 신란은 오히려 각성하게 되고 무를 인정하며 무한의 경지에 도달한다. 저자 또한 출간 압박에 시달리며 깨달음을 얻는다. 이게 바로 몸소 실천하는 종교인 셈이다.
마지막은 쿠카이의 밀교(비밀 불교)다. 신란 보다 400년 전 사람이니, 1200년 전 사람이지만 불교의 최종 형태로 여겨지는 궁극의 철학이라 마지막에 넣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예술에도 능통한 천재였으며 외모도 수려한 몸짱 인싸였다고 소개한다. 성(性) 멀리하는 불교와 반대로 생명을 중시하기 때문에 성과 분노 에너지를 높게 쳤고 비밀스럽게 분포되었다. 결국 대일여래, '욕망'을 인정한다. 저자 또한 원고를 제안받고 인정 욕구를 연료 삼아 책이 나올 수 있었으니 마지막에 넣은 건 다 의도된 거라 할만하다. 결국 그는 좋은 사람을 만나 아이 아빠가 된 것으로 마무리된다.
말도 안 되는 해석이네, 병맛인가. 낄낄거리면서 읽다 보면 어느새 빠져 버리고야 만다. 멍소리 같은데 듣다 보면 다 맞는 말이다. 이 작가 글 솜씨가 재능 있다. 그래놓고 본인은 루저라고 말하니 또 부러움의 연속이다. 어려운 철학 책을 쉽게 재미있게 안내하는 게 포인트다. 유행 중인 《부처 초역의 말》보다 더 간결한 동양 철학서이니 한 번쯤 읽어보면 어떨지 추천한다. 저자의 영혼을 갈아 넣은 삶으로 만들어진 책.
읽는 내내 일본은 별게 다 책이 되는구나 싶었고, 우리나라도 번역되니, 나도 한번 써보자 동기 부여가 되었다. 나도 이 말을 한 게 벌써 4년 째인 것 같다. 정말 이제는 벼랑 끝이다. 얼마 전 이상근 감독이 벼랑 끝에 몰려 한 달 만에 초고가 나왔다는 말에 자극받아 나도 시작해 보려 한다. 이런저런 핑계는 그만. 이제는 좀 쓰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