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림을 보며 어른이 되었다 - 오답노트 같았던 삶에 그림이 알려준 것들
이유리 지음 / 수오서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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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금에서야 이 책을 알게 된 것일까. 그림을 설명하고 자신만의 해석을 붙이는 책을 종종 만날 때마다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다. 15년 동안 작가로 살아왔다는데 이유리 작가의 책을 처음 접했다. 앤디 워홀이 감추고 싶어 했던 자신의 콤플렉스와 말련의 반 누드 자화상이 충격과 영감으로 다가왔다. 각종 SNS에서 가면을 쓴 채 살아가는 현대인이 전형이 이미 앤디 워홀이란 작가로 다듬어진 게 아닐까.



표지와 소재를 보고 그동안 읽었던 책과 비슷할 거라는 선입견은 에드워드 호퍼와 조세핀 호퍼의 일화를 읽으면서였다. 그중 우연히 영화 <에드워드 호퍼>를 봤었던 두 달 전에는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에서 영감받아 만들어진 옴니버스 영화 <더 킬러스>를 봤기 때문이다. 미국 출신 20세기 가장 유명한 화가 중 한 명인 그에 대해 잘 몰랐던 부분을 알게 되었다.



대체 성공한 남성 뒤에는 늘 그 재능을 뒷받침하고 뒷바라지해 주는 여성이 있었다는 클리셰는 지속적으로 반복되어 왔다. 호퍼와 조세핀의 경우 사랑이라는 가스라이팅인지 싶은 결혼생활을 지속해 온 조세핀의 속마음으로 여러 권의 일기와 편지로 남아 있다. 호퍼가 유명하진 계기도 조세핀의 영향력 때문이었지만 결국 부엌데기로 전학한 삶을 개탄스러워했던 조세핀의 글이 마음속에 콕 하고 박혔다. 20세기까지 여성은 언제나 뒤안길에 있었다.



대부분 호퍼의 그림 속 여인은 조세핀이었고, 철저히 그의 모델, 그림자, 내조의 여왕으로 살길 바랐다. 가정폭력을 일삼던 호퍼의 가부장적 성격은 조세핀을 쪼그라들게 만들었다. 유명인의 그림자로 살아야 한다는 건 어떤 마음일까. 킹메이커였던 조세핀의 우울과 슬픔이 호퍼의 결핍된 듯한 표정, 고독한 심장에서 느껴진다.


대체 결혼이란 무엇인가. 오만가지 생각이 들 때쯤. 앤드루 와이어스의 <결혼>이란 그림을 보고 더 많은 생각이 쌓여만 갔다. 노부부가 장문을 열어두고 이불을 턱까지 끌어당겨 덮고 있다. 마치 한날한시 함께 이번 생을 마친 시체처럼 보이기도 한다. 강렬한 작품이지만 슬프기도 하고 다가올 미래 같기도 해 불안했다. 이 두 사람은 과연 행복할까 불행할까 끔찍할까.



책은 여성, 약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그림이다. 잘 몰랐던 작품, 작가, 다르게 해석해 보는 시도 등 확장된 세계관을 형성해 볼 수 있다. 앞으로 그림을 보는 시각이 조금은 달라질 것 같은 기대감이 된다. 누군가가 그림을 해석한 사유에 머물지 않고 나의 관점에서 바라보며 다르게 생각해 봐도 좋겠다는 용기를 얻었다. 누군가에게 올해가 가기 전 읽어야 할 단 한 권의 책을 묻는다면 당연히 책을 추천하고 싶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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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3학년, 요약 잘하는 아이가 앞서갑니다 - 10세부터 시작하는 SKY 필승 플랜
이현실.남상욱 지음 / 북폴리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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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건대 공부를 썩 잘하던 아이는 아니였다. 중학교 때까지는 그래도 공부 좀 한다는 학생이었는데 고등학교에 가서는 현실을 알아 버리고 충격받았다. 어디서는 엉덩이가 무거워야 공부를 잘한다던데, 나는 정말 엉덩이만 무거웠다. 수업 시간에 졸기도 엄청 졸았다. 간은 작아서 자습 시간이나 학원 수업은 못 빠지는 소심한 학생이었다. 게다가 요약정리를 잘 못하는 관계로 공부도 잘 못했지 아마.

