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어
공지영 지음 / 해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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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런 내용이었군요. 1994년에 발표한 공지영 작가의 《고등어》를 지금에서야 새로운 표지로 읽어 보았습니다. 늘상 제목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지만 다른 작품은 읽어봤으면서  《고등어》만은 접하지 못했던 이유가 뭔지 모르겠어요. 아무래도 제목이 주는 비릿함과 각자만의 이미지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제게 고등어는 이제 밥 상위의 생선이 아닌, 자신의 운명도 모르고 열심히 무엇인가를 해왔던 바보 같은 지난날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될 것 같습니다.




"난 어쩌면...... 정말 유토피아를 꿈꾸었던 건지도 몰라. 이  세상에 없기 때문에 이름이 유토피아라지? 이 세상에서 우리가 상상했던 모든 좋은 세계에 대한 상상을 사회주의 속에 다 가져다 부어놓고, 그것이 단지 꿈으로 끝날 수도 있다는 상상은 해보지도 않았어. 다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었어, 굳게 믿었지 그리고 아직도...... 아직도..... 그 미망에...... 사로잡혀 있으니까. "

P216



《고등어》는 명우라는 남자와 세 여자의 실타래처럼 얽힌 인연을 하나하나씩 풀어 놓는 사랑 이야기의 외피를 입고 있습니다. 겉은 그렇지만 외피를 조심히 벗기고 안을 들여다보면 노동과 권력에 저항한 투쟁의 흔적을  간직한  속살이 나오죠. 그렇게 80년대 사회와 정치, 역사. 그리고 낮은 곳을 위해 소위 운동권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갔던 사람들이 만든 세상에서 천대받고, 아파하고, 잊히며 가장자리 귀퉁이로 내몰린 사연을 조심스럽게 풀어내고 있습니다.



동지란 이름으로 그룹에 들어온 남편 있는 여자 노은림. 설마 하는 우려는 명우와의 불꽃 튀는 사랑을 만들어 냈고, 치기어린 사랑이라 여겼던 명우는 같이 떠나자고 해놓고 돌연 약속을 어겨버립니다. 참 무책임한 남자의 표상입니다.


그 후로 은림의 삶은 걷잡을 수 없이 나락으로 추락해버려요. 현재 결핵을 앓고 있고 아버지와 오빠와 남편을, 그리고 그의 아이까지 잃어버린 다시는 회복될 수 없는 것들을 빼앗긴 사람입니다. 그녀와의 사랑을 꿈꿨던 명우는 연숙과 도망치듯 결혼했고, 딸 명지를 가진지도 모른 채 이혼했죠. 그리고 현재는 여동생 명희의 친구인 여경과 사랑하고 있습니다.


누가 보면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복받은 남자 아닌가요? 옛 애인과 옛 아내와 현 애인이 그리고 딸이 한자리에 모인 장면은 생각만으로도 숨이 막혀오고 당장이라도 누군가 소리를 지른다고 해도 이상할게 없었습니다. 명우는 대학시절 은림과 연숙과  운동권으로 활동했고, 한때 문학상도 받았던 버라이어티한 삶을 살았습니다. 지금은 살기 위해 그 능력을 다른 곳에 써버리는 사람이 되어버리죠. 자본주의 사회에서  잘 살아남은 사람들의 삶을 멋지게 꾸며 써주고  있는 자본주의의 시녀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들은 생각할 거야. 시장의 좌판에 누워서 나는 어쩌다 푸른 바다를 떠나서 이렇게 소금에 절여져 있을까 하고. 하지만 석쇠에 구워질 때쯤 그들은 생각할지도 모르지. 나는 왜 한때 그 바닷속을, 대체 뭐 하러 그렇게 힘들게 헤엄쳐 다녔을까 하고. "

P256


여기서 말하는 '고등어'는 이들을 상징합니다. 바닷속에서 무리를 지어 다니며 은빛 비늘을 무수히 반짝거리리던  살아 있는 고등어 떼. 짙은 초록의 등을 가진 은빛 고기 떼.  자유롭게 물속을 오가는 자유의 떼들,  탱탱한 생명체들은 서울의 어느 좌판에서 소금에 절여 배가 갈라지고 오장 육부가 뽑혀 나가고. 이렇게 허무하게 죽어갈 줄은 몰랐던 거겠죠.


누구는 미쳐가거나, 죽어가거나, 감옥에 가 있거나, 사회에 순응합니다. 거시적인 관점에서는 사랑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미시적인 관점으로 보자면 사회의 냉대에 저항하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시든 80년대 운동권의 상징이 고등어입니다.


80년대 대학생이었던 그들은 대체 무엇을 위해 그토록 모든 것을 쏟아부어 투쟁했을까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뿌리내린 2017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는 당시의 그들 마음을 다 헤아리지 못합니다. 공지영이 심어 놓은 '노은림'이란 캐릭터는 그 중심에선  대표적인  희생자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희생자를 양산해야 하는 걸까요? 그리고는 쓸모없이 버려지는 수많은 사람들. 신뢰를 잃은 사회를 지금에서야 다시 생각 해 봅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료로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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