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의 섬 웅진 모두의 그림책 41
다비드 칼리 지음, 클라우디아 팔마루치 그림, 이현경 옮김, 황보연 감수 / 웅진주니어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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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이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동물들의 한(恨)이 서려 있는 듯하다. 무채색의 표지의 나무 사이에 숨겨져 있는 제목, 서늘하고 아득한 동물들의 존재. 이 음침하고 찝찝한 그림책을 펼치는 순간 이승과 저승의 경계 연옥이 생각났다. 축축하고 그늘지고 기분 나쁜 냄새가 날 것 같은 책의 정체가 뭘까.

 

동양적인 관점에서 이 책을 살펴봤을 때 '전설의 고향:동물 편'이란 생각이 들었고, 멸종된 동물들을 위해 굿이라도 해줘야 하는 싶은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림체에서 느껴지는 기묘함은 의도한 게 아니었을지 조심스럽게 짐작해 본다.

 

《그림자의 섬》은 꿈의 그늘에서 악몽을 치료하는 의사 '왈라비'의 신비한 능력으로 시작된다. 백발백중 무서운 꿈을 꾸는 동물을 치료하던 그는 '태즈메이나주머니늑대'의 방문으로 아무것도 없는 꿈에 대해 알게 된다. 텅 빈 어둠만 있는 꿈을 꾸는 이유는 바로 죽었기 때문이고 '멸종', 유령이 되었음을 알려준다.

 

                                    

왈라비는 이제 세상에 없는 동물들이 영혼이 모여 사는 유령의 섬으로 안내한다. 그 동물들을 하나하나 세밀하게 그린 그림으로 아픈 마음을 위로한다. 128마리의 초상은 당신을 똑똑히 응시하고 있다. 똑바로 쳐다볼 수 없고 미안한 마음과 죄책감이 밀려온다.

                                    

악몽을 치료하는 게 아니라 악몽을 유발할 것 같은 으스스 한 그림체 중. 악몽을 먹어치우는 방법이 제시되어 있는 것도 충격적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보다가 자세히 곱씹어 보니, 동물을 포획하는 다양한 방법임을 알게 되었다.

 

 

아마 인간은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존재일 것이다. 반드시 동물, 식물, 자연의 지배, 천벌을 받지 않을까. 걱정까지 되는 것은 왜일까. 오늘은 우연치고는 섬뜩하게 '환경의 날'이다. 오늘 하루뿐만이 아닌 매일 지구와 환경, 동물을 생각하는 날이 되길 바란다. 그림과 내용이 충격적이라 여운이 크다. 마치 내가 악몽을 꾼 것처럼 몸과 마음이 저릿해져 온다.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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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쩌다 그만두지 않았을까
정옥희 지음, 강한 그림 / 엘도라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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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나빌레라]는 동명 웹툰을 바탕으로 했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참 많은 것을 얻었다. 꿈을 이루는 데 나이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70대 알츠하이머 할아버지에게 배웠으니까. 드라마의 영역이 요 몇 년대 격변했다. 삼각관계, 고부갈등, 출생의 비밀 등으로 돌려 막이 하던 소재가 한계가 어디인지 모를 만큼 다양해졌다.

 

 

 

[나빌레라]는 시도하지 않았던 발레가 소재일 뿐만 아니라, 발레리나가 아닌 발레리노였다. 남성의 발레는 여성보다 주목받지 않는다는 개인적인 고정관념 때문에 신선한 충격이었던 기억이 있다. 남자 무용수의 세계를 들려다 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낡아서 구멍이 나버린 슈즈와 땀 냄새나는 발레복이 연습의 결과치처럼 보인다는 대사가 마음에 와닿았다.

 

 

 

그래서 발레리나 정옥희의 에세이도 그 연장선으로 재미있게 읽었다. 발레리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투덜거리는 발레리나가 은근 귀엽게 느껴지기도 했다. 물 위의 우아한 상반신 아래 열심히 다리를 움직이는 물밑작업을 이미지가 아닌 텍스트로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부산 광안리 해수욕장과 맞닿아 있는 발레학원에 초등학생 때부터 다닌 정옥희는 아이들이 취미로 시작한 발레를 진로로 결정했다. 말없이 입을 다물었지만 몸으로 말하는 춤 동작에 매력을 느꼈다. 초등학교 4학 년 때 처음으로 나간 무용 콩쿠르에서 본 길고 아름다운 자신의 그림자에 반했다.

 

 

 

그 강렬하고 따뜻한 경험을 잊을 수 없어 발레리나가 되었다. 내성적인 성격이라 말을 하지 않는 발레가 잘 맞았던 걸까. 춤에는 말을 하지 않아 달변가가 없다. 그러나 무용수의 움직임은 매혹적이고 섬세한 언어가 된다. 고로 무용수는 언어에 매혹당한 사람들이다.

 

 

 

정옥희 발레리나는 1만 시간의 시간의 힘을 믿었다. 1만 시간의 노력과 재능으로 프로 발레리나가 되기까지의 스토리가 담겨 있다. 특히 지긋지긋한 평생 다이어트 잔혹사는 듣기만 해도 소름 돋는다.