어떻게 어떻게 대학은 갔는데 대학 공부가 재미있던 거다. 내가 원하는 대로 시간표를 짜고 듣고 싶은 수업을 들으니 재미있었다. 도서관에서 여러 책도 보도 DVD도 보고 학교-알바-연애-집 이 루틴으로 4년을 살았던 거 같다. 사지선다로 번호를 고르는 게 아니라 논술이 왜 이리 좋은지 모르겠더라. 물론 좋은 점수를 받은 건 아니지만 평균은 넘어 3학점 후반대로 졸업했으니 어느 정도 성공?



결국, 공부머리는 따로 있긴 하나. 자기가 좋아서 하는 걸 이기지는 못한다는 거다. 그리고 무엇보다 요약정리를 잘해서 핵심을 파악해야 시험을 잘 본다는 거다. 독서의 재미를 대학생 때부터 시작해 직장 생활에 알았다고 하면 놀랄건가? 실제로 어릴 때부터 책을 멀리한 건 아니지만 본격적으로 다독한 건 사회 초년생 때다. 출퇴근 시간, 남자친구 데이트하러 가는 시간에 읽어나갔다. 읽고 블로그에 끄적거리기도 했는데 줄거리 쓰는 걸 처음부터 잘한 게 아니다. 10년 정도 출판사 서평단을 하면서 정해진 기한 안에 읽고 요약하고 써야 하는 일을 반복적으로 하다 보니 습관이 되어버렸다. 그건 책, 영화 모두 해당된다.

자 무슨 이야기를 하나 들어나 볼까. 일단 저자분이 독해력 문해력에 뛰어난 전문가다. 두 분이 머리를 맞대고 작정하고 만들었으니 믿고 읽어보자. 쉬운 책부터 시작하는 게 좋은데 만화책, 그림책, 동화책도 좋다. 제목이 초등 3학년이지만 숏츠, 자극적인 영상, 게임에 길 들여져서 도파민이 매일 분출되는 현대인의 뇌. 편향된 사고 수동적인 지식은 짧은 글을 읽는데 어려움을 느낀다. 이 책의 방식은 아이, 어른 모든 분들에게 좋은 방법이다.

책에는 '실제 상위 1%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의 공통점은 요약력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요약은 정리, 나아가 핵심을 파악하는 일이기 때문. 예전에 알았다면 좋은 대학에 갔을까? 그건 알 수 없지만. 요약을 잘해야 한다는 건 맞다. 글 쓰는 일을 할 때도 누군가의 말을 요약정리 잘해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요약력은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연결하고 통합하는 능력을 향상하기 때문에 통합적 사고력, 비판적인 사고력, 창의성을 키울 수 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내용을 이해하고, 정리하며, 확장해 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스마트폰이 나와서 행복한가? 일의 양이 줄어들었나? 아니다. 알지 않아도 되는 잡지식, 정보는 넘쳐났고 그 속에서 핵심을 찾는 일이 중요해졌다. 미래는 더 많은 정보가 쏟아지고 주입될 것인데 그 안에서 경쟁력을 갖추며 살아남을 사람은 정해져 있다는 소리다.

저자가 초3학년을 콕 집어 말한 이유는 3학년이 되면 학교에서 본격적인 읽기 교육이 시작되고 주장하고 설득하기 위한 논리적인 생각이 필요한 나이라는 거다. AI가 요약도 해주고 글도 대신 써주는 시대에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생각을 해야 한다. 또한 '왜?'라는 질문도 계속되어야 한다.

SWOT 분석이나 포스트잇, 메모지를 활용, 형광펜 정리, 마인드맵, 다이어그램을 활용해도 좋다. 영화 리뷰 밑에 나만의 한 줄 평을 적는데 한 줄로 요약하는 능력을 기르기에 좋다. 또한 가끔 아는 분의 팟캐스트 게스트로 나가는데 내가 본 영화의 줄거리를 요약하는 설명이나 내 생각을 말할 줄 알아야 한다.


요약하자면, 이 책에서 말하는 요약 잘하는 아이는 타고나는 게 아니라 훈련으로 만들어진다는 소리다. 아이의 독서력과 문해력을 향상하고 싶다면 부모부터 스마트폰, 유튜브, TV를 보지 않고 책 읽는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꾸준히, 매일 하는 사람을 이기기는 힘들다.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다면 성인이 된 후 성인이 돼서도 충분히 개선할 수 있는 게 바로 요약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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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언 플레임 1 엠피리언
레베카 야로스 지음, 이수현 옮김 / 북폴리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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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드래곤이 공존하는 세상 《포스 윙》의 후속작이 돌아왔다. 문학성, 상업성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판타지와 마법, 서스펜스와 음모, 로맨스와 서스펜스의 적절한 배합은 영화나 시리즈로 만들어질만한 스토리텔링으로 주목할 만하다. [왕좌의 게임]이나 [위쳐]같은 시리즈물이 제작되고 있다니 희소식. 그런데 내 서칭력에 문제가 있는건지 캐스트나 스태프가 뉘신지 모르겠다.


각설하고. 당초 레베카 야로스가 3부작으로 만들었다고 했던 만큼 미국은 내년 1월 3권이 나온다고 한다. 엄청난 인기로 귀추가 주목되는 판타지 소설의 두 번째 이야기. '아이언 프레임 1' 즉 파트 1이라는 숫자를 달았으니 파트 2도 나온다는 소리다. 3권은 《오닉스 스톰》이니 인내심을 장전하고 기다려보자꾸나!




《포스 윙》이 약골이었던 바이올렛이 바스지아스 군사학교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보여주었다면 《아이언 프레임》은 전쟁에 참전해 보고 듣고 느낀 점을 설명한다. 볼륨이 두꺼워진 만큼 하고 싶었던 이야기도 많다. 특히 제이든으로 인해 연애 세포가 깨어나고 도파민이 촉진된다. 역시 주인공이 사랑에 빠져야 재미있다. 그의 양파처럼 까고 까도 또 나오는 비밀이 충격과 공포의 연속으로 진행된다. 즉, 로맨스와 서스펜스가 강해진 설정이다.

아아..가련한 바이올렛. 드래곤의 선택을 받고 통제에 능숙해졌는데 통제하지 못하는 사랑의 힘을 어찌해야 할까. 소꿉친구의 배신, 죽은 오빠의 귀환, 어머니의 위선, 금빛 드래곤의 앤다나의 변화 등 나바르 왕국이 수세가 동안 감춰온 진실도 수면 위로 떠오른다.

드래곤은 선택한 인간의 내면에 따라 능력이 발현되기 때문에 바이올렛이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내면, 정체성 등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기 때문에 늘어지는 부분이 없지 않다. 시리즈도 시즌 2가 재미없는 것과 비슷하다. 2권은 3권을 잇는 다리 역할이나 빌드업 과정이 담긴다. 확장된 세계관이나 새로운 인물을 서술하거나 그로 인한 사건 때문에 설명 스타일로 진행된다. 고로 두껍거나 인내심을 필요로 하거나 지루하기 마련이다. 떡밥 투척도 많아 3권에서 해소될 이야기가 쌓여간다.


2권 출간 특전으로 《아이언 프레임 1》 구매 시 <데못죽>일러스트레이터 '텡 작가'의 특별커버 및 보드를 증정한다. 커버 속 커버 느낌이라 2권 구매한 기분이다. 보드는 책갈피로 쓰면 굿! 《포스 윙》 구매시 로판계의 쓰리스타(?) '에나 작가'의 특별 커버 및 보드를 증정한다고 하니 관심 있는 분들은 구매 좌표를 설정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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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나가는 사람은 혼자 가지 않는다 - 사람을 통해 성공과 부의 확률을 높이는 인적 레버리지
부르르(Brr) 지음 / 와이즈베리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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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이의 기약과 기대가 상대를 내 편으로 만들고, 내가 상대의 편이 되게 만들며, 우리가 서로의 편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P109