 

그리고 엄마 발레리나의 고군분투와 발레 스타일의 옷과 신발의 유행, 핑크 계열 속 브라운 계열의 포인트 슈즈가 드문 이유 등 개선되지 않는 발레계 문제까지 다양하게 다룬다. 발레는 아직까지 백인 문화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춤을 언어에 비유하자면 발레는 영어라는 말이 인상적이다. 고로 발레는 기득권의 문화, 발레 패권이란 말이 생길만하다. 전통춤에 발레의 틀과 원리를 받아들이는 경우가 그 예이다.

 

 

 

이 책을 통해 생각보다 우아하지도 넘볼 수 없는 분야도 아닌, 생활이 담겨 있는 발레의 무대 뒤 모습처럼 느껴진다. 마치 험담을 하듯 그동안의 힘들고도 재미있었던 후일담을 들려주는 선배 같다. 얼마나 많은 드레스를 입었을까 가늠조차 어렵다. 그래서일까. 정작 웨딩드레스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걸까 싶다.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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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학자의 노트 - 식물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
신혜우 지음 / 김영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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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잘 그리는 사람이 언제나 부럽다. 내 손은 똥손이라 그림에는 젬병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냥 지나쳤을 여러 들풀의 이름을 꼼꼼히 알게 되었다. 참 예쁜 이름과 독특한 형태를 가진 식물이 지구에서 공존한다. 인류가 생기기 전에 지구의 지배자였을 식물을 생각하니 공손해진다. 인류보다 지구 경력 선배이니까.

 

특히 고사리는 '살아있는 화석'이라 불릴 정도로 인간보다 지구에 오래 사신 식물님이다. 영국 식물학자에 따르면 식물원 근처 고사리 서식지에 봄철만 되면 고사리를 꺾는 아시아인이 많다고 한다. 고사리가 얼마나 맛있는데 서양 사람들은 고사리의 참맛을 모르다니. 안타깝기 짝이 없다. 고사리는 오랜 세월 지구에 살아가면서 새로운 기후와 지형에 적응해왔다. 고사리를 보면서 변화에 적응 잘하는 모습을 배워야겠다고 느꼈다. 온고지신의 콜라보레이션. 옛것은 지키면서 새로운 점을 받아들여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유연함이 장수 비결이다.

 

최근에 본 영화 <리틀 조>가 생각나기도 했다. 자연 본성(생식)을 제거 당한 식물이 인간을 번식 매개로 쓰는 이야기다. 꽃가루를 뿌려 인간의 코로 흡입, 뇌를 조종당한 인간은 오로지 '리틀 조'만 돌본다. 바람, 물, 동물을 이용해 번식하는 식물이니 충분히 인간을 매개체로 쓸 수 있다는 말이다. 신기하기도 하고 오싹했다.

 

몇 해전 능소화 꽃가루가 망막을 손상시킨다는 유언비어가 떠돌았다고 한다. 처음 듣는 소리여서 당황했던 것도 잠시. 여름철 예쁘게 피는 능소화의 꽃가루는 갈고리가 있다는 것이었는데, 결과적으로 능소화 꽃가루는 독성이 없고 표면이 매끈하다. 마지막 그림의 꽃가루를 강아지 코를 아래서 봤을 때의 모습 같아 귀여웠다.(나만 그런가)

하지만 이 책에 등장한 식물은 섬뜩함보다는 아름답다에 가깝다. 신혜우 식물학자는 과학 일러스트를 그린다. 대학에서 생물학을 공부하고 식물분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림도 잘 그려 수상도 어려번 했다. 이 그림들은 국외의 컬렉션으로 선정된 바 있다. 국내에는 생소한 '생물 일러스트레이션'분야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식물분류학과 생물 일러스트레이션 분야를 융합한 국내외 전시, 식물 상담소, 강연, 어린이 교육 등 다재다능한 분이다. 영국왕립원예협해 보태니컬 아트 국제전시회 2013,2014,2018 금메달. 최고전시상을 받았다. 그림을 완성하는 데 1년에서 3년까지 걸린다고 하니, 식물 그림에 진심인 편이다.

 

낙엽이 떨어지면 쓸쓸한 느낌이 든다. 오 헨리의 단편 《마지막 잎새》가 강렬하게 떠올라서 인건 아닐까. 내친김에 《마지막 잎새》을 다시 곱씹어 보기까지 했다. 다시 찾아보니 소녀가 아니라 뉴욕에 사는 무명 화가였던 것. 마지막 달려 있던 잎은 '담쟁이덩굴 잎'이었다는 것 나만 몰랐던 사실인가. 마지막 남은 잎새를 그리기 위해 모진 비바람을 뚫고 그림을 그렸던 베이먼 씨의 예술혼이 살아 있는 듯하다. 일생일대의 예술작품은 죽기 전에 만들어지는 것인가. 안타깝고 잔혹스럽기도 했다.