내가 하는 일은 주로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사물을 2시간 내외 응시하는 일 즉, 극장으로 출근하는 거다. 둘째는 사람을 만나 질문을 던지고 답을 듣는 일이다. 대부분 카페로 출근하다. 이 두 가지는 하나는 수동적, 하나는 능동적이지만 다르지 않다. 사람을 만나야만 한다. 극장에 가서도 끝나고 함께 본 다른 기자나 홍보사들과 영화 관련 이야기를 나눈다. 카페에 가도 인터뷰 시간 전후로 관련된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인터뷰어와 영화나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곧 '사람'이 중요하다는 거다. AI가 세상을 운용하고 나아가 인간은 필요 없을 거란 예측도 나오는 판에 아직도 사람이 먼저다. 


이 책은 18년 차 은행원으로 시중 은행 부지점장이자 유튜브 채널 '부르르 부동산-Brr' 운영자가 썼다. 오랜 은행 근무로 알게 된 VIP 고객의 성공 노하우를 배우다 보니 중심에 '사람'이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성공한 인물, 본인이 모신 고객 등 최대한 실화를 바탕으로 예를 들며 생생함을 전달한다. 뜬구름 잡고 절대 일어날 수 없는 판타지가 아니라 바로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법칙과 예시가 가득하다. 


저자는 모든 일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고 자기가 도움받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라고 말한다. 좋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 방향을 설정하고 길을 나서다 보면 가는 도중 또 좋은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는 말도 공감한다. 얼마 전 김희애 배우의 라운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었다. 40년 연기 인생의 롱런 비결, 수많은 젊은 배우, 신인 배우 사이에서도 뒤처지지 않는 현재진행형 배우로 불리는 이유를 물어봤다. 


"같은 꿈을 꿀 수 있는 열정 어린 사람과 영감을 주는 사람으로 채워라. 과거보다는 미래를 이야기하는 사람을 곁에 두어라. 나의 단점보다는 장점을 봐주는 사람, 그렇지만 나의 단점을 발전적인 방향으로 고칠 수 있게 조언해 주고 도움을 주는 사람과 가까워져라. 이들이야말로 진짜 내 편이다." 

P151


나도 40년을 살다 보니 세상 사는 데 악다구니 쓰지 않게 되고, 돈은 없어도 사람은 있어야 한다는 데 공감하게 되더라. 책을 읽다가 가장 공감 가는 목록이 있었다. '판을 흔드는 질문을 던져라'였다. <범죄도시>로 진선규 배우가 <무한도전>에 나와 멤버들에게 질문을 받는 상황을 예시로 들었다. 그중 하하는 "선균 씨는 (제게서) 어떤 질문을 받고 싶으세요?"라고 했고 진선규는 선뜻 말하지 못했지만 잠시 뒤 "지금 제가 느끼는 기쁨으로 따지자면, 선규 씨의 동료들은 어떤 사람인가요,라는 질문을 받고 싶어요"라고 했다. 


영화 하나가 개봉하기까지 수많은 사람의 협업이 필요하다. 주연 배우, 감독, 작가 등  몇몇 사람 때문에 잘 되는 건 아니라는 거다. 진선규는 동료, 즉 사람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고 인상적인 질문을 한 하하를 지목했다. 질문은 사람 사이 예상치 못한 스파크를 전달한다. 질문은 경우에 따라 상대방이 관심이 없다고 실망할 수도 있고, 진심을 이끌어 내어 기분 좋은 분위기를 선사하기도 한다. 


한 예로 <범죄도시 4>의 김무열 인터뷰를 갔을 때다. <범죄도시>는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빌런이 다채로워지는데, 김무열이 맡은  백창기란 인물은 칼리아르니스, 단검술, 카포에라로 액션을 완성한 유단자라는 컨셉이었다. 평소 무술과 운동에 진심인 그에게 마동석이  <악인전> 때 호흡 맞춘 바 있어 다양한 운동을 할 줄 안다고 칭찬했는데 항상 액션에 준비된 자세를 취하는 거 같다고 질문을 던졌다. 


김무열 배우 인터뷰 

▼▼▼▼


[인터뷰] 영화 <범죄도시 4> 김무열 배우ㅣ..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그는 신나서 "이런 이야기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라며"15분 동안 어릴 때부터 무술 배운 이야기를 술술 늘어놓았다. 그때 김무열의 얼굴은 즐거웠던 과거를 추억하며 들떠 있었다. 아직도 그 표정과 무술(솔직히 무술 잘알못이라 다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기 단단하게 지켜준 관장님께 깊은 감사를 표하며 사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날카롭고 인상적인 질문은 상대의 뇌리를 파고들어 기억에 오래 남는다. 이 사람이 나를 이만큼 생각하고 고민했구나. 나에게 이 정도로 진심이구나. (중략) 그렇게 상대의 기억 속에 당신이 남는다면, 빈손으로 갔더라도 더 이상 당신은 빈손이 아니다" P93


엊그제 변요한 배우 인터뷰 때 딱 이런 기분이었다. 올해 5월 <그녀가 죽었다>로 처음 인터뷰에 갔는데 6개월 뒤 드라마 <백설공주에게 죽음을>로 두 번째 인터뷰에 간 거다. 사실 기대도 안 했다. 나를 기억하리라고는. 드라마를 재미있게 봤고 주인공인 변요한의 팬이기도 해서 얼굴 보러 간 거였었다. 매우 피곤했고 늦은 시각이라 끝나고 퇴근길에 올 생각하니 막막했었다. 하지만 끝난 후 사인도 받고 셀카 요청도 드리니 "우리 두 번째 만남이죠?"라고 하는 거다. 


눈썰미, 기억력 정말 좋은 배우다. 기자가 먼 길 달려와 자신을 위해 시간 내주고 질문 주며 글로 써내주는 행위를 감사하게 생각하며 건넨 작은 멘트인 거다. 나는 "헉 어떻게 아셨어요?" 했고, "왜 몰라요. 아까 들어오실 때 눈 인사 보냈는데 그거 받으신 거 아니셨어요?"라더라. 아.. 그게 그거였구나. 난 저번보다 더 멋져져서 얼굴 구경하느라 미쳐 그게 그건지 몰랐다. 이게 바로 오래가는 배우, 인기 있는 배우의 인성이고 홍보 마케팅인 거다. 


"잘 던진 질문 하나가 

'나의 인적 자산으로 이어진다"

P94


생의 첫 인터뷰를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하며 손편지와 초콜릿을 준비하는 배우, 자신이 모델인 상품을 선물로 주는 배우, 로또를 선물하는 배우, 드라마의 캐릭터에 빙의해 노란 장비와 파란 우산을 준비한 배우, 피곤할 때 먹으라며 영양제를 챙겨오는 배우 등 각양각색이다. 