                                    

잔인한 동물이라면 '인간'이 최고지. 앞서 말한 <리틀 조>에서도 박람회에 내놓을 요량으로 육종개량한 꽃 '리틀 조'를 만들다가 일어난 참사를 다룬 이야기다. 책을 읽으면서 안 사실인데 원예용으로 인기 좋은 수국 꽃잎의 비밀을 파헤치고 있다. 수국은 산성에서 푸른 꽃을, 염기성에서 붉은 꽃을, 중성에서 하얀 꽃을 피운다.

 

꽃을 자세히 보면 진짜와 가짜가 있다. 가장자리 화려한 꽃을 무성화 가짜 꽃이라 부르고 암술 수술이 있는 진짜 꽃이 안쪽에 숨겨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많이 보는 관상용 수국은 이 산수국을 가짜 꽃으로만 만든 원예종이라는 거다. 생각지도 못한 반전. 수국을 자세히 보면 수술, 암술이 없다. 겹꽃잎이 예쁜 장미도 자연 종이 아닌 인위적인 원예종이라는 진실을 알게 되었다.

 

뿐이다. 끝은 또 다른 시작이다. 잎새가 떨어진다고 해서 인생이 끝났다고, 외롭고 쓸쓸하다고 느끼지 말자는 말. 가을이 되면 일조량이 떨어져 세로토닌과 멜라토닌 분비량이 많아진다. 고로 차분해지거나 멜랑꼴리해지는 것일 뿐. 괜한 낙엽 타령하며 우울해하지 말고 기분 탓이니 밖으로 나가 햇볕을 쬐자.

 

책은 잔인한, 강력한, 혹독한, 그러나 이타적인 식물들도 소개하고 있다. 리뷰에서 모든 내용을 다룰 수 없기에 궁금한 독자는 책을 읽어보길 바란다. 식물에 관심이 많다면 소장용으로도 손색없고, 그림에 관심 있어도 매우 유용하다. 이름도 생소한 식물들의 생애가 영화로 치면 다큐멘터리처럼 펼쳐진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읽고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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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의 바다에 구명보트 띄우는 법 - 우울증을 겪고 있는 이와 그 가족들을 위한 실전 매뉴얼
오렌지나무 지음 / 혜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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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조울증, 공황장애, 강박장애 등등. 복잡해지고 빨리지는 사회 속 마음의 병이 늘어가고 있다. 연예인의 솔직한 고백이나 다양한 미디어의 소재로 다뤄져 세상 밖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 병이지만 아직도 자신조차 아픈지 모르고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저자는 20년 가까이 우울증을 앓고 돌이킬 수 없는 극단적 선택까지 생각했었다. 마음이 아픈 게 길어지자 몸 구석구석이 탈이 나기 시작했고, 신체적 고통까지 복합적으로 따라오다 보니 살아갈 힘을 잃어버리게 된다. 오히려 우울증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을 때도 있었다. 왜냐하면 우울증에서 회복된 이후 맞닥뜨려야 하는 현실이 더 버겁기 때문이라고 한다.

 

 

 

본인의 청춘을 우울증으로 보내고 나니 긴 공백을 어떻게 설명할지 막막했다. 은둔형 외톨이 생활을 7년 정도 했더니 사회생활이 어려웠다. 뒤늦게 학교 공부를 마치려고 했지만 자해와 더불어 충동적으로 목숨을 끊고 싶은 일이 잦아졌다. 긴 터널을 지나는 기분이었고 빠져나갈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저자는 상담 치료와 약물의 도움 없이 우울증을 자가 치료했고 책을 극복한 경험담이 가득하다. 더불어 가족 중에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까지 실전 매뉴얼과 조언을 담았다.

 

 

 

우울증에서 벗어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자체는 거의 20년에 걸친 투병 생활 중 1년여 정도였다. 우울증이라는 병명을 받아들이는 데 걸린 시간, 우울증이 어떤 병인지 알아가는 시간, 이런 생각과 고통도 우울증이라는 병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아가는 시간, 삶을 중단하는 방법은 정답이 아니라는 걸 납득하는 시간, 반드시 우울증에서 벗어나겠나는 시간, 모든 욕심을 내여 놓는 시간, 온갖 방법을 시도해보던 시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패하고 좌절했던 시간은 헛되지 않았다.

 

저자만의 노하우를 읽으면서 20여 년 동안 정말 힘들었겠나 와 대단하다가 교차했다. 가족의 도움이 큰 힘이 되었고 무엇보다 병을 인식하고 습관을 개선해 나가며 조금씩 보이지 않는 출구를 향해 더듬더듬 나아갔던 모든 시간은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인생 경험이다. 저자의 인생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를 돌아보게 되었고, 본인 의지로 병을 이겨낼 수 있었다는 희망을 발견했다. 우울증을 겪고 있는 사람과 그 가족이 꼭 읽어보고 도움받았으면 좋겠다. 더불어 마음의 병은 언제 어떻게 나에게도 올지 모르기에 백신 맞는 기분으로 담담히 읽어갈 수 있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읽고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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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국의 어른답게 말합니다 - 품격 있는 삶을 위한 최소한의 말공부
강원국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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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백살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잘 듣고, 잘 쓰고, 잘 말하기 위해 쉼 없이 노력하는 모습에 고무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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