이날은 영화제 다녀오면서 쌓인 피로와 감기가 한 번에 사라지던 날이라 평생 기억될 것 같다. 일본의 학자 사이토 다카시는 <질문의 힘>을 통해 이런 말을 했다. 질문은 상황이나 맥락을 어느 정도 파악했는지 나타내는 지표다. 어떤 질문을 하느냐에 따라 대화의 방향과 흐름이 달라질 수 있기에 수준, 깊이, 정성에 따라 상대는 아무에게도 하지 않은 말, 보석 같은 대답을 해줄 거라는 거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좋은 사람을 곁에 두라'였다. 어릴 때부터 연기 생활을 해 왔던 김희애는 많은 일을 겪으며 인상만 봐도 상대를 대충 간파할 수 있는 도가 텄을 거다. 어릴 때는 사람을 가려 만나라는 말에 반색했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 말의 뜻을 알겠다며 좋은 사람을 주변에 두고 일하면 좋은 일이 따라온다고 설명했다. '인적 자산'이 곧 나의 현 위치를 말해준다는 거다. 이 책을 사람관계에 어려움을 겪거나, 영업, 프리랜서, 자영업 등에 종사하는 분, 혹은 신입사원 등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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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에서 남편들이 내려와
홀리 그라마치오 지음, 김은영 옮김 / 북폴리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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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참 잘 지었다. 원제는 맹숭맹숭한 제목 'THE HUSBAND' 자고 일어나니 미혼인 로렌의 다락방에서 남편이란 작가가 끝도 없이 생겨난다니. 이게 무슨 황당하고도 감사한(?) 일인가. 매일 아니, 몇 시간, 몇 분에 한 번이라도 원하는 남편을 갈아치울 수 있다면? 이 기발한 발상은 호주 출신의 소설가 '홀리 그라마치오'의 데뷔작이다. 게임 디자이너 출신인 작가는 게임 속에서 다양한 캐릭터로 바뀌는 것처럼 판타지 설정으로 페이지터너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평범한 토요일 밤 친구의 결혼 축하 모임에 다녀온 로렌은 처음 보는 남성이 집에서 남편 행세를 하고 있다. 낯선자의 침입을 경찰에 신고하려던 순간, 손가락의 결혼반지, 휴대폰 배경화면, 친구와 가족의 자연스러운 반응을 보고 생각을 고쳐먹는다. 갑자기 유부녀가 되었다.

놀랍고 당황스러운 것도 잠시 로렌을 저 남편, 이 남편과 함께 하며 연애와 결혼 생활을 경험한다. 현실 속에서는 연애와 결혼, 이혼이 쉽지 않지만 게임, 상상, 꿈속에서는 자유자재로 가능한 상황이 소설 속에서 펼쳐져 짜릿한 쾌감을 전해준다. 독자는 다음 남편이 내려옴에 따라 달라지는 상황을 기대하고, 실망과 흥분을 오고 가며 다채로운 감정을 느낄 수 있다. 과연 내가 '로렌이라면'하고 주인공의 감정에 이입하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는다.

남편이 바뀔 때마다 가족, 친구의 상황도 세트로 변하는 게 신기했다. 여러 남편을 만났지만 쉽게 만족하지 못했다. 외모, 피지컬, 성격, 직업, 인종, 국적이 달라져도 말이다. 과연 언제까지 남편을 화수분처럼 만들어 낼까? 남편이 바뀔 때마다 가족, 친구와 시간도 지워버리는 짓을 언제까지 반복하게 될까? 진정한 반려자를 찾아가는 여정은 쉽게 끝나지 않고 수백 가지의 인간 군상을 맞으며 성장한다.


결혼은 싫지만 남편을 갖고 싶은 요즘 MZ 세대의 마음을 취향 저격한 소설은 마치 영화 <뷰티 인사이드>처럼 원하지 않는 모습과 상황으로 살아가는 설정이다. 다락방에 블랙홀이 있나? 슈뢰딩거의 고양이? 양자역학? SF적인 물음이 머릿속에 떠다닌다.

이야기는 흥미롭고 재미있다. 결혼을 해봤다면 공감할 만한 내용이 웃음을 유발한다. 지긋지긋한 남편과 평생을 함께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탈피해 200여 명의 남편과 살아 볼 수 있다면 어떨지 궁금해진다. 다양한 형태의 결혼이 소개되고 19금의 자극적인 설정도 거침없이 등장한다.

한 번 잡으면 끝낼 수 없는 몰입감 높은 필력은 다소 두께감이 있지만 금세 읽어갈 수 있었다. 벌써 판권이 팔렸을 것 같은데 (역시 출간 전 전 세계 12개국 판권이 계약되었다고..) 넷플릭스 시리즈나 영화로 만들어질 스토리다. 남편이 바뀜에 따라 주인공의 인생도 세트로 바뀌는 설정은 21세기 연애, 결혼관에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다만 아쉬웠던 건 로렌의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면 좋았을 거 같다.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이라 로렌과 로렌의 지인, 친구, 가족, 남편을 관찰하는 기법이 대체로 산만하다. 로렌의 시점과 감정으로 흘러간다면 좋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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